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코 사양하는 철산스님을 장독대에 세웠다. 익어가는 된장과 내연산 소나무향이 낮은 담을 감싸 돈다. |
친환경 농법으로 손수 만들어
건강하고 안전한 식생활 보탬
…
나이많은 지역노인 일자리 마련
수익은 지역 복지·마을에 회향
선원도 열어…구참수좌 중심
생산품목이 10여 가지에 이른다. 크게 분류하자면, 차(茶)와 다기 그리고 장(醬)이다. 내연산 보경사로 가기위해 포항으로 향하는 KTX에서,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며 손수 만드는 철산스님에게 던질 질문을 떠 올렸다. 먼저 생산품목의 다양화가 떠올랐다.
수확하는 계절에 따라 그해 그해 수익구조가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인지, 제품기획에서 판매방식까지 계량화 된 잣대의 질문을 차곡차곡 메모해 두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덧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목욕탕에서 쓰는 두툼한 수건이 목을 감싸고 있었다. 세속에도 일을 몰고 다니는 일복 터지는 사람이 있는데, 스님이 딱 그렇다. 일을 찾아 도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스님을 만났다. 복장부터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 항상 반가이 맞아 차를 내주는데, 당연히 스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바쁜 스님에게 기차간에서 메모한 질문을 쏟아낼 요량으로 30분만 시간을 내어 달라고 청했다. 장소를 옮기는데 낮은 담장을 따라 여러 겹으로 길게 늘어선 장독대가 장관이다. 이 장독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장독의 키는 어른 허리춤에 오고 폭은 팔을 벌려 안으려 해서 여기 경북 포항지방 사투리로 “택도 없다” 그만큼 넓다. 지금 300개쯤 된다고 했다. 또 얼마 뒤면 200개가 더 들어올 거라 했다. 저 많은 장독에 무엇이 담겼는지 물으니 햇콩을 사다 담근 된장이란다. 그 양이 눈대중이 되지 않을 만큼 많다.
스님이 담그는 된장은 유명해서 매년 팔리는 추이를 지켜보며 양을 조절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요예측은 어떻게 하고 판매 거래처로는 어떤 곳들을 두고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꼭 팔려고 만드나”였다.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나눠주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손해도 보지만, 그러면 누군가 나타나 메워진다고 한다.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돈을 받든, 받지 못하든 세상에 풀어 버리면 그만 이라니, 주먹구구도 이런 주먹구구가 없다. 수익구조 개념자체가 없다. 좋은 물건을 만들고도 판매망을 구축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한때 판매처를 알아도 봤는데, 스스로 장사치 같아 이내 포기했다고 한다. 여기 된장 맛있다며 국이든 찌개든 한 그릇씩 뚝딱 비우는 선방스님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렇게 된장이며, 조청이며 뽕잎차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사찰에 찾아와 주는 분들께 작은 인사라고 하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 스님은 문경 대승사에서 선원장 겸 주지 소임을 보고 있었다. 작은 정성이라도 들러서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하나 하나 물건을 사다 건네주는 건 어렵지만 만들어 주는 건 쉬운 일이었단다. 이때가 1995년쯤 이라고 기억했다. 현재 보경영농조합의 모태인 대승영농조합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하는 대승영농조합 출범 당시 철산스님의 인사말이 적혀있는 빛바랜 인쇄물을 종무소에서 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고령화에 따른 지역노인 일자리 마련과 건전하게 발생한 수익으로 지역의 우수한 학생을 비롯해 독거 어르신을 위해 사용하는 등 복지사업에 환원하고 공생하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또한 제품에 대한 신뢰가 곧 건강과 행복이라는 신념아래 청정 자연과 천년고찰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하고 만듦으로써 건강하고 안전한 식생활문화에 보탬이 되고자하는 바램도 있다.
시절인연 따라 2013년 11월부터 포항 보경사 주지 소임을 보게 됐다. 오자마자 한 일은 아쉬운 데로 선원이 없는 이 절 주지 방을 선방으로 내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몇 분의 수좌 스님을 모시고 겨울을 지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12폭포로 유명한 보경사는 입장료를 받는 관람료사찰이다.
대승사에 비하면 살림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스님은 일을 손에 놓지 못하고, 역시나 일을 몰고 다닌다. 선원불사가 골격을 갖춰가고 있고, 새로 시작한 뽕잎밭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채취가 가능하다. 다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도 다시 짓는다.
보경사에서 택시를 타고 나오는데 기사의 스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동짓날 절에서 팥을 쑤어 외진 이웃마을 구석구석까지 전해줬다며, 동네 목욕탕에서 뵈도 스스럼없이 대해줘 어느 때는 친구 같다고 했다. 언젠가 스님 팔에 아물어가는 큰 상처를 발견하고 이유를 물으니 전기톱을 쓰다 다쳤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스님은 큰절 주지인데 그런 일은 밑에 스님 시킬 일이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스님의 목소리는 작다. 종무소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목소리가 작아 되물으면 “됐다”며 슬쩍 자리를 빠져나간다. 그러고는 시키려 했던 일을 혼자하고 만다고 한다. 듣고 있자니, 팔을 걷어 부치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 금우장뇌삼진고
동의보감 양생영년약이편-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는 약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이 경옥고이다. 효능은 정(精)을 채우고 수(水)를 보하며, 모발을 검게 하고, 만신(萬身)이 편안하여, 백병(百病)을 제거한다. 일반적인 경옥고는 인삼, 백복령, 꿀, 생지황 등으로 만드는데, 금우장뇌삼진고는 스님이 산에 직접 씨를 뿌리고 채취한 장뇌삼을 사용하고, 대추, 오미자, 맥문동 등도 첨가되어 있다. 천년고찰의 깊은 산중에서 뽕나무로 불을 지펴 제조한다. 1kg에 30만원, 먹기 좋게 만든 환은 50개 들이 15만원.
□ 칠장된장
칠장의 칠은 옻칠(漆)자다. 햇콩을 사용하고, 3년 이상 묵힌 소금으로 구운 죽염을 사용한다. 오미자와 옻과 고추씨 그리고 표고버섯이 들어간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옻나무는 뭉친 피를 풀어주며 살균효능이 있다. 1.5kg에 3만5천원.
□ 금우명다 대승산방발효차
지리산에서 채취한 찻잎을 덖고, 황토 구들방에서 전통방식대로 발효시킨 황차이다. 80g에 5만원.
□ 오미자 민들레 조청
내연산 맑은 토양에서 자란 민들레를 채취해 제조했다. 민들레는 급성기관지염이나 천식, 소화불량 등에 효능이 있는 식물이다. 거기에 단백질, 칼슘, 인, 철, 비타민B 등이 함유된 문경지역특산품인 오미자를 더하여 만들었다. 1.5kg에 3만원.
□ 산뽕잎차
뽕잎의 52%가 식이섬유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바(GABA: 감마아미노부틴산)성분이 녹차의 10배, 루틴(Rutin)은 메밀의 17배, 칼슘은 양배추의 60배, 철분은 총각무의 150배가 들어있다. 100g에 3만원.
□ 작설차
찻잎의 모양이 ‘참새의 혀와 같이 정교하고 깨끗하다’하여 작설(雀舌)이라 부르는데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대지의 봄, 지리산 녹차의 어린 새순만 한 잎, 한 잎 손으로 따서 정성스레 덖거나 쪄, 여러 번 비벼 만들었다. 80g에 5만원.
구매 문의: 포항 내연산 보경사
054-262-1788, 054-262-1117
[불교신문3116호/2015년6월27일자]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_()_
안그래도 몇번을 망설이다
맛들여놓으면 넘 멀어서
서운암에서 사먹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