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랑하던 야구를 떠나면서 깨달았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없어져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有와 無, 승리와 패배, 긍정과 부정이 반복되는 삶에서, 시련과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꼭 한 번쯤 온다. 그것을 인정하고 미련과 집착은 접어두자. 내려놓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새로움은 다른 것의 끝에서 생긴다.
LA 마크가 있는 파란 모자를 쓴 동양 청년이 야구 경기장에 등장한다. 마운드에 서서 모자를 벗고, 심판을 향해 90도로 인사한다. 그리고 숨을 한 번 고른 후, 있는 힘껏 공을 던진다. 시속 161킬로미터의 강속구를 던지던 대한민국 첫 번째 메이저리거, 그는 바로 ‘박찬호’다.
그는 우리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한국 사람이 거구의 서양 타자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스트라이크를 얻어내고 포효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 박찬호는 말 그대로 영웅, ‘코리안 특급’이었다. 하지만 영웅은 우리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히고 특급이라는 말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어느새 ‘먹튀’ ‘부상’ ‘부진’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박찬호를 잊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우리를, 야구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2012년 11월 30일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미국, 일본, 한국 프로야구 리그, 그 19년의 시간을 거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박수칠 때 떠나라’는 조언을 뒤로 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 모텔 방에서 참치 캔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던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혹시 날 원하는 팀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때에도, 오로지 다음 공을 던지는 생각만 했다. 내가 잘해야 한국의 자긍심이 높아진다는 그 사명감을 지키려 했다. 무엇이 그를 지탱하게 했던 것일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호흡 속에서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영광, 최고의 순간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렸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다시 삶에 대한 불씨가 지펴졌고, 자신의 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박찬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지켜냈다.
박찬호가 중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과 현재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에는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가득하다.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끝은 무엇이고 시작이란 무엇인지……. 거기에는 야구선수 이전에 한 인간으로,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경험한 한 남자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박찬호의 글들이 모여 만든 대한민국 첫 번째 메이저리거의 눈물, 인내, 내려놓음의 기록이다. 또한 제2의 인생을 앞둔 한 남자가 말하는 지난날에 대한 쑥스러운 고백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떠나야 할 때가 온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나가 끝나야,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 추천사
박찬호 선수의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함이 있다. 정상에 올랐을 때뿐만이 아니라 바닥으로 추락한 후,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슬럼프를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혜민 스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을 버릴수록 승리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랑의 지혜를 담백하고도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해인 수녀(시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다시 천천히 시작하는 것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 박찬호는 그것을 알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
나답게 자신의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노하우가 필요한 우리에게 박찬호 선수의 이야기는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가수 싸이
천천히 집중하면서 자신의 믿음과 의지를 향해 걸어온 그의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배우 안성기
박찬호는 1승의 가치와 그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다. -야구감독 김경문
위대한 기록과 그 속에 담긴 땀과 열정, 노력, 인내의 시간에 존경심이 생긴다. -야구선수 추신수
한국 출신의 메이저리거라는 큰 문을 열어주셔서 감사하다. -야구선수 류현진
어느 길이든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일 수밖에 없다. 가보지 않았던 길에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을 그저 하나씩 하나씩 해가면 된다.
한국에서 만든 전자제품에 불량이 생기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욕을 먹듯이, 나 또한 한국이 만들어낸 사람이니까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측면에서도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내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니까 더 잘해야지, 라는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이름이 더럽혀지는 게 싫다는 본능적인 자존심이었다. 내 이름은 박찬호이기도 했고, ‘코리안’이기도 했으니까.
1999년 6월 6일, 나는 경기 중 나에게 모욕을 준 상대 선수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그 상대 선수가 한국인을 무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한국인들의 나의 이단옆차기를 통쾌해했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미국 팬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팀 메이트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상대 선수 팀 벨처는 한국인을 무시하는 행동과 욕설로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나는 그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나는 동양인이었고, 그는 미국인이었다.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미국 사회였다. 게다가 그와 나는 다저스 선후배 사이였다. 벨처는 1988년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로 LA의 영웅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싸운 것이다.
그러니 분위기는 엄청나게 나빴다. 당시 밖에 나가면 총에 맞을 것 같았고, 나를 위협하는 협박 편지도 많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최악의 장면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9일간 7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고 벌금으로 3000달러를 내야 했다.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내가 여전히 마이너리그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메이저리그를 꿈꾸면서 공부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숙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인생에서 마이너리그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부족함을 안다는 의미이다.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언제나 자극을 주고, 항상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 한 권을 더 보려고 하고, 좋은 멘토들에게 조언을 들으려고 한다.
오래된 일기 속 나와 마주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거 봐, 인마.’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일기 속 마지막 문장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거 봐, 인마. 그렇게 되었잖아.’ ‘거 봐, 인마. 그 아픈 것도 다 지나가서 이제 괜찮잖아.’ 그 말은 지금의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힘을 주면서도 또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나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지금 류현진 선수가 다저스에서 뛰고 있다. 내가 한국인으로 메이저리그의 처음 문을 연 것이 거의 20년 전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의 최초였다. 스트라이크도 최초, 삼진도 최초, 안타도 최초, 홈런도 최초다. 최초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박찬호를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나는 당시에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메이저리그에 간 게 아니었다. 그냥 다저스가 하나의 길들여지지 않은 상품으로 데려간 거다. 하지만 내가 성공을 하자 한국 야구에 문이 더 크게 열렸다. 그 문의 정체는 바로 ‘관심’이다.
내가 열었던 문과 류현진 선수가 열어야 하는 문은 다르다. 류현진 선수는 한국 야구에 대한 ‘검증’의 문을 열었다. 한국 프로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 나가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류현진 선수가 열어준 셈이다. 앞으로 한국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들은 그 검증의 문을 더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고, 우리 야구의 질 또한 높아질 것이다.
조건 없는 나눔,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헌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주 단순한 진리다. 나를 지탱해주고 웃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웃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웃고 싶었다. 그리고 많이 부족했던 내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강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내가 배운 것들을 마음껏 전해주고 싶었다. 내 마음이 그랬다.
첫댓글 박찬호 지음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