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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전례력에서 주일보다 앞서는 축일이 있나요?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로서 전체 전례주년의 ‘근원 축일’이기에 매우 중요한 전례일입니다.(「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4항) 주일은 전례력에서 매우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림 · 사순 · 부활 시기의 주일은 모든 주님의 축일과 모든 대축일보다 앞섭니다. 그러나 성탄과 연중 시기의 주일은 대축일과 주님의 축일에 자리를 내어줍니다.(전례주년 5항)
예를 들면,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 연중 시기 주일과 겹칠 때 주일은 이 축일에 양보합니다.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도 연중 시기 주일보다 우선합니다. 성전(聖殿)은 제대가 의미하는 ‘머리이신 주님’(에페 4,15 참조)을 중심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신비체’(1코린 12장 참조)를 드러내기에, 성전의 축일은 주님의 축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제국의 박해가 끝나고(313년) 교회 역사상 최초로 봉헌된 대성전(324년)으로서 ‘모든 성전의 어머니요 으뜸’(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으로 불리며 성전 중 가장 중요한 위상을 지니기에 그 봉헌 기념일이 축일로 지정되었고, 현재까지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성전, 곧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과 11월 18일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기념일’은 축일이 아니라 기념일이므로 연중 시기 주일보다 앞서지 않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42) 연미사? 위령미사?
죽은 이들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
‘연미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옛 말이라서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들어보지 못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당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성당에 성가를 표시하는 안내판에 ‘연’, ‘생’ 등으로 미사 지향을 표시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연(煉)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생(生)은 ‘산 이를 위한 미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연미사와 위령미사는 다르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위령미사도 역시 죽은 이를 위해 드리는 미사일 텐데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요?
먼저 ‘연미사’와 ‘위령미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미사라는 말은 박해 시대부터 사용하던 말입니다. 박해 시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편찬해 1880년 출판된 「한불자전」에는 연미사를 “연옥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한 미사”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연옥은 죽은 신자들이 천국에 이르는 거룩함을 얻기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신자들의 통공을 믿는 우리는 연옥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대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미사인 것이지요.
그리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위령미사가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라면서 “위령미사와 연미사는 본래 동일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연미사는 위령미사의 옛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연미사와 위령미사는 다르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아마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전례와 죽은 이를 지향으로 하는 미사의 차이점을 두고 하신 말씀일 듯합니다.
앞서 예전에는 안내판에 ‘연’이라고 표시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미사 지향을 의미합니다. 교회법은 “사제는 산 이들이거나 죽은 이들이거나 누구를 위하여서든지 미사를 바쳐 줄 자유가 있다”(제901조)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신부님께 돌아가신 분을 미사 지향으로 부탁한다면 그 신부님은 그 돌아가신 분을 위해 미사를 바칩니다.
그러나 미사 지향이 연미사, 즉 죽은 이를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전례가 ‘죽은 이를 위한 미사’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본당에서는 연미사여도 그날의 전례에 따라 미사를 봉헌하곤 합니다.
「미사 경본」에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로 죽은 이를 위한 고유한 기도문과 독서가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미사 지향은 신부님 개인이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바치는 것이라면, ‘죽은 이를 위한 미사’는 전례를 통해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 전체가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바친다 것이 다릅니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어떤 지체를 위해 영신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다른 지체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379항) 돌아가신 분들도, 살아있는 우리도 모두 예수님을 통해 연결된 지체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연미사, 위령미사를 포함해 모든 미사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잔치입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41) 핼러윈은 원래 교회 축제다?
죽은 이를 기억하며 전구 청하는 축제
가정에 어린이가 있으시다면, 핼러윈 행사를 챙겨보신 일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날 유령이나 캐릭터 등으로 분장을 하며 사탕을 나누는 활동을 하곤 합니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핼러윈은 널리 퍼졌는데요. 청년분들 중에도 이날 또래들과 파티를 열어본 일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핼러윈하면 호박머리를 한 유령이나 귀신, 괴물 같은 다소 공포스러운 것들이 떠오릅니다. 또 과자나 사탕 같은 간식들도 생각나지요. 그러다보니 아주 세속적인 행사라고만 여겨지기 쉬운데요. 실은 핼러윈은 교회 축일에서 나온 날입니다.
핼러윈이 교회 축일에서 온 날이라는 것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습니다. 핼러윈(Halloween)은 올 핼러우스 이브(All Hallows’ Eve)를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브’는 잘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이브처럼 전야를 뜻하는 말이고요. 핼러우(Hallow)는 ‘성인’(聖人)을 뜻하는 말입니다. 핼러윈은 바로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를 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 전날인 10월 31일에 핼러윈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사실 10월의 마지막 날은 고대 영국과 아일랜드 지역에서 생활하던 켈트족이 한 해를 마무리하던 날이었습니다. 켈트족들은 이때 사윈(Samhain)이라는 큰 축제를 지냈는데, 축제기간에 죽은 이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했고, 죽은 이들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가면을 쓰거나 귀신으로 분장하곤 했다고 합니다.
켈트족 국가들이 가톨릭교회를 받아들이자,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 핼러윈을 지내며 켈트족들이 오랜 풍습을 교회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사윈이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버리려는 축제였다면, 핼러윈은 죽은 자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축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의 핼러윈은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개신교가 널리 퍼지면서 사라졌는데요.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지역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핼러윈 풍습을 가져간 것이 널리 퍼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핼러윈으로 변화했습니다.
핼러윈의 배경이 된 모든 성인 대축일을 시작으로 교회는 특별히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시기를 보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날인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고, 11월 1~8일 교회 묘지 등을 찾아 전대사의 조건을 채우면, 죽은 이에게 양도할 수 있는 특별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전체는 위령 성월이지요. 이처럼 핼러윈은 특별히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시기와 이어지는 날입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축제처럼 변한 핼러윈이지만, 지난해와 올해 핼러윈은 그리 떠들썩하지 않은 듯합니다. 많은 분들이 2022년 10·29참사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기억하고 추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핼러윈은 핼러윈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기도하는 교회] ‘위령의 날’에 드리는 세 대의 미사는 각각 어떤 지향으로 바치나요?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이날 모든 사제는 세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는데, 한 대는 특정한 죽은 이를 위한 지향으로 예물을 받고 드릴 수 있고, 다른 한 대는 죽은 모든 이를 위한 지향으로 예물 없이 봉헌하고, 또 다른 한 대는 예물 없이 교황의 지향대로 봉헌해야 합니다.
이 규정은 1915년 8월 15일에 발표된 교황 베네딕도 15세의 교황령 「제대의 피 없는 제사」(Incruentum Altaris Sacrificium) 1항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에는 이날 미사에 사용할 세 개의 전례문이 실려 있는데, 반드시 첫째 양식은 첫 번째 미사에, 둘째 양식은 두 번째 미사에, 셋째 양식은 세 번째 미사에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 가지 양식은 주례사제가 자유로이 선택하여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신앙과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이라는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서 죽음 전과 후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지상의 공동체와 천상 공동체에 각각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은 머리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하나의 몸 곧 ‘교회 신비체’를 이루며, 이 사실은 미사 전례를 거행할 때 더욱 명확하고 특별하게 드러납니다.
위령의 날 우리는,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주님 안에서 우리와 결합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부활과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교회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40) ‘구일’기도인데 ‘9일’이 아니다?
성령 강림 전 제자들이 바친 기도에서 유래
어떤 지향을 두고 묵주 기도를 할 때 많은 분들이 ‘구일기도’를 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구일기도를 바치는 분들을 보면 기도를 시작한 지 9일이 지나도, 19일이 지나도, 29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계속 ‘구일기도 바치는 중’이시지요. 구일기도면 9일 동안 하는 기도인데 왜 끝나지 않는 걸까요? 실은 구일이 아흐레를 뜻하는 말이 아닌 걸까요?
구일기도의 구일은 아홉 날,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아흐레를 뜻하는 말이 맞습니다. 서양에서는 라틴어로 9를 뜻하는 노벰(novem)을 따서 노베나(novena)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숫자 9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을 상징하는 수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 신약의 열 달란트, 열 처녀의 비유 등에서 알 수 있듯이 10은 완전함을 상징했는데요. 그래서 신자들은 10을 향해가는 9에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느님을 향한다는 의미로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강림에 얽힌 9일이 구일기도의 가장 직접적인 유래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열흘째에 성령께서 오셨는데요. 제자들이 기도하며 기다린 기간이 9일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이 9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큰 축일 전이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할 때 9일에 걸쳐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특히 중세 초기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성탄 전에 9일 기도를 바친 것이 널리 퍼지면서 대중적인 신심 행위가 됐습니다.
구일기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9일에 걸쳐 정해진 기도를 바치거나, 미사와 영성체를 하는 것인데요. 매일 바쳐서 9일을 기도하거나,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9주간 기도하는 방식도 있고, 9일 간의 기도를 연속으로 여러 번 바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인 구일기도는 9일 동안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는 형식의 기도인데요. 9일 동안만 기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청원을 드리는 구일기도를 3차례(27일), 감사를 드리는 구일기도를 3차례(27일) 바쳐서 모두 54일 동안 구일기도를 바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빛의 신비가 제정되기 전에는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를 돌아가면서 9일 동안 바쳐 각 신비를 3번씩 바쳤습니다. 이렇게 구일기도를 3번하면 신비들을 각각 9번씩 바치는 셈이었지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특별히 주님께 청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구일기도를 바치곤 하는데요. 어떤 분은 9일 중 하루를 빼먹으면 청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식의 말씀을 하곤 하십니다. 그러나 구일기도는 조건을 갖추면 반드시 이뤄지는 마법도 아니거니와 ‘소원 자판기’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공동번역 루카 11,13)
전례-기도하는 교회 (9) 전례 거행의 공통 표징 1 : 일어서다(起立)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이하 총지침)에 따르면,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동작과 자세는 거행되는 예식이 지닌 참되고 완전한 뜻을 밝혀주는 동시에 그 예식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총지침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다. 이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각을 표현해 주고 길러 준다(42항)”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동작은 하느님께 응답하는 자녀들의 신심과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표징이며 동시에 자세를 통해 믿음과 덕이 영혼 안에 자라게 해줍니다.
이러한 동작 중에서 그 첫 번째 자세는 일어서는 것입니다. 총지침은 다음과 같이 서 있을 때를 규정합니다 : “신자들은 입당 노래를 시작할 때 또는 사제가 제대로 나아갈 때부터 본기도를 마칠 때까지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 전 알렐루야 노래를 부를 때, 복음을 선포하는 동안, 신앙 고백을 할 때,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칠 때도 서 있어야 한다. 또한 아래 경우를 빼놓고는 예물 기도… 초대의 말부터 미사 끝까지 서 있어야 한다.”
이처럼 미사 중에 대부분은 서 있는 자세로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기립起立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헤아려 보겠습니다. 성경 안에도 서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모든 문화에서 서는 동작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 하는 자세 중 기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 이전, 서양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동쪽을 바라보며 팔을 들어 올리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배 중에 태양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하고 팔을 들고 섰는데, 사제와 신자 모두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빛나는 태양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해했다는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대부분 성당은 동쪽을 향해있으며, 제단 뒤쪽이 바로 해가 떠오르는 방향입니다. 그래서 사제도 신자들과 함께 제단을 향해 서서 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중세에 들어와서, 사제들은 계속 서서 성찬례를 거행하는 반면 신자들은 어떤 특정한 기도를 바칠 때 허리를 굽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미사 참례자의 자세에 변화가 나타났지만, 근본적으로 서 있는 자세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리스도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resurrectio, 다시 일어섬)하셨고 그분의 지체들인 하느님의 자녀들도 부활할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여 거행하는 성찬례를 서서 거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성체 신심 운동의 영향으로 미사를 그리스도께 드리는 흠숭의 예식으로 이해하면서 서는 동작이 무릎 꿇은 상태에서 허리를 굽히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노 과르디니는 서는 자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선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태도를 가다듬음을 뜻한다. 털썩 앉아 있을 때의 편안한 자세 대신 자제하는 자세, 단정한 자세를 취하는 게 된다. 그것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뜻한다. 서 있는 자세에서는 그 무언가 긴장하고 깨어 있는 맛이 있다. 끝으로 서 있는 자세는 준비되어 있음을 뜻한다. 서 있는 자는 즉각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슴지 않고 사명을 이행하거나 일에 착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 경외의 이면이기도 하다.” 사실 전례 특히 미사성제 때 앉아 있음과 서 있음을 반복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삶의 무게로 지쳐 피곤함을 호소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입당 성가와 함께 일어설 때 과연 나는 하느님 앞에 서서, 주님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전례 중에 마음을 온전히 열고 주님 앞에 설때, 우리 영혼과 마음은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이끄는 사제의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미사의 영성체 예식을 시작하면서 바치는 주님의 기도 직전에 사제는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라고 말합니다. 이 이끔말은 3세기 중엽 교부 성 치프리아노(Cyprianus)가 쓴 「주님의 기도 해설」(De dominica oratione) 2항에서 유래하는데, 미사경본에 도입된 것은 6세기 성 대 그레고리오(Gregorius Magnus) 교황 때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그리스도교 고유의 기도입니다.(마태 6,9-13; 루카 11,2-4) 이 기도를 바치기 전에 ‘하느님의 자녀 됨’을 언급하는 이유는, 초세기부터 오직 세례받은 신자들만이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비신자들은 성찬전례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기도를 소리내어 바칠 수 있었는데 그 자체가 크나큰 구원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비천한 인간이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세례의 은총으로 가능한 실로 엄청난 일임을 알기에 겸손되이 ‘삼가 아뢰는’ 마음으로 기도하자고 사제는 말하며 주님의 기도에로 초대합니다.
주례사제는 이 초대의 말을 다른 알맞은 말로 바꿀 수 있지만, 그것이 설교나 강론으로 변해서는 안 되고, 지루하지 않도록 간결하게 전달해야 합니다.(1973년 4월 27일자 경신성 회람 「성찬 참여」(Eucharistiae participationem) 14항) 또한 미사경본에 제시된 것이 오랜 전통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