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괏주고] 야유회 1화
추억의 화엄사
청심 고병균
구례 화엄사에 도착했다. 날씨도 화창한 5월,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왔다. 1호차에 29명, 2호차에 22명 등 51명의 고교 동찬이 탑승하고 왔다.
화엄사(華嚴寺)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게시판에 화엄사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544년에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 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화엄경》(華嚴經)의 두 글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
“677년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의 명을 받아 각황전(覺皇殿)을 짓고 《화엄경》을 보관하였으며, 875년(헌강왕 1년)에 도선 국사가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피해를 입었는데, 1630년(인조 8년)부터 1636년(14년)까지 7년에 걸쳐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재건하였다. 대웅전, 각황전, 보제루(普濟樓) 등의 차례로 복구되었다.”
2호차에서는 유인물에 의하여 야유회 일정을 안내하고, 회원의 자기소개 하는 시간도 가졌다. 1호차는 회장과 총무가 인솔하였고, 2호차는 재무가 인솔했다.
맨 먼저 소개한 회원은 나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인사하고 소개말도 했다. 그런데 이름말고는 소개할 말이 없었다. 그 시간이 불과 30초였다. 참 허망했다.
다음에는 유인물의 명단 순서대로 소개한다. 소개할 분의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오도록 안내했다. 그것은 무리였다. 졸업 60주년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진행 방법을 바꾸었다. 회원이 일어서면 내가 다가가서 마이크를 인계했다.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름 석 자만 말하고 그냥 앉는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추억을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며 찍었다. 그런데 피사체 되는 그분이 좋은 자세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몇 장 찍었다. 품질이 좋은 사진은 아니지만 추억으로 간직하기 바라며 본인에게 전달하고, 단체 카톡방에도 올려 공유할 것이다.
화엄사 입구 계단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1단과 2단에는 여자들이 서고, 3단과 4단에는 남자들이 서도록 안내하고, 맨 앞에 선 여자들에게 현수막을 들게 했다. 그것도 쉽지 않았다. 동창이라 해도 낯선 친구가 있다. 여자들은 더욱 서먹하다. 이런 까닭에 서로 눈치를 보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대형을 갖추어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총동창회가 발행하는 소식지에 올릴 것이다.
“이후 타종하는 12시까지 자유 관광입니다.”
회원들은 자유롭게 흩어졌다. 아내는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올라간다.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도 대웅전 마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산하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간혹 마주친 분이 있었지만, 우리 회원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여 말도 걸지 못했다. 이름을 들으면 익숙한데 얼굴은 가물가물하다. 나라는 인간 어쩔 수 없다.
대웅전 마당 건너편 토방에서 친구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 옆에 앉았다. 높은 언덕배기 위에 웅장한 대웅전이 보인다. 앞마당에 화려한 연등이 질서정연하게 매달려 있고, 그 아래는 잘 다듬어진 돌계단이다.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였다. 회원 전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작은 모임 단위로 찍을 수도 있겠다. 만국회 회원만 해도 일곱이다. 이들과 함께 추억을 남길 좋은 기회였는데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다.
타종 시간이 되어간다. 흩어졌던 회원들이 하나둘 종각 주변으로 모여든다.
“3학년 때 홍매화 옆 건물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자리에 다녀왔다.”
한 친구가 수학여행 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덩달아 다른 친구도 말을 섞으며 추억을 곰씹는다. 서로 뜻이 통하고 있었다. 이 친구에게 화엄사는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머문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런 추억이 없다. 친구들이 이런 추억을 쌓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 뿐 나 자신을 위해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것이 몹시 부끄럽다.
‘더~엉~’ 종소리가 울린다. ‘더~엉~’ 소리가 화엄사 골짜기의 울창한 숲 사이로 길게 퍼져 나간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 낮 12시에 ’애~ㅇ‘하며 울려 퍼진 ’오포‘와 같은 성격의 범종소리다. 우리에게는 내려가라는 신호이다. 터벅터벅 혼자 내려간다. 아내와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내려간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