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왔다. 둘 다 조금 전에 댄스복을 입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가끔 풍차와 그곳에서 만나서 춤을 춘다는 그 여자는 가슴과 허리가 강조된 퍼프소매가 달려있는 환한
파란색 계통의 플라워프린트 블라우스에 검은 색 하의를 입고 있었고,
조금은 짙은 색깔의 화장과 진한 자줏빛색의 매니큐어와 분홍색 립스틱이 좀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거기에
살색 계통의 망사 스타킹에 검정 색깔의 굽 낮은 힐로 갈아 신고 있었다.
“이쁘시네요” 내가 말했다.
“고마워요. 좀 섹시하게 보이나요?”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내심 근처 적당한 대중식당으로 갔으면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잘 아는 단골 일식집이 있다고 하면서 굳이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밖에 나왔다. 일년 중
해가 제일 길다는 하지가 지난 지 며칠 안 돼서 그런지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는 듯한 대낮 같았다.
벤츠 하얀색 S클래스 신형 300 이었다. 최고급형은 아니었지만 분명 자신을 과시하기에는 손색없는 차였다.
함께 온 그녀의 친구와 나는 뒷자석에 그리고 풍차는 운전하는 그녀 옆의 앞 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시원한 카 에어컨을 틀고는 밖에서는 안을 확인할 수 없도록 선팅되어 있는 앞 뒤쪽 창문의 환기를 위해
한번 내렸다가는 이내 다시 올렸다.
그녀가 실내 백미러로 한 두번 우리 둘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동을 걸자 FM음악방송에선 성능 좋은 카스피커를 통해 예전에 인기있었던 걸그룹 '쥬얼리' 가 부른 외국곡을
리메이크 한 'One More Time' 이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Baby one more time Let me blow your mind~~~~~~~~~~~~~~~~~~~~~~~~~~~
목을 축이며 춤추는 사람들, 때론 Tight 하게 때론 Hot 하게 나를 가져봐~~~~~~~~~~~"
갑자기 내 옆에 앉은 여자가 자신의 발로 내 발을 툭 찼다. 나는 무심결에 그러려니 하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살며시 자신의 손으로 내 넓적다리를 스치듯이 만지는 것이었다.
'아니 이 점잖은 투명인간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이렇게 반문하면서도 크게 싫지도 않았거니와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그녀를 쳐다보며 가볍게 미소
만을 지었다. 그녀의 인상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순간적으로 조금은 귀여운 여동생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어쩐지 내가 이성으로서 크게 호감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우연찮게 둘 사이가 가깝게 진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쉽게 끝나 버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 즉 '아푸르디테’ 의 불륜상대인 ‘아레스’ 가 되기는 싫었는지도 모른다.
곧 가까운 일식집에 도착했다. 주방장인 듯한 남자가 반갑게 우리들을 맞이했다. 별실로 안내되었다.
나는 부담없이 내심 적당한 메뉴로 먹고 싶었지만 그녀는 자연산 사시미를 주문하면서 술은 뭘로 드실거냐고
물었다. 우리가 좀 주저하자 자신이 직접 큰 종이팩에 들어있는 수입산 정통 일본 사케를 주문했다.
그녀는 대리운전기사를 부를 거니까 가볍게 식사하며 한잔하자고 했다.
나는 그녀들과 정식인사를 했다.
“저는 채송화 입니다” 풍차와 약속되어 있던 그녀가 본명인지 닉 인지 알 수 없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를 했다.
“제가 좋아하는 제 고향 친구예요” 내 옆에 앉은 여자도 소개시켜 주었다.
“X 미숙’ 이라고 합니다. 내 옆에 앉았던 여자도 본인을 정식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윈드 입니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
“닉네임 이 윈드(wind) 라니 평소 바람을 자주 피우시나 보죠? 아까 그곳 콜라텍은 자주 가시나요?”
채송화라는 여자가 물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아니 앞으로나 좀 실컷 피워볼 까 하는데요. 그곳은 어쩌다 기회가 되면 갑니다”
나는 웃으며 농담을 섞어가며 대답했다.
“다음번에 기회되면 이곳에서 다시 넷이 만나지요” 그게 언제가 될런지 기약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좋지요” 나는 예의상 즉시 그러자고 대답했다.
부어라 마셔라 이런저런 농담도 하는 사이 네모난 종이팩의 일본산 사케를 다 비웠고 어느덧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마른 복지느러미가 술잔 속에 잠겨 있는‘히레사케’ 로 입가심을 하자며 추가로 4잔을 더
주문했다. 디저트를 겸해 후식으로 보기에도 정갈한 참치스시가 나왔다.
주방장이 인사 겸 들어와서 오늘 메뉴가 어떠했느냐고 묻고는 본인이 직접 들고 온 술이 든 호리병을 들어 보이며
단골고객을 위한 특별히 준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순금 무늬의 작은 조각 같은 것들이 둥둥 떠 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술을 한잔 씩 올린다.
어느새 풍차의 춤 파트너였던 그녀가 오만원짜리 한장을 팁으로 쥐어 준다. 술도 그렇고 스시도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이 그 맛이 입에 확 다가왔다. 채송화 라는 여자가 말없이 일어났다.
아마도 계산도 할 겸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얼굴도 고칠 겸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됐다. 덩달아 풍차도 따라 일어났다.
별실에는 잠시 우리 둘만 남았다. 내 옆에 앉아 있었던 그녀는 조금 취기가 오른 불그스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남자 손이 왜 이리 고우세요?” 내 손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낮은 톤으로 말했다.
“그래요?” 나는 그저 웃으며 무심하게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함께 식당을 나오자 바로 맞은편에 지하철역 출입구가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오늘 즐건 시간 보냈어요. 기회되면 다음번엔 제가 대접할게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곤 나혼자 먼저 집으로
돌아 서려고 했다. 갑자기 평소 무표정하고 말이 없었던 함께 온 ‘미숙’ 이라는 여자가 무척 섭섭한 듯이,
"왜 바로 가시냐고 어디가서 차라도 한잔 더 하자고" 하는 걸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다른 일정도 있고 해서 집에
가야만 한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담에 또 봐요” 하고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못내 아쉬운 듯한 얼굴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나는 벌써 내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지금쯤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 때’ 라고...예전 같으면 기분 나는 대로 어울리곤 했겠지만 요즘 들어서 적당히 절제
하는 내 자신이 성숙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혹시나 내가 응했다면 남녀 두 쌍이 취기에 의존에 더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잠시의 유혹? 을 뿌리쳤다. 내 자신의 의지가 나를 이긴 오랜 만의 승리였다.
다만 솔직히 매번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고 모두의 분위기를 깰 수도 있는 자신만의 절제된 행동이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조금은 글쎄다. 한편, 그때 늘 춤을 추면서 혼자 그려보는 말이 있었다. 적당히 춤을 즐기는 여자, 아주 능숙
하게 추는 여자보단 나하고 몇시간 어울려 기분좋게 놀 수있는 여자,
또한 마음 맞으면 애프터로 술이든 커피든 한잔 정도는 함께 마실 수있는 여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도 크게 변함없지만 고정적인 춤파트너, 외모, 애인 뭐 이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어제는 잘 놀았어요...집에 잘 들어갔나요?”
다음날 오전 나는 풍차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리차로 같이 온 친구는 중간 어딘가에 내려주고 자기 둘은 다른 곳에 가서 한잔 더 마셨다고' 했다. 덧붙혀서,
“어제 저도 즐거웠어요, 적당히 술도 취하고...모텔은 가지 않았어요.”
마치 도둑이 제발 저린듯이 물어보지도 않는 뜬금없는 말까지 문자로 보내왔다.
“형님 이젠 ‘댄스어필’ 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어렵지 않아요. 댄스어필 만 잘하면 멋있는 여자와 즐댄하고 흥겹게 어울려 술도 한잔 하고요. 담번에 또 봐요. ㅎ~”
그의 카톡 회신이었다. (끝)
첫댓글 오랫만에 윈드님 올리신 글
'댄스어필' 잘 읽었습니다.
댄스어필을 할 수 있는 실력,
그 댄스 실력에 놀랐습니다.
이 소설은 픽션이니까~~~
가볍고 즐겁게 상상합니다.
그렇지요. 가볍게 읽으시면 됩니다.
요새 코로나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찬아요.
그래서 지난 주말 그동안 그냥 춤을 추면서 겪었던 일
일어날 수 있는 내 생각들을 사실유무와 상관없이
적어 내려 간 1인칭 미니멀 소설로 보시면 됩니다. ㅎ~
글재주도 춤재주도 좋은 윈드 친구
코로나 뜸해지면 우리한번 댄스어필 한번 합시당!~~
ㅎ. 좋은 걸 배우시게....
코로나 발생한 2월 이후 춤 딱 두번 췄는 데
그것도 마스크 쓰고 그 중 한번이 탄탄..친하고 네,
그때 구로 텍에서 였지...그때 즐거웠어...
어째든
윈즈님의 게시글을 접하니~
많이
반갑습니다~
"댄스어필"
어제쯤~~
마음편하게 즐길수 있으려는지요~~?
건강!
유의 하시구요
감사합니다 ^*^
잘 지내지요.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단절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이곳 댄방과는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네요.
갑자기 어떤 책에 쓰여 있던 이 말이 생각납니다.
"외로움은 우리를 죽이지만 친밀함은 우리를 소생시킨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