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1991년(辛未年) 1월 7일(陰 庚午年 11월 22일) 아침에 상도 박성구 선감이 다시 "당신이 존영을 모셔드리고 오라"고 하였지만 최해경 차선감은 "박성구 선감이 안가면 안됩니다."라며 상도선감이 올라갈 것을 권유하자, 상도 박성구 선감은 최해경 차선감과 함께 존영을 모시고 올라가게 되었다. 이날 오전에, 상도방면 박성구 선감 외 6명(최해경, 김진원, 이정지, 유기혁, 김재목, 이태경)은 도전님의 존영을 모시고 여주도장에 도착하여 곧바로 내정으로 차를 운전하여 올라갔다.
평상시 내정에는 근무자가 수호를 섰으므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으나, 그날 따라 전에 없던 큰 눈이 쏟아지는 바람에 종사원들이 제설작업을 하느라 내정 문을 전부 열어 둔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전님 존영을 모시고 윗내정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차를 윗내정에 대어놓고 도전님을 뵈려고 하니, 시봉이 "아래내정에 계십니다."라고 하여 차에 존영을 놓아두고 아래 내정으로 도전님을 배알하러 내려갔다.
도전님을 배알하러 왔다고 시봉에게 말하니 도전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신지 채 일분도 안되어 들어오라고 하셨다. 내정에 들어가서 4배를 올리니, 도전님께서 한복차림으로 좌정(坐定)하시고 4배를 받으신 후 "그래,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박성구 선감이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상고드리니 "존영이 뭐냐? 그것이 뭔데?"라고 하시자, 박성구 선감이 다시 "어진을 모셔왔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리니 "또, 어진은 뭔데?"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동사무소에도 대통령 사진을 모시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다."고 하시면서 시계만 보고 계시다가 옆에 있던 시봉(서선미)에게 "나가서 가져온 것을 확인해 봐라!"하시며 내보내시자, 내정 안에는 박성구 선감과 최해경 차선감만 남게 되었다. 그때 최해경 차선감이 "천자님의 존영을 모셔 왔습니다.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상고드리니 "그래, 받아주마. 내어보아라"하시며 손을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내미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윗내정에 두고 온 차안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때 시봉에게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도전님께서 "가로가 몇 자, 세로가 몇 자이더냐?"고 물으시니 "귀신같이 그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노여운 표정을 띠시며 "그러면 나를 죽으라는 거냐!"하시며 도장에 있는 임원들을 다 부르라고 하셨다. 그때 김찬성 선감, 정인식 선감 등이 내정에 올라오니 "박성구가 이런 사진 갖다 놓고 나를 죽으라고 한다."하시니 임원들이 몰려들어와 최해경 차선감을 끌고 나갔다. 곧 이어 도전님께서 일어서시며 박성구 선감에게 "너, 이러면 죽어."라고 하시자, 박성구 선감이 "죽어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내려가 도정실에 가 있어!"라고 말씀하신 후, 밖으로 나오셔서 "모두들 빨리 도정실에 모이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⑧도전님께서 도정실로 납시어 직접 인원수를 세어보시고는 "열 명이다. 맞지?"하시니, 김찬성 선감이 "예, 열 명입니다."라고 복명하였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박성구 • 최해경 • 김진원 • 이정지 • 유기혁 • 김재목 • 이태경 • 경석규 • 정인식 • 김찬성으로 총 열 명이었다.
⑨그 자리에서 경석규 원장이 "감사원에 회부할까요?"하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놔둬! 자유도수야! 두 사람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⑩그리고 최해경 차선감이 천안방면에서 이복자 선사를 데려가면서 연락소를 빼앗을 때, 천안방면과 법적문제를 야기시킨 것을 말씀하시고는 최해경 차선감을 향해 "네가 하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받아주지 않을 거야!"라고 하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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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유보에 들어가 있는 글이다.
위의 글에 관하여 그동안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팩트에 관하여 거짓이 있었다면 그동안 시비를 걸 만한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글은 인쇄가 된 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팩트는 오염되지 않았으리라 판단해도 될 것 같다. .....
(1) "열 명이다. 맞지?"
우당께서 질문하셨다.
도정실에 참석한 인원수를 우당께서 직접 세어보고 나서 하신 질문이다. 그리고 김찬성 선감의 답변으로 확인되었다.
모인 인원수는 <10명> 이었다. 이 10명의 의미는 '모두' 이다. 이 '모두' 의 의미는 한자로 쓰면 百(복신), 또는 萬(사신) 이다.
우당께서 이런 질문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하지는 않으셨을 것인데, .....
그렇다면, ....
이런 질문을 우당께서 하신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2) "전경책을 빨리 가져오너라!"
11. 1991년(辛未年) 1월 14일(陰 庚午年 11월 29일)
①이날 오전 11시에 도전님께서 수임선감, 사정위원, 징계위원 전원과 상도방면 임원 23명을 회관 4층에 모이게 하셨다.
이때 임원들이 모두 모이고 상도 박성구 선감이 늦게 문으로 들어오자, 당시 종의회 의장인 박희규 선감이 나와서 "박성구 선감! 이번 일에 대해 잘못했다고 도전님께 엎드려 사죄드려!!"라며 다그쳤다. 그러자 상도 박성구 선감은 오히려 큰소리로 "무슨 소리 하고있어! 천자님께서 납시면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엎드려 사죄드려야 해!!"라고 말하자, 장내는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②이때 바로 도전님께서 납시고, 앉으시자마자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하시는 말씀이 "한번 찾아올 줄 알았는데…."하시고 공판을 시작하셨다. 도전님께서 최해경 차선감을 데려오도록 명하시자, 정인식 선감이 그를 찾아왔다. 당시 최해경은 차선감이라 그 장소에 참석할 수가 없어 차안에 있었다. 최해경 차선감이 막 들어오자, 도전님께서 "네가 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의자에 앉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무릎을 꿇어라!"고 말씀하시니, 최해경 차선감이 곧 바로 엎드리며 무릎을 꿇자 "됐어! 일어나 의자에 앉아!"라고 말씀하셨다.
③그런 후 도전님께서 "그림 그렸다는 것을 가져오너라!"고 하셨는데 잠시 후 존영을 가져오자, "그림을 펴보아라"고 하셨다. 이에 임원들이 다 보는 가운데 존영을 펴시고 "영 안 닮았어! 나하고 다니면서 사진 찍은 것도 많잖아! 누가 그렸어?"라고 물으시자 박성구 선감이 "예! 미대 학생이 그렸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렇지, 잘 그리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야. 그런데 여기 두루마기 올은 살아있어! 내 얼굴 못 그려!"하시고는"박성구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④다시 정인식 선감에게 "전경책을 빨리 가져오너라!"고 하시자 급히 전경책을 가져왔다.
도전님께서 교운1장 37절《상제께서 차경석의 집에 유숙하시니 종도들이 모여와서 상제를 배알하였도다. 이 자리에서 상제께서 양지 온장에 사람을 그려서 벽에 붙이고 제사절차와 같이 설위하고 종도들에게「그 곳을 향하여 상악천권(上握天權)하고 하습지기(下襲地氣)식으로 사배하면서 마음으로 소원을 심고하라」고 명하시니라. 종도들이 명하신 대로 행한 다음에 상제께서도 친히 그 앞에 서서 식을 마치시고「너희는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냐」고 물으시니라. 어느 종도 한사람이「상제님께 심고하였나이다」고 말씀을 올리니, 상제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가라사대「내가 산제사를 받았으니 이후에까지 미치리라」하시고「자리로서는 띠자리가 깨끗하니라」고 일러 주셨도다.》구절을 펴 보이시며, "너(박성구)! 산제사 이것 보고 했지?"라고 물으시니 "예, 그러하옵니다."하였다. 그러자 전경책을 바로 덮으시고는, 박성구 선감의 뺨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몇 차례 치시고 "너! 서가여래 자리에 나를 모셔야 된다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배웠어?" 박성구 선감이"예! 입도 시 주문에 서가여래 자리가 이상하여 한동안 도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정대진 선감이 후일에 도전님 자리라고 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도를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정대진이 너!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라고 물으시자, 정대진 선감이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저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봐라! 정대진이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하시며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다그쳐 물으시자 "예, 제가 깨달아 했습니다. 전경에 보면 구천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 3대 종교의 종장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서가여래가 불교의 종장이었는데 진묵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하니,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고 하시면서 박성구 선감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런 후 도전님께서 "너(박성구) 뭘, 보고 했어!" 박성구 선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자 도전님께서 "너 헛거 봤어!"하시고는 "박성구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 도전님 기사였던 김진환 보정이 도전님의 존영을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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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께서 <전경책> 을 찾으셨다.
그리고 산제사와 관련된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우당의 존영이 태워졌다......
이제 우당께서 왜 "열 명이다. 맞지?" 를 질문하셨는지 찾을 수 있다....
<전경책> 에서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3) "열 명이다. 맞지?" 에 해당되는 전경구절
교운 1장 38절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 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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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찾았다.
" 모두 열 마디" 인지라.....
우당의 "열 명이다. 맞지?" 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들었던 열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 질문을 곱씹어봐야만 했었다.....
(참고)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박성구 • 최해경 • 김진원 • 이정지 • 유기혁 • 김재목 • 이태경 • 경석규 • 정인식 • 김찬성으로 총 열 명이었다.
자문: 이 사람들이 그 당시에 진지하게 우당의 질문을 곱씹어봤더라면,....?
자답: 아쉽기만 할 뿐이다.....
(추신)
그 날이 올 때까지 이러한 일들은 계속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wDArpOdys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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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책 대두목 공사는 증산 상제님을 포함 하여 10명 입니다
개유보책은
도전박우당님까지
11명 입니다
1명은 대두목이 아님니다
박우당, 박성구선감 두분중 누가 대두목이
아닐까요?
그래서 말점도 귀양도수로서 도문소자들
기국을 시험하신 겁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대두목
공사에
푸른대나무(靑竹)를 사용하신것은
靑에는 청림도사의 이치가
있고
竹에는 竹山박씨로 오신
박우당님 이치가 있어서
두분 대두목 공사를 보신
겁니다
증산상제님 말점도 귀양도수를 박선감이 맡은겁니다
귀양지에서 천지공사가
된게 있나요?
상도의 모든 사업이 사기 당하거나 실패하였습니다
남의 땅 빌려서 농사짓것만 도정업무에 참석한 수도인들 노고로
먹고 살았죠
귀양지에서는 농사나
짓는 것이지 천지공사를
할수 없었던 것이라
제가 귀양도수라고 주장한것입니다
상도 박선감이 후인 이라면 예시19절 문수보살 도수를 설명
했어야 합니다
귀양기간 20년은 1995년
부터 성신천주명시왕하감지위한 2014년, 공부가 중단된
2015년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죠~
살아계신분을 하감지위한
해괴한 일이 벌어진곳이
상도입니다
49일공부도 안하셔서
2017년 천제단성회 문화위원장,상도방면 김천수선감이 쓰러졌는데도 못살립니다
수도인들에게 발원기도
하라는것이 다였습니다
이제 상도인들 각자가
임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상제님 공사로 인하여 도수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증산상제님 대두목공사에
참여한 종도들은 모두 화천하실때까지 상제님을
따랐습니다
도전 박우당님 대두목공사에 참여한분들도 화천하실때
까지 박우당님을 따랐습니다
개유보의 열명이다 맞지?
라고 하신것은 대두목이
박우당님 이라는것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 입니다
대두목과 해원두목들을
구분하라는 뜻이 있는
공사겠죠~
박우당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무었을 주장하나요?
박우당님 보다 더 높은 위치라고 주장들을 합니다
배은망덕이죠
전경 예시 19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문수보살도수를 보십니다
문수보살은 1만의 보살을
거느린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모체가 되는 보살로서 이미 성불하였고
인간세상에 내려와 또 성불한다고 하는데 진단국,연산에 있다고 합니다 발해를 진단국이라 했으며 연산은
개태사가 있는곳입니다
개태사는 증산,정산,우당님께서 순방하신곳이고 우당님께서 그곳 주지를
청하여 나반존자 공사를
보셨지요
증산상제님의 문수보살도수와 도전박우당님의 나반존자 도수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대순진리가 三天一地로
귀결 되기 때문에 그뜻을
가진 개태사를 임원들과
방문하시어 공사를 보신것이죠
1982년 나반존자 공사에서
나반존자는 삼존불을 받들고 모든 중생들을 극락세계(지상신선세계)로 인도하는 부처(총화주)라고 하였고
현세 어딘가 있다고 하였으니 1982년 이전에
태어난분이겠죠~
남아 15세면 호패를 찬다고 하셨으니 1967년생은 돼야 호패를
찿겠죠~
1991년 존영공사는 도전 박우당님의 자리가 영대원위임을 밝혀주는 공사이지 종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종통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일을 해놓고
박선감이 하반신 불수가될
이유가 없는것이고
봉안치성도 49일공부를 마치시고 했어야 합니다
도주님께서는 감오득도
하시고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봉안하셨고
도전 박우당님께서는
1969년
안양수리사에서 49일 공부를 마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건 하신뒤
봉안 하셨습니다
박선감이 종통계승자 였다면 49일 공부를 마치고 천제단 성회를
열어 1만2천 도통군자가
출현 했어야 합니다
1991개유보 부터 2017년 천제단 성회가
발족 될때 까지 27년 입니다 그 헛도수를 겪고
박선감은 2년뒤 별세 하십니다
1995(봉안)~2015(공부중단)년이 20년이고
1999(상도공부시작)~2019(박선감별세)20년인데
상제님께서 말점도(포항)들어 가시면서 20日을 기약하시고 들어가셨으니
박선감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귀양도수를
맡은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상도 수도부,교무부,전산부의 잘못된 교리,도담,책들이
박선감을 4차원문명으로
가게 만든 것입니다
선택은 각자가 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