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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빈은 야구를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야구공을 잡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답게' 야구를 시작했고, 소위 "흉내 좀 내며" 야구를 해 평균 이상의 선수로 성장했다. 인천동산고 2학년 시절 27경기 타율 0.347. 동산고의 그랜드슬램 마지막 퍼즐이었던 대통령배 우승 장면에 한경빈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였다. 한경빈의 야구 인생은 매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3학년 시즌을 시작하기 2주 전에 허벅지가 터졌어요.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가긴 했는데, 3루타성 안타를 쳐도 1루까지밖에 못 갔어요. 안타를 쳐도 걸어 갔으니 스카우터들이 보기엔 얼마나 건방져 보였겠어요."
신인드래프트를 반 포기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반은 희망을 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진 않았어도 이미 잠재력을 드러냈기에 모의지명에서는 꾸준히 이름이 언급되곤 했다. 하지만 100명의 선수가 호명이 되는 동안, 한경빈의 이름은 결국 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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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야구로는 이름있는 네 곳의 대학에 합격했는데도, 한경빈이 "대학 문제가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말했던 건 그 네 곳 중 아무 곳에도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면접일이 모두 겹쳤다. 한 대학의 입학이 가장 유력했으나 갑작스러운 대학의 사정으로 입학은 문앞에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친구들이 많았던 인천재능대로 눈을 돌렸다. 그마저도 한 번 불합격을 했다 결원이 생기면서 간신히 문을 닫고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도 안 가고, 아예 운동을 그만하려고 했어요. 원래 부모님이 집에서는 운동에 대한 얘기를 전혀 안 하시거든요. 근데 엄마가 처음으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되냐고요. 그리고 그때 SSG (이)정범이 아버지가 재능대에 계셨는데, 절 설득을 하셨어요."
한경빈은 전화를 받은 이틀 후, 재능대가 캠프를 차린 대만행 비행기를 탔다.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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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인드래프트, 전문대라는 한계를 알고 있었던 한경빈은 지명보다 육성선수 입단에 기대를 걸었다. 대학 시절 성적은 워낙 좋았고, 예상대로 지명은 받지 못했지만 LG 트윈스의 입단 테스트 제안이 왔다. 그러나 테스트에 참석한 선수만 80명. 한경빈은 그 경쟁률을 뚫고 2차 테스트까지 받았지만 이번에도 원했던 말은 듣지 못했다.
계속해서 시련만 안기는 야구가 마냥 애틋할 리 없었다. TV 중계를 틀어 야구가 나오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한경빈을 설득했다. 한경빈은 독립리그 인천 웨이브스에 입단해 야구의 끈을 붙잡았다.
이후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 제안이 왔다. 이번에도 1차 테스트에 합격했다. 2차 테스트를 본 야수는 한경빈이 유일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희망을 품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인수가 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이번에도 문턱에서의 좌절. 혹시 기대하실까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고 몰래 테스트를 다녀왔던 한경빈은 밥을 먹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해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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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의 좌절을 겪고 군대를 다녀온 뒤 파주 챌린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4할타로 펄펄 난 한경빈에게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얘기가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지만, 실체는 없었다. 수차례 실망을 겪었기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에는 단련이 되어 있던 한경빈이었다.
"마지막 타석이었어요. 김경언 코치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마지막 게임, 마지막 타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그거 듣고 잘린 줄 알았어요. 오늘 열심히 했는데 왜 빼지? 그런데 '한화 계약하러 가야 한다'고 하시는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울었어요. 쌓여있던 게 빵 터졌나봐요."
울면서 타석에 들어섰던 한경빈은, 아웃을 당하고도 웃으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고 있던 한경빈에게 한화 이글스의 입단 제의가 온 건 JTBC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찍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한테 '나 대전 가야 돼' 그러니까 이번에는 촬영이 대전이냐면서, 대전을 왜 나갸고 하시더라고요. 사인하러 간다니까 네가 팬 사인회 할 일이 뭐가 있냐고요. 그래서 대전에 야구팀이 뭐가 있냐고, 한화 계약하러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난리가 났죠. 고생했다고 해주면서도 이제 문 연 거니까, 이제 시작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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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네 집에서 자야 되는 일이 생겼다."
"갑자기 왜? 야구 구경 와? 표 끊어줘?"
상인천중을 나온 한경빈은 당시 키가 작았던 탓에 1년을 유급했다. '동기' 정은원과의 인연이 시작된 게 이때부터다. 대전에서 한화와의 정식 계약을 앞두고, 하루 먼저 대전에 도착해 정은원과 회포를 푼 한경빈은 다음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을 하고 물품을 대전에서 다 받았는데, 제 이름이 딱 있는 거예요. 엄청 좋았죠. 처음 받아보는 프로 유니폼이니까.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는데, 정말 좋았어요."
그토록 바랐던 그 장면을 자신의 인생에 새긴 후, 한경빈은 곧바로 서산으로 넘어가 선수단에 합류했다. 5월 29일 퓨처스리그 첫 출전에 나섰고, 12일 현재 18경기 47타수 12안타 8타점 타율 0.255를 기록하고 있다. 최원호 퓨처스 감독은 한경빈의 준수한 수비와 콘택트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학교 때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정은원과의 '프로에서의' 키스톤도 더 이상 꿀 수 없는 꿈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목표와 가장 먼 목표를 묻는 질문에 한경빈은 등록선수, 그리고 국가대표라고 답했다.
#
"드디어 했다."
최강 몬스터즈와 동의대의 경기, 한화 입단을 확정한 한경빈은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3루타를 치고 이렇게 얘기했다. 그간 안타가 하나밖에 없어 초조했던 마음을 조금은 털어내는 말이었다.
"그날 전까지 폼이 달랐어요. 독립야구단에서 치던 폼으로 치니까 안 맞더라고요. 근데 그날 이승엽 선배님, 정성훈 선배님이 너무 숙여서 치니까 한 번 서보는 게 어떻겠냐 하셔서 서서 쳤는데, 잘 맞더라고요. 그때가 서산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도 그때 알려주신 그 폼으로 치고 있어요."
조금은 늦게 터진 안타, 그래도 이날 한경빈은 돌고 돌아 끝내 홈을 밟고 이 경기의 MVP가 됐다. 야구가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한경빈은 남들보다 조금 긴 승부를 한 걸 지도 모른다.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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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인드래프트, 전문대라는 한계를 알고 있었던 한경빈은 지명보다 육성선수 입단에 기대를 걸었다. 대학 시절 성적은 워낙 좋았고, 예상대로 지명은 받지 못했지만 LG 트윈스의 입단 테스트 제안이 왔다. 그러나 테스트에 참석한 선수만 80명. 한경빈은 그 경쟁률을 뚫고 2차 테스트까지 받았지만 이번에도 원했던 말은 듣지 못했다.
계속해서 시련만 안기는 야구가 마냥 애틋할 리 없었다. TV 중계를 틀어 야구가 나오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한경빈을 설득했다. 한경빈은 독립리그 인천 웨이브스에 입단해 야구의 끈을 붙잡았다.
이후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 제안이 왔다. 이번에도 1차 테스트에 합격했다. 2차 테스트를 본 야수는 한경빈이 유일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희망을 품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인수가 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이번에도 문턱에서의 좌절. 혹시 기대하실까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고 몰래 테스트를 다녀왔던 한경빈은 밥을 먹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해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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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의 좌절을 겪고 군대를 다녀온 뒤 파주 챌린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4할타로 펄펄 난 한경빈에게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얘기가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지만, 실체는 없었다. 수차례 실망을 겪었기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에는 단련이 되어 있던 한경빈이었다.
"마지막 타석이었어요. 김경언 코치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마지막 게임, 마지막 타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그거 듣고 잘린 줄 알았어요. 오늘 열심히 했는데 왜 빼지? 그런데 '한화 계약하러 가야 한다'고 하시는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울었어요. 쌓여있던 게 빵 터졌나봐요."
울면서 타석에 들어섰던 한경빈은, 아웃을 당하고도 웃으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고 있던 한경빈에게 한화 이글스의 입단 제의가 온 건 JTBC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찍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한테 '나 대전 가야 돼' 그러니까 이번에는 촬영이 대전이냐면서, 대전을 왜 나갸고 하시더라고요. 사인하러 간다니까 네가 팬 사인회 할 일이 뭐가 있냐고요. 그래서 대전에 야구팀이 뭐가 있냐고, 한화 계약하러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난리가 났죠. 고생했다고 해주면서도 이제 문 연 거니까, 이제 시작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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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네 집에서 자야 되는 일이 생겼다."
"갑자기 왜? 야구 구경 와? 표 끊어줘?"
상인천중을 나온 한경빈은 당시 키가 작았던 탓에 1년을 유급했다. '동기' 정은원과의 인연이 시작된 게 이때부터다. 대전에서 한화와의 정식 계약을 앞두고, 하루 먼저 대전에 도착해 정은원과 회포를 푼 한경빈은 다음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을 하고 물품을 대전에서 다 받았는데, 제 이름이 딱 있는 거예요. 엄청 좋았죠. 처음 받아보는 프로 유니폼이니까.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는데, 정말 좋았어요."
그토록 바랐던 그 장면을 자신의 인생에 새긴 후, 한경빈은 곧바로 서산으로 넘어가 선수단에 합류했다. 5월 29일 퓨처스리그 첫 출전에 나섰고, 12일 현재 18경기 47타수 12안타 8타점 타율 0.255를 기록하고 있다. 최원호 퓨처스 감독은 한경빈의 준수한 수비와 콘택트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학교 때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정은원과의 '프로에서의' 키스톤도 더 이상 꿀 수 없는 꿈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목표와 가장 먼 목표를 묻는 질문에 한경빈은 등록선수, 그리고 국가대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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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했다."
최강 몬스터즈와 동의대의 경기, 한화 입단을 확정한 한경빈은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3루타를 치고 이렇게 얘기했다. 그간 안타가 하나밖에 없어 초조했던 마음을 조금은 털어내는 말이었다.
"그날 전까지 폼이 달랐어요. 독립야구단에서 치던 폼으로 치니까 안 맞더라고요. 근데 그날 이승엽 선배님, 정성훈 선배님이 너무 숙여서 치니까 한 번 서보는 게 어떻겠냐 하셔서 서서 쳤는데, 잘 맞더라고요. 그때가 서산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도 그때 알려주신 그 폼으로 치고 있어요."
조금은 늦게 터진 안타, 그래도 이날 한경빈은 돌고 돌아 끝내 홈을 밟고 이 경기의 MVP가 됐다. 야구가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한경빈은 남들보다 조금 긴 승부를 한 걸 지도 모른다.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311/0001473936
첫댓글 진짜 영화같다.....
한경빈 파이팅이잔아 올해엔 꼭 1군에서 볼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경빈 선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