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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학사, 일반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까지|우리들의 이야기
이 글은 전에 제가 타 카페에 올려놓았던 글입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또 제가 강의 다니면서 제 지난 과정을 말로 설명해주기도 했던 내용입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특히 공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에 놓인 분들이 읽어야 할 글인 듯하여 올려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래 본문 - 방송대 학사, 일반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까지
2010학번으로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입생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그저 멋모르고 시작한 방송대 공부였지요. 공부의 재미도 알지 못했고 그저 주어진 공부와 시험에만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도 모르고 요령도 없이 시작한 공부는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1학년 2학기부터 저만의 공부 방법을 터득해가기 시작했어요. 먼저 교재를 미리 사서 보는 것입니다. 교재를 그냥 읽으면 진도가 잘 안 나가니까 일단 기출문제 5년 치를 뽑아서 교재와 비교해가면서 교재 내용을 파악했답니다. 그렇게 5년 기출을 정리했더니 교재의 전체적인 틀이 잡히더군요. 교재의 내용이 대충 파악이 된 다음에는, 교재를 펴놓은 채로 컴퓨터로 한글 파일에 교재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타자를 쳐서 입력을 하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방송강의도 그런 식으로 정리했어요. 들으면서 바로 타자를 쳐서 핵심 내용을 파악했지요. 그렇게 정리한 기출문제 파일, 교재 핵심정리 파일, 방송강의 파일이 바로, 제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에게 제공하던 자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 그만 공부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늦바람에는 약도 없다고 했던가요. 처음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궁금해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그 인물들의 생각, 삶, 배경 등에 폭 빠져서 아예 깊숙이 파고들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게 빠져들었던 인물들만 해도 수백 명이 되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이나 배경을 찾아보니 또 읽게 된 책이 수백 권이 되더군요.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저를 괴롭혀서 정말 많은 책들을 섭렵했습니다. 장르도 가리지 않고 일단 제 앎의 허기를 해결하고자 무조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교과서는 저리 멀리 던져두고 그저 제가 궁금한 것들을 찾아서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방송대 재학 중에 사서 읽은 책들이 1,000여 권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켜켜이 쌓인 책들이 지금 제 책장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2,000여 권의 책장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이 공부와의 늦바람은 방송대 4학년이 되어도 그치지 않아서 전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일반대학원 면접을 보고 4학기의 석사 과정, 또 논문 통과 후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참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처음 시작한 게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고 제가 30대 후반이었으니까,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이들이었습니다. 인천에서 혜화동(명륜동) 성대까지 통학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왕복 4시간, 수업시간이 3시간이었죠. 그 3시간을 위해 일주일에 3~4번씩 통학하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습니다. 4명의 아이들 먹을 것과 빨래 등 집안일을 해놓고 다니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자료 찾고 매 수업마다 과제나 발표 준비를 하는 것도 너무 힘에 겨웠답니다.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늦을 것 같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설거지를 해놓고 빨래를 개놓고 집안을 정리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를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남편은 시간이 될 때마다 저를 태우러 혜화동까지 오기도 했어요. 제가 학비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망설였을 때, 먼저 힘을 준 것이 남편이었답니다. “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워서 내가 과연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제게 남편은, “배워서 써먹을 생각이면 공부하지 말고, 공부 자체가 좋으면 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고마워서 전, 해야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즐기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석사학위를 받고, 그래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던 저는 박사까지 도전하였습니다. 박사과정은 석사과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군요. 방송대 학부 성적은 사실 평점 3점대라 대학원 진학을 할 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석사면접을 볼 때, 교수님들은 전체 평점보다는 전공을 할 과목 위주로 보시더라고요. 전공할 과목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보셨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셨습니다. 또 면접에서 자신의 의견을 잘 어필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전체 평점보다는 그 사람의 의지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또 제가 면접 교수님들께 좋은 인상을 줬던 것은, 국어학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이전에 창작활동을 했던 문학 활동을 일체 이력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어학은 제게도 낯선 분야였거든요. 그런데 교수님들이 그것을 알고 제 진정성을 높이 사셨다고 하셨습니다. 학부 때의 성적은 4.3만점에 3점대, 석사 졸업 후의 성적은 4.5만점에 4.3, 박사 과정 때의 성적은 아직까지 4.5만점에 4.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방송대 학부 때는 학교 공부 외에 여러 책을 섭렵하며 지식을 확장했고, 석사 과정 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발로 뛰어 책에 나오는 장소들과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나러 다녔답니다. 석사과정 2년, 논문 쓰며 1년, 총 3년 동안 시간이 될 때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문화유적지는 물론 숨어있는 유적지까지도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실체 역사 유적과 유물들을 만나서 그들의 오라(aura)를 직접 느끼기도 했는데, 국보급 유물들은 정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라가 엄청나서 그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박사과정이 모두 끝난 지금도 전,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입니다. 젊은 친구들에 비해 지식 습득의 버퍼링(buffering)도 느리고 컴퓨터 활용 능력도 부족합니다. 지난 학기에는 며칠을 혼자 끙끙거리며 엑셀에서 도표 그리는 법, 파워포인트 작성 방법 등을 익혀서 기말논문 발표를 마치기도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젊은 친구들은 몇 시간 만에 거뜬히 해내는 것을 저는 며칠 밤을 지새우며 해야만 했었지요. 그래도 이 나이에, 제 친구들은 아이들 학원 따라다니느라 바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떨며 바쁘게 사는데, 전 제 영역을 하나씩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2010년, 방송대 입학부터 시작해서 각 단계별로 결코 쉽지 않게 올라온 지난 10년의 여정, 힘들었지만 그 힘든 과정 또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희열과 성취를 많은 분들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렇게 느끼신 희열과 성취를 많은 분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를 대하는 저의 다짐,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책 속으로 빠져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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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본받고싶습니다!
아! 대단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