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살전 5:12-2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새해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소망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늘 이렇게 소원을 빌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늘 아쉬움이 있습니다.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계획한 대로 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원은 언제나 소원으로 남아있고, 우리들의 삶은 변화가 없기에 아쉬움이 큰 것입니다. 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을까를 생각하며, 우리 믿음에 실망하기도 하고, 잘못 구한 것은 아닌지 후회하기도 합니다. 내 탓을 하기 싫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실망하고, 불평한다고 해서 잘못된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신앙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얻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막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사막의 수도자들입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사막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신앙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수도자는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수련입니다. 그 훈련은 ‘비움’에서 시작합니다. 자기를 비우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막에서는 욕망도, 미움도, 시기도, 교만도 쓸모가 없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채웁니다. 자기 힘도 지식도, 의지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만 의지할 뿐입니다. 이렇게 주님으로 채울 때 ‘내적 충만’을 경험합니다. 내적 충만은 좋은 것을 모두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비우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주님 뜻을 알고, 믿고, 따르게 됩니다. 그의 삶은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고 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나를 규정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또 내 안에 있는 것들로 나를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능력이나, 지혜를 자랑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규정들이 ‘나’를 나타내는 말일까요? ‘참 나’가 아닌 ‘거짓 나’, ‘위선의 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참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나타낼 때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일치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시며,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요 17:22)고 기도하시며 모든 이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 안에 살아갈 때 내적 충만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된다면 더 이상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고, 미움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믿음으로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채우려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교회에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잠시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곧 불평하고, 걱정하고, 원망합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채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만이고, 걱정합니다. 삶이 걱정 근심으로 가득하다면 믿음의 삶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릴 때, 자기를 비울 때 주님으로 채워지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주여, 주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역할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 기쁨과 감사로 채우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5:16-1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교회 공동체에 주는 권고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이 해야 할 일들을 권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수고를 알고 그 가르침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라, 게으른 자들에게 권고하고, 약한 이들을 도와주고, 힘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고합니다. 미워하거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은 다투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혹 잘못한 이가 있더라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성도의 생활에 대해 권고한 다음에, 예배에 대해서 권고하는 말씀이 16절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각자의 삶에서 기뻐하는 것도 있지만, 예배가 기쁨의 예배, 즐거워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예배는 많은 악기들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은 내적 충만의 표현이기 때문에, 예배는 ‘오직 주님’만 섬기는,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곧 우리 위해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배에서 기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기도하십니다. 쉴 틈이 없을 때에도 기도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중요한 기도는 중보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를 위한 기도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 모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특별히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고난받는 이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가 기도하는 이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세계 곳곳에서 고난받고,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고합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살면서 모든 일을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 일을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사고가 나서 고통받는데, 사고가 나게 해주신 것 감사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든 일을 감사하라는 뜻이라기보다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고와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도, 주님의 위로와 능력을 의지하여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음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일, 거부하는 일을 겪었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형편, 감정, 기분에 끌려다니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하나가 되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중보의 기도를 하며 감사의 예배를 멈추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이 권고가 예배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할 권고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져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늘 기쁨이 넘치고, 감사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희망으로 채우지만, 현실은 근심, 걱정뿐인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믿음을 다짐하지만, 의심과 불안은 여전합니다. 우리의 작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력해도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겠지요. 신앙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사도바울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이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즐겁고, 찬송이 즐겁고, 성도의 교제가 즐겁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예배, 즐거움이 가득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사실 우리 예배는 너무 무거운 편입니다. 장례식처럼 어둡고, 침울하기까지 합니다. 경건과 엄숙함이라고 변명하지만, 기쁨, 즐거움의 예배는 아닌 것입니다. 예배의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요? 연구합시다.
그리도 새해에는 우리가 고난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후원하며 함께 연대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어느 민족, 어떤 신앙, 어떤 삶을 살든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고난 받고, 고통 받는 이들이 용기를 내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교우 여러분들의 삶에 감사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일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도 있고,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이 되기를 빕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고, 주님을 내 삶에 모시고 사는 ‘내적 충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실 우리는 작고 힘이 없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는 주님을 모시고, 우리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