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목사님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수근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난 시인 기형도는,
1987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종로 2가 한 극장 안에서 요절했다.
그의 시처럼 삶도 쓸쓸하고 아프지만,
오늘 이 시대,
짐승처럼 변해버린 우리들에게 문틈 사이로 한 줄기 빛을 비춰준다.
그는,
어릴 적 읍내에서 본 목사님 이야기 한다.
그 동네에선 소문이 자자했던 그 목사님을...
그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한 동안...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참 이상한 모습이었다.
목사님의 자전거 뒷켠에는 성경 대신 송판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목사님이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그는 소문을 들어서 안다.
목사가 기도나 심방, 전도는 하지 않고 꽃밭을 가꾸기만 한다는 불평을...
자전거 뒷켠에 실린 그 송판도,
교인들이 화단을 밟고 다녀 아마 화단 경계를 만들기 위한 것일거야.
기형도는
목사님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그 목사님을 둘러싼 최근의 일들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둘째 아들을 폐렴으로 잃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아픔을 헤아리기는 커녕,
장마철에 수해를 입은 것이,
목사가 기도 안해서 그랬다고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났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근거렸다
교인들이 보기엔,
목사에겐 별 능력이 없어 보였다.
설교도, 부흥도, 능력도 그 목사에겐 없었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교인들에겐,
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목사님의 말이 결정적으로 교인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교인들은 마침내 그 목사님에게 사임을 통보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는 교회를 떠나야 한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그런 아픔을 안은 그 목사님이
지금,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보고 있다.
시인 기형도는,
그런 목사님의 모습에서 작은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그 목사님 구겨진 양철을 반듯하게 펴기 위해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에게서,
십자가의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대장장이의 망치질이 거듭될수록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삶 속에 내리치는 망치질은 자아를 죽이고 다듬는 무엇이리라...
그 많은 아픔과 모욕과 상처를 안고서도,
이상하게 평온한 목사님의 모습에게,
참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기형도는 느꼈다.
건물 안에 갇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찬송과 설교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망가진 꽃밭을 가꾸고 상처난 꽃을 세우는,
우리의 삶 한 가운데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참 예배일지 모른다.
목회는 형식화되고 제도화되며, 교리화되고 교권화되고, 건물이 된 지금,
기형도는 우리 동네 목사님이 생각나는 것은 어쩐 일인가?
그 분을 생각하면 가슴 아련히 밀려오는 아픔과 함께,
어두워진 자신의 영혼에 한 줄기 빛을 만난듯하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예수님은 성경이라는 문자에 갇혀 있지 않으며,
교회 건물에도 갇혀있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 한가운데,
곧 일상의 생활 속에 살아 계시다 것은...
아, 이 얼마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가.
밥 한 사발을 서로 나누는 밥상,
서로 땀 닦아주며 일하는 일터,
삶이 빠진 예배와 신앙논리에 갇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얼마나 눈 확! 뜨게 하는 일인가.
성경의 문자가 아니라, 교회 건물이 아니라, 생활이다.
삶으로 증명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목회는 사업도, 경영도 아니다.
그의 목회는 삶 그 자체, 예수님의 삶 그 자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처럼 교인들은 수근거렸다.
율법도 폐하고, 교권도 무시하고, 성전도 무시하는 저 목사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그들은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처럼, 꽃밭을 가꾸던 목사님도 마을을 떠나야 했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우리 동네 목사님의 모습에서,
기형도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 교회를 떠나야 한다.
삶이 없는 사람들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