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월당 천보경
포덕70년(1929) 함북 명천군 출생
여성회본부 감사
여성회본부 회장
종의원의원, 선도사, 도훈
여성회본부 고문
"즐겁게 일하면
힘든 줄도 몰라요"
저는 천도교 함경북도 북면 출신이에요. 할아버지때부터 천도교 했어요. 내가 3대가 돼죠. 천도교는 열여덟 살에 입교했어요. 그 전에는 몰랐죠. 할아버지가 오형젠데 그중 두 분(천상호, 천상우)이 창건사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죠.
학교 졸업하고 교편 잡아보려 했는데
시골로 발령나더라구요. 제가 시골에 갈 입장은 못 되고 그래서 천도교 군당에 근무 했어요.
어릴 때 기억은 별로 없어요. 여학교에 다니면서 내내 기숙사 생활했으니까.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교편 생활하는 오빠하고 내내 같이 있었어요.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 다녔어요. 내가 7남 매 중 막내예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형제분들은 다 돌아가 셨어요.
천도교 명천군당 조직부에 상근할 당시에는 군당에서 월급 이라는 게 없었어요. 배급 밖에 없었거든요. 군당 재정이 곤란 하니까 집에서 많이 갖다 썼어요. 명천군당에 1년 있다가 함북도당으로 갔는데, 거기선 총무부에 있었어요. 직업동맹 관계로 해서. 그땐 청우당의 지시대로 활동했고, 군당에 있을 때는 면 같은 데 순회도 갔고. 도당에 한 2년 근무했어요. 이후에는 육이오 맞으면서 그만뒀어요. 피난 나왔으니까요.
그 다음에는 여기 나와가지고 육군본부 휴병감실 여수지부에 근무했어요. 그러다가 휴병감실이 해산돼서 그만뒀어요. 그 리고 미장원 경영했죠. 미장원 하다가 결혼한 다음에는 양재 했어요. 양재 한 20년 했죠.
여수에 미장원하고 있을 때 부산 신문사 지국장 부인이 같은 종씨였어요. 그러면서 나보고 조카, 조카 했는데, 우리 주인(지만진) 이 부산 지국 신문사에 자주 드나드니까 얌전한 조카가 있는데 어디 만나보겠냐고 한 거예요.
그러더니 매일같이 미장원에 찾아왔던 거예요.
그래서 오빠한테 인사시키러 갔는데 종교가 뭐 냐, 하니까 천도교다.
그러면 더 물어볼 것도 없다, 하고 오빠가 승낙해 갖고 결혼까지 간 거예요.
알고 보니까 우리 주인이 평양에서 천도교 활동 했던 거예요.
일하는 동안에는 바쁘니까 교회에 잘 나오질 못했죠.
우리 주인만 나오다가 내가 조금 한가해지니까 나오기 시작했지요.
나오니까 홍창섭 고문님이 상당히 친절하게 해 주시고 저를 이끌어 주셨어요.
그러면서 실무도 맡았는데, 그 당시야 뭐 지금 같이 안 했죠.
순회는 했어요.
지부 일을 보면서 순회는 많이 다녔어요.
야외 나가서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게임하고 재미있게 지냈던 거. 그게 기억에 남고.
제가 주관해서 많이 했 거든요. 그때 당시는 시일이 아니었어요. 평일에도 차로 여럿이 가서 즐겼죠.
제가 여성회 본부 회장 할 당시에는 대외활동 많이 했어요.
필요를 느껴서 여성단체협의회에 가입도 하고. 종교협의회는 별로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 천도교 여성회가 좀 알려졌고.
우리 며느리들, 천도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교회에 못나와도 꼭 집에서 청수들 모시고.
우리 주인은 교회에 1회 자주 본부 청년회장 하시고
원래 보이스카웃 경기도 사무국장 일을 내 내 하고 있었는데,
최덕신 교령님 때 교회 일좀 나와서 해 달라 그래서 교무관장 일년 했어요.
저는 절대 교회일은 하지 말라 고 그랬는데 일 년 딱 하고 그만뒀죠 그리고 종의원 사무국장 인가 했고.
포덕 124년(1983년)도에 돌아가셨어요. 20년 다 돼 가네요. 우리 남편은 사람이야 좋지, 먼저 가서 그렇지. 활동성이 좋고, 춤도 잘 추고. 우리 조카가 2년 동안 우리 집에 와 있 으면서 고모하고 고모부하고 좀 싸우는 거 봤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우리 주인이 참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집이 살기는 어려워도 식구들끼리 화목하고 늘 웃음으로 지냈어요.
4남1녀 낳아서 키웠는데 자랑할 건 없어요. 교회일 제일 열심히 하는 게 셋째 아들(지광철) 며느리(남용미)도 참 잘 해요.
수련에는 참여 잘 못해요. 근래에는 혼자 사니까,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밤늦게 들어가질 못 해요.
그래서 나왔다가도 어둡기 전에 항상 들어가요.
일이라는 게 하구선 힘들다, 하면 꼭 병이 와요.
근데 즐겁게 하면 하나도 힘이 안 들어요.
용문에 집을 지었는데 일이 많아요. 갈 적마다 그렇게 일이 많아요.
얼마 전에도 바로 밑에 개을 에서 대야로 잔잔한 돌을 주워다가 마당에 깔았어요.
하루에 한 이십 번을 했는데도 저녁에 하나도 피곤하질 않고 다리도 안 아프고 그래 내 자신도 참 신기하다,
즐겁게 일하니까 이렇 게 힘들지 않구나 했어요.
올해로 일흔넷이거든요 우리집에 가보면 마루 밑에 돌깐거 다 내가 며칠 동안 한 거예요
■구술일 :포덕 143년(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