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년(28세); 궁예는 후고구려의 왕임을 공식적으로 천명. 송악을 수도.
고구려의 후예임을 표방하고 있던 현지 호족세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음.
<삼국사기> 궁예 열전; 선종이 왕을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예전에 신라가 당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파멸시켰으므로 평양 옛 서울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라고 하였다.
송악의 왕건 가문도 궁예를 적극적으로 지원.
이때부터 본격적인 후삼국시대 전개.
904년(31세); 국호를 ‘마진摩震’(연호는 무태武泰)으로 바꿈. 철원으로 감.
‘마진摩震’; 마(摩)는 마하라는 말의 줄임말. 빠르다 또는 크다(大)는 의미.
진(震)은 동방을 상징. “대동방국(大東方國)”을 표방.
국호를 바꾼 이유; 백제 지역 및 신라 지역까지 영토가 확장.
‘고구려’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호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
왕건을 중심으로 하는 호족세력; “고구려(고려)” 계승 의지가 강했음.
906년(궁예; 33세. 왕건; 30세)
<고려사> 권1, 태조세가; 처음 태조 나이 30세 때에 꿈에 9층 금탑(金塔)이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 보았다.
906년 무렵부터 왕건은 궁예와 대립하기 시작.
918년 6월; 왕건을 중심으로 하는 반궁예세력이 쿠데타로 궁예를 축출.
나라 이름을 다시 “고려”라고 함.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영상한국사 156 궁예, 철원에서 대동방국을 꿈꾸다; 4.55.
첫댓글 수업시간에 설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