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어디서 들어본 듯 하다. 그렇다. 김광석 씨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이다. 오늘 고른 시의 제목이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라서 어쩌다 보니 이 제목이 생각났다. 이 제목이 왜 이런지 궁금하면 시의 맨 첫 번째 줄을 보면 된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고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1941.6)
슬프다. 희망찬 여행을 위한 노래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침울한 느낌의 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슬픈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슬픈 시는 잘 보지 않았던 내가, 왜 이 시를 골랐을까. 왜 그랬는지 이 시를 해석해 보면 알 수 있을까.
시를 해석하려 했다. 그런데 안 된다. 모르겠다. 그저 슬픈 시라는 생각말고는 바보 같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윤동주 평전을 펼쳤다. 아! 이제 대충 알겠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지금까지 자신이 지니고 있었거나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들을 모두 철저하게 부정했다. 윤동주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래서 <눈 오는 지도> 라는 매우 아픈 사랑을 담은 시를 썼다. 그는 시대를 슬퍼했다. 그래서 <팔복>에서 ‘영원히 슬플 것’ 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정반대가 나온다. 뭘까.
여인을 사랑했기에 철저하지 못했고, 시대를 슬퍼했기에 철저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자책을 깊게 한 듯…) 그렇게 자책을 하면서 슬픈 분위기의 시가 이어졌다. 그런데 시 뒤에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의연한 자신감을 자책 속에서 단단하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발이 ‘반석 위에', ‘언덕 위에' 있다고 한 것 같다. 이건 또 뭐지.
앞에서 이 시를 요약/해석한 것은 다 평전을 보고서 쓴 것이다. (물론 내 생각도 평전의 내용과 같아서 넌 거다.) 평전을 안 읽었다면 아직도 끙끙거리면서 에세이를 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에세이를 열심히 쓴 나를 에세이가 끝나기도 전에 칭찬한다.
이 시에 대한 생각을 말하겠다. 일단, 슬프다. 자신을 자책하는 그 부분때문에 더 그랬다. 그래도 뒤에는 자신감을 가진 느낌이 있어서 그래도 덜 슬펐다. 그렇지만, 시 자체는 깊고, 슬프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끌린다. 왜 그런지, 이 시에 손이 간다. 이 시에서의 윤동주가 니와 비슷해서 일까. 아직 13살이라고 자책같은 건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도 자책을 한다. 이 시에서 나오는 만큼 슬프지는 않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느 날, 말을 앞에서 제대로 못 하고 들어왔다. 그러고서는 혼자서 “아 진짜!!! 뭐라고 속 시원하게 말 할껄…… 난 바보였나……;;;” 이러고 있있다.그리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서는, 속으로는 울면서계속 짜증을 내고, 반항을 한다. ‘하지마…. 하면 안 되…..’ 이러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는 혼자서 또 자책을 한다. 이러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가 마음에 와닿았던 건가 보다. 이 시에 나온 윤동주가 나랑 비슷해서. 그리고 시의 내용이 깊어서 그런 건가.
하늘에서 밝은 별이 되어서 지금도 빛나고 있을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그가 남긴 시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