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의 가출
어디선가 독한 냄새가 풍겨온다
새마을시장어귀 한약재상점 앞에
이제 펄펄 삶아질 커다란 거북이들과
민달팽이와 달팽이들 그리고 온갖 죽음을 향해
기어가는 작은 것들이 눈뜬 채 진열되어 있다
통조림 같은 수조안에 눌러 담긴 살점들
숨이 막히는지 저들끼리 꿈틀대다 뒤엉킨다
밤새 몸을 뒤채다 요에 오줌을 지린
늙은 어머니의 벗은 몸뚱이 같다
살점 하나가 비어져 나오더니
어딘가로 구물구물 기어간다
누구도 어머니의 가출을 보지 못했다
늙은 그녀는 시장골목을 빠져나가
어느 공원 후박나무 둥치에 몸을 기대었다
비를 가득 품은 구름이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는 사이
어머니는 알몸뚱이로 그 자리에 녹아내렸다
집이라는, 그 커다란 가방이 버거워진 걸까
한평생 자식들과 아버지를 담아 키운 가방을
그 후박나무 밑으로 내팽개친
뼈도 다 녹아내린 그녀는 돌바닥에 배를 깔고
슬프고 부드럽게 꿈틀대며 어딘가로 기어간다
민달팽이가 가는 길 뒤로
어머니 요에 묻은 오줌 같은
맑은 점액이 묻어났다
상복 입은 구름들이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닫히지 않는 어머니의 가방 혼자
아-입 벌린 채 그 자리 멈춰서있을 뿐
창작메모 : 언젠가 시장을 갔다가 한약재 파는 곳에서 커다란 민달팽이들을 보았다. 사람 엄지손가락만한 커다란 것들이 서로가 서로의 무게에 눌려 꿈틀대지도 못하는 광경이 숨 막히는 사람의 세상을 연상하게 했다. 치매 걸린 늙은 어머니가 가족들의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가출해 죽어가는 상황을 그렸다.
미라
어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한 사내 입 벌린 채 흙빛으로 굳어있다
그의 발밑에 나동그라진 고대의 유물들
나는 유리벽 너머로 손을 뻗어
사내와 나 사이의 공간을 더듬어본다
좀체 손에 쥐어지지 않을 것 같던
낡은 세월들 성벽처럼 허물어지고
문득 마른 나무 껍질 같던 사내의 몸에
복숭아 빛 새살이 돋아난다
깨진 토기들이 제 조각을 찾고
사막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 볼을 스친다
빛바랜 일기장처럼 살아온 나날들
바람이 사르륵 읽어가는 중에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두리번거리다
유리벽에 눈빛이 부딪치는 순간
다시 입 벌린 채 굳어버리는
공포와 함께 박제된 사내
마지막 순간 그보다 더 크게 입 벌린 죽음 앞에서
사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독히도 긴 세월 그가 끌어온 슬픔이
수천 년 대신 두텁게 선 유리벽 너머
서로의 시간을 끌어당기고 있다
슬쩍, 사내의 흙빛 시간을 혀끝에 묻혀본다
창작메모: 뉴스에서 파라오 람세스3세의 아들로 추정되는 미라를 보았다. 사내는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 그대로 미라가 되어있었다. 인간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상상력이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연결시키고 공간을 뒤바꿀 때 은연중에 현실세상과 삶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