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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 드러난 교회 일치의 관점
회칙은 마리아의 구세사적 위치를 그리스도의 구원신비 안에서 인간학적이고도 신학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회칙은 마리아가 결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전형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교회일치의 관점에서 삼위일체적 원리, 신앙의 관점, 실천적 문제라는 세 가지 원리로 정립하고 있다.
삼위일체적 원리
회칙은 재일치를 위한 신학적인 토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는 이미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 하느님께서 육화를 통하여 당신 아들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분으로 현존하며, 더욱이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이 그를 선택하시어, 거룩하신 성령께 영원히 마리아를 위탁하셨다”라고 말하며 마리아 모성의 기원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 두고서 그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마리아의 모성은 ‘계시와 신앙의 중심 실재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섭리’로부터 비롯되었다. 마리아는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성삼위의 구원 계획 속에 개입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은총에서부터 마리아의 성성(聖性, Sanctitas)과 원죄 없으신 잉태(無染始胎, Immaculata Conceptio), 마리아의 승천(昇天, Assumptio)이 비롯되는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동방교회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과 찬미를 돌이켜 볼 때, 그곳에 삼위일체적인 차원과 그리스도 중심사상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마리아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관계, 마리아의 신앙과 삶은 그리스도 신자들의 일치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마리아 교리에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고 있으며, 마리아의 인격과 사명의 신학적이고 삼위일체론적인 명백한 관점은 재일치의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신앙의 관점
회칙은 ‘마리아 신학의 본질적인 내용, 곧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참으로 현존하게 된 마리아의 신앙’을 특별히 강조한다. 마리아는 바오로 사도에 의해 ‘신앙에 있어 우리의 조상’(로마 4,12)이라 불린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고 있다. 회칙은 마리아 신앙의 여정을 따라 가면서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 신앙의 증거가 위대하고 영웅적이며, 그 절정에 도달하고 있음을 말한다. 마리아는 단순히 수동적인 입장으로 하느님의 의지에 자신을 예속시킨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인격적인 응답으로 모든 힘을 다하여 하느님 의지에 순종하였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바로 이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며 특히 갈라진 형제들이 강조하는 ‘믿음(sola fides)’이라는 대전제에서 마리아는 신앙의 교사이자 앞서가신 분임을 일깨워 재일치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로써 마리아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점이 된다. 마리아가 당신 아들의 구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유비적으로 보아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회칙이 말하고 있는 일치의 원리는 바로 ‘신앙’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칙은 이 신앙의 모범을 보인 이가 그리스도인 중에 가장 뛰어난 마리아임을 말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재일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일치를 위한 실천적 문제
회칙은 재일치를 위해 신학적 출발점만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 신앙의 일치를 돕기 위한 몇 가지 구체적인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께서 첫 번째로 분명하게 모범을 보여주신 ‘믿음의 순종’을 깊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모범적으로 실천하신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삶으로써 일치의 길로 인도된다. 교회 일치에 있어 성경적인 순종을 그리스도인 전체가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갈라진 형제들이 바로 이 신앙의 순종이란 점을 알되 특히 마리아 신앙의 모범을 깊이 느끼고 알게 된다면 바로 마리아는 분기점이 아니라 일치점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또한, 회칙은 그리스도교 재일치 대화의 활성화를 위한 길은 바로 삼위일체론적인 방향과 영성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동방교회 옛 전승 안에는 이러한 마리아에 대한 매우 풍요한 영적 보화가 있음을 확인한다.
모성적 중재와 교회 일치
회칙은 실제적으로 교회 일치 문제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회칙 제3부는 특히 교회 일치 문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내용은 마리아의 중재성(mediatio materna)에 관한 것이다.회칙은 예수 그리스도 중개의 단일성(Mediatio unica)을 명확하게 지적하며 ‘교회는 오직 한 분의 중개자만 계실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르친다’라고 자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중재’, ‘일치의 원천이신 그리스도 자신의 중개에 참여’,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된 중재’라고 부르고 있으며, ‘마리아의 협력은 한 분 중개자이신 구세주 중개의 보편성에 종속적 성격 안에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회칙은 공의회의 교리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와 마리아의 모성적, 참여적 중재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역사 안에서나 하늘의 영광중에서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되어 참여하게 된 마리아의 협력을 지적하기 위하여 마리아의 중재에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성적(母性的, Materna)’이라는 형용사이다.
이 용어는 마리아의 중재가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는 것이고, 유일한 중개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분명히 밝히는 열쇠다. 이 중재는 자기 아들의 구원사업에 대한 마리아의 ‘협력’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하여 사용된 ‘중재’라는 용어가 목적하는 바는 육화된 말씀 때문에 성취된 참되고 유일한 중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칙은 마리아 모성의 중재가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는 것이고, 유일한 중개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교회 일치를 향하여 이 문제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교회 일치 관점에서 마리아 중재의 새로운 이해
교회 일치 관점에서 마리아 중재성의 새로운 이해를 하기 위함은 마리아에 대한 모든 진리가 그리스도와 교회 신비의 단면들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인간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적, 현존적 신비의 표현이자 이 현존이 가지는 양식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 일치 관점에서 마리아 중재성은 성경에 의해 영감을 받은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를 밝히는 가운데 기본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마리아의 부속적 역할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성을 인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최우선 순위를 고려하여 뒤바꾸지 않는 것이다. 또한 교회 전통의 문화적인 표현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초교파적 차원은 신자들을 다양한 문화적 전통들에 대한 존경 안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안의 일치다. 다양한 표현과 함께 본질적인 요소 안에 함께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성
구세사의 정점이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다. 구세사의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마리아 중재성 역시 그리스도와 맺는 연관성에서 올바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맺는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 안에서 마리아의 ‘중재성’을 보아야 한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 삶의 결정적 전환점인 육화와 십자가 사건에 그지없이 가까이 현존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런데 십자가 곁에서 마리아의 구세사적 기능은 육화의 경우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그래서 마리아의 중재성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 드러나는 마리아의 ‘모성(母性)’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화에 ‘어머니’로서 참여하였다. 이처럼 마리아의 신학적 위상과 특히 구세사적 기능이 그분의 아들 예수의 신성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마리아의 중재성은 그리스도에 대해 마리아가 가지는 그녀의 모성 관계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셨다는 구세사적 사실은 마리아의 모성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마리아 모성에 대한 신학적 진술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에 대한 증언이 된다.
마리아가 인간의 육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 오시는 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육화 안에서 세계를 위해 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수용되는 일이 발생한다. 세계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수용함으로써 마리아는 전 구세사를 규정하는 지점에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의 모성을 통해 단지 나자렛 예수의 사적 생애뿐만 아니라 세계의 구세사 안에서 유일무이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하느님의 구원은 신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성은 모든 인류를 ‘대표(代表)’하여 당신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에 동의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세사에 있어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그녀의 사적생애(私的生涯)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적역사(公的歷史)’ 전체의 중심 사건에 속한다.
마리아가 은총이 가득하게 된 것은 자기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확산되어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개신교 신학에서도 마리아가 단순히 개인으로서만이 아닌 구세사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한 분으로 대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구원의 표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의 모성으로 인류를 위한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중재(仲裁)’의 유일한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중개(唯一仲介)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칙은 모성적 차원에서 마리아의 특별한 소명을 ‘모성적 중재’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 개념은 마리아 모성에서부터 나오는 마리아의 모성적 소명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재일치 영역에서 가능할 수 있으리라 예견되는 교리적인 모든 혼동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명확성을 발전시킨다.
마리아 신앙의 전형
마리아의 중재는 그녀가 여느 인간들과는 달리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신앙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회칙은 하느님을 향한 마리아의 ‘신앙의 여정(iter ad Deum)’을 강조하며 반복한다.
성경은 마리아의 자유로운 신앙을 강조한다. 마리아는 하느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신의 신앙적 동의로써 하느님 구원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협력하셨지만, 더 나아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도 직접 협력하셨다. 마리아는 당신의 일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봉사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리아를 정확히 바라봄으로써 그녀의 인간적인 면, 불완전성, 신앙의 성장, 충실한 신앙의 여정을 통해 불신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역사의 마리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신약 성경적 복음 선포 본연의 대상인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마리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마리아가 당신 신앙의 여정 중 불확실성과 의심을 체험한 매우 인간적인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마리아는 성령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체험을 통해 신앙으로 나아갔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들이 종교적, 정치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어머니로서 지켜보았고, 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에 동참했다. 마리아는 조용히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여정을 걸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처럼 성령을 받았고,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래서 회칙은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순명(Fiat)’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렇게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사실보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적 신앙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지극히 복된 당신의 모성적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중재의 유일한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 안에서 이 엄청난 구세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계신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처신하는 순종적 신앙을 순수하게 구현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수동적 자세가 아니고 자유 의지와 함께 하느님 뜻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전인적인 처신이어서 하느님의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 개념은 마리아의 중재가 그녀의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일치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마리아의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 일치의 척도이다.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종속되고 참여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리에 따라 명백하고 깊은 언급을 담은 매우 풍성하고 가치 있는 신학을 성령과 연결하고 있다.
복되신 동정녀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모든 구원의 영향은 동정녀에게 내려오시어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모성이 시작되게 하였고, 동정녀가 당신 아들의 형제자매들과 연대성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도와주시는 성령에 의해 유지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과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를 살펴보고,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 담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회 일치 신학의 측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성령의 거처가 되신 마리아
“동정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예고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생명’을 세상에 낳아 주셨으므로 천주의 성모로 또 구세주의 참 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신다. 당신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불가분의 긴밀한 유대로 결합되시어,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시고 따라서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딸이 되시며 또한 성령의 궁전이 되시는 이 최고의 임무와 품위를 지니고 계신다. 이 뛰어난 은총의 선물로 마리아께서는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앞서 계신다.”(교회 헌장 53항)
마리아가 성령의 궁전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그 첫 순간부터 성령과 함께 하는 거룩하신 분이심에 대한 고백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란 호칭은 결국 ‘성령으로 가득하신 마리아님’에 대한 고백이다. 마리아는 처음부터 생명의 원천이신 성령과 연결되어 있었으니, 그녀의 삶은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마리아는 당신의 ‘예’라는 응답과 동의와 협력으로 구원사업에 동참하셨는데, 이는 그 아들 예수와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마리아 성성(聖性)의 원천은 성령이시지만 마리아의 성성은 결코 수동적으로, 그냥 주어진 그대로의 상태에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능동적으로 거룩한 삶을 사시고 성령과 함께하셨기에 나온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전 생애에 걸쳐, 특히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인도하셨다. 먼저 마리아는 당신의 아들이 되실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로 원죄의 유산으로부터 보호를 받으셨는데, 이는 “성령을 통해 지상 출산의 질서에 따라 당신 자신이 어머니로서 생명을 주신 그분으로부터 신성에 참여를 뜻하는 은총의 질서 안에서 생명을 받으신 것이다.”(17항) 그리고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의 탄생 예고를 받으셨을 때 성령으로부터의 은총이 함께하였다. 마리아의 첫 이미지가 성령의 이미지, 곧 영보(領報)였고, 그것은 인류 최초의 성령강림이었던 것이다.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아 찬가(Magnificat)를 노래하였다. 이후 성령께서는 그 아들 예수가 성장할 때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누구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마리아와 함께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셨다. 마리아는 성령 안에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하셨고, 그 시간을 견뎌냈으며, 하느님께 “예”라는 응답을 드림으로써 만민의 어머니가 되었다.
성령께서 함께하신 마리아는 예수의 승천 후(성령강림 때) 다락방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당신의 영을 보내달라고 12사도들과 함께 기도하였고, 이 세상살이를 마치시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들어 높임을 받았다. 이에 우리는 성령께서 마리아를 온전히 감싸 안으시고 변화시켜 주시고 활기를 불어넣어 주시어 그 육신이 썩지 않게 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교부들과 작가들은 성령의 거처가 되셨던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수락한 힘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을 참아낸 용기가 모두 성령께로부터 비롯한 것이다.”(마리아 공경 26항)라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리라. 마리아는 벌써 자신의 지상 생활에서 성령에 의해서 변화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특별히 거룩하셨던 분이시고, 성령의 현존으로 철저한 변화를 겪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신 마리아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명백하고 중요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신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약속이다.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는 이 신적인 약속의 순간이 첫 번째 성령강림이니, 하느님 아들의 육화를 이루기 위해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신 것이다.
수에넨스 추기경은 구원사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기 위하여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라는 말씀만 있으면 족하다면서 마리아에 대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에 말하자면 중개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고유한 사명과 육화의 첫새벽에 마리아는 하늘과 땅 사이의 교차점이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까지 끝없이 뻗어오는 하느님의 사랑이시며,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의 전권사절(全權使節)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성령께서 한낱 피조물인 마리아를 들어 올리시어 바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셨다.”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신경의 고백처럼, 마리아에게 내려오시고 마리아를 감싸 안고 계시는 바로 그분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시다. 그분은 시초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역사 안에서 계시하신 분이시니, 이제 때가 차자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의 힘으로 동정녀의 품에서 육신을 취하셨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 1,35) 교부들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응답을 드렸을 때 성령을 받았는데, 이 성령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과 같은 인간을 형성하였다고 가르쳤다.
마리아 안에서 성부의 자비로운 계획을 실현하신 성령께서는 마리아 위에 내려오셨고, 마리아는 성령의 충실한 정배로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완전한 순종을 드러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셨고, 그리하여 세상에 구세주를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협조하셨다.(26항)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신 것은 마리아와 성령 사이의 완벽한 상호 협력을 전제로 하는 일이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성령께서 친히 마리아를 전적으로 변화시키셨고, 마리아를 통해 그리고 마리아 안에서 조금의 저항도 없이 말씀이 현존하게 하셨던 것이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역사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가시적인 것을 비가시적인 것과 연결하셨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총괄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루어졌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성령을 모신 분으로, 자신의 거처로 만드셨다.
마리아는 자신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전적으로 변화되셨기에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셨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 가운데에서, 성모 마리아를 온전히 거룩하신 분,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으로, 이를테면 성령께서 빚어 만드신 새로운 인간이라고 부르던 관습이 널리 퍼졌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교회 헌장 56항)
결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의해서이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성령께서 마리아를 감싸심으로써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게 되었다.
성령 안에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
교회는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신 마리아를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로 고백한다.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교회 헌장 53항)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복되신 동정녀는 복음 선포의 힘 안에, 곧 지속적인 성령강림의 상태 안에 계시니,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계속해서 어머니가, 이제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으심으로써 전 인류에게 생명을 선사하였다. 곧 예수는 당신 지상 생활의 첫 순간부터 자신 안에 전 인류를 감싸 안고 계셨다. 누구보다도 그분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고, 죽는, 그리고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부활하는 세례자들을 품고 계셨다.
그분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고, 또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을 자신 안에서 하나로 삼으신 것이다. 만일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을 통해 예수를 잉태하고 낳으셨다면, 또한 앞으로 있게 될 모든 사람을 잉태하고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낳으신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 곧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당신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던 마리아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로 맡기시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당신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다. 사도들이 진리의 성령께서 오심을 기다리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다락방에서 그들과 함께하신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년기와 드러나지 않은 생활기간의 유일한 증인이 되신다.
그리고 승천하여 아들 곁으로 오르신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낳아주신다. 마리아는 승천하심으로써 그리스도를 교회의 구성원 안에 낳으실 수 있게 되셨는데, 이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라고, 성령 덕분에 마리아께서는 영원토록 모든 신자, 그리고 신비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낳으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은총의 계획 안에 있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주님 탄생의 예고에 믿음으로 동의하시고 십자가 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간직하셨던 그 동의에서부터 모든 뽑힌 이들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한다. 실제로 하늘에 올림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신다. 그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신다.”(교회 헌장 62항)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성령의 일에 동참하게 되신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시며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하신다. 마리아의 모성,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다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 역할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나에게도 미치는 것이며, 세상을 위한 그녀의 전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만인에게까지 확장된 마리아의 모성의 원천은 다시금 성령이시니, 구원의 질서 안에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것이고, 그 모든 업적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영원한 계약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졌으며, 그리스도 육화의 각 단계에 함께 계신다.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깊이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화하신’ 분은 바로 이 영이시다.
마리아는 특히 뛰어난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 차서 흘러넘친다. 마리아 안에서 성령께서는 당신의 걸작을 빚어내셨다. 마리아는 성령의 자랑이며 영광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교회는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인하여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행하신 바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증인이 된다.
성령의 도구이신 마리아
성령께서는 자신의 거룩하게 하는 힘을 ‘영화(靈化)된 인격’을 통하여, 곧 성령으로 변화된 그 어떤 사람을 통하여 퍼지게 하는 분이시니, 마리아는 성령의 도구로서 다른 이로 하여금 그 성령을 모시게 하는 ‘성령의 전달자’(Pneumatophorin)이시다. 벌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최초의 성령강림으로 본 쟝 귀똥은 이렇게 말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주님의 어머니라고 인사했다. 마리아 안에 계신 주님은 그 순간에 활동하셨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기는 주님 앞에서 감격했다. 이미 예수께서는 성령의 도구인 마리아를 통해 성령을 전달하셨다. 그것은 성령이 강림하시는 첫 모습이었다.”
이렇게 마리아가 성령을 전달하는 분이기에,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의 변화’를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곧 마리아는 인간이 ‘그리스도화’되는 데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예수의 탄생은 물론이고 예수 교회의 출생에도 중심적 역할을 하는데, 이 두 경우는 모두 성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을 중재하는, 정확히 말해서 성령의 활동하심을 대신 간청하는 역할을 하신다.(교회 헌장 59항) 마리아의 이러한 중재는 그녀가 사도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을 위해 기도하실 때 잘 드러난다.
영광 중에 계신 마리아는 지금도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그녀는 만인을 위한 중재자, 대신 기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힘쓰는 분이시고, 우리의 보호자, 협조자, 그리고 위로자이시듯 마리아도 그러하다.
성령의 짝, 성령의 신부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는, 성부가 당신의 영을 교회에 계속 보내주실 수 있도록 애쓰시는 분이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성령과 더불어 마리아는 “주님, 오소서”라고 말하며, 그녀의 자녀 중 마지막 자녀까지 성부의 집에 들게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마리아의 사명은 은총을 하사하는 서열에 있지 않다. 영만이 홀로 또한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자(使者)이시다. 마리아의 자리는 중재자로서가 아니다. 마리아의 역할은 우리의 대답과 관련된다. 마리아와 결합하여,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우리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격려에 귀를 기울이는 데 도움을 받는다.
마리아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마리아와 결합하여 성령과의 통교를 체험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형성하고 계시는 성령께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고정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에넨스 추기경은 “우리는 마리아를 들이쉬고 성령을 내쉰다. 전망의 끝은 언제나 같다. 예수를 세상에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영의 비추심을 받아 성령의 은사로 새로워진 최초의 성령쇄신 운동가”로 표현하면서 다음의 말을 소개하였다.
“마리아를 체험함은 성령의 가장 고귀한 선물 중의 하나이다. 마리아는 인격으로 드러난 성령의 은사이다. 마리아로부터 나는 보다 순수하게 믿는 법을 배우고, 더욱 분명하게 영을 식별하는 법을, 말씀을 보다 주의 깊게 듣는 법을 또 주님이 오시는 시간을 보다 창조적으로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성령과 마리아 안에서 교회 일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순례의 모범이신 마리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유일한 주님께서 바라셨고 오늘날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들이(묵시 2,7; 11, 17) 그토록 갈망하는 일치로 이끄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교회의 여정, 우리 시대의 교회 여정의 특징인 일치 운동이다.(30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에서 개혁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강조하고 있는 신앙이란 테마에 진정한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내용을 성경 안에서 파헤쳐 그 참뜻을 밝혀줌으로써 갈라진 형제들과 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일치점이 있음을 명백하게 표명하고 있다. 그는 마리아의 십자가 발치의 현존을 언급하면서, 진정한 신앙의 초대를 역설한다.
“우리 모두는 마땅히 하느님의 가족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령의 힘에 의해 동정의 품 안에 잉태되셨던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한 분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의 증인들을 ‘앞서가시는’ 그분을 우리의 공동 어머니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30항)
교황은 또한 교회 일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일치를 재발견함으로써, 당신의 수난 전에 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주님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고자 합니다.”(35항)
교황은 교회의 전승 안에서 다양하게 전해진 풍요로운 찬미가 중에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가 믿음의 순종과 기쁨을 일깨운다고 보았다. 또한, 한 분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이러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삼위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는 마리아 믿음의 순종이 바로 일치의 척도가 됨을 언급한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의 교회 일치의 주요 관점은 교회를 위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의 관점이었다. 마리아의 영적 모성은 물리적 모성을 초월한다. 하지만 영적 모성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부족함을 지적했다. 그 반론들은 성경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곧 마리아의 영적 모성은 성령의 작용을 대치하는 것이라는 비판과 죽은 이들의 잠(Dormitio)에 대한 이론이었으며, 그 외에는 그리스도교 종파 간의 마리아론적 대화에 있어서 교회와의 관련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회칙은 천상 교회와 나그네 교회와의 구원적 연대성을 고찰한다.
또한, 마리아의 구원적 통치와 연관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를 성령의 자리에 앉힌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령을 말해야 할 자리에서 마리아에 대해 말하고 ‘협조자’(Paraclitus)대신 위로자나 변호자에게 호소하며, 아버지와 예수의 영 대신 공동 구원자에 대해 말하거나 하느님의 ‘손가락’ 대신 중재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언제나 성령의 작용으로 여겨졌다. 이 점에 있어 “하느님의 성전이었지 성전의 하느님이 아니었다”(erat templum Dei, et non Deus templi)라는 성 암브로시우스의 확고한 개념 규정이 등한시된 경우는 거의 없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영적 모성을 포함한 모든 측면에서 볼 때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는 서로 대등한 뜻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원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관계는 성령에서 마리아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 마리아의 특질이 성령의 특질과 유사한 경우, 반사된 빛이 반사하는 빛과 관계를 맺고 결과가 원인과 관련되는 것처럼 전자는 후자를 가리킨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종속성을 고려한다면,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모든 특질은 성령의 영광을 증가시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마리아의 인격과 연결된 성경 신앙의 증거를 생생하게 지속시키고 옛날 동방 교회의 마리아 신심의 예를 들어 호소하여 영신적인 타당한 정점을 향한 신학적 대화를 하고 있다. 과거의 환경에서 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기도와 생활에 젖어 있었다. 교황은 이러한 환경이 현대에 적게 적용되어 있는 곳에 더욱 깊은 신학적이고 영신적인 영감으로 재일치의 대화와 연구가 있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회칙에 드러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 중재의 구별과 개념
마리아의 중재에 대한 어원 사용에 있어 의문을 가지고 혼동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를 고찰하면서 회칙 내용의 주된 내용인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앞서 중재의 어원 사용 현황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의 ‘중재’라는 용어의 구별과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새 번역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공동번역 『성서』는 그를 ‘중재자’로 표현하고 있다.(1티모 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8장에서는 ‘Mediator’라는 용어와 ‘Mediatrix’라는 용어를 모두 ‘중개자’로 번역하고 있다.1) 반면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모두 ‘중재자’로 표현한다.
‘중개’와 ‘중재’는 일반적으로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엄연히 의미의 차이가 있다. ‘중개(仲介)’란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함”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중재(仲裁)’란 “다툼질의 화해를 붙임” 또는 “국제법상 당사국 간의 분쟁을 그가 선임한 제삼자의 판단에 의해 해결하는 일”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또한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중개’란 “제삼자로서 두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하는 노릇”이다. 그리고 ‘중재’란 일차적으로, “다툼질을 하는 둘 사이에 서서 화해를 붙임”을 뜻하며, 이차적으로 ‘중재자’란 “하느님과 인류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달리 일컫는 말”로서 풀이되어 있기도 하다.
라틴어인 ‘Mediator’는 고유 명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하며,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서는 ‘Mediator’의 번역인 ‘중개자’를 “하느님과 인류 사이를 화해시켜 주고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하고 있는(히브 7,25)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국 가톨릭 용어 큰 사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모두 ‘중재자’라고 칭한다. 또한 「백과사전 :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중개’와 ‘중재’로 구별해서 사용한다.
성경에 제시된 중재에 관한 내용은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에서 볼 때, 중재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종족에게 복을 가져다준(창세 12,1-3)”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앞서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중재해 주는 역할을 한다.(창세 18,16-33)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도록 소명을 받은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계약을 맺을 때 중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레위 지파의 사제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중재의 역할을 하였다.(민수 6,22-27)
신약에서는 대표적으로 세례자 요한을 들 수 있는데,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라고 선포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중재라는 의미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주님께 간청을 드리는 중재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요한 2,1-11)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완전하고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를 ‘중개자(Mediator, 라틴어 남성형 명사)’로, ‘종속적이고 참여적이며, 특수하고 예외적인 구원임무를 지닌 마리아’를 ‘중재자(Mediatrix, 라틴어 여성형 명사)’로 지칭하고자 한다.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회칙은 「교회 헌장」 8장에 제시된 교리 원칙들을 재고하며 그 원칙들을 문헌 안에 자의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유일한 중개자(仲介者)이시며, 어떠한 피조물도 육화하신 말씀이시며 구세주이신 분과 비교될 수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1티모 2,5-6)”
성삼위(聖三位)에 있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중개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중개들로 대치될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중개이다. 그는 육화를 통해 ‘감추어진 것을 드러냈으며’ 또한 ‘거룩한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토록 완전한 중개를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온전한 인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중개는 여러 중개 중의 탁월한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중개이다.
“그는 성부와 하나이고 성부께서 동일한 본성으로 그와 하나인 것처럼 우리 모두가 그와 결합되었으며 그가 사람이 되어 우리와 결합하였다. 따라서 중개자이신 그를 통해 우리는 성부께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그분은 본성상 하느님인 이상 성부와 결합되어 있고 참된 사람이 된 이상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다.”2)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중개는 이차적인 마리아의 중재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중개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을 중개(仲介)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격을 얻게 해 주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그의 거룩한 아들의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분의 인격은 참 하느님이시요, 참사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천주성으로 성부와 결합되시고, 인성으로 우리 인간과 결합되심으로써 천국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요 구원의 다리이다.(창세 28,12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개야말로 가장 완전한 중개이다.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자이시다.
하느님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삼아 만물과 화해를 이루신다. 그리스도의 화해하려는 중개의 역할은 분열이나 불화를 극복한 우주적 일치와 조화를 말한다. 이 화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분을 통해 완전하게 성취됨을 뜻한다. 이 중개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평화와 화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주적 평화와 구원이 이룩되었으니 그 완전한 중개의 장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이다.
또한 콜로새서 1장 9절 이하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개자, 구원의 중개자로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신성을 언급한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콜로 1,15)”,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콜로 1,19)” 이 충만함은 하느님께로부터 선사된 것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 당신 자신의 충만함으로 머무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 자체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만성은 모든 것을 그분의 충만성에로 초대하며 그분의 충만함에 머무르게 한다.
이러한 초기의 공의회로부터 결정된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는 위의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아드님이요 동일한 인간이시면서도 참으로 한 분이 아니셨다면,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가 아니실 것이다.(DS 299)”
앞선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육화를 통해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 온전한 인간이면서 온전한 하느님이셨기에 완전한 중개를 이루실 수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자기희생, 곧 자기 비움(Kenosis)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였다.
마리아의 중재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 드러난 모성적 중재에 앞서 공의회에서는 마리아의 중재적 의무를 ‘어머니의 임무’(maternum manus)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곧 마리아의 모성적 임무의 특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역할은 스스로의 필연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께 종속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개성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는 중개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모성적 중재의 개념과 어원적 고찰
마리아의 중재성은 교회 교도권이 교의로 선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마리아의 중요한 역할로 인정하고 있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설명하고 있다. 회칙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하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행하는 독특한 역할을 설명해주는 단어이다.(38-47항)
회칙은 구원 역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이 ‘중재’(仲裁, Mediatio)란 개념을 선택하여 그 개념에 ‘모성적’(母性的, Materna)이란 형용사들을 결부시켜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례 안에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상대적으로 간과해온 낱말을 일깨우면서 「교회헌장」 8장의 교리의 빛을 따라 그 단어에 새로운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비록 회칙은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중재(仲裁)’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차적인 의미로는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이차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 ‘참여(參與, participatio)’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차적인 의미로 ‘중개’라는 용어를, 이차적인 의미로 ‘중재’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모성과 중재성
‘모성(母性)’ 안에는 ‘중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성은 일차적으로 ‘출산’을 통해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해야 하는 ‘생명전달(生命傳達)’의 중재 역할을 한다. 이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이고, 각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모성은 부성과 더불어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중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가정교서 11항)
또한 모성은 ‘교육’을 통해 한 인간을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중재성을 갖는다. 인간 최초의 학교는 어머니의 모태요, 어머니의 무릎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태중에 생겨난 처음 몇 달 동안 이미 그 자체로 교육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유대를 형성하게 된다.
어머니는 출산하기 전부터 아기의 인격 전체를 형성시켜 주며 자녀는 모성으로부터 유전적, 정서적 요소들을 물려받는다. 또한 모성은 양육과 교육을 통해 어린 생명이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사회성, 가치관, 덕행을 체득하도록 도와준다. 모성은 자녀 교육의 첫 번째 교육자로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자녀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이끌어주는 중재 역할을 한다.(가정교서 16항)
또한 모성은 ‘신앙의 전달’을 통해 한 생명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생명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그 마지막 목적도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친교를 맺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이 간직한 신앙을 자녀에게 전달할 책임과 특권을 부여받았다. 모성은 자신이 간직한 신앙의 신비를 자녀에게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생명의 복음 92-93항)
모성은 생명의 부여, 사회성의 전수, 신앙의 전달이라는 중재의 역할을 통해 자녀들의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도 당신 모성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양육하시는 그분의 동반자가 되셨던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의 구속공로로 말미암아 은총의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주어지게 되었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성령에 의지하고 유지되는 중재
마리아의 전 생애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 구원의 신비에 바쳤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낳았고, 이로써 예수는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나셨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또한 성령께 의지하고 유지된다.(39.41항) 마리아의 모성은 본디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었다.(루카 1,35) 그러나 성령께 대한 마리아의 개방성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성령께서는 영원한 계약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지셨으며, 그리스도 육화의 각 단계에 함께 계신다. 마리아의 모성,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수락한 순종의 힘,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을 참아낸 용기는 모두 성령께로부터 비롯하였다.(13.14.39항)
성령은 주님 탄생 예고에서 마리아를 감쌌던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며,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도 동반하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을 태어나게 하시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시다. 마리아의 인격은 처음부터 성령의 특별한 영향권 안에 있었다. 주님 탄생 예고와 성령강림의 두 사건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데, 이 두 사건의 주인공은 곧 성령과 마리아이다.
성령의 사업에 참여하게 된 마리아의 모성은 ‘하늘의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어머니로서의 중재를 계속하시어 당신의 자녀들을 어김없이 예수께로 인도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유지되고 있다.(교회헌장 59항)
우리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해 성령 안에 은총을 받는다면, 의심 없이 그 은총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께 드린 ‘순명(Fiat)’ 속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을 통해 신자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능력을 얻고자 동정녀께 전구를 구한다.(마리아 공경 27항)
구세사 안에서 특수하고 예외적인 중재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중재 역할의 근원은 마리아의 신적모성(神的母性)에서 비롯된다. 교회는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역할의 근원이 마리아의 신적모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신적모성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기초로 해야만 신앙생활 안에서 생활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8항)
그리스도의 유일중개는 하느님 앞에 인간의 친교와 상호 책임을 해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을 향해 다양한 모양으로 각기 다른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 역할 또한 구원사업에 피조물적인 협력의 선상 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세사 안에서 특수하고 예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는 성인들과의 친교 안에 있지만, 그녀만의 특수하고 유일한 방식 안에서 움직인다. 마리아 중재의 특수성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육화에 질서 지어진 하나의 모성적인 중재에 있다. 다른 인간적인 피조물을 존중한 마리아의 참여적 중재는 분명하게 그녀의 거룩한 모성으로부터 나온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다.
성부와 같은 본성인 성자의 어머니요, 구원사업에 너그러운 동반자로서 신적인 선택을 받은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 안에 우리를 위한 어머니였다. 이 기능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구원적 신비 안에 그녀의 현존이 매우 중요한 몫으로 차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종속적, 참여적 중재
구세사의 정점이요, 핵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다. 구세사의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마리아 중재성 역시 그리스도와 맺는 연관성에서 올바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맺는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 안에서 마리아의 ‘중재성’을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는 이차적인 중재를 제외하지 않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인류에게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헌신함으로써’ 완전히 이차적인 의미로서의 중재자라고 부르게 된다고 말한다. 곧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인들도 하느님께 인류를 중재하는 데 있어 ‘중재자’라고 부르는 경우를 말한다.
개개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교류의 길이 열리게 된다. 구원된 모든 이는 구세주의 역사(役事)에 참여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와 성인들의 중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적 중재이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리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와 마리아의 모성적, 참여적 중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마리아의 협력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마리아의 중재를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된 중재(從屬的 仲裁, Meditatio subordinata)’라 부른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중개직(Mediatorship)에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38항)
그래서 공의회는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순명(Fiat)’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렇게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사실보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적 신앙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지극히 복된 당신의 모성적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중재의 유일한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 안에서 이 엄청난 구세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처신하는 순종적 신앙을 순수하게 구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자유의지와 함께 하느님의 뜻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전인적인 처신으로서 하느님의 사업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참여적인 중재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의 중재는 유일한 원천인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며 그 임무는 종속적인 임무라고 헌장은 밝힌다.
따라서 교회가 가르치는 마리아의 중재는 종속적이며 참여적이다.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은 교회 일치적인 측면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결코 교회는 마리아의 중재를 독립적이거나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는 점은 마리아의 중재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
「교회 헌장」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의 인용문을 통해 ‘Mater Membrorum’(지체들의 어머니)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교회의 연대성에 대해 언급하며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에 대한 이해를 연결한다.
“마리아께서는 (…)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 (…) 왜냐하면 머리의 지체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교회헌장 53항)
위와 같은 가르침에 이어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특히 신자들의 어머니이신 천주의 성모님’(교회헌장 54항)이라고 고백함을 통해 앞선 가르침을 재확인한다.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머리와 지체들의 일치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의 어머니를 통한 신앙인들의 심오한 결합을 나타낸다. 이는 개개인의 신앙인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이러한 해석은 「교회 헌장」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마리아에 대해 ‘은총의 질서 안에서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다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범우주적 차원이지, 개별적인 의미에서의 모성과 중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믿는 이들 개개인과 관련되는 것도 아니요, 전체 인류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며 ‘인류에 대한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임무’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관련된 것이며,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과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당신의 새 모성으로 마리아께서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개개인과 모든 사람을 껴안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교회의 본보기이시기도 합니다.”(47항)
공의회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과 긴밀히 결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합은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탁월하게 드러나며, 결국 이러한 중재성은 교회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를 벗어난 개개인을 통한 중재는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는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통해 탄생한 교회와 그 모든 구성원 사이의 일치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일치를 고무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원형이시고 또한 그 안에 있다. 공의회의 가르침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공의회 이후 교회의 문헌들을 통해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부르는 근거가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이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였다.(마리아 공경 11항) 또 파티마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맞이하여 회칙 「큰 징표」(Signum Magnum)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영적모성을 강조하고, 지금도 여전히 천상에서 성자 곁에 당신의 백성인 교회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여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의 특성
교회는 마리아 중재의 근원을 마리아의 모성(母性)에 두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분의 모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모성은 두 가지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우선 마리아의 신적모성(神的 母性, Theotokos)으로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신 예수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천주의 제2위격이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리아의 영적모성(靈的母性)이다.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전 인류의 어머니로 주어졌다.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조하신 일을 교회와 세상 역사 안에서 계속하게 한다.(39-41항)
또한 마리아의 모성은 아들의 신비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마리아는 예수를 자신의 뱃속에 잉태하고 낳았으며, 젖을 먹이는 어머니로 나타난다.(루카 1,32 참조) 예수는 마리아의 살과 피에서 나오셨다. 이 모성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신 예수는 참된 사람이 되신 것이다.
성부와 같은 본성인 성자의 어머니요, 구원사업에 너그러운 동반자로서 신적인 선택을 받은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 안에 우리를 위한 어머니가 된다. 영적모성은 교회와 그리스도 구원신비 안에서 그녀의 현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몫이 되게 한다. 마리아의 모성은 구세주이신 당신 아드님의 일에 협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모든 인간에게 정을 쏟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 사명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이에 대한 더욱더 ‘불타는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었다.(38항)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마리아는 전 인류의 어머니로 주어졌다. 믿음에 의해 태어난 마리아의 새로운 모성은 당신 아들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십자가 밑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된 ‘새로운 사랑의 열매’다.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예수의 구원사업과 관련하여 지상에서 시작하였던 그 일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와 결합 속에서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전구하는 중재를 통해 드러내고 교회와 세상 역사 안에서 계속된다.
모성적 중재의 보편성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보편적인 차원’을 지닌다. 구세사에는 연대성을 지닌 ‘대표’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은 각 개인의 행위가 집합적 혹은 집단적 의미를 지님을 뜻한다. 마리아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위한 항구한 전구 속에서 언제나 아들 구세주의 구원 작용에 협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전 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모성적 전구는 보편적, 연대적 의미를 지닌다. 마리아의 모성은 온 인류에 퍼져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전 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협력은 종속된 신분(subordinated character)으로서 유일한 중개자인 구세주 중개의 보편성에 참여한다.
마리아는 당신의 모성적 사명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 곧 마리아의 신비는 그리스도론적이면서 교회론적인 관점을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다. 마리아와 교회의 일치는 바로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에서 나온다. 마리아의 모성은 육체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영적인 관계에서의 모성이며, 이 탁월한 모성은 사랑으로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구성하는 신자들이 태어나도록 협력하고 그들을 위해 전구해 주는 보편적 모성이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육체적 어머니인 마리아가 영적으로도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가 된다. 마리아의 협조는 종속적인 상태로 유일한 중개자이신 구세주의 중개가 지니는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모성적 중재의 지속성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 시작의 순간에 표명되었는데 그 역할은 하늘에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과 일치하여 역사가 완성될 때까지 확장된다.(40-41항)
마리아는 모든 자녀를 위해 전구하면서 구세주 성자의 구원사업에 협력한다. 실제로 공의회는 은총의 섭리 안에 마리아의 모성이 선택받은 모든 이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된다고 가르친다. 마리아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늘 그리스도인들의 길에 실재하고 현존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섬김을 그치지 않고 다양하고 특별하게 성령강림 때부터 전 인류의 영원한 승리의 날까지 자신의 모성적 중재를 완성하고 있으며 구원에 유익한 마리아의 영향은 성령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성경 안에서 보는 성모 마리아
루카복음은 성모님 관점에서 예수 탄생 예고 들려주고
요한복음은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부각시켜
- 프라 안젤리코의 ‘주님 탄생 예고’.
가톨릭교회 교리가 개신교와 일치하지 않는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그분에 대한 우리의 공경심의 진원지 혹은 출발점을 찾아보는 일은 의미 있겠습니다.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복음서 가운데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관해 들려주는 곳은 마태오복음(1-2장)과 루카복음(1-2장)입니다. 마르코와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은 마태오와 달리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의 관점에서 예수의 탄생 과정을 들려주고, 예수의 유년시절의 일화도 하나 소개해 주며 마리아에 대한 보다 풍성한 자료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루카복음에서 마리아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예수의 탄생 예고입니다(1,26-38).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마리아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곧바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루카 1,38). 그리고 이어지는 루카복음의 다른 세 본문(1,39-56 2,22-40 2,41-52)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예수를 잉태한 뒤 자기를 방문한 마리아를 보고, 엘리사벳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1,44), 그리고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이라고 하여 예언자적인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메시아를 가리키고, ‘믿으신 분’은 마리아로서, 그는 하느님이 하시려는 일을 믿었고, 그러한 그의 신앙은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되는 데 부족함이 없음을 말해 줍니다. 이어서 예수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성전을 중심으로 전해집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성전으로 갔을 때, 시메온과 한나는 예수를 보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메온은 예수가 이스라엘에서 반대되는 표징이 되리라고 하면서(2,34), 마리아에게 그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2,35)이라고 예언합니다. 여기에서 ‘칼’은 예수의 공생활로 인해 마리아가 겪게 될 고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가족들이 공생활 초기에 그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기록이나(마르 3,31-35), 예수 스스로 당신이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마태 10,34-36)과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메온의 이러한 예고는 열두 살 난 예수가 부모와 떨어져서 성전에 머물며 당신을 드러낸 사건에서 실현됩니다(2,41-52). 예수는 하느님을 당시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49).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야 했고, 이것이 어머니 마리아가 힘겹게 감당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수태고지에서 그러했듯이 신앙인으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한 목자들이 전한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새겼듯이(루카 2,19), 당신 아들에 대해 계시되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이번에도 그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습니다(2,52).
이처럼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 그리고 자기와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숙고하는 여인으로 나오고 있지만, 예수의 공생활 기간 동안에는 가족들과 함께 잠깐 언급되는 경우(마태 12,46-50 13,55 마르 3,31-35 루카 8,19-20)외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요한 2,1-11) 마리아는 예수의 첫 번째 표징의 도구이며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아드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는 아직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여인이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2,4)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잔치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 백성의 필요를 위해 예수님께 전구하는 중재자로서, 그리고 당신 아드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한편 공관복음서는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순간에 마리아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만이 우리에게 예수와 마리아의 마지막 순간을 전해줍니다(요한 19,25-27).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당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예수의 어머니’에서(19,25) 단순히 ‘어머니’로 소개되는 마리아는(19,26) 제자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19,27) 제자는 그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제자들의 어머니로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진술과 더불어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도 나타납니다. 성령에 의한 예수의 수태 고지와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성령에 의한 교회의 형성을 선언한 본문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태 고지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두 구절에 같은 단어들(‘내려오다’, ‘힘’)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두 구절은 서로 긴밀하게 상응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교회를 탄생시킨 ‘오순절(성령강림)’을 경험하기 이전에 마리아는 개인적으로 ‘오순절’을 경험했음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수용에 의해, 다른 하나는 그분에 대한 증언에 의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오게 하였으며, 첫 번째 것은 두 번째의 ‘예형(type)’이 됩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온 교회의 전형이 되는 하느님 백성을 대표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지막 모습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모여 성령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사도 1,14).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마리아의 삶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초기 교회는 마리아의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 몇 가지 전통을 제시합니다. 어떤 전통은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를 여행하였다고 하고, 다른 전통은 그가 예루살렘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도 자연적인 수명을 다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에, 자연사가 아니라는 전승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 마리아의 육신이 하늘로 들어 올리어졌다는 데에서는 일치합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마리아의 유해에 관련해 아무런 이야기가 없고 그의 무덤 위치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전승을 인정합니다.
교회는 천상 예루살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영광을 받은 하느님의 어린양의 신부인 여인-교회를 보면서(묵시 21,1-22,5), 성자에 의해 천상영광으로 들어 높여진 마리아의 모습과 연관 짓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사도헌장’에서 마리아가 승천했음을 가톨릭의 가르침으로 공식 선포하였고, 교회는 8월 15일을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로 경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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