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룡하면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원로 코미디언이다. 1970년대 시절, 그는 바보 연기로 구봉서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비실비실하다가 쓰러지곤 하는 그의 바보 연기를 보면서 당시의 흑백 TV 세대는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노년에 고통받는 과거의 인기 코미디언
그랬던 배삼룡이 인생 말년에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다고 한다. 어제(5일) 법원은 서울아산병원이 배씨와 가족들을 상대로 낸 진료비 청구소송에서 "서울아산병원에 1억3천9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 이후 발생한 병원비와 소송비용까지 합하면 배삼룡이 부담해야 할 병원비는 약 2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흡인성 폐렴을 앓고 있는 배삼룡은 그동안 1년반 이상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상황. 병원측은 아직은 강제퇴거를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하지만, 밀린 병원비를 계속 내지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측은 배삼룡이 사용중인 1인실에서 6인실로 옮길 것을 요구했지만, 가족들은 그럴 경우 일반인들이 알아봐서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아 소송이 있게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음에는 일반실에서 지냈지만, 병실을 드나드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이 너도나도 배삼룡을 알아보고는 수근거리고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치료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그의 나이 올해 83세. 과거의 최고 인기 코미디언이 인생 말년을 어렵게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잘나가던 시절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던 배삼룡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전두환 정권에 의해 활동중단
그의 인생에는 두 개의 고비가 있었다.
우선 사업의 실패. 빌려준 돈 대신에 뜻하지않게 공장을 인수하게 된 그는 1970년대 후반에 음료업체 '삼룡사와'를 만들었지만 결국 망하고 말았다. 배삼룡은 자전적 수기에서 당시의 실패를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삼룡사와'는 무너졌다. (당시 돈으로) 1억3000여 만원의 빚을 남기고 부도가 났다. ..... 어렵사리 마련했던 집과 승용차, 그리고 나머지 재산을 모두 정리해 빚을 갚아야 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삼룡사와'였다. 사업이라는 분야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삼룡사와의 부도는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아내와 헤어지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또 하나의 고비는 원치않았던 미국행이었다. 배삼룡은 인기 절정에 있던 지난 1980년도에 미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전두환씨 등 당시 신군부가 자신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후일 밝힌 바 있다.
당시 배삼룡은 ‘저질 코미디’를 이유로로 정부로부터 방송출연정지를 받아 코미디언 생활을 강제로 접어야 했다. 그런데 배삼룡은 자신이 전두환으로부터 미움을 산 이유가 김종필씨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삼룡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그런데 신군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연예 활동 정지'처분을 내렸다. 방송 출연뿐만 아니었다. 밤무대와 극장 등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라는 조치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종필씨 지지가 그들에겐 대단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연예인에게 '활동 정지'처분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활로와 정신적인 활로를 모두 봉쇄하는 셈이었다."
사업의 실패에 이어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던 그에게 누군가가 미국행을 권유했고, 석달만 갔다올 생각으로 떠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오지못했고 나중에는 '반한 인사'라는 낙인까지 찍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국에 온 전경환을 만난 자리에서 오해를 풀었고, 1983년에 전경환 덕분에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절정기를 놓쳐버린 코미디언이 재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코미디계의 중심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어려운 말년을 맞게 된 것이었다.
웃음을 주던 코미디언의 슬픈 노년
그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선은 잘나갔던 시절에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락에는 전두환 정권의 영향이 또한 컸던 것 같으니, 배삼룡이 겪고 있는 상황에 연민도 간다. 전두환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이주일 뿐 아니라 배삼룡도 연예계에서 추방시켜버린 것이니, 폭군도 그런 폭군이 어디 있었을까.
어찌되었든 중장년 세대의 기억에 살아있는 원로 코미디언이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2억원의 지급판결을 받은 소식은 무척 우울하게 들린다. 과거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던 사람이 슬픈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소식을 들은 코미디언들이 배삼룡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말에 따르면, 배삼룡에게 재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병중이어서 처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빨리 재산도 처분할 것이 있으면 그리하고, 코미디언 후배들의 도움도 받아 병원에서 퇴거당할지도 모르는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이 이런 식으로 말년을 보내는 것은 보기에도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