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756호
무두질
한혜영
이웃 남자는 여자를 무두질했습니다
감언이설에 여자를 담그고 주무르다가,
흠씬 두둘겨댔습니다
지방과 털을 제거하듯이
여자의 거친 생각과 주장이 길들여지고
뻣뻣함이 사라지자
여자는 지상 최고의 부드러움을 갖춘
가죽이 되었습니다
남자의 마음에 마침맞게
재단이 된 여자의 일생 위로
노루발이 거침없이 건너다니더니
단추 몇 개가 시간의 앞섶에 놓였지요
드디어 완성이 된 가죽재킷
남자는 여자를 옷걸이에다
얌전하게 걸어놓더니
또 다른 가죽을 구하러 나가서는
소식이 없는 거였습니다
- 『검정사과농장』(상상인, 2020)
*
한혜영 시인의 시집 『검정사과농장』에서 한 편 띄웁니다.
「무두질」
'무두질'이 뭔지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요? 설마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 국어사전을 찾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1. (명사) 생가죽, 실 따위를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드는 일.
2. (명사) 몹시 배가 고프거나 속병이 나서 속이 쓰리고 아픈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무두질은 그러니까 날가죽을 가공해서 쓰임용 가죽으로 만드는 일이지요.
가죽 얘기가 나온 김에.... 가죽을 가리키는 한자로 세 개의 글자(제가 알기로는)가 있지요.
가죽 피(皮)와 가죽 혁(革)과 가죽 위(韋)입니다. '가죽'이라는 같은 훈을 지녔지만, 실은 조금씩 다른 가죽들입니다.
가죽 피(皮)는 짐승의 날가죽입니다.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 것으로 털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죽 혁(革)은 가죽을 벗긴 뒤에 털을 제거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가죽 위(韋)는 털을 제거한 가죽에 다시 무두질을 해 부드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다룸가죽'으로 훈을 달기도 하지요.
같은 가죽이라도 가공 정도에 따라 달리 불렀던 것입니다.
(조찬식 선생의 『기초한자 인수분해 수업』을 읽다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이번에는 '노루발'입니다.
노루발이 혹시 뭔지 아시는지요?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역시 혹시나 싶어...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1. (명사)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는 도구. 노루발처럼 끝이 갈라지게 쇠붙이로 만들었다.
2. (명사) 한쪽은 뭉뚝하여 못을 박는 데 쓰고, 다른 한쪽은 넓적하고 둘로 갈라져 있어 못을 빼는 데 쓰는 연장.
3. (명사) 재봉틀에서, 바늘이 오르내릴 때 바느질감을 눌러 주는 두 갈래로 갈라진 부속.
시 속에 나오는 노루발은 그러니까 재봉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시 얘기는 뒷전이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을 텐데요... 사실은 지금까지 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은 변했다지만,
시인이 보기에 세상은 여전한 듯합니다.
남성에게 여성은 그저 가죽에 다름 아닌 것이니
이런 형편없는 세상을
개혁(改革)하거나 혁신(革新)해야 한다고 은근히 혁파(革罷)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이런 가~ 죽 같은 세상을 말입니다.^^
2021. 4. 12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