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오전 11시 조금 지났을 때입니다. 손을 다쳤는지 붕대를 맨 우리 손님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서울에서 노숙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전철을 탔답니다. 전철이 우리 손님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시원한 곳 중의 하나입니다. 천안까지 갔습니다. 늦은 시간이어서 서울로 다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는 공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골목길에서 넘어졌습니다. 유리조각이 많이 널려있는 곳입니다. 오른 손을 크게 다쳤습니다.
천안 충무병원 응급실로 피투성이가 되어서 갔답니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보호자도 없고 행색이 돈이 나올 것같지 않았나 봅니다. 사정사정을 해도 응급으로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고는 보호자를 부르든지 다른 곳으로 가서 치료받으라고 내보내더랍니다. 사정사정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답니다.
아침 일찍 서울에 갔다가 할 수 없이 민들레국수집으로 찾아왔답니다.
몇 년 전부터 말없이 국수집에 와서 밥 먹고 가는 분입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도 이용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몰랐습니다.
이름과 언제부터 노숙을 했고 어디서 살았는지 물었습니다.
이름은 문 0 호 라고합니다. 나이는 마흔이고요. 십년 전에 결혼했다가 삼년 만에 헤어졌지만 법적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서울 용산의 어느 쪽방에 주민등록은 되어있지만 그곳에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과 헤어진 후부터 노숙을 했는데 처음에는 자유의 집에서도 있었고, 드롭인 센터에도 있다가 삼년 전부터는 아예 민들레국수집 근처 공원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급히 근처의 황인의원에 보냈습니다. 일요일이라 황인의원에서도 진통제만 처방해 줍니다.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답니다.
민들레 치과에서 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베로니카께 가서 난감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로니카께서 치과원장선생님 차에 문 0 호 씨를 태우고 민들레희방지원센터로 데려갔습니다. 센터 근처의 새마을금고 앞에 쓰러져 있게 한 다음에 119를 불렀습니다. 곧바로 119 요원들이 앰블런스를 타고 왔습니다. 환자를 인천의료원으로 이송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후에 베로니카와 함께 동아를 데리러 강화도 계명원을 갔습니다. 동아가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인천으로 와서 이마트에서 동아가 사고 싶어하는 옷과 분홍 신발을 샀습니다. 그런 다음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습니다. 동아가 많이 컸습니다. 강아지와도 잘 놀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컴퓨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내일 오후에 모니카가 동아를 고아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겨울 방학에는 2박 3일 동안 집에 오기로 했습니다.
어제 오전에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장신부님을 만나뵙고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를 나눴고 주교님께 보고할 자료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때 인천의료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문 0 호 씨 수술 문제로 공공의료팀에서 온 전화입니다. 부랴부랴 인천의료원으로 갔습니다.
공공의료팀에서 검토한 결과 문 0 호 씨는 국가나 지방 정부 또는 외부로부터 지원받을 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철저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 같다고 합니다.
나익 겨우 40세이고 법적으로는 배우자도 있고, 주소는 서울로 되어 있지만 그곳에서 살지 않았으니 긴급의료지원도 구청으로부터 받을 길이 없고, 건강보험도 없고, 서울의 노숙인 시설에서 지낸 기록도 찾을 길이 없고.... 철저하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술이 너무 급하기 때문에 오후에 수술을 한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서 수술을 해도 장애가 심할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되었든 수술비는 차후로 생각하고 수술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법적으론 환자의 보호자가 될 수 없어서 환자 본인이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했습니다. 저는 옆에 참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듣고 본인이 싸인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싸인을 했습니다.
문 0 호 씨가 국수집에 맡겨둔 가방에는 100원 동전 세 개뿐입니다. 아무래도 민들레국수집이 진료비의 일부라도 부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도우면 참 좋겠습니다.
페이스북에 사연을 남겼더니 고마운 분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셨습니다.
2013년 8월 19일
박 0 진님 500,000원
임 0 빈님 30,000원
주 0 경님 100,000원
이 0 성님 100,000원
합계 730,000원이 어제 모였습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입원생활에 필효한 것들을 챙겨주고 오겠습니다. 문 0 호 씨 상황은 페이스북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 0 호씨의 8월 23일 모습입니다.
웃는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인천의료원의 고마운 배려로 수술을 했습니다.
천안에서 손을 다치고 충무병원을 비롯해서 네 곳의 병원에서 사정사정 해도 보호자가 없다면서 수술을 해 주지 않고 간단한 처치만 해 줬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헤매다가 인천 민들레국수집에 오전 11시쯤에 왔습니다. 급히 황인으원에 보냈지만 큰병원에서 수술을 해야한답니다. 그래서 베로니카께서 119를 불러 겨우 인천의료원에 보냈습니다.
이젠 살 것 같다고 합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치료비가 걱정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혼자 걱정말고 우리 같이 걱정하자고 했습니다. 너무 늦게 봉합수술을 받아서 손의 장애가 심할텐데 퇴원해서도 노숙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했답니다. IMF 때 일하던 곳에 몇 달 째 일거리가 없었답니다. 월급도 몇 달 째 못 받고 결국은 노숙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때 노숙인 쉼터인 자유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답니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나 단칸방이나마 얻고 막노동을 하면서 알콩달콩 살았답니다.
자유의 집에서 만난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났답니다. 중후한 신사 차림이었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밥도 사 주고 힘들게 사는 것을 걱정해 주더랍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를 보여주면서 그곳에 과일가게를 차려줄테니 아내와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럴 듯 했습니다. 돈이 없는데도 도와준다니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답니다. 그래서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과 등본을 아내 것 까지 내어주었답니다. 그렇게 쪽박을 찼습니다.
성남에 산다는 것만 알고 그 사람을 성남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잡느냐며 웃더랍니다.
자기와 아내 앞으로 집이 있고 대출도 되었더랍니다. 차도 몇 대 등록이 되었더랍니다. 그렇게 아내와 헤어지고 노숙을 하게 되었답니다.
서울에서 노숙을 했고 어느날 텔레비전을 보고 인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게 되었답니다.
지난 토요일 밤에 너무 더웠습니다. 시원한 전철을 타고 더이를 식히다가 마지막 역에도착하니 천안이었답니다. 천안에서 공원을 찾아 골목길을 헤매다가 넘어졌는데 손을 짚었고 그것이 유리병 조각이었답니다. 천안에서 네 곳의 병원을 찾아가 사정사정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수술이 필요한데도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간단한 응급처치만 해 주고는 그만이더랍니다. 서울에서도 병원을 찾다가 할 수 없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왔던 것이랍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을 이토록 등쳐먹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8월 19일 730,000원
8월 20일 문 0 호님병원 100,000
8월 21일 문 0 호씨진료 20,000
합계 850,000원
수술을 했던 날 베로니카와 저녁에 찾아갔습니다. 반찬이 남아 있습니다. 왜 남겼는지 물었더니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 둔 것이랍니다. 아침이 나온다는 것을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금요일에 찾아갔더니 컵라면을 하나만 먹고 두 개는 남겨 놓았습니다.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는지 물었더니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뒀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민들레 진료소 3주년 기념 파티를 조촐하게 했습니다.
첫댓글 민들레 국수집은 이웃을 돕는 곳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을 한결같이 하늘에 뜻에 따라 가난하게 사는 민들레수사님이 훌륭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또한 가난한 이웃들에게 온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가족의 소중함,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늘 수고하십시오!
사랑합니다, 민들레 국수집!
가슴 한편에서 무언가 '찌르르'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호의를 베풀기 쉽지 않은 각박한 세상,
따뜻한 민들레의 일상은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민들레 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 내가 열지 못했던 문을 열 수 있는 용기로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민들레 국수집의 해피 에너지~ 짱이예요!! +_+
수술을 해도 시간이 너무 지나 장애가 생길것 같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은 너무 웃깁니다.
사람을 고치고 치료해주는 곳인데 의료가 우선이 아닌 너무 돈, 돈 하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긴급환자인데도 그냥 돌려보낸 병원의 태도에 화가 납니다. 문0호씨 수술 잘 받으셔서 잘 회복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