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생존권을 박탈하는 위수지역 제한 폐지 즉각 철회하라!]
강원 화천군 읍내 도로 곳곳에 군인의 외출 외박 제한 구역 해제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군인 때문에 먹고사는 동네인데... 다 떠나면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국방부가 군인의 외출, 외박 제한 구역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강원도 내 접경지역이 술렁이고 있다.
화천군민 번영회를 비롯한 지역사회단체장 21명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조금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며 "다른 접경지역과 연대해 주민 총궐기와 서명운동 등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늘 3월 6일 조선일보 A14, 사회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내가 해군에서 복무하던 1972년 봄에도 경위는 다르지만 진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엇다.
그해 봄, 진해 함대사령부의 분위기는 서릿발이 서도록 차가웟다. 새로 부임한 함대사령관의 칼날 같은 서슬 때문이었다.
신임 사령관은 평양 출신으로 6.25 전쟁 때 소위로 참전하여 여러번 무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1950년 8월 덕적도 상륙작전, 영흥도 탈환작전, 그해 12월에는 301정 부장으로 진남포 피난민 철수작전에 참가해서
공을 세웠다. 그만큼 해군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강하고 사명감이 투절한 분이었다.
우리 동기생 해군 학군 17기생들은 1972년 2월말에 임관 후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4주간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 후 기관 장교들은 종합훈련단 기관학교에서 4주 교육을 더 받았고 항해 장교들은 바로 함대에 배치되었는데
모두 비 전투함인 2전단에 발령이 났다. 기관 장교들은 4주 교육 후 모두 전투함인 1전단에 배치되었다.
항해과 장교들이 함대에 배치되자마자 2전단 소속 소해정에 근무하던 학군 15기 선배 한 명과 우리 동기생
한 명이 어느 날 저녁 당직근무를 서다가 함께 영창에 갇히고 말았다.
내일 모레 제대할 15기 선배는 수대 어로과 출신의 김주훈 중위였고 우리 동기는 해대 24기 항해과 출신의 성창경 소위였다.
그때 신임 함대사령관의 '지휘방침' 가운데 '구타금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옛날 일본 해군 악습 가운데 하나인
구타, 특히 '기수 빳따'는 사실 진작 없어져야 할 나쁜 전통이었는데 그때까지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소해정 현문당직사관이었던 김 주훈 중위는 외출했다가 귀대 시간을 어기고 늦게 들어온 하사 한 명을
갑판에 불러내어 빳따를 쳤다. 얌전히 잠을 잤으면 그냥 두었을 텐데 침실에서 수병들을 괴롭히며 말썽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운 나쁘게도, 지프를 타고 야간 순찰을 돌던 매부리코 함대사령관이 멀리서 그 광경의
실루엣을 목격하고 말았다. 득달같이 달려온 매부리코는 그 자리에서 지휘봉으로 즉결재판을 했다.
"부관, 저놈 당장 영창에 집어넣어!"
주변을 살피던 매부리코의 눈에, 벌벌 떨고 있는, 옆에 계류한 함정의 당직사관이 보였다. 부임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성창경 소위였다. "저놈도 집어넣어!"
성창경 소위의 죄목은 '함대사령관의 지휘방침을 알고도 만류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
성 소위는 함대사령부 참모들의 진언(進言)으로 일주일 만에 풀려났지만 김주훈 중위는 한 달 동안이나 콩밥을 먹었다.
그 얼마후, 어느 날 갑자기 PC708함 함장이 영창에 들어갔다고 함대에 소문이 후끈햇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함대사령관이 휘하(麾下)의 1전단 전 함장들을 모아 놓고 훈시를 하고 있엇다. 내일 모레 별을 바라보는 대령급
함장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자세도 흐트리지 않고 열심히 사령관의 훈시를 메모하고 있는데
맨 뒷자에 앉은 새까만 소령 하나가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사령관은 가차없이 즉결재판을 했다. "부관, 저놈 당장 영창에 집어 넣어!"
가슴에 지휘관 (함장) 마크를 단 PC 708 함장 박 某 소령은 그 자리에서 당장 헌병대 영창에 갇히고 말았다.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신삥 쏘위들은 얼음장 밑의 겨울 미나리처럼 숨을 죽이고 움츠리며 봄이 오기만
기다릴뿐이었다. 사령관은 밤낮 구별없이 아무 함정에나 들이닥쳐 곧 사병식당으로 직행해 수병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해
함장들의 간이 서늘하게 햇다. 사령관이 이렇게 설치니 야간에 정박중인 함정에 순찰을 도는 참모들, 말똥들이
18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함장들은 퇴근을 해도 밤잠을 편히 잘 수 없엇다. 그래서 장교나 수병이나 차라리 경비 출동을
나가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장교들은 마음 속으로, 부사관들은 집에서, 수병들은 화장실에서 매부리코 사령관
욕을 한다고들 했다. 사령관의 계급은 소장이었는데 사병들은 너무 설친다고 소위로 강등시켰다. 주말이 되면 분대별
회식이 잦아지고 술에 취하면 공공연히 사령관에 대한 원망이 높아지기 시작햇다. 그러자 함대 사령부 소속 군인, 군속에 대하여
무기한 금주령이 발령되었다. 헌병을 동원하여 진해 바닥의 술집을 돌며 음주 단속을 하고 술 마시는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여
함대에 보고한다고 햇다. 술꾼들을 집에서 마시거나 아니면 사복을 갈아 입고 마산까지 넘어가서 마셔야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진해 바닥 술집 마담들은 주말이 되어도 애먼 파리만 때려 잡을 수밖에 없었다. 마담들의 입에서
"매부리코 사령관은 일제 시대 도조히데끼(東條英機)보다 더 지독하다!"라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 날, 드디어 참다못한 진해바닥 니나노집 마담들이 총궐기하여 단합대회를 열고 해군참모총장 앞으로 탄원서를 올렸다는
소문이 저녁 연기처럼 소리없이 퍼졌다. 그 며칠 후, 함대사령관이 해군본부에 호출되엇다는 '카더라 방송'이 돌았다.
전시도 아닌데 지휘관 마크를 단 PC 708 함장을 지맘대로 영창에 보낸 사건과, 군인, 군속에 대한 금주령을 내린 것에
대해 참모총장이 주의를 주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소문의 진위야 어쨌든, 그 후 음주 단속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
첫댓글 전에 처럼 군인 부대 근처라도 스트레스풀기 위해 공창을 두어야 하는데 ㅎㅎㅎ강원도 군인들 큰도시로 가서 스트레스풀면 조그만 읍면은 장사가 안되고, 인간은 자기편 이익 아니면 죽을판 살판 설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