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인생 끝자락
밤바람에 라일락 향기가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5월!
자녀들이 요양병원 어머니를 24시간 돌봤다.
뭘 드려도 거절하여 영양공급에 애를 먹었다.
영양제 맞는 횟수가 늘었다.
설득 끝에 콧줄을 끼워 한숨 돌렸다.
경관 식에 얼굴이 고왔다.
구토와 배설이 문제였다.
인지력이 뛰어나 기저귀는 차고만 계셨다.
화장실 이동 중 간병인과 함께 넘어질 것을 우려해 막았다.
낙상 위험 경고도 소용없었다.
변기에 앉기를 원하셨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사가 한발 앞서 거들었다.
낮에 보신 양만큼 쏟았다.
눈물겹게 고마웠다.
다시 침상에 눕혔다.
독한 냄새에 잔여 가래 제거 위해 막대 거즈에 가글을 묻혔다.
덩어리를 닦아 내자 입안이 헐었다.
간호사가 기계로 뺄 때 손을 잡았다.
찡그리는 얼굴 보기가 안타까웠다.
가래 뽑는 흡입기를 곁에 뒀다.
입안이 타면 거즈에 물을 묻혀 입술에 물렸다.
귀에 대고 말했지만 소통이 점점 흐렸다.
호전 반응이 오면 잘 들었다.
눈 감고 누운 시간이 늘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왼발이 부으면 주무르고 매트리스 아래를 높였다.
미열이 잡혀 물수건을 가슴과 목에 얹었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숨이 갚았다.
간호사가 들락거렸다.
난 체력의 한계에 곯아떨어졌다.
밤새 신음 소리에 쪽잠 자고 미명에 깼다.
혈압이 내려갔다.
맥박이 느렸다.
‘너무 힘들어! 언능 가게 기도해 줘!’
귀에 대고 기도했다.
‘늙어도 여잔데 뭔 남자가 씨브렁 거린다요. 잠 좀 잡시다!’
옆자리 할매 말이 거칠었다.
새벽 기도 위해 일어섰다.
여동생이 바통을 이어갔다.
카톡으로 상황을 물었다.
‘병실에 들어갔어. 많이 힘들어하시지!/
지하 식당 비상구로 올라왔어요.
하루 사이 산소를 7까지 올렸네요.
편히 앉혀 드렸어요./
숨 갚아서 그런 것 같아../
호흡도 다르고 혈압도 떨어지고 안 좋으세요.
발도 차고 손을 잡아도 움켜쥐지 않아요.
힘이 풀렸어요.
체위 변경 못하게 하시고 아무리 불러도 말씀이 없으세요./
마음 아프네!/
발 부기는 많이 빠졌어요./
호흡은 여전히 갚으시고../
산소 포화도가 계속 떨어져요.
80에서 지금은 70대로../
안타깝네!/
오늘 병원 예배드려요./
지금 준비하고 있어..’
이후 상황은 급하게 돌아갔다.
‘일본 언니는 함께 있어요.
가족들 병원 근처에서 기다리래요.
익산 동생과 여수 언니 연락하세요.
오빠! 빨리 택시 타고 오세요.
임종하시네요.’
운전대를 잡았다.
여동생이 1층에서 기다렸다.
스크린 친 병실에 기계음이 울리고 화면은 평행선을 그었다.
숨을 거두셨다.
따듯한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동생이 병실에서 그런 것 아니라 말렸다.
편한 얼굴과 깨끗한 발을 만졌다.
주치의가 사망을 알리며 예를 표했다.
멀리서 오신 분들을 배려해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간소하게 치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부고를 내자 지인들 근조 화환이 배달되었다.
제단에 영정 사진 올리고 가족끼리 임종 예배를 드렸다.
상실의 아픔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다.
입관, 출관, 하관 예배는 순서 맡은 목사님들 집례로 이어졌다.
조문객 방문이 잦았다.
상주로 정중하게 맞았다.
위로 예배 인도는 동생이 섬긴 이리 남중교회가 주관하였다.
식사 자리에 앉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님에게 아니오 없는 형님 목사님’으로 소개했다.
부끄러웠다.
사촌 형제들의 애달파하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적셨다.
이모가 통곡할 때 가슴을 쳤다.
이튿날, 수의 입힌 어머니의 고운 얼굴 보며 슬픔에 잠겼다.
유족들이 둘러서서 흐느껴 울었다.
‘나무의 크기와 사람의 크기는 누워 봐야 안다’는 말이 맞았다.
어머니는 크고 소중한 그릇이었다.
관 뚜껑을 덮고 어머니 존함을 썼다.
차서대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입관 후 ‘천국에서 만나 보자’ 찬송을 불렀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소망의 말씀을 들었다.
식탁에서 어머니의 추억을 나눴다.
‘이 목사는 별것 다 기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밤이 깊을 때 부의금 내역을 조카가 내놓았다.
5남매의 뜻을 모았다.
문상객을 제일 많이 받은 동생 제안에 따를 참이었다.
장례비 정산 후 균등 분배라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어머니 통장은 수고한 여동생에게 넘겼다.
전세 아파트는 고인 뜻을 존중해 장남에게 돌렸다.
향후 가족 행사비를 부담키로 하고 누웠다.
다음 날 7시! 천국 환송 감사 예배를 드렸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하며 손자들이 관을 들었다.
화장장에 도착하여 유족 대기실에서 예배하고 기다렸다.
어머니 유골을 받고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숲 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이동하여 안장시켰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임을 알렸다.
조문객 식사 대접 후 어머니 집으로 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머니가 섬긴 열매요 자녀들이 협력한 결과였다.
그의 인생 끝자락에서 감사가 넘쳤다.
답례 글을 문상한 분들께 올렸다.
‘고맙습니다.
연둣빛 이파리들 짙게 물들어 가는 분주한 5월,
저희 어머니(신윤엽 권사) 장례에 조문하여 주시고
마음 담아 보내신 손길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함께 하신 덕분에 장례 잘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함이 예의지만
그렇지 못함을 널리 혜량(惠諒)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 애경사 기별하시면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정다운 오월, 늘 강건하시고 가정에 평안과 행복 깃들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 5. 17 이상래 목사 배상’
2024. 5. 18 서당골 샐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