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식 목사
저는 목회를 하면서 여러분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개인 개인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날마다 인격이 새로워지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여러분 가정이 건강하여 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정이 깨어지면 행복도 깨어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또 저는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일평생 부귀영화를 얻게 되었을 지라도 자녀교육에 실패하였다면 다 실패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가정이 건강하며 또 화목하면 그것이 큰 힘의 원천이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직(聖職)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이고 선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 일은 성직과 같이 구별된 거룩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년 초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금년에도 잘되기를 바라는 여러 가지 소원의 기도제목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사업의 번창이나 가족의 건강, 자녀의 진학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도해야할 소원가운데 가장 첫째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자녀들이 잘 못되는데 돈은 많이 벌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명예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되는 소원이 가장 좋은 소원이라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성경은(엡6:2)에서「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하여 가문의 명예를 물려주고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명예를 물려주었다고 하여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교훈, 어렸을 때나 장성한 후 그리고 죽을 때에도 변함 없이 기억하고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자녀들이 잘 되는 길입니다.
잠언서는 솔로몬이 쓴 것인데 일반적인 속담이나 격언 보다 더 넓은 의미의 진리와 같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잠언에는 자녀들을 위한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합니다.
또(잠4:3∼4)에서「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도 부모로부터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도 사랑하는 자녀와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말씀대로 살라고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유언이 (왕상2:1∼3)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러분 솔로몬은 이 교훈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고 여호와의 명을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대장부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큰 사람을 가리킵니다.
통이 큰 사람을 가리킵니다. 위대한 사람을 말합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그 아들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복이 아버지의 교훈에서 온 것을 상기시키면서 후대들에게 다시 이 말씀을 강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면 첫째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흔히 생각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자녀가 잘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학을 나와야만 자녀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게 되면 자녀들이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자녀들을 잘 교훈 하는 민족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녀들에게 교훈 하는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가운데에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전체 수여자의 30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배워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당당하게 교훈을 하여야 합니다.
미국이 고민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청소년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얼마 전 조사에 의하면 여중생들 중에 흡연경험이 70퍼센트 이상이나 되고 본드를 경험해 본 아이들도 50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타락과 방탕은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나야 합니다.
아버지는 훈계하고 교훈 하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의 권위를 세우는 일인데 특별히 아버지의 권위를 위하여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버지의 권위가 바로 하나님의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제사장적 권위를 가지고 자녀를 축복하며 가르치는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모리아 산상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 결박한 후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창22:11)「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아브라함도 듣고 꽁꽁 묶여서 장작더미 위에 올려져 있는 이삭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하여 자식까지도 바치는 위대한 아버지 상을 아들 이삭은 보았습니다.
위대한 아버지 상을 이어가는 것이 유대인의 교육의 전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하지 아니한 가정이라고 하면 지금부터라도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못난 아버지 방탕한 아버지라도 그 아버지로 인하여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생명을 이어간다고 하는 사실로도 아버지는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또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녀가 잘되는 방법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흉이나 허물을 드러내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6:4∼7)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론할 것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 부모님을 잘 공경하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서, 야곱이 이삭에게서, 요셉이 야곱에게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훈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21:18이하)「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를 바로 섬길 줄 모르는 자식이 어디에서 사람 대접을 받겠습니까?
누가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우리는 자녀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효의 근본이 바로서야 합니다.
효를 알고 온전한 인격을 갖춘 백성을 통하여 나라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고 도덕성의 문제입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이 나라는 소망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혼돈된 사회에서 영적으로 바로 서고 도덕적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오늘날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교회는 부모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양심을 일깨워야 하고 부정부패나 거짓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끝으로 자녀들을 잘되게 하려면 그리스도안에서 신성한 자존심을 갖도록 자녀들을 길러야 합니다.
자녀들이 십대가 되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입은 옷이나 사는 집 자가용 등을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을 갖게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타이를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 말씀과 신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의 자녀가 단칸방에 살면서 집이 좁다고 불평하면 손을 잡고 교회로 오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이 집이 바로 우리 집이란다."
"네 친구들 중에 이만한 집을 가진 친구가 있느냐?"
"교회가 바로 우리의 집이란다." 하며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조금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단벌 옷을 입고 살면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는 점심 굶기가 예사였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마음속에는 조금도 다른 사람보다 내가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장차 하나님께서 쓰실 귀한 그릇이다" 하는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무엇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자존심을 세우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없어도 있어도 그 어떤 곳에서도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 수 있는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이웃집 아이와 놀면서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친구가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 시장님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어제도 시장님을 만나고 오셨단다!"
그 말에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을 잘 아셔. 언제나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다닌단다!"
"......!"
아들의 친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떳떳하게 생각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누구에게도 기죽지 아니하고 고운 마음으로 자라나는 아들을 보며 기뻐 눈물이 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신성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라고 하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가 잘되는 비결입니다.
금년한해 여러분의 자녀가 잘되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