대관령 옛길 ‘국사당’부터 원도심 ‘남대천’까지 천년축제는 계속된다
강릉단오제 마지막 날엔 남대천 일대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2024 강릉단오제 ‘솟아라, 단오’
축제 기간 2024년 6월 6~13일
운영 시간 오전 10시~자정
장소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및 남대천 행사장 일대
문의 (033)641-1593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의 문화매력을 찾아내고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역의 문화명소, 콘텐츠, 명인 등을 ‘로컬100’으로 선정했다. ‘로컬100’은 지역의 문화, 예술, 역사, 관광, 생활양식 등 지역문화 자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로컬100에 선정된 축제와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만 해도 일 년 열두 달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양주별산대놀이, 밀양아리랑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통영국제음악제, 춘천마임축제,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 등과 함께 문화예술형 축제·이벤트에 이름을 올린 ‘강릉단오제’는 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 지역 축제다. 2024년 강릉단오제 ‘솟아라, 단오’는 6월 6일부터 13일까지 강릉단오제 전수교육관 및 남대천 행사장 일대에서 열린다. 강릉단오제를 앞두고 대관령 옛길부터 강릉 원도심까지 단오제의 문화유적들을 찾아가는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다.
강릉단오제는 한 해의 안녕과 풍농(?農), 풍어(?漁)를 기원하는 축제로 음력 4월부터 5월 초까지 한 달여에 걸쳐 강릉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규모 전통문화 축제다. 1967년 국가유산으로 지정돼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됐다. 매년 50만 명이 찾는 강릉단오제의 올해 주제는 ‘솟아라, 단오’다. 축제 전 찾은 강릉 시내 곳곳은 오방색 천이 솟아오르는 화개(花蓋·무당들이 장대 끝에 매달아 놓는 깃대)를 형상화한 포스터와 대형 현수막들로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화개는 강릉단오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요소로 ‘용의 기운, 희망, 강릉단오제의 위상이 솟아나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강릉 시민들에게 설·추석만큼이나 큰 명절이다. 한 달 전부터 단오제 의식들이 거행된다. 시작은 신주미(神酒米) 봉정이다. 이후 신주 빚기, 대관령 산신제, 대관령국사성황제, 신목(神木) 베기, 대관령국사성황 행차, 봉안제, 영신제, 영신행차, 조전제, 단오굿, 관노가면극, 송신제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각 행사를 여는 공간들은 단오제와 관련이 깊은 곳들이다. 이곳들을 연결한 ‘강릉단오제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다.
강릉단오제에서 주민들이 다리 위에서 횃불을 들고 풍년을 기원하는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를 하고 있다.
음력 5월3일 강릉단오제의 주신을 모신 신목이 이동하는 신통대길 길놀이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대관령 기도 명소 ‘대관령국사성황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강릉으로 향한다면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대관령산신각’과 ‘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탐방을 시작하는 게 좋다. 두 곳은 모두 영동 지역을 두루 보살펴준다는 영험한 신을 모신 사당이다. 그중 대관령국사성황사는 신라 말기의 고승이자 고려 건국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승려 범일국사를, 대관령산신각은 대관령을 중심 공간으로 삼아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장군 김유신을 모시고 있다. 강릉단오제가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음력 4월 15일 산신각에서 산신제를 올린 다음 성황사에서 국사성황제를 지낸다. 이때 신맞이 굿을 한 후 뒷산에서 신목인 단풍나무를 베어 들고 강릉으로 행차하는 ‘대관령국사성황 행차’를 한다. 신목은 강릉 홍제동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봉안했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낸다. 시내를 도는 영신 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치르는 과정을 거친다.
‘국사당’, ‘국사성황사’라고도 불리는 대관령국사성황사에는 전립을 쓰고 백마를 탄 범일국사 화상이 있다. 대관령산신각 내부엔 호랑이를 탄 산신 모습의 화상이 있다. 두 곳을 포함해 일대는 대관령 옛길의 오랜 기도 명소로 일 년 내내 기도를 하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찾아와 굿을 하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두 곳은 대관령 옛길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선자령 ‘목장 코스’가 이어지는 초입에 위치해 등산객이나 트레킹족에겐 유명한 곳이다. 선자령 등산로가 1.2㎞, 소나무 코스 사거리가 0.2㎞ 거리에 있다.
강릉단오제 유적탐방을 이어가려면 구산리 ‘구산서낭당’, 학산리 ‘학산서낭당’, 홍제동 ‘대관령국사여성황사’, 남문동 ‘경방댁’ 등을 거쳐 명주동 ‘칠사당’으로 향한다. 대관령 옛길을 통하는 코스로 아름다운 경치는 덤이다.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 풍력발전기를 지나면 ‘대관령비’ 뒤로 강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대관령박물관, 대굴령마을도 지난다.
강릉단오제에 앞서 신주 빚기를 진행하는 ‘칠사당’.
굴산사지 ‘보물’ 찾기
구산서낭당이나 학산서낭당은 국사성황신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내려오다가 머문다는 곳이다. 강릉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6㎞ 정도 떨어진 학산리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범일국사 설화가 남아 있는 마을이다. 구정면 사굴산엔 847년(문성왕 9년) 범일국사가 창건했다는 사찰 굴산사 터(학산리 587번지 일대)가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굴산사 창건 설화는 이렇다. 범일이 당나라 유학 당시 명주 개국사에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를 만났는데 그의 집이 강신라 명주 땅(현 강원도 영동 일대) 있다면서 범일에게 본국에 돌아가거든 자신의 집을 지어줄 것을 간청했다. 범일은 훗날 그의 고향이라 일러준 곳에 굴산사를 창건했다. 절의 역사나 폐사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현재는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대신 보물을 남겼다. ‘강릉 굴산사지 승탑’이다. 범일국사의 부도탑이라 추정하고 있다. 굴산사 터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 벌판의 석재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당간지주로 알려져 있다.
범일국사의 탄생에 얽힌 설화를 간직한 학바위도 부근 산기슭에 있다. ‘강릉 학산 마을에 양갓집 처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석천 우물에 물을 길러 갔다가 해가 담긴(비친) 바가지의 물을 마신 뒤 열네 달 만에 사내 아기인 범일을 낳았다’는 바위다. 이후 학들이 날아와 날개로 감싸주고 붉은 열매를 먹이면서 범일을 지켜준 곳이라 전해진다.
대관령국사성황사 일대는 대관령 옛길의 오랜 기도 명소다.
580년 보호수 ‘칠사당’서 신주 빚기
강릉 원도심에 있는 ‘강릉대도호부관아’는 강릉단오제 주 행사 중 하나인 신주미 봉정과 신주 빚기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매년 단오제를 앞두고 동헌에선 신주미 봉정을, 부속 건물 칠사당에선 신주 빚기를 진행한다.
신주미 봉정은 강릉단오제에 쓰일 술인 신주를 빚는 데 필요한 신주미를 십시일반 자발적으로 모으는 대표적인 시민 참여 행사다. 신주미를 모아 빚은 신주는 강릉단오제 제의에 쓰이고 강릉단오제 체험촌에서 시민·관광객과 함께 나눠 먹는다. 강릉단오제위원회 측은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세대가 신주미 봉정에 참가해 역대 최대 신주미가 모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칠사당은 조선 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를 보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에 고쳐 짓고 1726년에 크게 수리한 후 1866년에 진위병 군영으로 쓰다가 이듬해 화재로 소실돼 강릉 부사 조명하가 다시 지었다고 한다. 칠사당은 강릉대도호부관아에서도 가장 고풍스러운 운치를 간직하고 있다. 580년 수령의 은행나무 보호수가 그늘을 드리운 마당은 이곳을 거쳐간 관리들이 특히 사랑했다는 공간이다. 나무를 두른 돌을 방석 삼아 잠시 쉬어가기 좋다. 이따금 시민들이 단오제 때 열릴 투호 대회를 위해 연습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1층에 있는 전시관에선 강릉단오제의 역사와 진행과정을 볼 수 있다. 사진 박근희 객원기자
축제의 장 ‘남대천’으로
칠사당에서 가까운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일대 남대천은 강릉 최대 축제인 강릉단오제 행사의 주무대다. 단오제가 열리는 8일간 전통문화의 정수인 ‘제례’와 신과 사람이 소통하는 ‘굿판’, 그리고 전국 최대 규모의 난장과 놀이판이 시끌벅적하게 펼쳐진다. 단오제 지정 문화행사 외에 무형유산 공연과 무대 공연 예술제, 해외 초청 공연, 각종 문화·예술 경연 대회 등이 다채롭게 열린다. 단오제 체험 거리도 풍성하게 준비돼 있다. 신주·수리취떡 맛보기 행사와 창포 머리 감기는 기본이고 관노탈 그리기, 단오빔 입어보기 등의 행사도 열린다.
축제 전이라면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전시실에서 강릉단오제 역사문화탐방의 마침표를 찍자. 탐방 코스에 대한 정리는 물론 강릉단오제 주요 행사의 유래와 의미, 단오제의 큰 축인 관노가면극과 난장에 대한 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을 나설 무렵 교육실에서 단오제에 올릴 공연 연습 소리가 울려퍼졌다. 천년을 이어온 축제가 이제 곧 시작됨을 알려주려는 듯.
박근희 객원기자
박스기사
‘2024 강릉단오제’ 주요 행사
5월 12일 신주 빚기
5월 22일 대관령산신제 및 국사성황제
6월 6일 관노가면극, 달맞이 농악대, 경산자인단오제 팔광대
6월 7일 관노가면인형극, 단오섬 ‘불꽃놀이’
6월 8일 단오맞이 ‘제10회 전국민요경창대회’, ‘솔향아리랑제’
6월 9일 부정굿·조상굿 등, 국외 초청 공연
6월 10일 심청굿 등, 강릉농악경연대회, 단오공원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
6월 11일 관노가면극, 단오공원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
6월 12일 양주소놀이굿 등, 관노가면인형극
6월 13일 축원굿·꽃노래굿 등, 강릉학산오독떼기, 월화교 ‘불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