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먹고 본격적인 부여 투어에 나섰다. 부여가 백제의 수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니 우선 백제의 전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백제문화 단지로 향했다.
백제문화 단지는 백제의 궁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 궁 바로 옆에 커다란 롯데 아울렛이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롯데 리조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 궁궐터와 상관없이 관광을 위해 지어놓은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상당한 롯데의 자본이 들어갔다고 하니 그런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제문화 단지
총 100여만 평 규모로 1994년부터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부소산과 낙화암 맞은편 백마강변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지었으며 1998년에 첫 삽을 떴다.
그 당시 국무총리가 김종필이었는데 이 사업 자체가 김종필의 주도로 충청권의 민심을 사기 위해 이뤄진 거라는 분석도 있다.
2010년 세계대백제전 개막에 맞춰서 2010년 9월 17일에 공개되었다.
롯데 그룹이 투자한 민자투자만 3100억 원대였기 때문에 단순 '역사 재현'만 목표로 하는 문화재단지가 아니라 '테마파크' 형식으로 개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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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가 있는 건물에 백제역사문화관이란 이름의 박물관이 있었는데 코비드19 때문에 실내 시설 운영이 금지된 상태라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궁으로 들어갔다.
경복궁의 광화문에 해당하는 문을 지나자 중궁의 출입문이 보였다.
출입문을 지나 왕궁의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에 들어섰다.
삼족오를 연상케 하는 용 문양이 있는 돌판으로 깔린 길을 따라 슬슬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관광을 위해 새로 지어진 건물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깔끔한 새 건물 느낌이 나서 천년도 훨씬 전에 사라진 왕국인 백제를 떠올리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백제의 건축 양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으나 알록달록한 단청이나, 회랑, 건물의 구조, 형식 등이 너무 조선의 그것을 닮아있어 이게 고증이 제대로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백제의 건축물이라면 조선이 아니라 그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일본의 느낌이 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지식이 전혀 없으니 내가 괜한 오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역사 탐방이 아니라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한 것이니 그쯤에서 생각을 멈추고 아이들과 넓은 궁궐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슬렁슬렁 궁을 한 바퀴 돌고 출입문으로 돌아와서 궁 전체 지도를 보니 우리가 둘러본 사비 궁 말고도 뒤편에 고분 공원, 생활문화 단지, 위례성 등 볼거리가 많았다. 다시 돌아가서 볼까 말까 하던 차에 궁을 도는 트램이 보여 타려고 했는데 그것도 코비드19 때문에 운행을 안 한다 하여 그냥 포기했다.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주는 즐거움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눈앞에 즐거움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볼거리를 좀 남겨둬야 다음에 또 오지 하는 마음으로 궁을 떠났다.
점심을 먹으려고 유명하다는 장원 막국수 집에 갔다. 주변에 식당이 많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였는지 차와 사람들로 빽빽했다. 우리가 가려던 막국수 집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단번에 포기했다. 음식점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다.
친구들이 다른 식당을 검색하고 있는 사이, 백마강을 도는 황토 돛배가 보였다.
낙화암과 부소산성 등을 도는 유람선이다. 한번 타볼까 싶었는데 우선 배가 고파 친구들이 찾은 다른 막국수 집으로 갔다.
평범한 막국수를 먹고 궁남지로 향했다. 궁남지는 그냥 널따란 인공 호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이런 넓은 공간이 좋다.
궁남지
백제 사비 시대에 만든 별궁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무왕 35년(634년) 3월에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본떴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8월에 망해루에서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와 ‘3월에 왕이 왕궁이 처첩과 함께 대지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는 거로 보아 백제 시대에는 궁남지가 아닌 그냥 ‘대지’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고, 뱃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측한다. 규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고, 현재는 1만 평 정도만 남아있다.
일본서기에 궁남지의 조경 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조경의 시초가 되었다고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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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릴 만큼 연꽃이 유명하다는데 아직 때가 아닌지 연꽃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여기저기 꽃가루가 날렸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호수 공원에 온 듯 슬슬 걸으며 궁남지 주변을 둘러봤다.
궁남지 구경을 마치고 또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한두 방울 뿌리기 시작했다. 백제문화 단지도, 궁남지도 넓은 지역이라 걷느라 좀 피곤했던 차여서 구경은 이걸로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부여 여행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우선 숙소가 마음에 들었고, 머릿속에만 있던 백제의 숨결을 처음으로 느낀 것도 좋았다. 지난번 충주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그동안 충청도 내륙 지방 여행은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터무니없는 숙박비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상술 때문에 국내 여행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비드19 때문에 해외에 못 나간다고 여행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리고 인파도 몰리지 않는 충청도 내륙 지방을 더 돌아다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