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전 어린시절.... 아버님의 일 때문에 안동에서 5년간 산 적이 있었지요.
부모님과 동생들은 그 후로도 안동에 오래 계셨지만.....
지금 저에게 남은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은 온통 안동과 관련된 것 밖에는 없습니다.
1974년의 안동...(그 당시에 안동댐 공사가 시작되어 안동시내가 꽤나 분주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동네 친구들과 처음 가본 낙동강.....
대도시에서만 생활했던 저에게는 정말 별천지가 따로 없었어요.
넓고도 깨끗한 백사장 계절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물고기들...
4월이 오면 누치떼가 거슬러 올라옵니다.(그 물고기가 누치란 것을 견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넓은 강폭을 꽉 채우면서...(영호대교 옆에 옛날에 만든 다리가 있었지요.- 동천님 지금도 있지요?)
그 다리 위에서 보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물 속에서 몸을 던져 손으로 잡고(지금의 대멍짜 크기) 어른들은 빨래터(다리 건너기 전 검문소 아래쪽..
구교와 철교사이에 있었는데...)에서 대나무 작살을 이용해서 누치를 잡았었습니다.
5월에서 6월 사이에는 은어와 피라미가 물반 고기반이 었지요.
한명은 다리위에서 망을 보고 한명은 아래에서 투망을 들고 다리 위에서 투망칠 자리를 알려 줄 때 까지
기다리다가 신호가 오면 투망질....
어린아이들은 투망질을 하지 못하니까 이런 방법으로 은어와 피라미를 잡았습니다.
우선 지금의 수장대 보다 약간 짧은 나무 막대기를 준비합니다.
여울 속에 들어가서 은어나 피라미떼가 보이면 오직 한마리만 목표로 하여 줄기차게 쫒아 다닙니다.
물고기가 깊은 곳으로 가려하면 막대기로 찔러 진로를 차단하고 얕은 곳으로 몹니다.
이렇게 5분에서 10분 정도 하면 물고기도 지치겠지요.
이때 막대기를 물고기 옆에 갖다 대면 물고기가 막대기에 붙습니다. 손으로 잡아도 도망가지를 않았어요.
힘은 들었지만 꽤 많이 잡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수박향기가 나는 것 같네요.
은어와 피라미를 잡을 때 주 목표물은 은어와 불거지(안동에서는 수루메기라 했던 것 같은데...피라미 암놈은 패스)
였어요. 강바닥이 모래와 아주 작은 자갈로 이루어져 가능한 고기잡이 방법이지요.
이렇게 놀다가 목마르면 그냥 낙동강물 마시고..졸리면 다리 아래에서 자고...
장마가 지나면 강가 돌틈에서 붕어, 메기, 꺾지, 등을 손으로 잡고(지금의 강변 공원 근처)
이때 쯤에 칠성장어도 올라왔던 것 같은데....
깊은 곳에서 수영하고 싶으면 강을 횡단하여 귀래정이란 곳 까지....
모래가 워낙 고와서 작은 조개가 무척 많았어요.(지금 생각해 보면 재첩 같기도 하고....)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저에게 자연이 무었인지를 체험하게 해 준 낙동강....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요.
안동을 다녀 온지 20년이 지났네요. 아직도 그때 그 친구들 안동에서 살고 있는데(옥야동 신시장 근처)...
가보고 싶네요.
사는게 뭔지...................
몸과 마음이 지칠때면 나도 모르게 찾게되는 여울......
견지낚시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삭막한 서울을 떠나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함 일까?
지친 몸을 추스릴 방법은 이것 말고도 많이 있는데...
왜 나는 여울을 찾는 것일까?
아마도 어린시절의 추억때문이 아닐까요?
첫댓글 몇해전 FTV에서 80년도에 개인이 찍은 동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여울이지만 임하댐 상류의 용계은행나무쪽이었던 것 같은데 은어가 35센티이상으로 아주 굵더군요 하류인 밀양쪽에서 잡히는것 보다 10센티이상 컷다고합니다 뭐 그때 당시 미터급 쏘가리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오래전 일인데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요즘도 영호대교옆 구다리위에서 훌치기 하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하류에 보들이 워낙 많이 생겨서 몇년째 은어를 봤다는 사람이 없네요 10여년전까진 큰물지면 가끔씩 보였다는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갈대밭이었던 강변이 콘크리트 제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름 밤 삼겹살 굽긴 좋습니다만...^^
기회가 되신다면 여름 번출때 한번 내려오시죠 어린시절 추억도 되살리실겸...^^
그 전에 한번 내려갈 것 같아요. 초등학교 동창들하고 우연히 연락이 되었는데.... 한번 보자고 난리들이라.... 가게 되면 동천님한테 전화드릴께요. 만나뵙고 싶네요...
저도 비슷한 추억이 있습니다. 평생 꾼으로 살게한 그 추억을 죽을때까지 가져가겠지요. ^^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고향은 언제나 가슴속 깊은곳에있어 지울레야 지울수없은 나만의 공간이지요. 세월이가고 변해도 마음속의 고향은 어린 그시절 그대로입니다. 언제 내려가시어 회포를 푸시지요.
아이들에게도 이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여의치가 않네요.
옥야동이면 서부초등 졸업했을것 같은데 20회에서 40회졸업생 현제 연락처을 가지고있는데...국민학교때 소풍을가면 영호대교나 철교아래로(그땐 똥다리밑이라고 했지요)갔죠 그땐 강물 그냥 마셨는데 강변 빨래터에서 이불(옥양목이던가)빨아서 뚝방에 쭈~욱 말리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네요.
벽오동 선배님도 안동분....저는 영호초등 1회입니다. 처음 개교 할 때 이쪽 저쪽 동네에서 학생들을 모아서 같은 동네에서도 서부초등도 있고 영호초등도 있고....5학년때는 영가초등 다녔구요. 저보다 낙동강의 추억이 더 진하겠네요.
5년 간 살면서 저리 많은 기억의 편린들을 살려내다니 감성이 깊은 것 같습니다. 내가 70년 이 전까지 19년 간 살아온 기억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생각하노라면 꿈속에서 해매이는 것 같습니다. 옥야동,신시장,수루매기,영호루...기억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을 다시 끄집어 내게 하여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시니...고맙습니다.
선배님...이런 추억을 잊지 못해 여울과 강을 찾는데....홍천강, 임진강, 동강도 그 옛날의 낙동강보다도 깨끗하지 않으니..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선배님 저도 충남서산 시골할머님댁에서 비슷한 추억을 아직도 달고 살고있습니다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싶네요 ............ 그런데 어떻게 보죠
여울에 설 때 어린시절 생각하면 할머니의 모습을 뵙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