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앞서 선수 소개 중 박찬호가 인사하는 모습이 펫코파크 전광판에 보입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12년 만에 박찬호(33)가 꿈의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코칭스태프와 케빈 타워스 단장은 심사숙고 끝에 포스트 시즌 25명 로스터에 박찬호를 전격 포함시켰습니다.
시즌 마지막 날까지 등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본인도 포기했던 자리지만 팀에서 생각하는 박찬호의 가치는 그보다 높았습니다.
케빈 타워스 단장은 박찬호의 발탁에 대해 투수 코치 대런 발슬리와 불펜 코치 대럴 에커필즈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4일(이하 한국시간) 경기 전 밝혔습니다.
타워스 단장은 “비록 애리조나 등판에서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지난 2주간의 불펜 피칭에서 찬호의 구위는 아주 좋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찬호가 제 몫을 해줄 것으로 우리는 믿으며, 특히 경기가 길어지고 4~5이닝을 소화해줄 투수가 절실할 때 찬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타워스 단장은 또한 “찬호는 올 시즌 우리 팀의 성공에 큰 몫을 해줬다. (수술 후에도)컨디션 회복을 위해 정말 열심히 했으며, 클럽하우스에서 아주 인기가 좋은 선수다. 동료들은 모두 그를 아주 좋아한다. 팀워크의 면에서 볼 때도 만약 찬호가 로스터에서 탈락했더라면 실망할 동료들이 많았을 것이다.”라며 ‘투수 박찬호’ 외에도 훌륭한 동료로서의 또 다른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정규 시즌 최종전에 앞서 외야에서 에커필스 코치를 앉혀두고 피칭을 하던 박찬호
지난 1일 애리조나에서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NL 서부조 우승 기념 T셔츠와 모자에 일일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무언의 작별 인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포함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인도 생각했습니다. 파드레스 담당 기자들도 하나 같이 불가능 쪽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날 원정팀 감독실에서 저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보치 감독은 “불펜 피칭 등으로 준비를 계속 해왔으므로 (찬호의 발탁 여부를)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파드레스 이적 후 박찬호가 보여준 행적에 코칭 스태프와 수뇌부는 훨씬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음이 내표돼 있었던 모양입니다.
동료들에게 친절한 선배의 역할을 잘 해주었고, 특히 수술까지 받는 큰 고비에서 보여준 성실성과 노력, 그리고 투지가 팀 수뇌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선수들에게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자기 몸보다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코치들, 동료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던 경기 외적인 면이 큰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합니다. 박찬호는 정규 시즌 마지막 날까지 애리조나 체이스필드의 외야에서 피칭을 계속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그의 공을 받아준 것은 에커필즈 코치였고, 피칭이 끝나고 상의를 한 것은 발슬리 코치였습니다. 그들의 긍정적인 보고서가 박찬호의 발탁에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피칭이 끝나고 발슬리 코치와 피칭에 대해 상의하는 박찬호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파드레스는 브라이언 스위니, 존 앳킨스, 스캇 캐시디 등 쓸만한 우완 구원 투수들을 로스터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박찬호와 함께 역시 동료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노장 구원 투수 루디 세아네스를 포함시켰습니다.
팀의 결정을 전해들은 박찬호는 “팀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정말 기쁘다. 팀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몫이든 하고 싶다. (포스트 시즌에 뛴다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경기 전 선수들을 소개할 때도 박찬호는 우디 윌리엄스, 데이빗 웰스 등과 함께 팬들의 가장 큰 박수갈채를 받아, 팀에서 인기 높은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지난 1996년 박찬호가 루키 신분으로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포함됐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5전 3선승제를 취재하기 위해 저도 LA와 애틀랜타를 오갔습니다. 그러나 경기 자체는 팽팽하게 진행되면서도 다저스가 3연패를 당한 그 시리즈에서 박찬호는 11명의 투수 중에 유일하게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제 루키 투수이니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올 것이다.’라고 위안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 동안 단 한번도 포스트 시즌 출전의 기회가 박찬호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경기전 미국 국가가 제창되자 박찬호만 모자를 손에 든 뒷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 역시 시즌 마칠 때까지 기회는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막판 극적으로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포함이 됐습니다.
물론 파드레스 입장에서는 실리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포스트 시즌을 치르다보면 반드시 선발 투수가 초반에 무너지거나, 마냥 끝나지 않는 연장전이 벌어지는 경기가 나옵니다. 그런 경기에 대비해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선발 경험이 풍부한 박찬호를 대기시킨다는 대비책입니다.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가 의외의 혼전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박찬호가 활약하는 모습이 가을 잔치를 장식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샌디에이고] 민훈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