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타고 갑니다
오늘도 나는 손주를 보러 B0 번 순환 버스에 올랐다. 충남대병원 정류장에서 바로 타고 6 생과 5 생을 지나면 딸이 사는 수루배 마을에 갈 수 있다. 버스는 세종시 외곽으로 반원을 그리며 달린다. 차창 밖으로 유월의 싱그러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강과 초록으로 짙어지고 있는 낮은 산들이 침침한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한동안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던 잡다한 생각들이 잠시 초록 물로 헹구어지는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집 가까운 정류장에서 출발해 딸의 아파트까지 네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B5 번 노선이 생겼으나, 이토록 내 마음을 위로하는 창밖의 풍경이 그리워 나는 이 버스를 즐겨 타고 있다.
우리가 세종시에 집을 짓고 이사했던 8년 전에 비알티는 반석역과 오송역을 잇는 단일 노선이었다. 대전으로 나갈 일이 많아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그때만 해도 승객이 적어 한산했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실내 공기는 쾌적하지만 한편 운영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어느덧 8년이 지나 이제는 반석역까지 가는 비알티 노선도 늘어나고 대전역까지 가는 노선도 생겨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앞으로 공주, 청주, 천안까지 노선 신설이 계획되어 있다고 들었다. 공주와 청주 노선도 편리하겠지만 나에게는 천안노선이 시급하다. 구순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천안에서 홀로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주 오송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아산역에 내려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어머니 집에 갈 수 있다. 주로 김치와 밑반찬을 가져가는데 여러 차례 차를 갈아타다 보니 음식이 상할까 걱정도 되고, 어머니 집에 도착하면 너무 피곤해 그만 자리에 눕고 싶어진다. 밀린 빨래와 대청소까지 하고는 다시 같은 방법으로 집에 도착해서도, 하루는 푹 쉬어야 피로가 가신다. 하루빨리 비알티 노선이 천안까지 연장되어 집에서 바로 타고 어머니에게 자주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전서 직장에 다닐 때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했다. 버스도 있지만 도로가 너무 혼잡해 도착하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출장을 가거나 경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갈 때도 늘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서울지리를 잘 몰라도 노선도만 잘 살펴보면 어디든 제시간에 닿을 수 있어 무척 편리했다.
세종에 정착할 계획을 세우면서 지하철이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쉬웠다. 도시가 이미 형성된 대전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 오랫동안 불편했던 것을 생각하면, 애초 도시계획 단계에서 지하철까지 고려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먼저 세종에 이사한 지인들은 비알티 노선이 대전의 지하철처럼 빠르고 편리하다고 했지만 직접 타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는 비알티 버스를 타고 반석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무릎에 통증이 왔다. 계단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발을 옮기며 평지에서 바로 타는 우리 세종시의 비알티 버스가 얼마나 편리한지 실감했다. 누가 ‘바로타’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도 분명 지하철과 비교해 이런 이점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 같다.
어느새 버스가 수루배마을 정류장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딸의 아파트에 가서 아욱 된장국을 끓이고 계란찜을 했다.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손주들이 돌아와 엄지 척을 하며 맛있게 밥을 먹고, 낮 동안 친구들과 놀던 이야기를 앞다투어 쫑알거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옳다.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딸이 퇴근해 돌아오고, 나는 아파트와 가까운 정류장에서 B5 번 버스를 바로 탔다. 버스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무지개색으로 조명등이 켜진 아름다운 금강 다리를 건너고, 수목원과 호수공원을 지나간다. 싱그러운 유월에 ‘바로타’ 버스와 함께한 멋진 하루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첫댓글 김남숙 선생님, 바로타를 타고매일 따님댁에 다니시더니 또 이렇게 수상작을 내셨네요. 제목처럼 바로타를 정말 잘 표현해서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아주 기분 좋아할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늘 좋은 기운을 주셔서 힘이 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