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구 시인의 시집 『성구成九의 시절인연時節因緣』
약력
임성구시조시인
1967년 경남 창원 출생.
1994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상 등단
시조집
『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살구나무죽비』 『통하다 봄』
『혈색이 돌아왔다』 『복사꽃 먹는 오후』
『고함쳐서 당신으로 태어나리』
『형아』(현대시조선집100인선)
수상
가람시조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경남시조문학상,
올해의시조집상, 창원문학상 등
문단활동
前 경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의장,
창원문인협회 부회장,
경상남도 문인협회·경남문학관·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現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위원,
창원문인협회·경남시조시인협회·
국제시조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한국작가회의 회원
이메일 jaje9@hanmail.net
시인의 말
한생은 비록 미약했지만 절절한 희망으로 건너왔고, 또 창대한 미래를 위해 간절함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이 말을 심장 깊이 뿌리내리면서 가장 멋있게 살아가는 중이다.
'임성구'라는 이름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피와 땀과 눈물로 어루만지며 푸른 숲과 우주에서 큰 숫자(九)로 긴장하고 은유하며, 맑고 빛나게 이루라고 내려주신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하여 나의 지금은,
한국의 정형시 시조를 무척 사랑하고 아끼면서 슬픔도 뜨겁게 쓰는 이런 호사好事를 누린다.
2024년 8월
임성구
서문 |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조
데이빗 맥캔
(시인·번역가. 하버드대학교 교수)
인간 세상과 자연계는 아주 깊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별개의 것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걸까요. 임성구 시인이 이번에 발간한 멋진 시조집 작품들은 하늘, 나무, 비, 태양 같은 것에 감정, 인식, 추억들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의 화자와 독자사이에 또렷한 연결의 순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집에서 제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아래의 시조시를 업은 항아리입니다.
네 몸에 새겨놓은
달빛 문장 은은하다
천길 불구덩이도
견뎌낸 애절한 사랑
온 우주 어르고 달랜 귀얄문
둥개둥개 업어 키운다
이 시조 작품에 표현된 낱말들을 보면 제 마음의 눈에는 고려시대(918년-1392년)의 도자기에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일종의 K-pop의 전신 같아서 우리는 그냥 그것을 K-pot으로 불러야겠습니다. 견고한 항아리의 팔과 어깨를 타고 흐르는 우아한 균형미가 마치, 환한 달빛의 은은한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백 년 된 도자기 한 점이 시詩 한 작품 때문에 발탁이 되어 꼼짝없이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옮겨져 그 열기를 견뎌 낸 것입니다.
이 시조집에는 위의 작품 외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조 작품들이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읽고 감상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 작품의 이미지, 제스처, 특별한 순간들을 생각하며 거듭해서 읽고 음미해보세요. 그러면 친구, 가족, 인근 장소에 대한 특별한 추억들과 자연에 대한 여러 이미지들이 아주 또렷하게 생각날 것입니다.
임성구 시인의 이번 시조집 발간은 참으로 큰 기쁨을 주네요. 각시조 작품들이 활짝 개화하는 모습을 거듭 즐겨봅니다.
2024년 8월
데이빗 맥캔
탱자꽃
사월 끝자락 탱자꽃이 손 내밀 무렵
옛 고향 울타리 너머 순이 보조개 순해 빠져
가슴속 아리던 그 가시에 멍들어도 좋았다
그녀도 하늘로 가고 고향도 사라진 뒤
지키지 못한 약속에 새들은 목이 쉬고
아직도 울타리 너머에는 그리움의 강이 산다
Hardy Orange Blossoms
By the time the blossoms sprouted
at the end of April,
I ever peeped at Suni's dimples
over the fence in my hometown.
I didn't mind if I ever got bruised
by the thorns that hurt me.
But alas she went to heaven;
my hometown has changed a lot.
Birds are losing their voices
from my promise I've failed to keep.
Even so, there's a river of longing
still flowing beyond the fence.
치자꽃
섬 유월, 내 여자한테
치자꽃 향기가 났다
여섯 꽃잎 해풍에 살랑
바람개비로 떠도는 배
파도는 방아쇠를 당겼다
아, 꽃을 삼킨 흰 포말
Cape Jasmine Flower
My girl smelled like the floral scent
one day in June on the island.
Six petals swayed in the sea breeze;
each boat moved like whirling pin-wheels.
Oh perhaps the waves shot the gun.
White sea foam swallowed the petals.
억새꽃
오래전 잎잎들이 여린 살에 칼금 긋더니
눈썹이 세는 저물녘 솜꽃 가득 피운다
바람이 놀다 간 가을은 강물도 뜨겁게 진다
Silver Grass Flowers
So long ago, I got cut
by a silver grass, sharp as a knife.
My eyebrows look white at dusk,
when, like cotton, white flowers bloom.
In autumn, when the wind calms down,
the river also turns red.
각북에 앉아 있다
각북에 가지 않고 각북에 앉아 있다
열두 나절 서성이는 시집 속 뿔의 마을
복사꽃 지고 난 가지 끝 유월 뻐꾸기 피어난다
꽉 막힌 동맥과 터져버린 정맥을 위해
정자나무 품속으로 내 심장이 날아가고
청나비 푸른 그늘을 이고 덩실덩실 단풍 든다
Sitting in Gakbuk Town
I seem to sit in Gakbuk Town,
though I don't go to the town.
The horn-like town in my book of poems;
for twelve days, I've hung around there.
Peach blossoms have all fallen off;
in June cuckoos sit on the branch.
For the treatment of broken veins
as well as clogged arteries,
my mind flies, in a hurry,
to a shade tree in the town.
A young kid dancing under the green shade;
the cheeks flush with excitement.
다듬어진다는 것
세상이 얼마만큼
많은 모로 널브러졌으면
저리도 끊임없이
반복 재생만 되뇌나
예쁘게 다듬어진다는 건
원형을 깨는 슬픈 정점
Getting Better
How messy is the world?
Has it been in disarray?
Why on earth does the world keep
constantly changing like that?
So sadly, to make something better,
original forms should be bro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