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반영억 신부
복음; 루카9,22-25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 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를 맞추겠습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본당의 한 자매와 그 자녀가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가스폭발로 큰 상처를 갖게 되었는데 여러 차례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손을 씻기 위해 세면장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모든 유리창이 깨져 멀리 날아가 버리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져 있는 아내의 참혹한 얼굴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고 가슴은 찢어졌습니다. 아내의 상처가 너무 심해 아들의 상처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내는 말했습니다. “감사미사를 봉헌하라!”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라는 말인가?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 감사하라니....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사고가 있은 다음 날 아침, 어린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하면서 달려와 품에 안기는 순간 “감사미사 봉헌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어린 손자 손녀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한 자신이 화를 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3일만 고생하면 될 것을! 이렇게 살아서, 고생하게 해 미안하다.”고. 참된 믿음은 어려울 때 알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믿음의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고통을 대신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치료해야 할 일이 이 ‘산 넘어 산’이지만 이내 맑은 미소를 간직하고 주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저는 그 자매에게 위로를 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 앞에서 당신의 뜻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알퐁소 성인은 “당신이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를 맞추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신 예수님께 사랑으로 응답할 때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은 힘들게 고생하면서 따라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순간마다 자기의 뜻을 비우면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라는 요구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면 매 순간이 짐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앞세우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한 번 또는 두세 번 십자가를 졌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지만 그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책임져 주시니 나는 따를 뿐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내가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 놓는다” (30,15).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30,19).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과 처지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겨 생명을 선택하고 “제때에 열매를 내며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감당하기 힘들지만, 기꺼이 짊어지면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이며 천당의 문을 여는 열쇠”(성 요한 비안네).입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당신에게 드러내 주는 방법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여러분을 져줄 것입니다”(성 토마스 아 켐피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청주교구 내덕동 주교좌성당 :반영억 raphael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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