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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十二. My Birthday
‘료는 요즘 뭐하고 지낼까?’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료가 생각났다.
홍대에서 그와 만난 이후로 나는 그를 전혀 만날 수도 없었고 그의 소식 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현숙이도, 현석이도, 까페 어떤 회원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내가 먼저 연락할까 따위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재민씨와의 사랑에 눈이 멀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인정하겠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료의 마음을 모른 채 했는데 지금에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해서 ‘잘 사니?’하고 물어볼 만큼 난 뻔뻔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친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다.
오늘은 12월 20일, 내 생일이다.
재민씨를 만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생일도 좋지만 애인과의 생일이라~
이 얼마만이란 말인가! 하지만… 재민씨와 단 둘의 생일은 단지 꿈일 뿐.
친구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오늘 친구들에게 재민씨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모니터에 윤경의 엠에센 메시지가 깜박였다.
‘경주야, 오늘 지연이는 못 온대. 갑자기 야근이란다.’
‘그래?’
‘연락 한다더니 전화 안 왔어?’
‘잠만… 지금 문자 왔다. 미안하댄다. 걔 회사는 맨날 야근이야?’
‘그러게 말이다. 며칠 째 잠을 몇 시간 잔 지 모르겠다더라.’
‘불쌍한 것. 담에 만나서 맛난 거나 사줘야지.’
‘그래, 나중에 보자! 바이 바이~’
“
택배 아저씨가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내 이름을 불렀다.
“전데요.”
상자를 하나 건네주고는 수령증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뭐지?’
보내는 사람 이름이 없다. 단지 롯데백화점 본점이라고만 되어있었다. 재민씨가 보낸 선물인가?
“남자친구가 선물 보냈나봐요?”
“민대리는 좋겠어.”
“오늘 저녁에 만나서 주면 될걸…”
“그게 아니라니까요. 여자들은 이런 거에 감동한다구요!”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상자를 열었다.
아!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무나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마놀로 블라닉의 돌세(D’orsay)!
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신고 나왔던, 은색 토오픈 슈즈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이 돌세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드라마 인기만큼이나 올라간 인기 때문에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 누가 도대체 누가 이걸 보냈을까?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나는 조심스럽게 하얀 종이를 거두고 내 두 손에 구두를 담았다.
아~ 정말이지 구두에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 바닥으로 뭔가 ‘툭’하고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주었다. 조그마한 카드였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그것을 펼쳤다.
‘료칸 대신 마놀로 블라닉’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이것만이 카드 안에 적혀있었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누가 보내는지 알 수 있었다.
료다. 내가 료칸에 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료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마놀로 블라닉이라니…
재민씨는 단지 마놀로 블라닉이 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 나와 유명한 브랜드라는 것만 알 뿐
내가 캐리만큼이나 병적으로 그 구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순간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이걸 받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고맙다고 연락을 해야 하는 건지,
내 생일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을 기억하고 있어서 감사해야 하는 건지,
료에게 이 구두를 돌려 보내야 하는 건지… 나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구두를 상자에 넣어 뚜껑을 닫았다.
료가 보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그 선물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상자를 책상 구석에 밀어놓고는 담배를 피우러 밖을 나갔다.
“하하하”
재민씨의 농담에 나와 내 친구 윤경과 효은이는 함박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재민씨, 혹시 저 보신 적 없으세요?”
친구 효은이가 물었다.
참, 효은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패션지 ‘Vogue(보그)’의 기자다.
윤경의 초등학교 친구였는데 같이 자주 만나다 보니 내게도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직업이 기자인지라 사물이나 사건을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졌고
패션지 기자답게 화려한 패션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어쨌든… 효은이는 재민씨에게 질문을 했다.
“글쎄요… 전…”
“왜?”
“아니… 전에 어디서 뵌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아서…”
“글쎄요… 이런 미인이시면 제가 기억 못할 리가 없는데…”
“어… 그런 이야긴 경주가 없을 때 말해주셔야 되는데…”
“하하하 그런가요?”
그때 재민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그는 핸드폰을 가지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걸 보고는 내게 고개를 돌리던 윤경이가 말했다.
“아~ 남자 너무 괜찮다. 그치?”
“엉. 요즘 한 번 결혼한 건 흠도 아니라더라. 저 정도면 거의 완벽하지.”
“경주 뒤늦게 복 터졌네. 조만간 청첩장 보내는 거 아냐?”
“그럴 리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즘 내심 그가 내게 프로포즈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혼이 절실히 필요하다거나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이면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면 결혼해서도 서로의 꿈을 위해서 도와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
내가 일본으로 구두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간다고 할 때 무턱대고 반대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상하게 낯이 익어.”
“광고하는 사람이니까 어디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기도 하겠지.”
“아냐… 어떤 모임은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아는 건 또 아닌 거 같고…”
“재민씨하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알았던 거겠지.”
“그런가?”
나는 갑자기 ‘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 멋진 남친에, 생일이시기까지 하신 분이 왠 한숨이래?”
“아~ 그게… 오늘 나한테 택배가 하나 배달됐어.”
“그래? 선물이야? 누가 보낸 건데?”
“음… 선물은 마놀로 블라닉의 실버 돌세.”
“앗! 진짜야? 어디 보여줘. 보여줘.”
나는 두 친구의 성화에 구두 상자를 그녀들에게 넘겼다.
그녀들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어보고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아니 이 비싼 걸 누가 보낸 거야? 재민씨? 아님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거야?”
“료”
“뭐!”
둘은 동시에 나를 쳐다 보았다.
“정말이야?”
“응.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난감한데…”
그녀들은 다시 내게 구두 상자를 넘겨주었다.
“돌려줘야 할까? 돌려 줄려면 직접 만나야 하는데… 그게 영 껄끄럽고…”
“누구 통해서 줄 사람은 없고?”
“그게… 전에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걔를 못 만나고 있나봐. 전화를 해도 안 받는 다고…”
“그럼 니가 전화해도 받질 않겠네… 전화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 민주? 민지? 여튼 그 여자한테 줄 수도 없잖아. 둘이 사귄다는데…”
“그렇지?”
“여튼 복잡하다 복잡해. 뒤늦게 연애복이 터져서 좋다만 왜 한꺼번에 와서 난리들이냐고. 순서대로 차례대로 와주면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연애도 사랑도 어려운 것이지. 너무 너무 급해서 택시를 타려고 하면 지나가는 모든 택시 안에 손님이 타 있고 기다리다 지쳐 이제 천천히 갈까하고 마음 먹으면 어느 새 빈 택시들이 옆에 줄줄이 서대잖아.”
“맞다. 맞아.”
“그래도 너… 그 료라는 사람 한 번은 만나야 되지 않냐?”
“야~ 경주가 걔를 왜 만나? 사귄 것도 아닌데…”
“아니 그래도 둘이 마음이…”
그 때 재민씨가 자리로 돌아왔다.
“죄송해요. 갑자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급한 일이래?”
“아니, 제작 업체에서 일정에 맞춰서 광고물 제작이 힘들다고 한다고…”
“응”
“저희가 두 분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방해지. 그걸 말이라고?”
“넌 좀 빠져. 니 애인한테 묻고 있잖아?”
“하하하… 아녜요. 방해라니요. 안 그래도 경주 친구분들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봐야 해서 친구분들 아니였으면 경주한테 더 미안할 뻔 했어요.”
“다시 회사루요? 정말 바쁘신가봐요.”
“얼마나 바쁜지 어쩔 때는 내가 이 사람하고 연애하는 거 맞나 싶어.”
“지금 친구들 앞에서 내 흉 보는 거야?”
“이 정도가 흉이라고 생각해? 있잖아, 재민씨 이렇게 보면 되게 젠틀맨 같잖아. 근데…”
“경주 그만 그만! 친구들한테 점수를 좀 따야 되는데 여자 친구가 이렇게 방해를 해서야…”
“경주야, 그건 니가 잘못했다. 사람 앞에다 두고 흉이라니… 조금 있다 가셔야 된다니까 그때 이야기하자! 호호호”
“아~ 이거 오늘 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큰 일 나겠는데요.”
“하하하하”
나의 생일을 위한 저녁 식사는 그렇게 유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행복이 계속 되리라 생각했다.
료에 대한 미안함만 빼면 이 이상 즐거울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바램일 뿐…
인생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잠시나마 깜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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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예고 -
우연히 잡지를 뒤지던 경주, 료가 모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모델을 하게 된 이유가 자신때문인 것을 알고 괴로워하는 경주. 그것도 잠시 그녀를 괴롭히는 또 다른 사건이 생기게 되니...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은 알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첫댓글 너무 감질맛나게 쓰셔서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화이링~~ 감기조심 하세용
감기 조심하세요~vanness님두요~ 혹시 오건호를 좋아하시는...? 다음 편 쓰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려는데...ㅋㅋㅋㅋ..혹시 경주 친구가 어디서 본 기억 한다고 했는데 그일아닐까??? 싶은데.....료가 경주를 못잊고 모델 생활 하고있네요....다음편도 기대 할께요....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열심히 쓰고 있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올릴게요~
경주가 약간 어리버리인가요? 순진한 사람인가 말이죠.
글쎄요~어리버리한가? 다들 사랑 앞에서는 어리버리하기 마련이죠!
횡재했어요!!호호홋,,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봐요? 제 글로 인해 횡재의 느낌이 들었다면... 정말 감사하단 말씀 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많이 기다렸답니다..^^ 웬지...재민에게서 냄새가 솔솔~~경주가 상처입을것 같은...담편은 빨리 올려 주실거죠..맬 인소에 클릭 한답니다~~
월남치마님, 다행히 방금 다음 편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성실 연재 할 수 있을란지... 그래도 저 노력하고 있단 거 알아주실 꺼죠?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너무 재밋습니다ㅋㅋㅋ
감사합니다. 처음 글을 남겨주셨네요~ 갈수록 응원의 메시지가 많아져서 기운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