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다
심란했었기도 했고 변덕이 죽 끓듯 했었지. 겨울의 작별 인사처럼 매화도 피기 시작했었지. 바람이 쑥을 캐는 여인의 모자를 호시탐탐 노렸었다. 한겨울 추위보다 더 매서운 꽃샘추위에 산책하러 나가지 못해서 창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마음만 분주했었지. 벚꽃 피는 날 만나자는 친구의 말에 설레기도 했었지.
하룻밤 사이 벚꽃이 몸을 풀고 수천 개의 꽃송이를 순산했다. 하루를 건너편 골프장 벚꽃 길이 얼마나 꽃물이 들었는지 확인하며 시작했다. 밤사이 꽃잎 터지는 소리로 얼마나 황홀했을까? 오늘은 친구를 만나 벚꽃 길도 걷고 자주 가는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해야지. 벚꽃의 감미로운 색깔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꽃구경 가자는 벗이 있으니, 이 봄이 눈부시게 찬란하다. 예쁘게 단장하고 버스를 타고 학교 앞으로 나갔다. 임당역 4번 출구 앞에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고 지하로 들어가서 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고, 위험하지 않고 빨리 올 수 있으니, 지하도로 다시 들어가라고 친구가 현장에서 세심하게 생생한 안내를 해준다.
나는 그냥 오래도록 빨간불이 꺼지고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당당하게 서서 기다렸다. 대학교 근처라서 학생들이 많은데, 횡단보도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나랑 지팡이를 짚고서 계시는 할머니랑 둘 뿐이다. 건너편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는 친구가 창문을 열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왜 저기 그대로 서 있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지하로 들어가는 자체가 싫다.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더 좋아한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지상으로 걸어 다니는 일이 마음이 편하다.
두 번 신호등을 받아 가면서 약속 장소로 천천히 뛰었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서 빠르게 걸은 것도 있지만 친구가 보고 싶어서 달려갔다. 지하도로 건너서 오라고 했는데 왜? 의아하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나 실은 지하도로 건너오는 것 잘 몰라, 나는요, 지하 세계가 싫다고요”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래.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씨 좋은 친구가 벚꽃처럼 화사하게 웃어준다.
근처 대학교 벚꽃 길을 걸었다. 학생들이 벚꽃인지 세상이 온통 꽃밭이다. 해마다 걷는 길이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시간처럼 느껴진다. 누구랑 걷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해마다 새롭다. 팡팡 터지는 꽃들이 봄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40년 전에도 친구는 이 길을 걸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청년으로.
문득, 친구를 보면서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그래, 잘 왔어! 여기까지 수고했다.’ ‘앞으로 두 번째 서른 살 시간도 편안하고 아름답고 멋질 거야.’ - 2024년4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