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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깨어 준비하는 삶(마 24:37-51)
1941년 12월 7일 주일, 일본군의 비행기가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 개국 이래 처음으로 본토가 침략당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습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서 패전한 유일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바로 진주만 기습사건입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군의 기습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고 있었으며, 조만간에 일본군이 침략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그리 쉽게 기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기습한 날은 주일이어서 모든 부대의 군인들이 외박과 휴식을 즐기고 있었으며, 술과 댄스파티로 밤을 지샌 지라 주일 아침에 기습한 일본군의 전투기를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때마침 레이더 조종을 연습하던 어떤 견습병이 레이더를 통해 태평양쪽에서 많은 비행기가 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상부에 연락을 취하였지만, 상부에서 응답이 온 것은 아군의 연습기일지는 모르니 상관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일본군 전투기들이 기습하여 진주만을 일시에 폭격하였으며, 미국 군인들은 미처 잠에서 깨거나 대처할 능력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기습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정박 중이던 전함 애리조나호는 십분 만에 침몰되어 타고 있는 병사 1,200여 명이 그대로 수장되었으며,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403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목사를 직업이라고 한다면 직업상 특성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할 것없이,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적잖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목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의외로 대부분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그래서인지 목회를 하고부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분석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공통된 특성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 가운데, 목사로서 가장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놀라게 된 것은 교회 안의 적잖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영혼이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 자신들의 영혼은 현재 병들어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등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육신에 문제가 생기거나 병들어 있다고 진단되면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육신의 질병을 고쳐 볼려고 노력합니다. 좋다는 음식, 건강식품, 약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먹어 치웁니다.
의학적으로 우리의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몸의 기능들이 깨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기능이 깨어 있어서 제기능을 하기 때문에 건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이 자기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지(수면)상태가 되면 병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능이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고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즉 수면상태가 되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이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혹여 이병 저병 생기지는 않는지 염려하며 좋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몸을 위해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영혼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분명 사람에게 육신의 병이 생기면 즉각 반응하는 반면, 자신의 영혼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자신들의
영혼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보기에는 그 문제가 치명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영혼문제가 개선되고 회복을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분을 찾아가서 본인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립니다. 잘 듣질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자기 자신의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그만 노력도 하지 않다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현재 우리의 영혼이 잠자고 있는데, 그리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입니다.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더 이상 깨우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도 이런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내 영혼이 수면상태, 즉 죽음의 상태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고, 내 영혼을 깨우려는 생각조차도 못하는 분들 말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지만,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교회를 봉사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좋은 직업에 대한 애착과 자녀들의 입신양면, 물질의 더 많은 풍요에만 집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 세상 방식대로 살다보니 그게 더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재미없어졌습니다. 세상 즐길 것 다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내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가정이 잘 먹고 잘 사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하나님께 구원받은 감격에 의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번 한 주도 내 자녀와 가정에, 사업장에 복 내려 달라고 기복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늘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의 갈급함에 늘 허덕임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채워야 할 것으로 채우지 못하고 엉뚱한 것으로 채우려고 하다보니, 늘 채워도 채워도 허전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록 몸은 교회를 다니고 있으나 영혼은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은 지금 깊은 잠에 빠져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여전히 세상 사람들 사는 데로 즐기면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의 말씀 마태복음 24장 37~39절을 통해 노아의 때를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주일 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으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나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도 오직 깨어있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도둑을 대비하는 집주인 이야기와 착한 종과 악한 종의 이야기가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어 나오면서 교회 안에서 깨어 있지 못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은 항상 깨어 있는 신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깨어 있는 신자라면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우리는 만족시켜야 합니다.
* 첫번째는 우리는 준비된 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3- 44절의 말씀입니다.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까? 주님 오심을 항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도 모르지만, 특히 우리는 언제 주님을 만나러 갈지 모릅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언제 우리가 주님을 만나러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생활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준비된 성도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자라지 않는 믿음이어야만 합니까? 늘 달라고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넉넉히 주는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는 빤히 다 알고 있으면서, 주님의 말씀과 교회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어린 아이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을 생각이십니까? 이제는 좀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감격의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오늘은 몇 명이나 나왔는지 뒤돌아 보고 있을 생각이십니까? 언제까지 준비되지 못한 헌금으로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물질로 영광 돌리겠다고 하실 겁니까? 교회의 일군이라고 하면서, 직분자라고 하면서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우리의 모습이 과연 준비된 모습이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이다. 준비된 믿음을 가지고 깨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 두번째는 우리로 하여금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깨어 있는 것과 신실함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기 위해서는 신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45 -51절의 말씀입니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책임과 임무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안에서 사람보고 믿음생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만 보고 믿음생활 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날 좀 알아 주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교회의 덩치가 좀 작으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그 어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보다 은혜와 감격의 예배가 되면 되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보일려고 나타낼려고 믿음생활하다가 언젠가 우리 주님이 오셨을 때, 물으실 것입니다. '너 도대체 뭐했니?' '그동안 뭐하고 있었니?' 바로 이 말씀이 다음 주일날 함께 나누게 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깨어있는 삶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부단한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있기 위해 발버둥쳐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에 꼭 참석하여서 경청하고 배워야 합니다. 주중예배에 빠짐없이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외워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목사가 이 교회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말벗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고 영적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기도하고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부디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는 칭찬을 우리 모두가 다 들을 수 있도록 열심으로 배우고 훈련하여 깨어 있는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어떤 목사님이 교회개척을 하면서 쓴 글이 있어서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전화를 신청했습니다. 전화국에서 제시해 준 몇 개의 번호 중에 부르기 좋고 외우기 쉬운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가설된 첫날 밤부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거기 야식 집이죠?" 하고 물으며 야식을 배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전화번호를 야식 집에서 썼던 모양입니다. 야식 집에서 광고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밤 12시건 새벽 2시건 가리지 않고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밤마다 전화를 울려 주는 것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이야. 좋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깨어서 기도하자. 교회를 개척하고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밤이건 새벽이건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최고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전화벨이 언제 울릴까 늘 대비하는 자세로 잠을 청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잠이 들었어도 전화벨만 울리면 전투에 나갈 군인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때론 힘들고 귀찮았지만 깊은 잠에서 깨는 훈련을 단단히 받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등불과 기름을 예비하고 주님 오실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제는 자다가 깰 때입니다. 새벽을 깨우고 잠든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영적인 무지와 안일, 나태와 사망의 잠에서 깨어나, 근신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일에 힘쓸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 13:35-37)
글쓴이 : 배세진 목사 (올랜도 연합 감리교회)
첫댓글
깨어있는 신자라면...
우리는 준비된 자이어야 한다 / 신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