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와 orientation.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노트.
◐반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회고.
징비록(懲毖錄)은 도체찰사를 역임한 류성룡이 자신이 겪은 참상을 반추한 책이다. 같은 시기를 겪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미증유의 시기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私) 기록이기도 하다.
류성룡은 1599년 환갑을 앞둔 무렵에 고향인 안동 하회로 돌아 갔다. 그리고 왜란의 원인과 전개 과정, 결과에 대한 분석까지 아울러 기록한 다음 ‘징비록’ 이라고 이름 붙었다. 징비는 시경에 나오는 ‘’여기징이비후환(予其徵而毖後患)(즉) 과거를 거두어 미래의 근심을 삼간다는 문구에서 따온 말이다.
제목처럼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혹독한 시절을 경험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실책들을 낱낱이 밝혀 반성하고자 했다. 비극이 벌어졌다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해야 하고, 원인을 분석했다면 누군가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류성룡은 비겁했던 과거를 용기있게 고백함으로써, 전쟁을 책임지고자 했다. 그리고 같은 참사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기꺼이 스스로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증거로 삼고자 했다.
-강민구 지음 “인생의 밀도” 중에서
♣독서노트 註.
☞도체찰사. 조선시대 전쟁이 났을 때 군무를 맡아보던 최고의 군직(軍職).
☞류성룡은 전쟁을 회고하는 오언의 장편시를 지었는데, 이 시에서 그는 전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치란무정형(治亂無定形) 치란은 정해진 형체가 없으나
인위가이복(人爲可以卜) 사람은 치란을 점칠 수 있다네.
영념음우초(永念陰雨初) 곰곰 생각하니 난리 초기에
주무혹미밀(綢繆惑未密) 단속이 혹 주밀하지 못했네
묘당좌린훤(廟堂坐麟楦) 조정엔 속 빈 강정들만 앉아 있고
변비다후복(邊鄙多朽木) 변방엔 썩은 관리들만 많았지.
출전. 서애 선생 문집 제2권에서 발췌, 번역은 한국고전 번역원.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조선 선조 때 명제상.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崖), 본관은 풍산. 임진왜란때 병조 판서와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였다. 도학과 문장에도 이름이 높았고, 징비록, 상례고증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집으로 서애집 이 있다.
◐반추의 축적, 사고가 습관이 되지 않기 위한 준비.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조정에서 장신(莊辛)이 양왕에게 간신들을 물리치기를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훗날 진의 침공을 받아 성양으로 망명한 양왕은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장신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장신은 이렇게 답했다.
‘토끼를 발견하고 머리를 돌이켜 사냥개를 시켜도 늦지 않으며, 양이 달아난 다음 우리를고친다 해도 너무 늦지 않습니다.’
장신이 전하는 교훈은 일을 그르친 뒤에도 반성하고 수습한 다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며, 나아가 후사가 있기에 이미 위기가 끝나 더 이상의 대응이 필요 없게 될지라도 철저하게 반성하고 그 간의 일을 반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중국에서 벌어졌던 일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뜻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다’는 속담이다. 이이 벌어지고 난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 미리 관리를 철저히 하자는 뜻이다.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였겠지만 망양보뢰와 비교해보면 사후 처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 한 뉘앙스다.
일상이 위기라는 것은 사고가 빈번한 탓에 내성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내성이 생긴 탓에 경각하고 방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 지금 소를 잃은 원인은 대부분 이전에 소를 잃은 다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다시 소를 외양간에 들여 상황을 회복하는 데에 만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를 잃고 난 다음에도, 이미 때가 늦었어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반성의 시간을 거쳐야 소를 잃은 사고에 길들여 지지 않을 수 있다.
-강민구 지음 인생의 밀도 중에서.
◐ 크리스마스 전통.
4세기에 로마에서 크리스마스 축하가 시작되었다. 9세기가 되어서 비로소 주요한 기독교 명절로 삼기 시작한 크리스마스는 현재 세계 160 개의 나라에서 공식적인 휴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 마스가 기독교 배경을 지닌 서구세계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특별한 축하의 절기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상업주의가 크리스마스를 왜곡시키고, 승리주의적으로 해석된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작 예수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한 문제들 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황에서 특별한 절기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기독교 라는 한 특정 종교에만 제한된 종교적 절기의 의미를 넘어서 있다. 지금보다 나은 새해,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기다림과 희망의 절기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전통은 네가지 중요한 보편가치를 담고 있다. 희망, 평화, 기쁨 그리고 사랑이다. 예수가 추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고 자한 가치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 들은 제각기 왜곡된 이해로 오염되어 왔다. 이 개념들을 호명해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기 힘든 이유이다.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 상투적 이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전적 의미를 괄호속에 넣고서, 새롭게 그 의미를 재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투성의 덫에 빠져서 무의미하고 공허한, 단지 상업주의로 변절한 크리스마스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금전을 낭비하는 절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김남순 지음 질문 빈곤사회 중에서.
【선경의 독서 노트】
오늘부터 정확히 열흘 뒤에 2026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가는 해의 일어 났던 일을 반추하고 오는 해(새해)를 잘 대비하는 의미 있는 한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서 "크리마스 전통"에서 김남순 교수께서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상업주의로 변질되었다고 개탄하면서 그 의미를 상투성에서 벗어나 새롭게 재음미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김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마찬가지로 새해를 맞이 하면서 필자가 재음미 했으면 하는 잠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12월8일 이 컬럼에서 다룬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 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카돌릭 교인이 지켜야 할 3대 의무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주일미사에 참여할 것. 둘째, 일년에 두 번 이상 고백성사의 의무를 이행 할 것( 성탄절과 부활절 두 절기 때는 필수), 셋째, (형편에 따라)일정금액의 교무금을 낼 것. 이 세번째 의무인 교무금 납부의무의 시작은 연말에 교적을 가진 성당을 방문하여 다음해에 낼 교무금을 책정 하는 일입니다 (신자본인이 얼마를 내겠다고 신고를 하면 성당에서는 이를 받아 들이는 행위). 그런 연후에 매달 책정된 교무금을 정기적으로 납부 함으로서 신자의 교무금 납부 의무가 완료 됩니다. 교무금은 성당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제반 경비를 신자들이 갹출하는 후원금 성격이므로 신자의 교무금 납부 의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참고로 제가 다니는 성당에 발간한 이번주 주보에 의하면 교우들이 지금까지 교무금을 책정한 비율은 "미책정 세대가 책정세대보다 훨씬 많다"고 알렸습니다. 구체적인 숫자 통계가 있지만 여기서 공개 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직 연말까지 시간이 남아있긴 합니다. 그러나 예년의 경험에 비추어 교무금 책정세대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리는 일은 금년에도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카돌릭교에서는 사후에 연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연옥의 라틴어 어원은 "씻는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죄를 지은 영혼이 연옥에서 속죄를 통해 정화 된 후 천국낙원으로 상승하는 원리입니다. 반면에 살인 등 대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사멸됨으로 연옥에 발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살아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나, 사후 하늘나라에서도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는 "인과론"은 불변입니다. 은혜로운 주님 성탄의 주일에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주님과 독실한 신앙인 사이에 오고 간 가상대화록의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재구성해 봤습니다.
어느 독실한 신앙인이 불경기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열심히 기도 하기 시작했다.
"주님 제가 평생 힘껏 최선을 다해 당신을 섬기고 아무 보답도 청하지 않았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저는 늙고 파산을 하게 되었으니, 제 평생에 처음으로 청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안된다고 안 하실 줄로 확신합니다. 제가 복권추첨에 당첨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여러 날이 지났다. 또 몇 주일이 지났고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그는 그의 절망에 빠져서 어느 날 밤 외쳤다.
"왜 저 한태 기회를 한번 주시지 않습니까, 하느님?" 그러자 갑자기 하느님께서 대답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야 말로 나한 테 기회를 한번 주려 무나! 왜 복권을 한 장 안 사는 거지?"
요행(僥倖)이란 아무 노력 없이 멋진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요행이라는 한자를 분해 해 보면 요(僥)자는 사람인에다 높을 요(堯)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행(倖)자는 사람인에다 행복할 행(幸)자의 조합입니다. 요행이라는 글자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요행은 합당한 노력이나 희생의 대가 없이 "높은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시간을 내어 과거를 돌아 보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 만큼 중요합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위기와 실패의 순간을 분석하여 나아갈 바를 가름하면 인간은 과거에 잃은 것을 미래에 서 얻을 수 있는 길 이 열립니다. 그러나 과거 조선 조야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류성룡이 징비록(懲毖錄)에서 교훈을 남긴지 불과 삼십 여년 후에 조선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미증유의 국난을 다시 겪게 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조야가 류성룡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낳은 교훈을 우이독경(牛耳讀經)으로 흘러 보냈기 때문 일 것입니다.
망양보뢰(亡羊補牢)에서 장신이 전하는 교훈은 일을 그르친 후에도 반성하고 수습한다면 훗날을 도모 할 수 있다 입니다. 이는 서양 속담 "이미 엎질러진 우유를 두고 울어 봤자 소용 없다" 와 사뭇 결이 다른 태도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과거의 실수를 반추하며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것이 현재를 사는 사람의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이 금년에 일어난 다사다난했던 일들을 반추해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유종의 미는 끝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습니다. 2026년의 시작은 2025년의 걸어온 발자국을 반추하며 2026년의 나아갈 길을 가름하기 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반추와 오리엔테이션 이 필요한 때 입니다.
주님 성탄 축하 드립니다!!!
♣성탄절에 기억해야 할 명언 몇 구절.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루카복음 6장 31절.
◐사랑은 자연의 제2 태양이다.-조지 챕만(1559-1634),영국태생 시인,극작가.
◐사랑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하나다. 인생은 덧없고 잔인하지만,그럼에도 불구 하고 화려하다.-헤르마 헤세(1877-1962) 독일태생 시인, 소설가.
◐모든 사람은 그의 삶을 꾸려 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옛말에 뜻에 부합하는 직업의 의미 (직업은 소명이라는 뜻을 가진 다의어 임)즉 개체의 능력을 활용하여 잘살아야 할 책무가 있다.-리차드 떠블류 리빙스턴(1880-1960) 영국 고전학자, 교육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