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의류로 꼽히는 청바지에는 6가지 요소가 없다.
나이, 성별, 빈부, 국가, 계절, 차별이 바로 그것이다.
청바지는 어린이서부터 청년, 노년까지 두루 입으며,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즐겨 입는다.
또 할리우드의 세계적인 스타에서부터 인도 뭄바이의 가난한 이들까지
선진국과 후진국, 빈부의 차별을 두지 않는 패션이다.
때문에 혹자는 청바지를 두고 ‘인류가 만든
가장 평등한 의복’이라 일컫기도 한다.
평등이라는 패션의 신세계를 연 청바지는 엄연한 발명품이다.
특허권자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제이콥 데이비스다.
청바지의 최초 창안자로 널리 알려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829년 2월 26일 독일의 부텐하임이란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행상을 하던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살길이 막막해진 리바이는
18세 때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평등이라는 패션의 신세계를 연 청바지는
엄연한 발명품이다.
ⓒ morgueFile free photo
먼저 이민을 와 그곳에서 정착한 사촌 형제들과 함께
의류 관련 사업을 하던 그는 벌이가 신통치 않아 고민을 하던 중
매형
데이비드 스턴의 부름을 받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금 노다지’를 캐러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드러시(goldrush)의 고장이었다.
거기서 그는 가위, 버튼, 나사 및 볼트, 천막 천 등을 파는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 코퍼레이션사’를 1853년에 설립했다.
바로 그해 리바이는 대형 천막 10만 개 분량의 천막 천을
주문 받고 어렵사리 물량을 확보해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알선업자가
주문을 취소해버려
그는 빚더미에 오를 위기에 처했다.
천막 천으로 광부들의 작업복 바지 만들어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리바이는 금광을 캐는 광부들이 모여서 헤어진 바지를 꿰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자신의 창고에 쌓여 있는 천막 천으로 튼튼한 바지를 만들어
광부들에게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갈색의 천막 천으로 만든 리바이의 작업복 바지는 광부들에게
꽤 인기를 끌어 그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흐른 1872년 리바이는 네바다주 카슨시티에서
양복점을 하던 라트비아 태생의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리바이의 고객이었던 제이콥이 그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서 공동으로 특허를 낼 용의가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제이콥의 아이디어는 바지 주머니의 봉함선에 구리 리벳을 박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경우 광부들이 금덩어리나 돌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도' 주머니가
잘 찢어지지 않아 튼튼하고 실용적인 작업복 바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제이콥의 아이디어를 흔쾌히 수락한 리바이는
거기에다 자신의 아이디어도 하나 더 보탰다.
갈색 천으로 만든 바지는 오염물질이 묻어서 자주 더러워지니
짙은 청색으로 염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돈이 없었던 제이콥 대신 리바이가 69달러의 특허 신청료를 내 1873년 5월 20일
드디어 구리 리벳을 부착한 청색의 작업
바지에 대한 특허가 승인됐다.
이듬해 리바이는 특허를 받은 작업복 청바지 제품을 최초로 생산했다.
청바지가 불티나게 팔리자
리바이는 자체 공장까지 세웠으며,
제이콥 데이비스를 기술자로 영입했다.
그 후 바지가 조금 무겁다는 불만이 소비자들로부터 제기되자 리바이는
가벼운 면 소재인 데님으로 옷감을 바꿨다.
프랑스 남부 도시 님스의 특산물인 데님은 고급 면 의류를
만드는 데 많이 쓰이던 직물이었다.
1890년 청바지에 대한 특허 시효가 만료되자 다른 제조사들도
경쟁적으로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바이는
‘501’이라는 일련 제품 번호를 사용해 ‘리바이스 501’이라는
청바지를 하나의 브랜드로 차별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501은
수입한 데님 원단을 보관하던 창고 번호였다.
작업복에서 젊은이들의 일상복으로 변신 20세기 들어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일하는 사람의 작업복’ 이미지가 강했던 리바이스 청바지를
대중화시키는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미군에서 청바지를 납품받으면서 저렴한 가격에 더욱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제품을 요구해 청바지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군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청바지는 1950년대부터
반항아 이미지가 강한 할리우드의 스타들에 의해 젊은이들의
청년
문화를 대변하는 의복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 등이 영화에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채
등장함으로써 청바지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보이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일상복이 된 것이다.
청바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6.25 전쟁 때 미군들에 의해서였으며,
특히 신성일이 청바지를 입고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1964년 개봉)’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널리 유행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바지는 2000년대 들어 스티브 잡스가 자주 입음으로써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는 첨단산업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했다.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파란색은 창조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이 파란색과
빨간색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파랑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빨강은 기억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사회공헌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장애인을 위한 장학제도를 만들었으며,
회사를 정식으로 설립할 때 주식을 사원들에게 고루
분배함으로써 회사의 박애주의적 전통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청바지의 반항아적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순애보적인
사랑을 끝까지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 독일에서 짝사랑했던 여성을 잊지 못해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02년 9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출생지인 독일 부텐하임에는 리바이의 일대기와
지난 140여 년간 생산된 리바이스 청바지 제품들이 전시된
‘리바이 스트라우스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