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비가 부르던 戰線夜曲
이룻/이정님
현지는 지금 술에 취한 듯 몽롱하다.
오라비가 즐겨 부르던 <전선야곡>을 들으며 몽롱하게 취해 있다.
눈이 커서 눈이 화등잔만 하다고 어른들이 놀리던 오라비
그 오라비를 생각하며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우리가 겪었던 역사적
아픔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노랫말도 아프고 멜로디도 아프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에 달밤
소리 없이 나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에 길 일러 주신 어머님에 목소리
아-아-아-아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들어줄 만하다. 문제는 2절이다.
들려오는 총소리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
정안 수 길어놓고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아 아 아 아
쓸어안고 싶었소.
오라비는 이 가사의 뜻을 알고 불렀을까?
할아버지는 6.25 직전 자칭 민족주의로 활동하다가
국군에 의해 총살되고
그 할아버지는 큰 아들 작은 아들 손자까지 산으로 내몰았다.
그들 모두는 칼 막스의
공동 생산 공동 분배라는 슬로건에
미쳐서 가족을 버렸다.
그 때 내 어린 오라비도 칼막스 이론을 알았을까?
그 시절 지식인들이 심취했던 칼 막스 이론
그럴듯했지만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하니
칼 막스는 아이큐가 80 도 안 되는 정신적 미숙아였다.
그렇게 좋은 공산주의가 지구상에서
모두 붕괴되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새로운 것을 갈구하던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구정물에 유입된 새물이
독성인지 청정수인지 가늠할 여유도 없이 퍼 마셨다
결국은 달콤한 이데 오르기(ideology)에 빠져
나라를 파괴시켰고 그 독성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어
나라를 야금야금 파먹고 있다.
그들은 모른다.
현지가 흥얼거리는 전선야곡이
왜 이토록 가슴을 파고드는지
폐를 절개하고 수술 받은 환자와 같은 통증을 그들이 알리없지.
그래서 <실미도>라는 영화를 볼 때도
현지는 그럴 수 있다 고 긍정하면서 냉정해질 수 있었다.
이 세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가장 슬픈 일이 무엇입니까?
부모를 잃은 것입니까?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것입니까?
종교적 신념을 잃은 것입니까?
사회적 지위를 잃은 것입니까?
아니며 이 모두를 잃은 것입니까?
현지는 당신들 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다 잃고 살았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꺼억 꺼억 울음을 삼키던 할머니도 보았고
외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할머니 앞에서 울지 못하고
장독 뒤로 돌아가 목울음을 씹던 어머니 모습도
지켜보며 살았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는 보수꼴통으로 광화문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어야 하고
아들은 진보 좌파로 대통령 탄핵을 위치며 촛불 시위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현지는 아직도 전선야곡을 흥얼거린다.
아! 언제쯤 전선야곡이 끝나는 것일까?
현지는 결코 희망을 접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죽기까지 기다리는 자리가 현지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