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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어원
조동사 단정형 `잖아(jyana)`는 일본어의 `じゃない(jyana-i)`와 일치
한국어의 부정을 수반한 조동사 단정형 '잖아(jyana)와 일본어의 'じゃない(jyana-i)'가 발음이나 표기및 음운적 어원분석으로도 완벽히 일치하는 예를 가지고 일본어 어원 추적 3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중세일본어는 어쩌면 우리 말과 좀 더 비슷했을지 모르겠다는...... 우리나라도 중세때 자음이나 모음 사용이 현대는 발음하기도 구분하기도 어려울만큼 어두에 세자음이 오거나(세자음을 모두 발음했다고 하지요?)
중세 모음삼각도를 보면 현대에선 구분하기 힘든 모음들을 사용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발화자들의 편의성(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안남)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음체계도 모음체계도 바뀐 걸 보면, 중세일본어 또한 우리말과 더 많이 닮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네 움님 현대제주어가 훈민정음시대의 음가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예에서 보듯이 본토인 한반도와의 공간적 시간적 단절이 심해질수록(과거에는 소통이 어려웠으므로)언어의 원형식에 더 가깝거나 본토의 언어적 변화에 대처 못하게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원형식의 언어에서 조심스런 독자적 진화를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일본어는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고대에 더 가까운 야요이나 삼국시대의 언어적 흔적을 많이 보여 준다고 합니다. 특히나 님이 예를 든 초성에 3자음이 모두 오는 경우 그 3자음이 모두 개음절화하여 독립적으로 그 자음 하나 하나가 독립음절로 살아남은 경우가 일본어에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어 꾸리다(ggur-i-da)의 원형인 초성에 ㅂ,ㅅ,ㄱ이 함께 오는 고어 ㅂ+ㅅ+그리다(bsgwr-i-da=ㅂ,ㅅ,ㄱ이 초성의 세개의 겹자음인 고어입니다)는 한국에서는 경음인 ggur-i-da(알파벳표기에서 i와 da를 구분해서 표기한 것은 이들은 접사로서 어근인 ggur과 구분하기 위함이다.)로 간략화과정을 겪지만 일본에서는 이들 겹자음 ㅂ,ㅅ,ㄱ이 모두 독립 음절화하여 겹자음 3개의 발음을 모두 반영하여 정착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겹자음의 발음이 모두 실현되는 특수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한국어에서 '떼쟁이'할 때의 '떼'를 나타내는 일본어를 '다다(だだ [] )'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떼'의 초성 겹자음인 경음 ㄸ의 각 평음인 ㄷ의 음가를 일본어에서 모두 실현한 경우입니다.
즉 일본어 '다다'의 발음을 표기해서 차음한 한자 [(태태]의 발음으로 미루어 한국어 떼는 일본어에서 초기에 'dai+ dai=다이다이'등의 음운 중간과정을 거쳐서 '다다'로 음운전성된 것입니다. (일본어의 문자표기방식인 가나에서 이중모음을 표기하기는 몇개의 이중모음을 빼놓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한국어 '괴물'이 일본어에서는 '구+에+무+루'로 전혀 원이중모음'ㅚ'의 음가를 실현 못하고 표기되듯이 한국어의 이중모음의 음가를 실현하는 것이 힘들다.) 추후에 겹자음의 독립음절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으로 또 다루기로 하면서 오늘의 주제인 한국어의 조동사의 단정형 '잖아(jyana)'와 일본어의 단정형 'じゃない(jyana-i)'의 음운론적 비교와 어원추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어의 조동사의 단정형 '~잖아(~지+아니하+다의 축약형)' 는 부정을 수반하여 선행어의 의미를 확정한다. 발음은 알파벳 발음기호로 단순화시키면 ~jyana가 된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어의 조동사 단정형 '~잖아'의 음운전성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제 글을 보시는 제위들의 이해를 돕기위해서 '~잖아'의 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바보라는 선행명사를 편의상 '잖아'앞에 전치시키면서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바보라는 한국어가 일본에서 음운 전성되는 과정도 동시에 설명하기로 한다.
[한국어 babo는 일본어에서 a-ho가 된다.(바보를 뜻하는 또 다른 일본어 'baka(馬鹿)'는 말과 사슴도 구별 못하는 바보라는 의미의 줄임말인 마록이라는 한자의 음차 이지 바보라는 일본어의 토착어가 아니니 주의하라)
실제 입술소리 b는 p 또는 h와 자주 호환한다. 바보라는 한국어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음운이 전성되는데 우리나라의 '벌(bul=原)'이 일본에서 'ha-ra'가 된 예처럼 바보의 첫음절의 제1자음 b는 h로 변했을 것이다.
또 일본어 'yapari 또는 yabbari(やっぱり=역시)가 やはり (yahari=역시의 다른 발음및 표기) 혼용되는 예에서와 같이 b발음은 h발음과 같은 음가를 가지며 혼용된다. 따라서 제 2음절 '보'의 제 1자음 b역시 h로 호환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제1음절의 제1자음 h가 이어지는 제2음절의 제1자음 h와 충돌하여 서로 회피하는 현상이 생기고 제1음절의 첫 자음 h는 후두음화해서 거의 묵음화 된다. 이를 음운전성 과정으로 살펴보면, '바'는 '아'로 변하고 '보'는 그대로 '호'로 전성된 것이다 따라서 '바보-하호-아호'형태로 변했으리라고 구성할 수 있다. 아호'를 발음해보시라 본질적으로 바보의 음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바보를 뜻하는 일본어 a-ho뒤에 수반하여 선행어인 명사 바보의 의미를 확정하는 조동사의 단정형 jy와 부정형a+nai의 결합은 한국어 '~잖아(jyana)' 와 완벽히 일치한다. 일본어의 부정형 nai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어 '지+아니하-다'에서 보조어간 '지'와 부정형 '아니하-'의 결합 과정 중 지와 아의 융합으로 자(또는 쟈)가 됐을 것이고 '아니하다'의 두 번째 음절 '니'는 단축과정중 '쟈'의 종성받침으로 수렴되고 '니'의 남은 모음 'ㅣ'는 뒤 음절의 '하'의 초성자음 'ㅎ'이 '쟈'의 겹받침으로 수렴되면서 음의 간략화전략과 충돌로 삭제되고 마지막 음절 '하~'는 ㅎ이 앞음절에 겹받침으로 수렴되어지면서 '아' 단독음절로 생존하게 된 경우이며 이것이 그 후 관례화가 되어 일본어의 부정형 nai가 된 것이라고 후쿠오카대 언어학과 시미즈 교수는 분석한다.
즉 '지+ㅏ+ㄴ+(ㅣ모음삭제)+ㅎ+ㅏ'<'지+ㅏ+ㄴ+ㅎ+ㅏ'
<쟈+ㄶ+ㅏ<쟎+아<잖아<알파벳발음기호화하면
한국어=babo-jyana....................일본어
=a-ho-jyana-i(あほう-じゃない)
바 보- 잖 아
아-호-자나-이(실제 발음에서 접사~i는 잘 발음 되지 않는다)
일본어 `ma-busi-i-yo(ま-ぶしい-よ)의 어원은 한국어 `nun-busi-da`
지난 번 일본어 어원 추적에서는 선행어의 의미를(그 선행어가 부정이든 긍정이든)확정하는 부정을 수반하는 조동사 '잖아(jyana)'가 일본어 'じやない(jyana-i)'의 어원임을 살펴보았다. 이 '잖아'나 'じやない(jyana-i)'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2가지 용례로 쓰이고 있는데 하나는 3편에서 살펴보았던 선행어의(긍부정을 막론하고)의미를 확정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3편의 댓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선행어를 '잖아 또는 じやない'가 부정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용례의 구별은 선행어를 확정하는 경우와 부정하는 경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실제 구어에서 쓰일때에는 뒤에 종결어미를 붙여서 구분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잖아 나 じやない'가 선행어의 의미를(긍부정 막론하고)확정하는 경우는 한국에서나 일본어에서나 뒤에 종결어미를 붙이는 경우보다는 선행어와 잖아를 붙여서 발음하며 문미의 끝을 살짝 올리는 형식으로 사용되거나(예-바보잖아/) 또는 문맥의 선후로 그것이 선행어의 의미를 확정하는 식으로 사용한다.
물론 뒤에 종결어미 '요'를[일본어에서는 '요(よ)'나, '노'(の=실제 이 '노'라는 종결어미도 경상도 사투리의 종결어미 '노'에서 기원한 것이다.)]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생략형식으로 구어체에서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잖아 나 じやない'가 선행어를 부정하는 경우는 구어상 한국어에서는 '~(이)지 않아'라고 띄어서 발음하거나 '지'에 강세를 두어 구별한다. 그리고 문미를 平敍式으로 발음한다.
일본어에서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를테면 'そう じゃ 'ないよ('so jya 'nai -yo=그런게 아니에요='점 표시는 강세의 표시)'에서 강세를 두거나 약간씩 간격을 둔다. 역시 문미는 평서형식이고 뒤에 종결어미를 반드시 붙이지는 않고 생략되는게 보통이다. 3편에서는 '잖아'의 두가지 용례중 선행어를 확정해 주는 '바보잖아'를 예문으로 한국어 '잖아'가 일본어 'じやない'의 어원임을 살펴 보았고 이는 알파벳 표기(jyana-i)에서나 용례에서 보듯이 음운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이번 4편에서는 한국어 '눈부시다'와 ,복수형접미사 '명사+들'이 일본어에서 어떻게 음운전성과정을 거쳐서 발음 및 표기되고 있는 가를 살펴보겠다. 먼저 일본어에서는 한자로 眩(아찔할 현)을 음독하지 않고 'mabu(ま-ぶ)라고 훈독한다 여기에 'si-i(し-い)를 붙여서 '眩し-い'라 쓰고 'mabusi-i(ま-ぶしい)라고 읽는다. 아찔할 현(眩)을 보면 눈이 핑핑도는 형상을 나타내는 한자로서 눈 目과 눈이 부셔서 일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찔한 형상을 나타내는 玄의 결합문자이다.
일본가나에 쓰이는 한자는 대부분 후에 비슷한 의미로 채워 놓은 것이 많기 때문에 한자의 의미는 대부분 먼저 존재한 토착어의 훈독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아찔할 眩은 눈이 부신형태를 나타내는 토착어의 대용인 것이며 눈이라는 말 대신 한자 目(ma)이 쓰인 것을 알 수 있다[한자 目은 일본음으로는 원래 메라고 읽는데 ま-ぶしい(ma-busi-i)로 쓰일 때는 뒤의 'busi-i(ぶしい)'와의 발음연계상 'ma(目)'로 단순 모음화한다.]
즉 일본어 ma-busi-i(眩ぶし-い)는 한국어 'nun-busi-(눈-부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알파벳 표기로 바꿔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문자인 한글과 가나로 표기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언어체계로 보이던 것이 알파벳으로 바꿔 표기하면 그 유사성을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영어나 독일어는 알파벳 표기나 발음기호표기를 통해서 어원을 추적하여 인도-유럽어족 중에서도 그들이 같은 게르만 어군임을 알수가 있으며 그들의 단어들이 다른 어군인 라틴어군으로부터도 많은 말을 차용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국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때문에 이런 간단한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수많은 양심적인 학자들이 고대는 물론 에도시대 때도 인정한 것을 언어학적으로도 다르다는 뉴앙스를 풍기며 왜곡 주장해 온 것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더 연구가 진행되어 양국의 비교언어학이 정립되고 양국의 어원사전이 발간되면그러한 왜곡보다는 상호 대승적인 입장에서 양국의 문화적 유전자에 대한 탐구와 동질성및 문화적 성과를 거둘 수 잇을 것이다.
일본어 ma-busi-i에서 마지막 음절인 이(i)는 형용사를 나타내는 접사로서 어근 busi와는 관계가 없지만 mabusi-i-yo라고 뒤에 종결어미를 더 붙일 수도 있다. 한국어 '눈-부시-다'와 같은 형식이다.
한국어 Nun-busi-da (눈-부시-다)
일본어 Ma –busi-i-yo(ま-ぶしい-よ)
일본어에서 複數접미사는 達이라고 쓰고 dachi(だち)로 음독한다.물론 音借이다. 그런데 반드시 음독이라 할 수 만도 없는 딜레마가 이 단어에 숨어 있다 이 단어에 대해서 어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몇가지 음운규칙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한국어에서 일본의 복수접미사로 쓰인 '達'은 '달(dal)'로 읽힌다. 그리고 한국어의 'ㄹ'은 일본어에서 대개 다음과같이 음운전성되어 발음된다.
한국어 達(da+l).......................일본어 達(だち=da+ ch+i)
한국어 別(byu+l)----------------일본어 別(べつ=be+ch+u)
한국어 結(kyu+l)-----------------일본어 結(けつ=ke+ch+u)등등..
그리고 일본인들은 왜 友達이라 쓰고 tomo-dachi(ともだち=친구들)로 발음하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전혀 모르고 쓴다. 물론 일본어 とも(tomo)는 순 한국어의 음운전성형으로서 한국에서는 레드컴플렉스의 매카시즘적 사회적 기전으로 터부시된 토착어 '동무'가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자음'ㅇ'이 탈락되고 모음조화가 파괴되면서 'tomo'로 변했지만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대략 일본어 복수접미사 達의 어원에 대해서 눈치들을 채셨으리라 본다.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언어학적 규칙을 하나 더 들면 어떤 단어의 어근은 시간이 경과하면 음운이 변하기 마련인데 거기에서도 법칙이 존재한다. 즉 어근중 모음어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자주 변한다 우리 중세국어에 존재했던 '아래 아'의 예를 상기하면 알 것이다.그런데 자음어근도 변하긴 하지만 모음 어근에 비하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근거로 일본의 복수형접미사 '達'을 바라보면 한국어의 복수접미사 '~들'과 금방 연상이 되어질 것이다. 즉 한국어의 복수접미사 '들'의 음가를 거의 보존한(ㄹ받침까지)한자 達은 바로 한국어 '들'의 일본식 이두식 음독이자 훈독의 표기인 것이다. 즉 모음 어근인 '들의 으'와 '달의 아'는 변했어도 자음 어근인 'ㄷ'은 변하지 않았고 어근이자 '들'의 종성인 'ㄹ'조차 일본어에서 규칙적으로 ch(ち또는 つ)로 음운전성된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일본어의 복수 접미사 '達(da-ch-i=だち=들)'은 한국어의 복수형 접미사 '들'의 일본버젼 음독이자 훈독인 것이다.
한국어의 복수형 접미사 '동무-들 (Dong-mu-dw-l)'
일본어의 복수형 접미사 'とも-だち(To -mo-da-chi)'
한국어 `두섬`은 일본어`つしま(대마도)`의 어원
자, 대마도로 가보자 대마도의 어원을 추적하기 전에 '대마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야요이 이전 한반도 남부인들이 부르던 순수 토착어로서의 이름부터 더듬는다. 일본어로 대마도를 'Tsusima(つしま=對馬島)'라 한다. 그런데 일본어의 五十音圖 타행(た行=타치츠테토..하는)을 보면 '타티트테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티,트'부분을 '치,츠(ち,つ)로 발음한다. 즉 '티,트'가 후세에 '치,츠'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국제 음운적 발음기호상으로 이 '치와 츠'는 't'로 쓰인다고 후쿠오카대 '시미즈'교수는 말한다.
이의 예는 영어 'team'을 일본어로 '치무(チ-ム)'로 발음하거나 영어 'two'를 '츠(ツ-) 'two out'을 '츠- 아우토=(ツ-アウト)'로 발음 하는 것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즉 일본어의 표기방식인 가나표기는 우리 한글처럼 음소문자가 아니라 즉 알파벳으로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서 조립할 수 없는 고정된 음절문자이기 때문에 '두'라는 말을 일본어로 표기하려면 'ㄷ'이라는 자음과 'ㅜ'라는 모음을 조합해서 우리말처럼 '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의 50음도에 있는 가나중 '두'에 가장 가까운 음절을 통째로 빌어서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에 가장 가까운 말은 '타치츠테토'중 하나를 골라서 음절 전체를 통째로 빌어 표기해야한다. 이 중 '츠'가 원래 '두'에 가장 가까운 음가이기때문에 '두=츠'로 표기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말의 'ㄷ'음이나 영어의 't'음을 상황에 따라 'ㄷ'이나 'ㅈ,ㅊ' 또는 't'나 'ts' 즉 'Tusima'로 발음 되어야 할 것을 Tsusima(つしま=對馬島)'라는 발음으로 변형해서 발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환언해서 일본어의 발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죠몽식의 음운현상도 있지만 오히려 가나의 음절문자적 고정성이 일본어의 발음을 경직되게 만든 폭이다.
따라서 한국어에는 분명히 'ㄷ,ㅌ'인 발음이 일본어에서는 'ㅈ,ㅊ'발음이 될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타행(た行)中 치,츠(ち,つ)'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어에서 '디' 나 '두'로 발음되는 음절이 일본어에서는 '지,치'나 '즈,츠' 또는 '추'로 발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일본어 '치' 나 '츠'는 국제 공통의 발음기호상으로는 'ti나 tu'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ㄷ이나 ㅌ음이 'ㅣ'나 'ㅡ'모음 앞에서 ㅈ이나 ㅊ으로 변하는 구개음화현상인 것이다.
자 위의 음운 규칙을 알았으니 이와 같은 음가를 가진 한국어가 일본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자. 鶴의 순 우리말은 '두루미(turumi)'이다 이 두루미에서 어근은 '두루(turu)'이고 뒤의 '미'는 명사를 형성하는 접미사일 뿐이다. 자 그렇다면 일본어에서는 鶴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역시 '츠루(つる=鶴=tsuru)이다. 위의 '치,츠'법칙에 걸리는 음절 '츠(ツ, 히라가나로는つ)'이다. 다시 말해서 언어학적 발음기호상으로는 't음'인 것이다. 따라서 발음기호상으로 표기하면 'turu'즉 한국어 '두루-미'의 어원 '두루'와 한치도 틀리지 않는다. 일본어에서의 탁음 즉 무성음은 한국어의 평음이라는 것은 누누히 전편에서 걸쳐 말한 바 있다 즉 한국어 평음 'ㄷ'은 일본어에서는 '격음화'하여 't'발음화한다는 것이니 '두루'와 'turu'는 같은 음가이다.
한국어_Turu-mi(두루-미=鶴)
일본어_Turu(つる=鶴=두루미)
이쯤에서 다시 대마도의 일본식 발음인 '츠시마(Tsusima=つしま=對馬島)'를 살펴보자. 볼 것도 없이 위의 '두루미'의 일본어인 '츠루'의 예처럼 '치, 츠'법칙에 걸린다. 즉 일본어 '츠시마(Tsusima=つしま=對馬島)'를 발음기호로 풀어 보면 tu-sima 즉 한국어 '하나 둘..'할 때의 바로 그 '두'가 'tu'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대마도는 지정학적으로 고대나 운하로 넓힌 근대나 조그만 해로가 갈라놓은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즉 대마도는 부산에서 50킬로정도 떨어진 고대로부터 한국의 영역이다. 즉 고대 한국인들은 일본열도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대마도의 역할이전 훨씬 전부터 대마도를 '두섬'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그 흔적은 일본어 'tu-sima'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한국어로 섬을 의미하는 일본어 'しま(sima=島=시마)'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자.
우선 언어학적으로 자음 어근이 변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모음 어근은 아주 시대적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이를테면 馬을 뜻하는 ㅁ+(아래 아)+ㄹ은 중세국어에서는 말과 멀의 중간음인 몰로 불리기도 하고 현대에서는 말로 불리듯이 모음어근은 변화가 아주 잦다. 따라서 우리말 섬의 자음어근인 s는 수천년이 지나도 거의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하더라도 같은 반치음계열인 'ㅈ,ㅊ'등과 호환되어 어근변별에 무리는 없다. 하지만 모음어근인 'ㅓ'는 야요이시대에 변한지방의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지고 들어 간이래 음운적으로 유동적이다.
kbs에서 방영되는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전라도 진도기행을 보여줬는데 그곳의 어르신이 섬을 거의 'sim'유사하게 발음한다. 즉 현대식 우리의 관념대로 섬의 모음 어근은 반드시 'ㅓ'로 발음될 필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에서 방언의 발음은 아주 중요한데 이 시리즈 내내 주장하듯이 일본어의 원형은 야요이인인 고대 한반도 경상도 남부와 전라도 동부지역에서 쓰이던 방언으로서 학술적으로 남부 퉁구스어이기 때문에 고대 한반도 남부지방의 발음 패턴은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을 현대일본어에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어로 한음절내의 제 2자음인 'su+m'즉 종성인 'ㅁ'은 우리말로는 한음절로 수렴되지만 죠몽계언어의 음운적 영향과 일본어를 표기하는 이두식의 음절문자 가나의 영향으로 일본어에서는 한국어처럼 '섬'이라고 한음절로 수렴이 불가능하고 제2자음인 'ㅁ'이 연철화하여 모음을 수반하는 별도의 음절로 개음절화하는 현상을 거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음절화를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일본인이 '합니다'를 '하무니다'로 발음하는 것이 바로 독립음절화를 말하는 개음절(開音節)이다.
그런 연유로 '서+ㅁ'에서 '종성'ㅁ'은 별도의 모음을 수반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우리말 '섬'은 '소무 또는 소마'나 '사무 또는 사마'나 KBS에서 방영한 진도 할아버지의 남부방언의 개음절 형태인 '시무 또는 시마'등의 음운적 경쟁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시마'로 정착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各羅島에서 태어난 무령왕을 한자로 '사마(斯麻)'로 쓰는 것도 저러한 음운경쟁과정중의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더구나 일본어에서는 'ㅓ'발음은 'ㅏ'나 'ㅗ'로 발음되거나 표기되는 것이 대표적이지만(일본가나에 'ㅓ'발음을 표기하지 못한다) 오음도의 '아이우에오'모든 발음으로도 대치가능하다. 하물며 진도기행의 할아버지 발음처럼 '시마'는 한국 남부방언의 흔적을 간직한 말이기때문에 더욱 그 가변성은 크다. 즉 '사마나 소마'와 더불어 '시마'로 대치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sum<sa ma="ma" 또는="" 음운경쟁="음운경쟁"><sima しま="島=섬)"></STRONG" si="si" ma="" 개음절화및="" so="so"></sima></sa>
한국어_tu-som(두섬)
일본어_tu-sima[(つしま=對馬島='Tsusima(일반적인 영어 알파벳 표기)]
자 그렇다면 이 글의 원줄기로 돌아 와서 그럼 '대마도'의 '대마'는 무엇인가 對馬라는 한자의 일반적인 의미 그대로, 이 단어는 말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는 형국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런 해석은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고, 역시 對馬는 음차일 뿐이며 그 원의미는 탐라(=담로에서 유래 탐라의 어원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다룬다)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즉 고대 한국인들이 현재의 대마도를 부르던 두섬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일본식 음운인 '츠시마'로 변경된 것과는 별도로 對馬는 '두섬'과는 다른 어떤 한국어의 이두식 음차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츠시마는 '두섬'의 일본식 발음이고 '대마'는 '對馬'라는 한자를 '츠시마'로 훈독하거나 음독하는 것이 아니라 '츠시마'와는 다른 별개의 어떤 한국어를 '對馬'라고 이두식으로 음차해서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것을 찾아보자.
우선 대마가 어떤 한국어를 음차해서 한자로 표기한 것인가에 대한 어원분석이전에 한반도 서해안지방을 따라서 '大門里' '對麻里' '大水里' '담수리' '담물마을' '담양(일본 '나라(なら)'의 이두식 표기인 奈良의 良(량)처럼 전남 담양의 '양'도 우리말 '나'의 이두식 표기로 후세에 그 이두식 표기가 고착화 된 예로 미루어, 담양의 원 이름은 '담라 또는 담나 '였을 것이다)'등을 살펴 보면 이들 모두가 고구려나 백제에서 쓰이던 '담울<다물'이나 '담로'를 민간전승한 것이거나 이두식으로 표기한 異稱(이칭)형식이다.
따라서 대마도의 '대마'라는 것은 그 한자의 원의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어 '담로'의 이두식 한자 표기로서 한국의 서해안 지방에서도 보여지는 지명 형식으로서 '대마리'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또한 일본어 '다무로'계열의(밑의 일본어 사전 'たむろ[damuro=屯]'의 예에서 보듯이 백제가 정복하여 군대와 둔전을 두고 통치한 곳'이라는 의미의 '담로'와 똑같은 말이-다른 것이라고는 자음 m이 모음 u를 붙여 'mu'로 개음절된 것외에는 없다-지금도 일본에서 거의 백제의 담로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음운전성과는 또 다른 음운 전성의 갈래로서 '다마나'가 있는데 이는 '담나<다마나(-たまな-일본에는 실제 다마나市라는 지명이 백제형식의 후지노키 고분이 발견된 곳 인근에 있다)<다마<다마도(다마의 이두식 한자 표기 多馬나 大馬, 對馬로 표기후 그것이 對馬로 고정되어 전승)'의 형식으로 음운전성 된 것이다.
[출처-네이버 일본어 사전]
たむろ[damuro 屯]
1. (文) 병사가 모이는 곳. 집합한 군대. 진영. =屯 とんしょ.
2. (文) (어떤 동아리의) 집단.
3. (같은 동아리가) 항상 많이 모이는 곳. 특히, 明治めいじ 시대의 경찰서· 주재소.
물론 이것은 현재의 대마도를 '두섬(츠시마)'이라고 고대 한국인들이 부르기 시작했던 야요이로부터도 훨씬 뒤인 서기 4세기 말경 홍원탁 교수의 논문에서 보이는 근초고왕 무렵 백제가 왜 열도를 정벌하는 원정길에 새로운 정복지로서 '두섬(츠시마)'을 원래의 이름인 '두섬'외에 '담로'라고 지칭했을 것이며 '담로'의 이칭 음운형식인 '다마나'라고 인식하며 이두식으로 표기한 '對馬'가 후에 고유명사화한 것이라는 것은 재론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따라서 '츠시마'는 한국어 '두섬'에서 유래한 것이고 '대마'는 한국어 '담나'의 개음절 형식인 '다마나'에서 '나'가 탈락한 다마의 이두식 음차표기인 별개의 단어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후에 츠시마는 對馬로 혼용된 것이다.
일본어-對馬島=한국어 담로의 이칭형식인 '담나<다마나'에서 유래, 담나<다+(개음절)마+나
<다+마<다마+도<(고대에 다마와 유사한 한자의 음가인)對馬로 이두식 표기한 것이 현대에도 그대로 전승됨)
'食べる(먹다)의 어원'을 최초로 밝힌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미스테리
- 제이피뉴스에서는 한일어 미스테리라는 제목으로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분석한 글을 연재합니다. 오상현 박사는 "일본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관점들 가운데 문화의 원형을 조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서 "이번 원고의 발상은 모두 최초성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상현의 한일어 미스테리-①
<食べる(먹다)의 어원>을 최초로 밝힌다.
일본어의 형성은 고대 한국어로부터 어휘와 문법차용 방식으로 본격적인 교류를 통하여 진행되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역사적 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공동연구를 해 온 일본측 교수인 시미즈 기요시(清水紀佳) 씨와 한국측 연구가인 박영미 씨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ㆍ일어 간의 유사어휘를 대조하여 조사해 본 결과, 무려 5000 여개의 어휘가 공통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미즈 교수 팀에 의한 이러한 연구 성과에 관심을 가지고 탄생한 학회가 2007년 가을에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개최된 제1회 한ㆍ일 국제비교언어학회였다.
시미즈 교수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묶어서 발간한 책이 『아나타는 한국인』(시미즈 기요시ㆍ박영미 공저, 정신세계사, 2007)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현대 일본어 속에 존재하고 있는 고대 한국어의 어휘를 의식하여 한국어의 분포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을 취하여 한반도에 존재해 온 한국어를 ‘대륙한어(大陸韓語)’로,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일본 속에 존재해 온 한국어를 ‘열도한어(列島韓語)’로 갈래를 나누어서 상호 공통점을 확보함으로써, 제한적이긴 하지만 서기 500년~600년까지는 통역 없이 소통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는 일본 민족과 문화의 원류 및 국가형성을 부여계 기마민족 진왕조(夫余系騎馬民族辰王朝)에 의해서 4 세기 내지 5 세기에 걸쳐서 달성되었다고 하는 소위 ‘기마민족정복왕조설(騎馬民族征服王朝説)’을 주장한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 1906~2002) 씨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역사 언어학에 입각한 후속 연구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 성과를 감안하면, 시미즈 교수에 주장을 통해서 결론을 내린다면 일본어는 ‘특별한 형태의 한국어의 역사적 방언’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게 한다.
따라서 현대 일본어 속에 있는 수많은 고유어(和語)를 한국어적 맥락에서 연구의 방향성을 추구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연구는 통섭적 직관과 양국의 학제적 전문성을 발휘해서 연구 과제를 다기적으로 망라해야 추론이 가능해지고, 또 역사 언어학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규명되지 않았거나 연구상의 오류로 인하여 파생되는 학설의 ‘낙인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한일 양국 연구자에 의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 단어가 「食べる(먹다)」이다. 시미즈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그의 저서 『아나타는 한국인』의 「‘먹다’에 대한 표현」에서 ‘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것이다. 「먹다(mɔɡ-)」와 같은 뜻의 동사는 「食べる(tɑbe-ru)」인데, 자음이 서로 다르므로 음운적으로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161 쪽)고 밝히고 있다. 즉, 아무리 근거가 타당한 추론에 입각하여 연구를 진행하면서 문헌적 증거를 확보해도 어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는 점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食べる」에 대한 또하나의 어원 추적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어느 분석가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펼친다. 「食べる」의 고어는 「食(た)ぶ」라고 밝히면서 어디까지나 상상이라는 추측 형태로 분석하고 있는데, 「食(た)ぶ」의 의미는 「손으로 입가에 먹을 것을 옮겨다가 입에 넣어서 소리를 내어 깨문다(手で口元に食べ物を運び、口に入れて音を立ててかむ)」라는 식으로 분석하고 있긴 하지만, 학설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장차 『記紀(고지키와 니혼쇼키)』를 연구해 나아가면 「食(た)ぶ」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인 연구자에 의한 일본어적 시각과 연구발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며, 「食べる」는 한국어의 「때우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가설을 세워서 추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어의 ‘먹다’라는 단어 중에 「食う(ku-u)」라는 단어가 있는데, 굳이 「食べる」를 병용한 것은 기본적으로 「eat」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할 경우에는 「食う」를 일반적으로 사용했으며, 취식 메뉴 내지는 취식 시간에 따라서 일상적으로 먹는 「食う」와 구별해서 사용하는 의미를 지닌 소위 「대충 ‘때우는’ 식의 의미」로서 가벼운 취식의 동작을 「食べる」의 고어인 「食(た)ぶ」( ← 때우다)」로 구분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을 가정하여 추론적 가설을 세우고, 여기에 기초하여 음운체계를 연구하면서 「食べる」의 어원을 분석하는 쪽이 훨씬 더 확실하게 어원 규명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상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대표적인 연구 성과의 사례를 헤아려 보면 「새우」를 의미하는 일본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일본어의 「새우」를 뜻하는 「えび(海老)」는 한국어의 「새비(sebi)」가 자음탈락의 형태로 현대 일본어에 존재하고 있으며 유사 어휘들을 견준다면 「食べる」의 어원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은 일본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대 한국어에서 어원을 추적해 나아가는 방식을 통하여 學理化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일본어는 한국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오랜 동안 문화의 접촉에 의하여 상호작용을 불러일으켜 문화 유지 내지는 교류가 연이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여전히 한국어와 일본어의 미스테리적 음운체계 및 어원관계는 금후로도 꾸준히 연구를 거듭하여 밝혀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대 한국어에서 차용한 일본어가 있긴 하지만, 위와 같은 추론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의 때우다의 고어는 [ㅅ대다](훈몽자회下7v에서 본뜻은 뚫리거나 깨진 곳을 다른 조각으로 대어 막다(땜질하다)이고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다 남는 시간을 다른 일로 보내다 등은 나중에 생겨난 확대의미입니다. 언어비교는 본뜻을 비교하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日, とんぼ(잠자리)의 한국말 유래는? 오상현 박사의 한일어 미스테리(3) 「とんぼㆍ蜻蛉ㆍトンボ」 vs 「떨보」 오상현 (문학박사,연세 현대 언어학의 연구분야 중에 어원학은 거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어원을 밝혀서 학문적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유에서 연구를 회피한다. 그러나 김용옥 교수는 ‘언어는 역사가 있는 것이며, 언어가 살고 있는 현장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언어를 상실한다’(『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986), p.225)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 속에서 한국어가 통용된 반경을 西日本까지 확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과거에는 한국어의 사용반경이 일본까지 퍼져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역사현장 구조’를 파악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존재한 역사 속의 ‘고리어’ 즉, ‘祖語形(proto-form)’을 상실했고 그 결과 한국과 일본의 近親性을 탐조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분적이나마 한일어간에 음운적으로 중첩된 요소를 면밀히 살펴서 어원을 추적하여 한반도가 일본에 끼친 영향관계를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되짚어 봄으로써 한국어로부터 일본어가 분파되었다는 것을 통하여 동일언어 사용권이었다는 점을 상호 인지하는 계기가 필요하며 친밀성을 회복하는 동기도 삼아야 한다. 이러한 요소를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아직도 ‘고리어’를 재구성하게 하는 어휘들이 매우 많이 있다. 다만,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학문적 규정을 제시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일본어로 잠자리를 「とんぼ[tombo] (蜻蛉, トンボ)」라고 한다. 한자어는 아니기 때문에 그 어원이 한국어의 고유어냐 아니냐를 가려내어 그 단어의 역사구조를 확인함으로써 한국어와 일본어의 ‘고리관계’에 많은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어원에 대한 확실한 학문적 제시요소가 없다. 대체적으로 한ㆍ일어 사이에 ‘고리요소’는 어렵지 않게 심증을 가지고도 짐작할 수 있는 어휘들이 무수히 많다. 말하자면 김치와 기무치(キムチ) 관계의 어휘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여러 유형으로 나뉘지만 ‘민간어원설’에 입각한 단서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그 정도로 한국과 일본은 언어상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꾀병’을 일본어로는 「けびょう[kebyo](仮病)」라고 하는데, 즉 ‘꾀병’의 ‘꾀’를 한국어의 고유어로 간주했을 경우에 ‘꾀病’이라는 합성어적 발상으로 하여 「케뵤오」를 통용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동일한 의미의 일본어인 「にせ病[nisebyo]」「作病[sakubyo]」등의 어휘가 있는데도 けびょう(케뵤오)가 더 많이 쓰인다. ▲ 이자나기,이마니미 とんぼ는 기본적으로 ‘날다’의 일본어 飛ぶ에서 파생되어 ‘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飛ん+坊」라는 단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타당성이 있는가? 일단은 no이다. 坊의 발음길이가 [bo:]이기 때문에 とんぼ[bo]와의 불일치를 설명할 장치가 없다. ‘잠자리’의 일본어의 原고유어는 「あきつ[akitsu](秋津)」으로서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한 곤충으로 인식되어 왔다. 신화에 회자된 잠자리는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일본국토를 보고 ‘잠자리 같다’고 하여 일본을 蜻蛉島(あきずしま)라고 했다. 그리고 ‘秋津島(あきつしま)ㆍ蜻蛉島(あきずしま) → 大和(やまと)’라는 마쿠라고토바(枕詞)를 관련시키기도 하거나 혹은 섹스의 체위를 표현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로 이 枕詞에 의해서 일본의 신화인 ‘구니우미(国産み)’를 확장시킨다. ‘구니우미’는 일본의 국토창세 이야기를 전하는 신화를 뜻한다. 그리고 이 ‘구니우미’에 연이어서 여러 신들이 탄생하는 ‘가미우미(神生み)’로 연이어진다. 이와 같이 하나의 어휘가 지니는 담론은 무궁무진한 역사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상기의 원고유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トンボ」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벼의 이삭떨기 날고 있는 모양처럼 보이거나(稲穂が飛んでいる様に見えたから)」 혹은 「막대기가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棒が飛んでいるように見える)」고 하는 ‘의태적 조어발상’으로 「トンボ」라고 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상도어의 대구를 중심으로 하여 사용되는 ‘잠자리’에 해당하는 어휘인 ‘떨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잠자리는 날 때 ‘떨’면서 ‘날’기 때문에 경상도어의 일부 방언에서는 ‘떨보’라고 한다. 우는 자는 ‘울보’, 잠자는 자는 ‘잠뽀(or 보)’라는 조어 발상에서 날 때 떠는 자(者)라는 맥락에서 일본어의 ‘잠자리’인 「トンボ」는 한국어의 방언인 「떨보」에서 찾으면 여러 정황적으로 합리적인 타당성을 확보한다. 일본과 한국은 비교언어학적 조어개념(祖語概念)으로 묶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작업을 통하여 ‘한일어간 공동조어(the common proto-language between korean &kapanese languages)’를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한국어의 확산경로를 찾아낼 수 있고 일본은 일본어의 유래와 일본민족의 기원을 추적하는 반사효과로서의 소중한 역사적 성과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