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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특수전교육단 부사관교육대 원문보기 글쓴이: 내마음도193기 (준오아빠)
요샌 특전사에 대한 기사나 이야기 들을 짬짬이 찾아서 읽어 보고,공감도 하고 걱정도 하고..그러합니다.
공수교육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 들은듯 합니다.
아래글이 어머님들 께선 용어나 상황이 생소 하셔서 이해가 안될수도 있으나..우리 자랑스런 아들,딸 들의 모습 만으로도
감동 이기에 올려 봅니다..
아래글은 다른 싸이트 에서 허락 없이 옮겨온 글이지만 글쓰신 선임 특전님도 기뻐 하실줄 믿으며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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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보다 먼저 군생활하신 특전사 선배님들에게 다시한번 존경에 말씀을 드리며,
이글은 공수교육과 특전사 전체를 보여줄수 있는 글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이고,
기억에만 의존한 글이라는것을 명심하시고, 교육이란것이 늘 그렇듯. 당시의 환경과 변화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날수 있다는것을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고등학교때부터 졸업할때까지 운동과는 전혀 거리가 먼사람이었으며,
허구헌날 술이나 퍼먹고, 졸업하고도 한동안 방황하던 그런 그저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친한 친구를 통해 이쪽 세계를 알게 돼었고, 특전사를 가기 위해서 술,담배, 친구들을 끊고 무단히 노력끝에 들어갑니다.
저는 22살에 입대를 하였고, 군입대전에는 육교위에 올라가는것도 두려워할정도로 심한 고소공포증에다가,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가도 제대로 못놀정도로 물에 대한 공포증이 심했었습니다 ㅋ
자 그럼, 시간여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특전사 입대후 한달이 지나, 군사기초훈련을 끝내고 공수교육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들어간다.
먼저, 공수교육전에 공수교관들과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을 갖는다. 각 번기별 교관 소개와, 혹시 특전사 입대전
타군에서 공수교육을 받았거나, 이전에 퇴교를 당한경험이 있는 자들도 미리 교관들이 알아둔다.
그때 우리동기들중 공수교육 경험자가 있었으니, 해병수색대 출신 2명과, 임관전 3번이나 퇴교를 한 동기 한명이있었다.
퇴료를 했었던, 동기 이녀석은 임관할때까지 자격강하 횟수만 16회였다. 오죽했으면 구대장들이 말하길
"넌 여단가면 가자마자 행보관한테 강하조장 보내달라그래 새꺄"
어쨋든 그렇게 조를 나누고 번기를 나누고 각번기의 담임교관을 정한다.
공수교육 입교자가 우리 후보생들 합해서 총 300여명이 된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 이원들을
전부 같은 교장에서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아침 PT는 같이 하되, 교육은 조를 나눠서 이루어진다. 크게 2개조로 나누고,
그안에 각번기가 있고, 각번기를 담당하는 교관이 담임교관이 되겠다. 조를 나누면 1개조에는 우리 특전사 후보생들이 무더기로
들어가고 다른조에는 특전사에 전입온 장교나 병사들, 그리고 타부대 위탁생들이 있겠다.
당시 우리와 함께 교육받았던 이들은, 장교들 포함,수방사 특공대, 그리고 공군에서 온 이들이었는데, 난 아직도 이들의 정체를 모르겠다.
베레모는 군청색을 썼었는데, 특수부대라고 할수 없는점이. 이들은 이미 하사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공수교육을 받으러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분명 특전사나 타군들처럼 후보생때 공수교육은 수료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난 아직도 이들의 정체를 모르겠다.
나의 담임교관님께서는 여군이셨다. 중사분. 키는 훤칠했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평범한 그런 여성이었다.
한 번기에는 교육생이 대락 15명? 정도 된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 담임교관은 여군이었지만, 공수교육1일차부터,
교육방식이 남달랐다. 아마도, 여군이기에 남군들한테 뒤쳐지기 싫어서 더더욱 독하게 우릴 가르켰을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쨋거나....공수교육 1일차 아침. 공수교육때는 무조건 전투화를 깨끗이 닦고 와야한다. 더러운놈은 열외다...
1일차 첫시간은 공수 PT를 배운다. 아주 친절하게 배운다. 1번부터 끝번까지 배우면 무조건 짧은 시간내에 외우는게 자신을 위해서 좋다.
PT를 배우고 공수교육때 필요한 주의사항들과 규칙등등을 배운다.
몇가지 기억이 남는것들.
이곳에서는 장교,부사관, 병사 모두 계급,군번 없이 교번으로만 불린다.
2보이상은 무조건 뛴다.
목소리와 눈빛은 교관을 잡아먹을듯이 등등이 있겠다.
여기서 교번으로만 불린다는것은, 아무래도 교관들이 전부 특전부사관이다 보니, 교육생중 장교들도 있고 당연히
교관들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있기때문이다. 계급을 위해주면 교육이 되질 않는다. 설사 교육생들중 장군이 있다해도 그는 교육생이다.
그러므로 우린 무조건 교번으로 불린다. 나는 133번이었다....
첫날아침부터 설마 우릴 뭐하겠느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교관들은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방탄모를 가지고 교육에 임하는데, PT시간에 방탄모를 교장 뒤에 열을 맞춰서 놓는다. 그리고 상의 탈의한 옷을
방탄모 속에 집어넣고 안보이게 뒤집어 놓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옷이 방탄모 밖으로 삐져나와도 열외시킨다.
그 옷만 찾아다니는 교관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스머프라 부른다. 파란 창공을 상징하는 파란티와 파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린 그들을 스머프라 불렀고,
큰교관은 큰 스머프, 작은 교관들은 새끼 스머프들...
아침 PT 시간에 큰 스머프가 앞에서 모든걸 지휘하면 새끼 스머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열외자들을 집어낸다.
열외자들은 뒤로 끌려가고 열외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스테레오 식이다. 나의 왼쪽귀에서 들렸다가 오른쪽으로 목소리가 들리다가
다시 왼쪽으로 들린다. 혼자서 선착순을 돌고 있다는 소리다. 미칠듯한 괴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공수교육때는 교장 이동간이나 선착순을 돌때 무조건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야 한다.
그러니 열외하고 나면 이미 떡실신이 된다. 공수교육은 생명과 직결되는 교육이기에 군기가 굉장히 엄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눈깔만 돌려도 열외다. 선착순도 교육을 안하고 돌때도 있다. 정말이다.
어차피 교육은 해야되니까 대충 돌리다 말겠지? 차라리 교육 안시키고 선착순만 돌린날도 있었다.
그리고 선착순 시에 어차피 첫번에 선착순 안에 못드니까 처음 몇번은 쉬엄쉬엄뛰는 교육생들이 있었는데, 그들또한
우리 새끼 스머프들이 친절히 잡아내주어 열외교육을 시켜준다. 그 열외교육은 차라리 선착순을 도는게 행복하겠다고 느껴질정도이다.
교관들이 선착순을 돌릴때 몇명씩 끊든, 마지막까지 잡아낸다. 예를 들어 한명씩 끊더라도 진짜 마지막 한명까지 잡아낸다.
정말 대단한 교관들이다. 각설하고,
PT가 끝나면 구보를 뛰어야 하는데 열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지 않으니 절대적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PT시간에는 절대로 빠질수 없는 소스가 있다. 아침부터 교육생들 정신 차려주게 하고 몸도 풀어줄수 있는게
바로 5분코스다. 5분코스라 함은 코스의 시간이 5분이라는게 아니라 300여명이 되는 교육생들중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5분까지 들어와야 한다해서 5분코스다. 우리는 첫날부터 5분코스를 돌았다. PT때 반복 구호가 나오자, 큰 교관은 실실 쪼개면서 말했다
"전부 좌양좌!! 자~ 여러분들에게 이제 5분코스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공수교육..아니 특전사의 모든 교육이 그렇듯..교육의 반이 뺑뺑이다..난 그래서 군생활때 말리기만큼 싫어했던게
선착순이었다.. 5분코스도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코스 중간중간에 서있는 새끼 스머프들이 또 잡아낸다...
그렇게 1일차 아침부터 5분코스를 간단히 3번정도 돌았다. 5분코스를 돌고서 처음 시작한 단상에 도착해서도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큰 교관을 바라보면서 미칠듯한 괴성과 함께 제자리 뛰기를 해야 한다. 마지막 인원이 도착할때까지다.
그리고 번기별로 구보를 떠난다. 첫날은 간단히 뛰었으나. 2일차부터 우리 담임교관께서는 각자의 애인을 가지고 오라며
비상낙하산을 들고 뛰었다. 하루는 하나만, 하루는 양손에 하나씩...그리고는 피구왕 통키를 줄곧 불렀는데,
나는 그때알았다. 피구왕통키 가사가 그리도 가슴에 와닿고 감동적인것인지를...그리고 항상 아침 구보시간에 단골손님처럼 퍼지는
동기가 하나있었다. 암만 생각해봐도 여기서 퍼질코스가 아닌데 퍼지는 동기였다. 어떤날은 퍼지는 정도가 아니라
옆으로 픽! 하고 쓰러졌다......덕분에 우린 중간에 오리걸음을 하며, "동기야~!!!!! 같이가자!!!, 동기야!!! 같이가자!!"를 외쳐야 했다..매일을..
구보후 교장에 도착하면
담임교관께서 우리에게 물을 뿌려주는데 이때도 좋다고 소리를 질러대야 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딜가지요!~!!"
"북한에 갑니다!!"
"무얼타고 가지요~!"
"낙하산 타고 갑니다~!!!" 그 질문을 매일했다...
그렇게 첫날은 간단히 아침부터 몸을 풀고 착지를 배웠다. 누군가는 접지로 배웠을것이다. 우린 착지로 배웠다.
착지는 작은 단상에서 시작해서 나중에 3단계 업그레이드 하여 1미터가 조금 넘는곳에서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가만히 서서 연습하지만,
나중에는 이동하면서, 전방, 후방, 측방을 연습한다. 공수교육 1주차를 착지에 다 쏟아부을 만큼 착지는 굉장히 중요하며,
그만큼 지겹도록 하늘의 별 갯수만큼 단상에서 뛰어내린다.그러므로 무릎과 발목이 무척 아파온다 정말이다...
착지 연습도 그냥하지 않는다. 앞꿈치,무릎 이 두단어를 좌측 우축 나눠서 계속 소릴 지르면서 뛰어야 한다. 또는 자신을,위하여를 외친다.
그렇게 어느정도 숙달이 되면 교육용 하네스를 착용하고 비상낙하산을 매고 교육을 한다. 비상낙하산은 우리의 생명이다.
비상낙하산을 착용하면 무조건 두손을 비상낙하산의 손잡이에 대고있어야한다. 교장 이동을 할때도, 선착순을 돌때도 무조건 대고 잇어야한다.
교관들이 제일 싫어하는것중 하나가 이것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교육 도중에 손 잘못 대고 있다가 열외돼서 떡실신된 동기들 많이 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강하시 만약에 주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잽싸게 비상낙하산을 펴야하는데, 우리처럼 강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공황에 빠져서 비상낙하산을 못편다는것이다. 그래서 비상낙하산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는것을 습관화 시켜서
공황에 빠지는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손잡이를 잡아당기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기능고장 처치 교육또한 무진장 시켜된다.
하네스를 착용을 할때는 당연히 신속한 동작이 필요하다.
교관이 먼저 말을 한다
"4번기!! 하네스 착용!!"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교번을 말하면서 외친다!"
"하네스착용!!!!133번!!!하네스착용!!!!"
이때는 정말 정말 진짜 손이 안보일정도로 움직여야 한다. 자신이 동작이 느리다고 느낀다면
나는 몸은 느리지만 빨리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어필할수 있게 발이라도 동동 구르면서 착용해야한다.
그렇게 하네스와 비상낙하산을 착용하면, 두손으로 비상낙하산을 뻥!!! 하는 소리가 나도록 치면서 또 외친다.
"하네스착용!!!! 133번!!!! 하네스착용!!!!!!" 이때 자기만 착용했다고 뻘쭘히 서있으면 또 끌려가서 투견처럼 선착순을 돈다.
그러므로 주변을 보고 아직도 착용중인 전우를 도와줘야 한다. 이것은 교관들이 만든 규칙이다.
그렇게 1주차가 지나가는데...나는 3일차때 위기가 찾아온다...바로..좌측 무릎 뒤쪽..바로 오금쪽이 미친듯이 아파왔던것이다...
공수교육때는 교육을 못따라가도 퇴교당하지만, 몸을 다쳐도 퇴교당한다. 실제로 나와 함께 같은 내무실에 있던 동기는 무릎연골이
찢어져서 유급된 상태였으니 나의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아침마다 5분코스를 돌고 구보를 뛰고 또 교육내내 선착순 돌고 착지하고...이때마다 아픈 다리보다 내가 아픈걸
교관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더 힘들었고 더 아팠다. 달릴때 왼쪽 다리가 땅에 닿을때면 오금이 찢어질듯이 아프면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교육단 생활중 처음으로 의무대를 가서 진통제를 받았다...진통제를 먹으면서..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일부러 교관앞에서 뛸때는 진짜 이가 부러지도록 꽉물고 괜찮은척 뛰었다....
그렇게 1주차 마무리가 되어갈때쯤, 저녁...집에 전화를 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때가 두번째 통화였다...그때난 이미 목이 쉴대로 쉰후였다...
다음은 어머니와의 통화내용...
"엄마 저에요..."
"응~! 그래...잘지내지?"
"네...엄마 몸은 괜찮으세요?"
"그럼...엄마는 걱정말어...너는 다친데 없지?"
나는 순간 아무말도 못했다...무릎이 너무 아팠는데...아프다고 말을 할수 없었다..
어머니도 분명 당뇨가 있으셔서 몸이 안좋으실텐데...난 몇초간 아무말도 못하고 ...
"네.,...전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고 금방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막사 뒤로 가서 얼마나 울었었나..........
나는 그때 생각했다...
나는 실업계를 졸업했고, 배운 기술도 없고,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내나이 22살이다...
특전사 오려고 군영장도 2번이나 연기했다. 내가 특전사 간다고 했을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웃었었다.
그리고..........
집도 가난했다.............
그래서 난...무조건 임관을 해야했다.............
공수교관들이 가르쳐준 어머니 라는 군가가 있다 잠시 적어보겠다.
외로운 밤하늘에 낙하산타고, 일만 이만 헤아릴적에,
어머니께서 울고계신다. 못난아들 생각하면서,
어머니 어머니 울지마이소, 울지말고 돌아가이소
이다음에 제대하면 못해준거 다해주리다.
아들아 아들아 울지말거라, 울지말고 돌아가거라.
이다음에 제대하면 못해준거 다해주리라.
그렇게 공수교육1주차가 지나고, 드디어 2주차가 시작된다. 2주차는 조금 신선했다.
1주차가 끝나는 주말이었을것이다. 무장강하 대비해서 군장결속하는 교육 시간이었다.
그런데 학생장이 시간을 잘못 통보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교육시간에 엄청나게 늦게 갔다....
그날 무장결속 교육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 안하고 2시간 선착순 돌았다.
완전군장에 한손에는 산악복을 들고서 비오는 우리 막사 연병장에서 미친듯이 돌았다...온몸이 흙으로 팩을 햇었다...
꿀같은 주말에 우린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채 막사로 터벅터벅 돌아왔다...
그날 주말임에도 출근했던 2구대장이 우릴 맞이해주었다...
어깨 축쳐진 우릴 보고는...왜들 그렇게 기운들이 없냐며, 기운내라고...
그러면서 한마디 던졌다..
"에휴...어쨋든...생일축한한다..!!"
우린 뭔소린가 햇다, 오늘 누구 생일이야? 하며 두리번 두리번 웅성웅성...
그러나 구대장이 말한다
"임마들아 오늘 국군의 날이잖아~!! 니네 생일!"
그랬다...우린..군인이었다...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내가 군인이 된것 같았고,
이런 피로조차도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진짜 멋있는 군인, 멋있는 특전사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뿐이라고 자부했다.
구대장이 어서 샤워하고 체육관으로 모이라고 했다. 오늘은 국군의 날 티비 시청과 약간의 간식을 준단다.
후보생들이 얼마나 단순한가. 티비도 보여주고 간식도 준단다. 하네스 착용했던 그동작으로 씻고 집합했었다 ㅋ
참고로 우린 후보생 3개월동안 티비도 한번못봤다. 담배도 못폈고 전화통화는 2번, 피엑스도 두번가봤다.
물론 독도법 교육때 전화통화 및 흡연을 했던 동기들도 있엇다..
어쨌든 그렇게 달콤한 휴일이 지나고 2주차가 시작됐는데,
2주차 훈련은
막타워라 불리는 모형탑 훈련과 이동중 착지, 공중동작등 무조건 땅에 쳐박히는 교육외데 것들이 많았다.
모형문이라고해서 각 항공기별 탑승요령과, 기체내에서 주의사항 탑승서부터 해서 강하시까지의 모든 제반사항에
대한, 진짜 강하를 위한 준비가 시작돼었다.
1주차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2주차때는 비가 제법 와서 교육은 더 힘들었다.
가끔 쉬는 시간에는 비둘기들처럼 열을 맞춰서 옹기종기 쭈그리고 앉아있어야 하는데,
이때도 앞꿈치 무릎을 붙히고 앉아야 한다. 이제막 쉰거 같은데, 얄미운 교관이 호루라기를 분다...
첫번째 호루라기는 교육을 시작할테니 준비하라는 신호이고,
두번째 호루라기는 교육을 시작할테니 교관 앞에 모이라는 신호이고,
세번째 호루라기는 교육시작이다.
그러니 10분 휴식이면 5분 휴식이라고 보면된다. 2주차때는 얼차려를 정말 많이 받았던것으로 기억이난다.
나와 동기 5명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뭐때문인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어깨동무 상태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앞으로 전진 이것저것 흙탕물에서 뒹군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비가 엄청나게 왓엇다.
덕분에 흙탕물을 제법 먹었는데, 이 흙탕물이 그리도 시원하게 느껴진적이 없었다. 진짜 벌컥 벌컥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치열하게 교육을 받고 모형탑(막타워)을 뛰는데, 이것은 그냥 뛰어내린다고 해서 되는것도아니고
단순히 담력이나 키우자고 시키는것 또한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항공기 이탈 자세 연습을 하는것이다.항공기 이탈자세가 좋아야 산줄도 꼬이지 않고 안전한 강하를 할수 있다.
그러므로 과감하고 정확한 자세로 뛰어내려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총 7회중 4번 합격해야 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이난다.
실제로 나보다 더 심한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결국 불합격한 위탁 교육생들을 보았다. 막타워에서 불합격이면 당연히 자격강하는 못하는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공수교육 수료는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막타워에 올라갈때는 층층마다 교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쪼구려뛰기를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문에 올라서면
또 쪼구려뛰기와 공포분위기 조성을 하고 뛰어내리기전에는 방탄모를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한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었음에도, 단한번에 불합격없이 합격했다. 4명씩 모형탑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리는데
밑에서 교관이 보고 자세를 교정해주며, 합/불을 가린다. 뛰어내리는 자세는 다음과 같다.
문에섯. 자세에서 교번을 외치고 뛰어내리는데, 두손을 비상 낙하산이 뻥!!! 하는 소리가 나도록 감싸쥐면서
두다리는 앞꿈치를 모으고 앞으로 차면서 뛰어내린다. 몸은 90도가 가장 좋겠다.
뛰어내린후에도 공중동작시에 배운 대로 해야한다.
기능고장 처치까지 외쳐야 하는데. 대충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만, 이만, 삼만, 사만, 산개검사! 기능고장! "
기능고장 외친다음에는 비상낙하산 펴는 시늉까지 해야한다.
여담이지만, 타특수부대를 제대한 내친구가 해준말이다. 막내가 교육중 기능고장 이멘트를
비상사태 라고 외쳐서 한동안 그 후배의 별명은 비상사태 였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만,이만,삼만, 사만을 왜 외치느냐면,
우리가 강하를 할때 낙하산이 펴지는 시간은 5초이다. 그러므로 4초까지 4만을 세고 5초때 산개검사를 하며 라이쟈를 잡고
힘껏 벌리면서 산개검사를 한다. 이때 낙하산이 펴지기 5초까지 자유강하 하는 높이는 70미터가 되겠다.
어쨋든, 그렇게 모형탑 교육을 하면, 집단강하를 위해서 4명이 일일이 뛰어내리는 연습과
군장을 메고 무장강하연습, 야간교육까지 하여 야간 강하연습을 한다.
이때 집단강하 연습시에는, 1초 1명씩 나간다. 앞에 뛰어내리는 ..문밖으로 한명씩 사라지는 동기들의 모습이 그토록 멋있어 보였다.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또 2주차가 흘러갈무렵 내무릎은 여전히 아파 죽을것 같았지만, 잘 버티고 있었다. 이제 강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무렵.
2주차 마지막날. 종합숙달 시간이다.. 종합숙달이라 함은...2주간 배운 지상교육을 쉬는시간없이 로테이션으로 돌리는것이다.
과거에는 8자 돌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날하필이면 비가 죽어라 왔다. 진짜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오니 무릅은 더 아팠다. 빗물에 얼굴이 젖어갈때, 아파서 눈물까지 났다. 교관들이 군가까지 시킨다. 군가를 부르고 교장 이동을 계속한다.
착지하고 뛰어가고 또 착지하고 ...........진짜 눈물이 나도록 아팠다...그런데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그날도 교육은 끝이 났다...
그렇게 2주간의 지상교육이 끝이나면 3주차때 자격강하 4회를 실시하는데 그 교육때마다 강하자산에 따라 변경이 되는데,
무조건 첫 강하는 기구강하이다.
나때는 기구강하, 실강하, 무장강하, 기구강하 순이었다. 자산은 CH-47. 당시 이라크 파병 초창기였고 대한민국에 있는
C-130 항공기들이 대거 해외로 나가있는 바람에 시누크를 탈수밖에 없었다.
첫강하였던 기구강하...타본사람은 알것이다. 그어떤 강하들을 다 통틀어도 기구강하가 제일 무섭다.
그리고 강하날 아침에도 우리는 미친듯이 또 선착순을 돌았다. 긴장을 시키고 다리에 힘을 빼게 하려는 것이었을거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키는데, 뒤로 취침할려고 눕기도 전에 앞으로 취침 시키고 앞으로 취침하려고 엎어지기도 전에
뒤로 취침을 시키는데, 내가 무슨 오뚜기도 아니고 어떻게 하라는건가.
어쨋든...
높이는 지상 300미터밖에 되질 않지만, 300미터라는 높이가 하늘에서 바라보면 어마어마한 높이다.
게다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그 기분대로 낙하산이 펴지기 전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온몸으로 나고, 낙하산이 펴질때쯤
몸이 붕~하고 하늘로 뜨는데 이때 부랄끝이 저려온다. 기구강하는 개인적으로, 강하라기보다, 낙하 라는 말을 쓰고 싶다.
신기한것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강하라는것을 처음 해본 놈들이었는데, 생명줄걸고 자기 차례가 왔을때
그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는것이다. 교육받은 대로 그자세 그대로 뛰어내린 나의 동기들이 멋있었고 자랑스러웠다.
이것이 어쩌면 2주간의 반복 교육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머리가 생각하기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기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도
몸은 움직인다. 반복 훈련은, 습관을 만들고 본능으로 심어준다.
그러나...기구강하 아침..결국 강하를 포기하고 퇴교한 동기 한명이 있었다. 도저히 자신이 없고, 설사 자격강하후에 임관을 한다해도
앞으로 4년을 특전사 생활 해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것이 이유였다. 그리하여 그는 바로 집으로 가지않고 군사기초훈련 5주를 받은덕에
바로 타부대 병사로 갈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어느 부대에 M60부사수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쨋건 그렇게 산뜻한 기구강하후에, 다음날 드디어 실강하를 한다.
항공기 강하때는 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지상 2400피트(약 800미터)에서 강하를 실시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낙하산을 수령받고, 몸을 푼다. 이날은 다행히 선착순 없었다.
번기별로 패스가 나눠지는데, 우리가 다 뛰어내리는걸 확인한후에 담임교관이 마지막에 뛰어내린다.
지상에서 함께 땀흘린 교관과 교육생들이 하늘에서 다시한번 만난다. 이것은 특전사만의 멋이라 생각한다.
우리 패스 차례가 왔을대 시누크에 앉아서 하늘로 이륙을 하는데...정말 수만가지 만감이 교차했다.
친구들이 보고싶었다. 고소공포증이 심했던 내가 이곳 특전사에 와서 막타워도 무사히 뛰어내리고 낙하산을 메고
강하를 하기 직전의 내모습을 본다면....
사랑하는 부모님이 이모습을 보신다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모습을 보신다면...
내가..강하를 하다니...내가....
그렇게 항공기가 이륙을 하고, 강하조장을 역할을 하고 있는 공수교관이 수신호를 준다. 시누크는 교육단에서 바로 뜨기때문에
강하지역 20분전 따위는 없다. 바로 6분전이다.
강하지역 6분전 싸인을 준다. 우린 배운대로 복창을 하고 움직여야한다.
여단에 가서 강하좀 하고 하면 때가 되면 알아서 하지만, 당시 후보생때는 교육때 배운대로 탑승하고 강하할때까지 무조건
강하조장을 바라보고 있는다. 6분전 싸인을 주면 6분전이라고 복창하고 1분전 싸인을 주면 1분전이라고 복창한다.
그렇게 생명줄을 걸고 서있었다. 열려있는 뒷문 으로 하얀 세상이 보인다. 항공기안은 너무 시끄럽다.
그 소음이 긴장을 더해준다. 드디어 1번강하자부터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따라 간다. 그린나잇이 켜지고
공수교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새운다.
1번강하자 뛰어내린다. 아니...교관이 뒤에서 밀어낸다.
2번강하자 밀어나간다.
3번강하자 나간다.
내가 간다. 어느새 문앞에 왔다. 맙소사...정말 높다.
그러나 몸이 움직인다. 생명줄을 왼쪽 안전요원에게 건내주고 뛴다.
분명히 교관이 밀었으리라.
비상낙하산을 꼭쥐고 배운대로 외친다
일만...
이만..
삼만..
사만..
몸이 붕뜬다...눈을뜬다...낙하산이 펴졌다...세상이 너무 조용하다...정말 조용하다...
눈앞에 나를 태웠던 시누크가 나머지 동기들을 뱉어내며 날아간다...진짜 이건 그 어떤 자연광경 빰따구 치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담임교관이 뛰어내린다.
내가 떠있는 이곳은 시끄러운 차도 없고, 사람들도 없다..그러니 조용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변풍경 볼시간이 없다. 바로 사주경계를 해야한다. 상,하, 좌, 우...
밑을 보니..저멀리 꼬딱지 만한 차들이 보이고 발밑에는 먼저 뛰어내린 나의 동기들이 줄을 맞춰서 낙하산을 메고 격납고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조용하고 세상이 슬로모션으로 보인다. 아마도 내가 높은 곳에 있기때문에 착시현상같은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어버버 하고 있는 사이 어렴풋이 방송 소리가 들린다...
"전 강하자~ 격납고를 바라봐라~"
그렇다. 강하 초짜들인 우리를 위해서 큰 교관이 관람대에서 마이크로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다. 그들은 강하에 있어서
프로중에 프로이니 대충 바람만 보고도 알수 있고 우리 전체를 안내해줄수 있다.
나중에 여단에 가서 강하몇 번하면 바람타는 법을 알게 된다. 나는 주로 카나피를 본다.
어쨋든 방송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7번 강하자~ 격납고를 바라봐라~"
"7번강하자~ 격납고 보라고~!"
" 야!! 7번!!! 이새꺄!!"
"그래 넌 그냥 거기 떨어져 이새꺄!"
그렇게 강하가 끝이났지만, 그날이었는지 그 다음날이었는지, 같은 번기에 동기가 생명줄을 잡고 뛰는 바람에 큰일이 날뻔했다.
그리하여 강하끝나고 선착순을 돌았다. 이날도 몇시간을 돌았는지 모르겠다....
어쨋든...그렇게 자격강하를 모두 마치고, 수료식날 공수휘장과 수료증을 받는다..
기본공수 휘장을 받으면,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별거 아닌거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휘장에 많은 의미가 있었다...
사실 공수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체력이 월등히 좋아지지 않는다. 다만, 매일매일 하루종일 미친놈처럼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니고
눈깔만 돌려도 그만한 대가를 받다보니, 정신이 번뜩해지고, 내가 다리가 풀리고 숨이 막혀서 못뛸것 같아도, 끝까지 달릴수 있게 해준다.
군기또한 제대로 든다. 그러므로 동네에서 알아주던 개망나니도 얌전한 새색시가 될수 있는 일생에 중요한 기회라고 하겠다.
첫강하때의 그 대담함과 기분은, 평생 죽을때까지 가져갈수 있을것이다. 나는 내인생에서 가장 잘한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특전사를 지원한것이고, 두번째는 특전사를 제대한것이다.
나를 성장할수 있게 해준 여러 계기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수교육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강하...땅바닥에서 뛰고 구르고 짓니겨지면서 막연하게 생각만했던 강하를 직접했던 그날.
그날 나는 성장했고, 조금 어른이 돼었다...
그후로 시간이 흘러 내가 여단에서 전술훈련평가를 할때, XX로에서 출발했다. 공수교육장 옆을 지나가다가 잠시 숨어있었는데,
모두가 퇴근한 그시간에 교육장에서 어느 신입 교관이 멘트 연습을 목이 터져라 하고 잇었다.
"여러분들이 보고계시는 이 교장은!!!"
"여러분들이 보고계시는 이교장은!!"
"3번 교육생! 기준!!!" "3번 교육생! 기준!!"
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연습하고있었다...
후보생때는 몰랐지만, 교관들의 저런 숨은 노력또한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나는 군입대할때부터 제대할때까지..내인생과 내 진로를 바꾸게 해준 말이 있다. 안되면 되게하라 보다 더 좋아하고
가슴뛰게 했떤, 공수교육장 입구에있는 그말...
'이곳을 거친자여, 조국은 너를 믿노라.'
첫댓글 온몸에 소름이 돋을정도로 감동적이고 이렇게 힘들게 특전사가된 우리 대한의 특전아들들 최고중에 최고입니다~
모병관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리 특전사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얘들 에게서 듣던 이야기를 글로 읽어보니 또다른 감동입니다 .....
이글을 읽으며 울고 웃고~를 여러번... 가정의달 5월이 아니라 울고불고하는 5월인듯합니다.
우리 아들도 이런고통을 참고 임관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에서는 바위덩어리만한 것이 움직이는것같아 잠시 숨을 멎는듯한 아픔을...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전사 특전맨들이여~~~ 화이팅입니다~
잘 참고 있던 눈물 또 터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