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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발상 유형에 따른 아동시 분석
앞에서 연구자가 추출한 발상 유형들은 발상의 구체적인 사태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상을 형 성해 가는 사고 과정을 추상시켜 놓은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 과정이 시에 드러날 때에는 언어적 내용과 형식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상 유형 들이 실제 아동시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 다. 이러한 작업은 곧 시적 발상의 유형에 대한 귀납적인 증명 과정이기도 하다.
(1) 기억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그 경험 속에서 의미 있는 무엇 인가를 생각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창작자의 경험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여기서 경험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머리 속에 각인된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유영희, 1999:12 2). 7차 교육 과정에서 기억을 통한 시 창작 내용을 제시하였는데, (1-2)경험을 살려 자신의 생각 표현하기', '(3-2)시를 읽고 내 경험 떠올려 시를 써보기'가 그것이다. 겪은 일들을 회상하여 시로 쓸 경우, 그것이 시와 산문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장면>
보경이와 스케이트를 타고
자장면을 먹었다.
너무 빨리 먹었는지 코가 이상했다.
"크크팅, 부붕, 프풍풍"
그래도 이상했다. 또
"크킁 크킁, 푸풍프"
두 개의 국수가 나왔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었던 일이다.15)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창작자가 시상을 전개해 가는 것은 철저하게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작자는 스케이트를 탄.후의 자장면 먹는 경험을 기억에 의존해서 발상을 해 가는데, 표현된 양상으로 보았을 때는 시 형식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는 시적 자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연과.행을 구분한 것밖에 없으나 지은이 자신의 웃지 못할 경험을 통해 얻은 느낌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기억을 통해 창작된 시는 시의 소재나 주제가 학생들의 일상적인 체험을 담아낼 수 있는 생활시가 대부분이다. 흔히 산문 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겪은 일은 시보다는 긴 글로 쓰고 싶어한다. 이경우 오히려 시적 형식의 제약을 의식함으로 인해서 창작자 자신의 독특한 발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도 있다.
(2) 연상 (association)
연상은 마음 속에 생각, 느낌, 심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순간 그것과 비슷하거나 관련이 있는 과거의 경험이 생각나고, 그 생각 때문에 또 다른 것이 생각나는 것이 연상이다. 연상되는 경험은 대 부분 시간적 전후 관계나 원인-결과 관계나 논리적 관계가 없다. 연상되는 경험은 연상하는 사람의 현실적 목적이나 이득과도 관계가 없다. 현실적인 문제에 열중하거나 업무에 전념할 때, 사람들은 연상을 통제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관심, 이익, 목적으로부터 벗어 날 때, 연상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될 수도 있다(이 대규, 1995:148). 즉 연상이란 한 관념이 떠오르면 그와 관련이 있는 다른 관념이 연이어 떠오르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어진 문제와 연관되는 세부 내용을 풍부하게마련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필자가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내용 을 마련해 준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김장수, 1997:28)
<새싹>
새싹은 아이
크면 꽃이 되고
꽃이 어른이 되면
또 아이가 태어난다.
그래서 꽃이 많이 태어난다.
이 시에서 지은이는 '새싹'을 통해 새싹의 성장 과정을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에 비유하여 서술한 듯 하지만 시를 진행하는 주된 방식은 연상이다. 즉, 새싹 >꽃, @ 아이->어른은 병렬적인 연상 관계를 가지면서, 각각은 인접한 것으로 차츰 생각을 확대해나가면서 한편의 시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새싹이 성장하는 과정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대한 지은이의 경험적 세계는 이 연
상을 촉발하는 중심이 된다.
(3) 투사
모든 시에는 시적 대상에 창작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투사이다. 투사는 창작자의 마음을 경험적 대상에 투영하는 방식이다(김상욱, 2001:234). 투사는 서정시라는 장르의 대상 인식 방식으로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투사에 의한 내용 생성 방식은 발상 기법의 주된 원리로 상정되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시에 창작자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역으로 창작자의 감정을 더 강하게 환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시적 체험은 이미 그 자체가 창작자의 주관성을 전제하고 있기때문이다.
<소나무>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달려 있더니
추울까 봐 서로 짝 붙잡고 있구나!17)
이 시는 회화적인 시로서 첫 행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험적 세계이다. 지은이는 겨울에 잎이 달려 있는 소나무를 보고 그러한 외적 형상을 넘어 소나무와 교감을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 투사가 일어나는 과정은 겨울은 춥다라고 느낌 소나무를 관찰함, 자신이 소나무가 되어 봄(감정 이입)의 순서나 혹은 추운 겨울 소나무의 관찰 자신이 소나무가 되어봄의 순서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소나무를 관찰한 경험의 세계와 그것에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부각시켜 시적 대상과 창작자의 교감을 통해 발상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대상에 투사되어 마치 대상 자체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를 통해 단순한 풍경이 지은이 자신의 주관의 개입을 통해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부각되는 것이
다. 여기에 이르면 소나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나무를 바라보는 지은이 자신의 관점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사하기는 대상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므로 관찰이나 기억, 연상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위의 시에 나타난 것처럼 소나무에 감정을 이입을 촉발한 계기는 바로 눈 덮인 소나무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상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시적 대상과 미적 상호
교류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므로 시의 주제로 대표될 수 있는 창작자 자신의 사상이나 관념 자체만으로는 시상 형성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투사를 통해 발상을 할 때, 흔히 '대상이 되어보기' 나 '대상을 의인화하기' '대상과 이야기 나누기'18) 등과
같은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창작자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시적 상황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19)
(4) 관찰
관찰하기를 통해 표현된 언술 형태를 흔히 묘사라고 한다. 관찰은 모든 사고 활동의 기본이다. 그것은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 양식(예컨대 듣기, 만지기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시의 경우 시적 묘사가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형상화하는 언술 행위이다(오규원, 2002:94). 7차 교육 과정에서도 관찰의 방법으로 '(3-1)사물을 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살려 표현하기'로 제시되어 있다. 이 경우는 관찰 대상이 물리적으로 감각적으로 파악된 것인가 관찰 대상인 경우지만 관찰 대상은 마음 속에 떠올린 풍경이나 이미지도 해당된다. 이 경우 관찰은 기억이나 연상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상이 이루어진다.
<발>
아빠 발은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
엄마 발은
아주 못생겼다. 주름살이 많다.
언니 발은
아주 판판하고
아주 이쁘다
내 발은 물렁물렁하고
내 발에는 털이 났다.20)
이 시는 가족의 '발'을 관찰하면서 지배적으로 받은 인상을 중심으로 묘사를 한 시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창작자가 '관찰'한 내용은 모두 시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관찰 대상에 대해 창작자가 받은 지배적인 인상이나 느낌을 준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시적 대상에 대해 창
작자가 갖는 인상이나 느낌은 시적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 겉보기에는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내적으로는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빠 발의 냄새 ->지독하다', '엄마 발의 주름살 -> 못생겼다', '언니 발의 판판함-> 이쁘다' 등은 대상에 대한 느낌을 자아내는 내적 인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앞의 것은 감각적으로 관찰된 것을 구체적으로 표
현하였고, 뒤의 것은 그것으로부터 받은 지은이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발'에 대한 발상 과정은 일차적으로 가족의 '발'에 대해 창작자 자신이 관찰한 경험에 근거하여 창작자 자신이 받은 지배적인 인상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시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위의 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관찰 방법을 통해 시를 지으면 시상이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냄새가 지독하다', '주름살이 많다', '판판하고', '물렁물렁하고', '털이 났다'라는 부분은 모두 감각적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하다. 부분적으로 '못생겼다'라든가 '이쁘다'라는 추상적인 발상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다른 시상들과의 연
관 관계를 맺으면서 필연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따라서 시적 체험의 구체적인 사태가 특수하게 드러난다는 면에서 상투적이지 않다.
(5) 비유
비유적 사고는 유추적 사고의 다른 이름이다. 유추란 한 장면과 다른 장면의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다. 유추적 사고는 표면적으로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영역을 비교해서 유사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유추는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비교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유추라는 용어는 시 창작 교육의 범주에서는 '비유'라는 용어로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이 사고 관습의 맥락에서 볼 때 더 적당하다고 본다. 비유는 단순히 낱말 조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비유를 시적
언어의 특질을 이루는 대표적인 자질로 보는데, ,그것은 단지 수사적 특질만이 아니라 사고에 기초한 자질이라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추상적인 느낌을 감각적인 사물 혹은 대상과 관련시켜 비유하는 것은 느낌을 가리기 위한 것이나 언어적 유희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 자신의 느낌을 더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한 사고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첫눈>
첫눈이 내린다.
조금씩 조금씩 먼지처럼 내린다.
밖에 나가 보고 싶지만
수업시간엔 나갈 수도 없어
교실에서만 보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내리던 눈이
청소기가 먹은 듯이 사라졌다.21)
이 시는 '첫눈'이 내리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느낀 감정을 그것과.유사한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창작자의 발상 과정은 1)첫눈의 내리고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함 2)그것을 직접 맞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임 그러나 작은.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허탈함과 눈이 내려서 사라지는 모습이
비감각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함 눈이 내려서 사라지는.짧은 순간과 '청소기'가 '먼지'를 먹는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끌어냄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비유는 발상의 최초의 단계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기억이나 연상 그리고 관찰 등의 감각으로 일깨운 특정한 경험에 의해 이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상을 일상적인 관계로부터 떼어내어 다른 대상과 새로운 연관 관계를 맺음으로써 대상이 일상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자동화된 관계에서 탈피하게 하며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개발해 나갈 수 있다. Mukarovsk(1970:40-56)에 의하면 시적 언어의 기능은 언술의 전경화를 극대화함으로써 구성된다. 여기서 전경화란 자동화에서 대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곧 그것은 사고 행위의 비자동화를 일컫는다. 시가 비자동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동화된 대상들에 대한 의미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곧 사고의 비자동화를 말하는데, 이는 시 창작을 위한 비유적 사고가 창의적
발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시상을 구성하는과정은 시 창작을 위해필요한 내용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애매하고 막연하게 남아 있는 느낌을 보다 구체적인 시상으로 형상화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분석한 발상의 유형은 이러한 시상을 전개해가기 위한 사고 과정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 창작을 할 때 한 가지만의 유형으로 발상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발상을 할 때는 이러한 유형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다만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인가 보조적인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