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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귀연산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靑山
근흥중학교 |
09 : 50 |
죽림고개 |
11 : 36 |
용새골 |
10 : 10 |
지령산(220m) |
12 : 15 |
장승고개 |
10 : 50 |
갈음이 고개 |
12 : 55 |
88봉 |
11 : 07 |
안흥진 |
14 : 20 |
<금북정맥 구간별 경로>
구간 |
산행일 |
산행 경로 |
산행 거리 |
산행 시간 |
1 |
2008.4.20 |
칠장사-배티고개 |
8시간 |
22km |
2 |
5.4 |
배티고개-태조산 좌불상 |
8시간 |
21km |
3 |
5.18 |
태조산-경부고속도로 |
4시간 |
10km |
4 |
6.1 |
경부고속도로- 전의 돛고개-성요셉병원 |
6시간 |
15km |
5 |
6.15 |
성요셉병원-차령고개 |
6시간 |
13km |
6 |
9.7 |
차령고개-봉수산-인제원고개-각흘고개 |
8시간 |
15.6km |
7 |
9.21 |
각흘고개-봉수산-천방산-극정봉-차동고개 |
7.5시간 |
16.2km |
8 |
10.5 |
차동고개-국사봉-금자봉-운곡고개-효재골 |
8시간 |
16.8km |
9 |
10.19 |
효재골고개- 공덕재 |
8시간 |
17km |
10 |
11.2 |
공덕재-백월산-물편고개-우수고개-상담 |
8시간 |
16km |
11 |
11.16 |
휴양림-가루고개-생미고개-꽃조개고개 |
7.5시간 |
16km |
12 |
12.7 |
꽃조개고개-백월산-홍봉산-덕숭산 |
8시간 |
16km |
13 |
12.21 |
나본들고개-가야산-가루고개 |
7.5시간 |
17km |
14 |
2009.1.4 |
가루고개-동암산-간대산-성왕산-윗갈치 |
7시간 |
18km |
15 |
1.18 |
윗갈치-장군산-몰래산-팔봉중교-상옥리 |
7시간 |
18km |
16 |
2.1 |
강실고개-백화산-유득재-매봉산-근흥중 |
7시간 |
19km |
17 |
2.15 |
근흥중-천막산-근흥-연포-안흥만 |
4시간 |
12km |
계 |
칠장사-차동고개-가야산-안흥만 |
119.5 |
278.6 |
<금북정맥 지도>
<출발 시간>
성공의 길을 여행하기 위해, 정해진 출발점은 없습니다.
그 이전에 당신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도 상관없습니다.
이 여행이 경이로운 이유는 오직 '지금 당신이
어디로 향하느냐'만 중요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됩니다.
-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의
《핑(Ping)!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중에서 -
<금북정맥의 긴 흐름이 봄의 여정 속에 한가롭다>
<칠장사에서 시작하는 금북정맥의 대장정>
<금북정맥의 지난 여정>
* 1구간(칠장사 - 배티고개)
금강의 북쪽에 있어 이름 붙여진 금북정맥은 충청도민의 한(限)과 설음이 가득 밴 산길이다. 조선말 천주교의 전래와 전란 그리고 세도정치의 학정으로 핍박받던 백성들의 항거가 줄을 이었던 민중들의 생노병사가 담긴 곳이다.
독립기념관과 역사를 뒤바꾼 순국선열들의 생가와 의병 기념관들이 즐비한 이곳 산줄기는 충신들이 많이 태어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오늘 일곱 명의 악인들을 구제하여 새 생명으로 탄생시켰다는 칠현산을 시작으로 우리가 지날 많은 금북정맥 산하는 백성들의 고뇌와 비탄 그리고 열망과 충성이라는 자존심이 가득한 노정이다.
얼마나 장한 발걸음인가!
역사의 현장을 넘어 다가올 미래와 앞날을 먼저 보는 지혜를 정맥 종주에서 찾기를 희망한다.
귀한 인연으로 만난 아름다운 동행은 새로운 사람들이 다가오고, 만나고, 함께 땀을 나누는 멋있는 장터가 되기를 갈구한다.
속리산을 지나 보은과 음성을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좌우로 가르고 안성과 천안을 지나 내달릴 정맥 길이 순탄하고 안전한 산길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가야산을 지나 태안 안흥항에 무사히 닻을 내리는 그날 함지박만한 양은 다라에 막걸리 가득 부어 한숨에 들이키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서로 돕고 아끼며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인 귀연산꾼 모두에게 행복과 환한 마음이 산정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배티고개>
* 2구간(배티고개 - 태조산 좌불상)
산경표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개념에서 우리 산하를 아름답게 이어지도록 수를 놓았다. 백두대간이라는 큰 줄기에 1정간과 13정맥의 거미줄 같은 구조로의 배열은 신기하고 오묘하다.
직접 대간과 정맥을 따라 산줄기를 걷다 보면 각 지역의 풍습이나 농사, 장례, 언어, 음식, 방언, 마을 이름 등에서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음에 놀란다.
금북정맥과 한남정맥, 그리고 한남금북정맥이라는 하나의 선은 그저 산을 이어놓은 선이 아닌 민족의 애환과 혼돈 그리고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투시경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안성맞춤의 고장 안성(安城)과 성거 진천(鎭川) 그리고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답고 평안한 이름을 지닌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그냥 생성된 것이 아닌 지역의 특성과 특징을 함축한 말이 분명하다.
칠장사를 지나 물 흐르듯 내달린 금북은 서운산과 위례산을 지나며 옛 성의 자취를 보여준다. 비록 백제의 옛 성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정학적인 면에서 한강과 금강의 경계선에서 국경선에 위치했음은 확실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옛 기록에 의하면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이 곳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치열한 교전은 백성들의 많은 사상을 가져왔고, 국경선을 지키기 위한 산성 쌓기는 백성들의 땀과 피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이 곳 주변에는 사찰이 많은데 수도 서울에서의 낙향이나 속세를 떠나 산으로 파고든 도피처, 민심의 안식처 그리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기도처로써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배티고개와 성거산이라는 곳을 지나며 천주교 성지를 많이 볼 수 있음은 박해의 그늘을 암시한다. 줄 무덤과 무명성지를 간직한 베티와 성거산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성직자들의 안식처이다.
참으로 순한 산줄기의 이어짐이다. 멀리 독립기념관을 품고 있는 흑성산이 지척이다. 또한 성거산을 지나 물 흐르듯 너울거리는 태조산 자락도 아름답다.
천안(天安)이다. 천안은 우리나라 지명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이름이다. 하늘아래 최고로 편안한 도시가 천안인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나 천안은 급부상 중이다. 서울권으로 유입되면서 엄청난 대학이 자리를 잡아 교육 도시가 되었고, 삼성이 옮겨오면서 기업 도시의 규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젠 50만을 넘어 충남 제일의 도시는 물론 경제가 꿈틀거리는 기업 도시로서의 위용을 갖추기 위해 도시 발전이 숨 돌릴 틈도 없다.
수도권에서 이전된 기업들의 공장과 첨단 산업 시설의 새로운 공단이 여기저기 하루가 다르게 건설되고 있다.
아마도 태조산 자락에 위치한 좌불상의 기원과 고려 10훈요 이후 막혔던 수도 서울의 기운이 차령을 넘어 천안에 안주하는지도 모른다.
독립을 위하여 몸 바친 원혼을 달래는 독립기념관의 건립도 천안을 평안한 안식처로 만들었으며, 국토를 종단하는 경부고속철도의 개통도 천안의 발전에 가속도를 붙였음이다. 호두과자, 천안삼거리 흥흥! 어쩌면 느리고 인심 후한 천안의 명성은 대기만성의 긴 기다림 속에 재탄생하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좌불상을 도는 믿는 이들의 기원과 태조산을 등에 지고 나라의 장래와 미래를 크게 열도록 기원하는 각원사의 열망은 성취되는지 모른다.
이제 태조산을 지나 독립기념관을 넘어 저 애국선열의 투혼과 열렬한 충성심을 기리는 공주, 예산, 홍성, 당진, 태안을 따라 걷는 긴 걸음을 계속함에 의미가 더한다.
<성거산>
<태조산 능선>
* 3구간(태조산 -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경기도 평택을 지나면 천안 땅이다. 그 사이에 안성천이 흐르고 있다. 예전에는 ‘소사하(素沙河)’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던 작은 강이다. 이름 그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성천 강변에는 질 좋은 모래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으나, 개발시대가 시작되면서 집 짓는다고 마구 퍼내는 바람에, 게다가 환경오염으로, 지금은 볼모양이 없다.
천안 교통의 역사는 1번 국도가 나고 경부선이 깔리던 근대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먼 삼한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팔도 제일의 교통요지였다. 경상도를 가든 전라도를 가든 충청도를 가든 예나 지금이나 천안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안 교통의 역사는 홍경사지 비갈 같은 문화유산이나 천안삼거리 같은 전설로 여실히 남아서 우리에게 전해온다.
한남금북과 금북정맥을 잇는 대장정에서 동행이 없이 홀로 가는 여정이다. 대곡리 고개 하산 지점을 확인하고 좌불상이 있는 각원사로 차를 몬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서인지 경내는 한적하다.
큰 연등에는 온갖 불자들의 소원이 담긴 글들이 빼곡하다. 각원사 주지 스님은 일본에서도 불교를 크게 일으켰는데 그 곳 시주가 이곳 대가람의 원동력이라 한다.
청동 좌불상은 아침 햇살에 장엄한 자태를 뽐내며 남북통일을 기원한다. 태조산을 가려면 약수터 갈림길까지 된비알을 올라야 한다. 20분의 오르막은 아침인데도 힘들다.
쉼터에서 숨을 고른 후 잘 정돈된 오솔길을 걷노라니 몇 명의 천안 시민들이 천천히 걸으며 건강을 즐긴다. 조금 더 가니 성불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암릉이 보이고 조망터가 있어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린다.
송림이 너무도 안락하고 가끔씩 아카시아 향기가 짙게 풍겨 나는 오솔길은 너무도 편안하여 느리게 걷는다. 가끔씩 쉼터와 운동 기구가 보이고, 휴식을 즐기는 산보객을 만난다.
<독립기념관을 품고 있는 흑성산>
<전의를 지나는 산줄기-비룡산>
* 4구간(경부고속도로 - 전의 돛고개 - 성요셉병원)
홀로 정맥을 했던 스승의 날을 떠올리며 대곡리 고개로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안내한다. 많은 이야기를 귓전으로 들으며 당도한 고개는 어느새 녹음이 짙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인 길을 따라 고동 고개를 넘으니 비룡산 이정표가 보인다.
용이 날았다는 지명의 유래는 이곳에 비행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이함을 느낀다. 예로부터 지명의 유래는 그냥 정해지는 것이 아니거늘 비룡산의 자취는 조상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전의 읍내리 산성이 있었는데 바로 옆의 고려산성과 함께 중요한 성곽으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룡산은 지금은 전의연수원 건물이 들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산객을 맞는다.
몇 마리의 견공들이 지나는 길손에게 컹컹 짖으며 밥 얻어먹은 티를 내며 따라오는데 산행 들머리를 표시하고 줄행랑친다.
전의 지역은 금이성, 운주산성, 읍내리산성, 이성, 증토산성, 고려산성, 작성산성, 송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한다. 지금도 전의 지역은 경부고속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경부국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삼남에서 온 모든 물류가 지나는 천안을 금북정맥의 산길이 지킨다면 그 주변을 경계하는 전의 지역 산성이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구간 지난 고려산성은 자료에 의하면 기우제를 지나는 제단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문헌에 고려산이라는 명칭만 보이고 성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어 폐성된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산의 이름이 고려(高麗), 혹은 고려(古麗)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주변의 정황으로 미루어 태조 왕건과 관계가 있는 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잘 가꾸어진 골프장을 지나 덕고개에 들어서니 철도와 국도가 길을 막는다. 안내 리본을 붙이고 철도를 건너 국도 굴다리를 지나 산정에 오르니 지나온 정맥이 한 눈에 보인다. 멀리 전의 연수원이 비룡산과 함께 약간의 고도감을 나타내지만 뚜렷한 능선이나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의 동쪽에 있는 운주산이 큰 모습으로 다가오고 전의 지역이 분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 산성이 많이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요셉병원으로 하산하는데 치매전문병원으로 가톨릭 대학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수녀원들과 간호사들이 수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못에 아름답게 핀 수련과 연꽃, 그리고 주변의 야생화와 꽃들을 사진 찍으며 운주산으로 향한다.
<군부대 탁약고로 우회했던 금북정맥>
*5구간(성 요셉병원 - 차령고개)
수녀님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잘 가꾸어진 숲의 요람에서 한적함을 즐긴다. 조용한 산속에 깃든 요양원은 연못과 정원 그리고 그림 같은 건물들이 아담하다.
인생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진리이고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순리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노후이고 모든 이에게 다가오는 숙명적 과제이다. 노후를 준비하는 삶에서 성요셉 병원을 바라보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종교를 갖는 것도 느지막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신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늙음을 추하지 않게 하며, 무언가 기댈 수 있는 신앙은 삶의 방식에서 긍정적이 된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후를 생각하며 노인이 된 핍박받은 부모 세대의 서러움을 느껴본다. 누구에게도 의탁할 수 없는 우리 세대는 더욱더 미래의 노후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길이 없어진 정맥은 가시덤불과 잡목이 무성하여 지나기 힘들다. 숲에 핀 야생화를 길손 삼아 숲을 헤치니 탄약고 입구가 나온다.
뻗지가 너무도 새까맣게 열매를 맺어 산객들을 반긴다. 너도나도 매달려 따먹는 재미가 그만이다. 까만 이빨과 입술 거기에 미소가 어울려 아름답다. 자연을 벗 삼는 산길은 언제나 여유와 낭만이 있다.
청계님 동생이 운영하는 리조트에서 화려한 뒤풀이가 신난다. 잰 돼지고기, 삼겹살, 3, 5년 묵은 김치, 홍탁, 그리고 잣술, 양주, 동동주, 맥주, 그리고 소주가 산꾼들 모두를 흥겹게 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산행 뒤풀이가 너무 여유롭고 풍요롭고 한가하여 좋다. 널찍한 정원과 수영장 근처 벤치에서 찻잔을 기우리는 동행들 표정이 너무도 평안하다.
아름다운 동행들과 함께한 행복한 하루의 정맥 발길이 가슴 뿌듯하다.
<차령고개>
<정맥이 지나는 길목엔 국도와 고속도로, 골프장이 함께 한다>
* 6구간(차령고개-봉수산-인제원고개-곡두재-각흘고개)
600미터급 세 봉우리를 지나니 갈재고개가 나타난다. 갈재고개에서는 광덕산 가는 길이 잘 나 있다. 약간 착가하면 광덕산 쪽으로 가기 싶다. 이곳은 충청남도 공주시와 천안시 그리고 아산시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광덕면과 송악면 그리고 유구읍이 한 무리를 이루는데 공주의 밤, 유구 쪽의 배나무, 그리고 천안 쪽의 호두나무가 눈에 띈다.
송림 우거진 오솔길을 1시간여 걸으니 39번 도로가 보인다. 각흘고개라는 팻말과 주유소가 있고,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각흘고개라는 이름은 고개의 아래에 있는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 성골마을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인데 각흘고개가 소가 누운 형상 중에서 뿔이 있는 부분이라 하여 각흘(角屹)이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있는 금계령이라 붙여진 주유소 주인은 이 고개가 금계산 줄기이기 때문에 금계령이라고 말한다. 각흘고개라 기록된 모든 지도가 잘못이라는데 충청남도청 자료실이나 관계자들에게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
중간에 탈출한 회원들은 곡두고개에서 빠져 흐르는 계곡 수에서 몸도 씻고 시원한 모습으로 뒤풀이에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공주 정안 밤 막걸리로 산행 피로를 푸는데 노란 색깔에 구수한 맛이 특이하였다.
<각흘고개>
<천안을 지나 예산으로 접어드는 정맥>
* 7구간(각흘고개-봉수산-천방산-극정봉-차동고개)
봉수산을 뒤로하고 산꾼들은 극정봉을 향하여 쉼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각흘고개에서 북쪽으로 향하던 정맥은 완전히 방향을 남으로 튼 후 차동고개를 향하여 줄달음친다.
칠장산에서 갈라진 산길의 이어짐은 조금도 그 끊어짐이 없이 계속된다. 산과 산을 잇고, 능선과 능선을 이어주는 장쾌한 산맥의 연결은 아무리 조상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지만 산길을 걸으며 그 오묘함에 반한다.
개천이나 강물을 빗겨 간다고 생각하지만 산경표는 오히려 강과 천을 따라 지도를 그리고 정맥을 연결하였다.
그물처럼 연결된 우리 산하의 대간과 정맥, 지맥, 기맥은 철저한 우리 지형의 모두를 담고 있다. 조상들의 족보처럼 산들을 연결한 지혜도 대단하지만 조금의 착오나 끊어짐 없이 연결된 산길을 확인하며 걷는 기쁨도 자부심을 갖게 한다.
모두들 허리를 굽혀 윤기 나고 속이 꽉 찬 상수리를 줍느라 시간이 더디다. 하지만 모두들 주머니 가득 상수리를 채우며 길을 걷고, 이를 모아 자루에 담으니 제법 무게가 나간다.
한남금북정맥과 금북 정맥의 대장정이 시작된 이후 가장 적은 인원이 참여할 노정이었다. 텅텅 빈 베이스캠프는 노력하는 산행대장의 애간장을 태우고 무사히 종착지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크게 볼 것도 대단한 산세도 그리고 유명한 산도 없는 금북정맥의 구간들은 산꾼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조상들의 역사와 숨결 그리고 민중의 삶이 확연히 투영되는 따뜻함을 만날 수 있는 값진 발길이다.
설악산과 지리산 그리고 전국의 명산이 아름답고 멋지지만 9정맥의 발걸음이 한국의 산천 방방곡곡을 휘도는 가치와 의미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서서히 금북의 뱃길은 청양을 향하고 예산과 홍성, 태안을 향한다. 충남의 속살을 찾아 나서는 정맥 종주에 귀연산꾼들의 애정을 기다려본다.
<차동고개>
<사과로 유명해진 예산의 길목 차동고개>
*8구간(차동고개-국사봉-금자봉-운곡고개-효재골)
충남에서 청양은 무척 오지였고, 군세가 작아서 발전이 더뎠다. 근래에는 인구도 줄어 선거 때 마다 예산군과 부여군에 묶여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산이 많아 충남알프스라 불리는데 칠갑산과 함께 청정 지역으로 이름이 나 있다.
특히 대중가요 칠갑산과 청양고추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구간은 차동고개를 지나면서 예산군을 벗어나 청양 지역으로 접어든다.
대전에 사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청양에 가기가 힘들었지만 근래에는 도로의 발달과 더불어 대천, 서산, 당진가는 통과 지점으로 왕래가 잦다.
청양군 북상면의 지역으로서 윤형갑, 윤세웅 부자의 효자가 살았으므로 효젯골 또는 효제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분동, 효제리, 도곡리, 언묵리, 청계동 일부를 병합하여 효제리라 해서 운곡면에 편입되었다.
<청양의 운곡 효재골>
<사양면의 수목원을 지나며>
<백월산>
* 9구간(효재골고개- 공덕재)
선두는 잡목 헤치고 거미줄 거두며 열심히 산길을 뚫어 주는데 뒤에서 팅자탱자하면서 노닥거리다 길 잃고 헤매고.. 무임승차도 모자라서 민폐만 끼치니... 그러고도 회 쬐끔 남았다고 투덜거리는 뻔뻔함... 곳곳에 숨어있는 가을 단풍과 시골 풍경은 황태자님 산행기를 믿고 곁눈질로 지나칩니다. 강회장의 도움말이 새로움을 준다.
잡목 길을 벗어나자 멋진 소나무가 반긴다. 길은 임도로 이어지고 편안한 길이다.
왼쪽 아래로 고원식물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고 또 오른다. 이곳 동네사람들이 구봉산이라고도 한다는데 봉우리가 다섯 개가 아닌 아홉 개 인가 보다.
남양면의 예전 이름은 사양면(斜陽面)이었다 한다. 해가 기운다는 뜻의 ‘사양’이 고을 이름이 된 유래도 재미있다. 남양면에 매우 좋은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어 ‘황금우물’이란 뜻의 ‘금정리’마을이 있다.
이 우물의 물이 좋아서 백제의 왕들은 왕도 사비성(부여)에서 90리(36km)나 되는 이 금정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 한다. 물을 짊어지고 가는 왕궁 사람들이 남양면의 온직리와 부여군 장평면 거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을 때 해가 기울어서 그 고개 이름을 사양치(斜陽峙)라 했고, 이 사양치의 ‘사양’이 남양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양의 뜻이 지는 해로 좋지 않다 해서 1987년 이름을 남양면으로 고쳤다. 지금도 사양치 고개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서산>
* 10구간(공덕재-백월산-물편고개-우수고개-정암사-상담)
정상을 지나 오서정으로 향하는 능선의 향연은 억새와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비록 억새의 하얀 속살이 떨어지고 누런 대공들이 을씨년스럽지만 긴 능선 자락 가득 품고 있는 날망 억새는 오서의 자랑이다.
능선이 끝나가는 지점에 설치한 오서정은 아무리 사진 포커스를 맞춰도 구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정말 볼품없는 오서정이 서 있음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름답지도 않고 산세와 어울리지도 않는 오서정의 초라한 모습에 오서산의 장관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디자인과 미술적 구도를 고려한 정자의 설치를 고려하던지 차라리 없애는 것이 좋을 듯싶다.
오서정을 지나 능선 내리막은 너덜과 계단 그리고 가파른 하산으로 힘이 부친다. 30여분을 쏜살같이 내려서면 정암사에 닿는다.
정암사!
아주 오래전 찾았던 정암사는 낡고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종 누각을 지나 극락전을 바라보는 정암사는 새로 칠한 단청과 시멘트 길 그리고 어딘가 허전함을 주는 절로 변모해 있었다.
길 주변에 걸린 현수막에 억새와 오서산 그리고 정암사에 관한 시가 적혀 있어 이색적 느낌을 준다.
정암사는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무왕 때 무렴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어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찰임에 분명하다. 대웅전은 다시 지은 것이고 유물로는 부도와 초석이 고작이나 절 주위에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과 맑은 계류가 흘러 여름철 좋은 피서지가 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결성현(結城縣) 편에 "정암사(正菴寺)는 오서산(烏栖山)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어림잡아 조선조 초기 이전의 사찰로 짐작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산신각, 적묵당, 심검당, 범종루 등이 있는데 거의 근래에 신축되었거나 증축한 건물들이다.
<장항선 신성역을 지나며>
* 11구간(휴양림-가루고개-생미고개-꽃조개고개)
봉곡사로 들어선다. 마당에 곱게 물든 나무들이 절집의 가을 정취를 더한다.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니 휴양림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다. 휴양관을 지나 금자동 마을에서 오서산 정상 방향으로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오서산 갈림길(휴양림에서 0.9km)에 닿는다. 왼쪽으로 오서산의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뚜렷하며, 오른쪽이 정맥길 이다.
홍성은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홍주의병 등 홍주의 반일 분위기를 잠재우고, 같은 충남지역에 위치한 "공주"와 일본어의 발음구별이 어려워 행정적 불편을 피하기 위해 1914년에 군. 면의 통폐합령에 따라 일제에 의하여 홍성으로 개칭되었다.
잠시 거치러진 숨을 고르고 금자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광성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 계속 5분 정도 진행하면 공덕고개에 닿는다.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와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의 경계인 공덕고개는 고개를 올라 다니기가 가팔라서 힘이 든다하여 공들여서 넘어 다니는 고개라 공덕고개라고 부른다 한다.
오랜만에 보는 간이역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길을 이어간다. 커다란 노간주나무가 눈길을 끄는 밀양박씨와 전주이씨 합장묘가 있는 가족묘지에서 왼쪽으로 정맥 길이 열려있다. 135봉을 오르는 길은 가시덤불이 많다.
<능선을 어디 가고 들판엔 온갖 식생이 아름답다>
<충남의 새 도읍지 홍성을 접어들며>
<덕숭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정맥의 뒤안길을 바라본다>
* 12구간(꽃조개고개-백월산-홍봉산-덕숭산)
급경사 나무 난간을 내려가 산해암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니 마을이 나타난다. 밭 가장자리 감나무에 달린 너무도 맛있는 홍시들이 산꾼들을 유혹한다.
너도나도 감나무에 달린 살짝 언 홍시의 맛에 산행의 어려움도 잊고 단맛을 즐기며 마을에 당도한다.
맛과 정이 있는 점심시간은 춥지만 훈훈한 귀연 타임이다. 과메기와 맛깔스런 반찬들이 군침을 돌게 한다. 적당한 반주도 훈훈한 정에 더해 자리를 빛낸다.
자그마한 언덕을 넘으니 바로 까치고개다. 도로가 이리저리 혼란스러운데 근처에 큰 쓰레기 처리장이 있어서 개설되었기 때문이다.
철망 울타리를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오르니 지루한 산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백월산에서 홍동산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을 걷는 길이다. 근처에 저수지로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만나는데 정맥은 물을 건너지 않으므로(山自分水嶺) 되돌아서서 길을 찾으니 산불 지역으로 리본이 보인다.
기묘한 바위와 시원한 조망을 제공하는 암릉 지대를 지나니 제법 가파른 등로가 계속된다.
후미에 처져 된비알을 오르는 힘든 노정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발길이 더디다. 멀리 지나온 정맥 산줄기를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지만 내딛는 등줄기는 땀으로 범벅이고 정상은 멀고도 아득하다.
무려 한 시간을 오르니 펑퍼짐한 정상이 나타나고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바로 옆 가야산도 전혀 보이지 않고 정맥 산줄기도 가름할 수 없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길을 찾으니 정맥 리본이 없다. 아마도 덕숭산을 북쪽으로 넘어가는 등로이다. 수덕사 하산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 출입금지 팻말이 보이고 철조망으로 길을 막아 놓았다.
가야할 정맥 루트는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되는데 한참 후 길을 잃는다. 미끄러운 길을 타기 위해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대간의님과 초롱이 정혜암 쪽으로 내려서고 만 것이다.
전화를 하지만 응답이 없다. 다시 오던 길로 올라 길을 찾으니 표지기가 왼편으로 걸린 길을 발견한다.
그런데 전혀 사람의 발자국이 없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음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무려 13명이 지나갔는데 눈길엔 그저 소복한 눈의 연속이다. 다시 전화하지만 반응이 없어 홀로 길을 찾아 달린다.
가끔 동물의 발자국이 있어 동행이 되지만 익숙한 표지기가 있어 믿음이 간다. 약 20여분을 내 달리자 29번 국도가 보이고 자동차 굉음이 들린다. 안도하는 마음도 잠깐 다시 전화를 하니 금강초롱이 응답한다.
정혜암을 발견하고 다시 되돌아 오른다는 연락을 받고, 정확한 지점을 알려준다.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 기다리다 다시 산길을 올라 마중을 간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오르막이 심하고 무리했던 하산 내달림으로 무릎이 심하게 아파온다.
한참을 오르니 위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이내 두 사람을 맞는다. 너무도 반갑다. 산중의 해후가 이렇게 기쁘고 반갑기는 오랜만이다.
정맥꾼들의 행로를 어림잡아 본 우리는 아연실색한다. 앞에 간 일행들이 전혀 다른 길로 덕숭산을 넘은 것이다.
<덕숭산을 오르며 힘든 발걸음을 잠시 쉰다>
<정맥의 중요한 쉼터 뒤풀이>
<아스라한 정맥의 뒷 모습은 우리 산하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한다>
<가야산>
* 13구간(나본들고개-가야산-가루고개)
충남 10대 명산을 높이 순으로 열거하면, 서대산(西大山·903.7m), 대둔산(大屯山·878m), 계룡산(鷄龍山·845m), 오서산(烏棲山·790.7m), 진악산(進樂山·732.3m), 광덕산(廣德山·699.3m), 성주산(聖住山·680.4m), 가야산(伽倻山·677.6m), 식장산(食欌山·623.6m), 칠갑산(七甲山·560.6m)이 된다. 가야산은 예산군과 서산시의 경계에 있고, 경남 합천 가야산과 이름이 같다.
건너편 채석장의 흉한 모습을 목표 삼아 한티고개로 내려선다. '한티'라는 이름은 순수한 한글이다. 한자로 쓰면 큰 고개라는 뜻인 '대치(大峙)'가 된다. 고개가 있는 지역의 마을에 붙는 흔한 이름이다. 지금도 한티재, 한티고개 등의 이름이 있는 지역이 전국적으로 많다.
서산마애삼존불로 내려서는 갈림길에는 선답자들의 표지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펄럭인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돈다.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오른쪽 멀리 서산마애삼존불이 보인다.
목장 철조망에 매달아 놓은 선답자들의 리본은 천태산 들머리에서 본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 다시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개념도상 206봉은 과거 김종필씨 소유지였던 삼화목장으로 커다란 왕릉을 연상시킨다. 파란 초지가 한겨울에 색다른 풍광을 만든다.
서산시 운산면 소중 1리 마을 표석이 보인다. ‘가루고개’라고 하는 우리말 이름의 한자지명은 갈현(葛峴)이다. 지명유래를 찾아보면 모두 칡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가루’나 ‘갈’을 갈(葛)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또, 가루고개(갈우고개)는 ‘가로 넘어가는 고개’ 라는 뜻이며, 가로→가루→갈우로 변화된 것으로 어느 특정한 위치에서 볼 때 능선이나 계곡과 나란히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삼양목장>
<정맥인지 알프스인지 너무 아름답다>
<동행으로 뭉친 정맥팀이 한 가족인양 따뜻하다>
* 14구간(가루고개-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왕산-윗갈치)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이외수의《하악하악》중에서 -
<서해대교에 노을이진다>
<집뿌리재의 느티나무>
<태안의 보고를 지나는 산꾼 모습>
* 15구간(윗갈치-장군산-몰래산-팔봉중교-상옥리)
집뿌리재는 서산의 괜차뉴님에 의하면 칡뿌리재가 아니라 집뿌리재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박성태의 남한산경도를 참고로 서산-태안 산경도를 작성하던 중 어느 지도 문서에도 이름이 없어 동리사람에게 물어 보니 처음엔 꽃뿌리재라 하여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칡뿌리 재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금학리 이장 두 분에게 확실한 지명을 물으니 철자 받침과 발음에 의해 칡뿌리-쥐뿌리-짚뿌리로 결론을 못 내리던 중 그 고개를 관할하는 팔봉면 금학리 3구 이장님 말씀이 옛 어르신들이 예전에 그곳에 있는 집의 뿌리(기둥뿌리)까지 호랑이가 모두 파헤쳐 버려 생긴 이름이라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유래에 의해 아직도 동네(금학3구)엔 짚뿌리로 알고 있지만 볏짚 할 때 짚이 아닌 집뿌리가 맞는다고 이장님과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구전으로 이어져오는 마을 이름이나 고개 명칭의 유래는 꽤 재미있고, 또한 잘못 표기되고 있다. 정확한 유래와 호칭을 발굴하여 지도에 틀린 지명이 나오는 해프닝을 일깨움도 재미있는 일이다.
금강산을 오르는 한참의 땀 흘림이 만만하다고 정맥을 깔보는 이들을 혼 내킨다. 헉헉거리며 다들 힘들어하지만 단련된 정맥꾼들에게 금방 꼭대기를 보여준다.
여기저기 자신들이 지나친 흔적을 매달았는데 갖가지 리본들이 아름답게 바람에 일렁인다. 전국에 불붙은 산행 열기는 대간을 지난 정맥으로 이어졌고, 이젠 지맥과 기맥을 찾아 산천을 일주한다.
나중에 수랑재에서 본 금강산은 암봉을 보여주지만 산정을 지나는 산꾼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산마루에 불과하여 실망을 준다.
아마도 시야가 불분명하여 멋진 조망터를 놓쳤음이다. 조금은 아쉬움을 준다.
금강산에서 갈라지는 팔봉지맥은 팔봉산으로 이어지는데 서산의 진산 팔봉산을 품고 있다. 흐릿한 팔봉산을 그냥 지나침이 못내 아쉽다.
차리고개를 지나면 친근한 마을 이름인 건넛말이 나오고 푹신한 산길을 오르면 물래산이 금방이다.
해발 140미터의 물래산은 역마산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부석지맥이 갈라진다. 각 지역의 산꾼들이 만들어 논 이정표와 기맥, 지맥의 명칭들이 다양함도 산행 중 얻는 기쁨이다.
붉은 재를 오르니 까마득히 오석산이 앞을 가로 막는다. 오늘 정맥의 마지막 힘든 산길인데 공사장 굉음이 들려오는 길목의 산길은 소나무 발매로 어지럽게 놓인 나뭇가지가 지천이다.
그래도 곧게 자라도록 애쓰는 산림사업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익 없는 수종의 삼림사업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우울하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신나는 내리막길이다. 송림을 지나 130봉을 마지막으로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원산후와 속말을 잇는 고개인데 강실 고개라고도 부른다.
저만치 같이한 일행들이 뒤풀이를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훈훈한 캠프의 정을 느끼는 마지막 노정이 깊은 시골의 정취 마냥 아름답다.
산행 코스를 놓쳐 먼 길을 돌아온 일행들이 숨 가쁘게 나타나 무용담을 뽐낸다. 하얀 김이 찜통에서 맛깔스런 칼국수와 바지락이 엉켜 진국으로 변한다. 봄동 배추 겉절이를 감싸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한 움큼은 정말 맛있다. 함께 나누는 뒤풀이의 정착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면 너무 잘한 것 같다.
큰 양푼의 칼국수가 모두 비워 지고 정성들인 모두의 수고로 배를 두드리며 대전으로 향한다. 숲속을 부드럽게 걷고, 고장의 역사와 서민의 애환을 느끼며 걷는 금북정맥의 파노라마는 더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귀연과 함께 한다.
함께한 모두에게 인간적인 배려와 정을 느낌으로 감사하다.
<벌판을 지나지만 간혹 송림도 만난다>
<고마운 베이스캠프는 좁고 험한 길도 함께 한다>
<종착지에 가까워지는데 팔봉산이 배낭을 잡아 끈다>
* 16구간(강실 고개-백화산-유득재-매봉산-근흥중)
금북정맥의 대장정을 시작한지도 벌써 16번째이다. 금강의 북쪽에 연결된 산길을 따라 칠장사로부터 달려온 발걸음이 어느덧 안성과 천안 그리고 공주와 청양, 보령, 광천, 예산, 홍성, 서산을 거쳐 태안에 이르렀다.
더딘 발걸음이 느려보여도 지나온 거리가 상당하다. 충청도를 휘도는 산길의 정취는 푸근하고 다감했으며, 내 고장을 걷는다는 안정감으로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제 바다가 보이는 태안으로 향하는 이른 새벽의 대전 탈출은 단 한 번의 노정을 남겨 두고 있다.
지나는 길에 우리가 걸었던 산줄기들이 차창을 스치는데 쉽사리 지나오지 않았던 노정의 발길이 아스라하다. 덕숭산과 가야산 그리고 서산을 휘도는 벌판의 우뚝한 산들이 산꾼의 시야에서 포커스를 잃지 않고 다가와 지난 발길을 떠올리게 한다.
꾸불꾸불 지난 노정의 끝자락을 향한 버스는 용케도 강실 고개를 찾아 산꾼들을 토해 놓는다. 쉼 없는 산꾼의 발길은 오늘도 금북 노정의 끝자락을 수놓으려 산줄기의 고갯마루를 향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산줄기가 이어진 금북 노정의 끝자락 태안의 정경은 오늘도 다정다감한 송림의 향기를 내뿜으며 산객을 맞는다.
백화산 정상은 의외로 넓은데 정상 표지석과 봉화대지가 있다. 봉화대는 횃불이나 연기로 소식을 알리는 곳인데 왜구의 침입과 조망터로 최적지이다. 산 전체가 흰색으로 되어 있어 백화산이라 부르는데 태안 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산이다.
봉화대 옆으로 난 길에는 쌍괴대(雙槐臺)란 각자가 보이는데 태을암 뒤편의 강선대와 낙조봉의 동경대 각자가 글씨체가 비슷하다. 각자 옆의 또 다른 글씨에 이기섭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기섭이라는 사람이 회화나무(홰나무)가 자라는 백화산을 등정하고 각자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가 백화산을 칭송하며 쓴 글자로 보인다.
태을암에 내려서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감모대(感慕臺)이다. 치성을 드리거나 제사를 모시는 제단으로 보이는데 감모란 그리워하여 느낀다는 뜻이 있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바위벽면에는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는 글씨와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각자가 보인다. 또한 널따란 바위 바닥에는 바둑판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마애삼존불 옆에는 한 줄기 계곡물이 흐르는데 이곳의 큰 바위 벽면에는 태을동천(太乙同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일소계(一笑溪)라고 쓰인 바위가 있다. 19세기 후반 김규항(金圭恒)이라는 이와 그 후손 김윤석이 쓴 글씨라고 한다.
태을동천은 유명한 골짜기여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태안으로 길게 뻗은 계곡이 주민들의 보배로운 지역으로 지금까지 아낌을 받고 있으니 바위에 새겨진 각자가 더 멋있게 느껴진다.
태을암에서 능선을 타고 조금 내려오면 낙조봉을 만나는데 바위에 동경대라 음각되어 있다. 그 옆에는 단군기원 4224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에 썼음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이름이 적혀 있는데 태을암에 단군을 모실 때 함께한 사람들 이름인 듯하다. 또한 서쪽편 바위에는 낙조봉이라 음각되어 있고, 시구(詩句)가 적혀 있는데 해석이 모호하다. 한자를 연구하는 분에게 해석을 의뢰할 예정이다.
낙조봉은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매 모양으로 소성팔경의 하나로 낙지봉 또는 동경대라 불린다. 화창한 날에 이곳에 올라 서해를 감싸 안고 도는 저녁노을을 감상하면 그 모습이 장관이라 하며,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쉰재와 장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먼 길을 쏜살같이 달리는 귀연식구들은 어느새 시간당 4km를 주파하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아침에 늦은 시간을 벌충하고 주어진 거리를 완주하려는 바쁜 걸음은 동네를 지나 축사 그리고 보리밭을 넘어 매봉산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린다.
매봉산은 금북정맥의 마지막 높은 산으로 바다가 지척으로 보이고 삼형제 바위와 염전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안흥만 끝자락이 눈앞에 아스라이 춤춘다.
송림이 우거진 매봉산을 지나 성황당 고개에 당도하니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잘 정돈된 묘에서 휴식을 취한 후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후동고개를 거쳐 73.2봉에 당도한다.
가야할 끝자락 안흥만과 서해 바다가 지척으로 보이고 정맥의 종착역이 가깝게 시야에 든다.
<태안이 한 눈에 보이는 백화산 정상>
<서산 마애불 보다 연대가 앞선다는 태을암 마애불 미소>
<저 산을 넘으면 서해가 보인다>
<안흥만 염전>
<멀리 삼형제 섬이 보이고 정맥의 끝이 가깝다>
<해발 고도는 낮지만 숨이 차다>
<장승 고개>
<삼형제 섬>
<드라마에 나왔다는 홀로 선 소나무 한 그루>
<금북정맥 종착역>
* 17구간(신대삼거리-장승고개-죽림고개-지령산-안흥만)
금북정맥의 끝자락은 근흥의 신대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육지의 형상에서 기다랗게 바다로 뻗은 반도 모양의 태안을 끼고 도는 마지막 피날레는 힘도 나고 기분도 상쾌하다.
지난 해 기름 유출 사고로 숱한 발길들이 오고 갔던 길을 지나 산줄기에 오르니, 안흥만으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용새골을 지나 서해 바다에 떠있는 삼형제 섬을 보는 맛도 정겹다. 115봉과 124봉 그리고 110봉을 넘으니 장승이 서 있는 장승고개에 당도한다.
장승고개를 지나 바다로 향하면 연포해수욕장이다. 예전 대천 해수욕장이 뜰 무렵 삼성에서 만들었다던 연포해수욕장은 아늑하고 조용한 휴식처로 각광 받았었다. 하지만 소나무에 가려 조망을 보여 주지 않는다.
88봉을 지나 죽림고개에 다다르니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이 분주하다. 신진도항이 개발되어 수산물의 반입이 증가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 겨울이지만 사람 사는 생동감을 느낀다.
144봉과 205.8봉을 지나노라면 국방과학연구소를 볼 수 있다. 건너에 무기 시험장이 있고, 자주 국방의 산실로 국군 현대화에 큰 기여를 한 곳으로 중요한 시설이다.
군부대가 위치하여 조금은 우회를 해야 하지만 220봉 지령산 근처에서는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안흥만에서 바다에 위치한 봉우리로서는 가장 높아 주변 산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안흥 성지가 조망되고 신진도로 들어가는 신진대교가 지척이다. 갈음이 고개에 당도하니 안흥만이 코앞에 보인다.
정맥의 끝은 항상 마지막 봉우리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의 마지막 143봉과 127봉은 너무 유순하다.
갈음이 백사장에 우뚝 선 홀로 선 소나무가 너무 앙증스럽고 멋지다. 빠르게 마지막 봉우리를 넘으니 정맥의 끝자락이 시야에 환하다.
아마도 17구간 모두를 마무리한다는 들뜬 기분에 쉽게 내달린 때문이다. 긴 방파제가 서해 파도를 막고 있지만 여기가 금북의 끝이라니 조금은 서운하고 아쉽다.
칠장사를 떠나 금강의 북쪽을 아우른 긴 산줄기 흐름이 멈추는 안흥만은 현대 문명의 상처를 고스란히 경험한 슬픈 현장이다.
기름 유출로 개펄과 어장이 황폐화되고, 그리고 삶의 현장을 잃어버린 어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환경오염 체험장이다.
아름다운 우리 산하는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이 함께 한다. 지키고 보살펴야 후손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백두대간과 5개의 정맥을 끝내는 귀연의 발길이 머무는 이 곳 안흥만은 또 다른 정맥의 출발점이다.
멀리 서울의 북쪽을 잇는 한북정맥의 긴 흐름을 찾아 떠나는 노정의 시작인 것이다.
겨울과 봄 그리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의 끝자락에서 결실을 맺는다. 금북정맥의 대 파노라마는 지방 향토의 문화 체험과 역사의식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주민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던 가치 있는 발걸음이었다.
작지만 큰 발자국이라고 여겨도 좋은 테마를 간직한 종주 산행의 기틀인 것이다.
어려운 발길을 서슴없이 함께 했던 동행한 모든 산꾼들과 보람을 같이 누리고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서해 바다 건너 또 다른 대륙 중국이 있으므로 국태민안의 泰安은 무한히 발전할 것이다.
회원들의 분주한 손놀림으로 뒤풀이를 끝낸 후 귀가 도중 연포 해수욕장을 들른다. 고즈넉한 백사장의 분위기에 모두들 환한 표정이 아름답다.
수고한 모든 분들께 급북 정맥 종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뒤풀이>
<연포 해수욕장에서>
<석양의 연포>
<자랑스러운 귀연>
첫댓글 우리고장의 산줄기을 걸어보았습니다.
야~대단하다. 물좋고 산좋은곳 감상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