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757호
사이보그 선언
정한용
눈을 바꾸려 한다. 노안과 백내장으로 어차피 한번은 손볼 것, 최신 인공수정체를 끼우면 시력 20.0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이명에 시달리는 귀를 바꾸려 한다. 소머즈가 사용해 검증된 음파센서를 달면, 사람 심장 소리도 들리고 심지어는 거짓과 진실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무릎 연골을 바꾸려 한다. 이건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오래 업그레이드시킨 것, 한번 달리면 안드로메다까지 저녁 마실을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소화 기능이 떨어진 위장을 업데이트하려고 한다. 버전업하는 것만으로도 요강이나 놋대야를 씹어삼킬 수 있고, 광고에 의하면 일 년 굶고도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이 꽃을 꽃이라 불러야 꽃이 되듯, 당신이 나를 사이보그라고 불러줄 때 비로소 나는 사이보그가 된다. 우리 사랑은 그렇게 완성된다.
- 『천년 동안 내리는 비』(시인수첩시인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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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유령들』과 『거짓말의 탄생』의 계보를 잇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정한용 시인의 신작 시집이지요. 『천년 동안 내리는 비』에서 한 편 띄웁니다.
<사이보그 선언>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중략)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아실 터,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이지요.
이 공산당 선언을
정한용 시인께서 사이보그 선언으로 바꾸셨네요.(그건 아닌데 하며 굳이 반박하려 하진 마시구요.^^)
슬며시 김춘수의 꽃도 비틀면서 말입니다.
아, 1970년대 공전의 히트를 쳤던 미국드라마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도 등장하고 있군요. 리 메이저스(1939)와 린제이 와그너(1949)도 좋아라 하겠습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
윌리엄 깁슨이 했다는 이 유명한 말도 문득 이 시(혹은 시집)와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학기술문명과 글보벌해진 자본주의가 과연 우리를 유토피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인지
이미 와 있는 미래가 과연 유토피아의 징조인지 디스토피아의 징후인지
과연 어떤 게 답일까요?
우리는 지금 어디로 치닫고 있는 중일까요?
천년 동안 비가 내려도
우리는 왜 젖지 않고 있은 것일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시집 『천년 동안 내리는 비』를 일독해보시기 바랍니다.
2021. 4. 19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