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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공격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평생을 머리 싸매고 달려든 사람들도 꽤나 많이 있습니다. 유명 소설 벤허(Ben Her)를 쓴 작가 루이스 월레스는 분이 있습니다. ‘벤허’(Ben-Hur)라는 소설을 1880년에 발표했습니다. 1827년 인디애나 주 브룩빌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시와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남북전쟁중 승리를 계속 거두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이후 변호사로 일하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또 다른 유명한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 대령을 만났습니다. 그 때 로버트 잉거솔 대령은 작가로 활동중인 월레스에게 기독교 내용은 다 허구이고 현실에 필요없는 사상이고 믿을 수 없는 종교라며 그 사실을 증명할 작품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독교 국가이며 국민 대부분 유신론자인 사회이기에 오히려 그런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엄청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웰레스도 그 당시 자신이 무신론자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있는 많은 미국사람들에게 성경의 허구성을 강조하며 성경을 파헤쳐 성경이 모두 허무맹랑한 거짓이라고 알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 인류를 신에게서 해방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학교나 교회에서 별 감흥없이 들었던 성경 내용이 아닌 자신이 더 깊이 성경 내용을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고 철저하게 연구하며 성경을 자세히 읽고 성경에서 말이 안되는 내용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을 자세히 읽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음 깊은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결국 월레스는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2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찾으며 연구하던 그는 끝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들었던 펜을 과감히 꺾어버리고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을 거쳐 1880년 세계 만인의 가슴에 심금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소설소설『벤허』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소설은 출판이후 미국 소설 최대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증거하며 부활신앙으로 현세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기대하며 쓴 편지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온 천하가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런 삭막한 분위기에서 온 바울로부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그들이 다 세례를 받고 고린도교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믿기기 힘든 역사적 사실중 하나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적 관점으로는 절대 믿기 힘든 역사적 사실입니다. 믿는 것보다 믿지 않는 것이 훨씬 쉬운 사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정말 우리에게 일어난 엄청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렇게 예수 부활을 믿고 신앙을 가진 초대교회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 부활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고린도교회 교인을 향해 부활에 대해 가르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부활을 안 믿는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 부활을 부정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가진 사도 바울은 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소망이 없고 믿음도 헛되고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헌신하며 부활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겠냐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아름답고 우리가 주님의 날을 지키며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앞에서 부활신앙으로 담대하게 살아가게 된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시기에 우리의 예배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가 주의 날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처형되신 그 장소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 부활을 증거했고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에 관한 신앙은 교회가 오랜 시간동안 존재하면서 생겨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부활이 교회의 근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현실속에서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해도 낙망하지 아니하고 우뚝우뚝 일어서서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인생길을 헤치고 나갑니다. 바로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며 부활신앙으로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깨닫고 참 부활신앙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부활신앙을 가지면 첫째로, 죽음을 승리자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기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전체 내용을 보시면 바로 죽음을 이기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승리가 누구를 통해 주어진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죽음을 이기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장사되셨다가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엎으시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었고 믿음의 백성은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부활신앙은 성경의 핵심이고 우리 기독교의 뿌리요 우리 믿음의 축이며 우리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은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영생으로 지옥과 영벌, 사망 권세를 정복하신 승리이십니다. 이 땅에 종교라고 이름하는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이며 구원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만 보여주신 능력이요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실패라고 생각되었던 십자가가 완전한 승리로 마감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부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믿으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승리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죽음이라는 것을 떼 놓고 어떤 문제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생명과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분이 죽음에 대해 깡패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은 어두운 곳, 음침한 곳으로 끌고가 공갈 협박하며 폭력을 씁니다. 그런 것처럼 죽음은 우리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너 반드시 죽는다”라고 외칩니다. 우리가 주눅 들도록 만드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죽음이 참 무섭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협박하는 소리를 듣고 죽음이 사실이 아니기를 증명하고 싶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애를 씁니다. 온갖 운동도 하고 식이요법으로 건강관리를 하며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조금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조금 죽음을 늦출 수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벗어나게는 하지 못합니다. 결국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고 청년 시절이 지나가고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결국은 죽음이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지만 수시로 죽음의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누가 이런 죽음의 협박과 공포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을까요?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죽음 앞에서 떨지 않게 하시고 정복하게 만드십니다.
이사야 25장 8절 말씀을 찾으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22절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26절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맨 마지막으로 처리할 원수는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죽음 앞에서의 항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패배자의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움을 보지 않고 죽음을 앞두고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죽음으로 승리의 찬양을 부르며 승리한 사람으로 죽음을 맞이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령한 몸을 입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몸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이제 영의 몸을 입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몸으로 믿음가운데 살아갑니다. 신령한 몸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죽음을 뛰어 넘어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드신 분이 바로 우리 주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로 인해 이제 우리는 죽음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고 땅을 치더라도 이제 다시 소망을 가지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영원한 사망을 멸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 또한 우리의 죽음 앞에서 승자로 살아가며 담대히 이겨내게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승리의 주, 사망을 멸하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승리자의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부활신앙을 가지면 둘째로, 우리가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너무나 많이 흔들립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다고 생각해도 이 믿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어놓으려고 하는 수많은 적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은 너무나 악하고 더러운 것을 많이 보여주고 우리의 굳건한 마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세상의 수 많은 환경, 수 많은 분위기와 형편들은 우리의 존재 근거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부활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은 세상 어떤 형편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제가 좋아하는 고전시가중 용비어천가 2장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이 예쁘고 열매가 많이 맺게 된다. 근원이 깊은 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냇물이 되고 바다까지 흘러간다”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나무나 샘은 그 의미가 다르겠지만 저는 바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생활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부활신앙으로 단단한 신앙적 가치를 세운다면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그 이유 바로 우리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자들, 땅에 있는 자들, 땅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주님 앞에 무릎꿇고 경배하며 주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할 왕권을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세상가운데 가장 쎈 분, 가장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부활하시며 승천하시면서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인생을 삽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신앙으로 믿음생활할 때 세상의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어떤 유혹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부활신앙을 가지면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쓰도록 만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세상 모든 권세를 지배하시는 만 왕의 왕이신 것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동안 우리 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어해야 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라는 고백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 이 주의 일이란 우리 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뜻합니다. 신앙을 가져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었다면 이왕 한 번 사는 세상 나에게 구원주시고 부활하는 믿음을 주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활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바로 예수님으로 인해 삶의 제사장으로 세워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밥하고 청소하고 직장생활하고 가족들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고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할 때에도 이 일이 주님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그 일을 감당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이 모든 일도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은혜로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기도하며 찬양하며 섬기고 봉사하며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주님을 위해, 우리 가족도 주님을 위해 우리 직장도 주님을 위해 이 나라와 이 민족도 주님을 위해 존재하도록 만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시간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기도하고 그 일을 감당할 때 그것이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것, 우리가 직장에서 동료들과 상사들의 눈치를 보는 것,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일, 주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상황을 나를 위해서 보내면 그것은 어려움이고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뜻하여서 주신 시간과 상황이라면 분명 주님을 위해 이 시간과 상황을 드리고 이 시간과 상황속에서 기도하며 살아갈 때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이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마음이 평안해 질 것입니다. 왜냐면 앞에서 주신 말씀대로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장 8,9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주의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주의 마음을 향하여 열려 있으면 내가 하는 평범한 일 모두가 주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참 부활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하면 일상생활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 일에 전심을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나 구제나 선교나 사회봉사등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어떤 캠페인을 벌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 열심을 내고 시간을 내서 전심전력하며 고생스럽게 그 일을 감당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도 주의 일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온 우주의 주가 되시고 충만하게 되실 것을 믿는 사람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 하는 일에 마음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 그래서 부활신앙으로 가지고 천국 갈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의 일을 하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부활신앙을 가졌기에 모든 일을 주의 일로 만들어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 안에서 확인하시고 예수부활이 내 부활이 되다는 확신속에서 조금도 의심없이 부활신앙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안에서 항상 삶에 부지런함을 가지고 열심히 주님만 바라보고 부활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24년 부활절예배,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삶이 부활신앙으로 다시 확고히 신앙을 든든히 세우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부활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예수 부활을 믿기에 우리의 삶에 대한 자세가 달라질 뿐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눈이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예수믿고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고통을 당하고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흔들어놓으려고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힘든 형편 때문에 짜증내고 어려운 일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을 아직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히 살아가며 어떤 일상생활도 주님을 위한 일로 느끼며 주님을 위해 헌신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주님을 대하듯 신실함으로 대하고 거룩함으로 대하고 거짓없이 대합니다. 부활신앙을 다시 잡고 참 구원의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