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부자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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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천리포수목원에서 치른 설립자 고 민병갈 님의 수목장 장면. |
[2012. 4. 9]
어제, 천리포수목원 한낮의 바람은 매우 사나웠습니다. 센 바람을 맞으며 이른 아침부터 수목원의 나무를 오래도록 사랑해온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내 무덤을 만들 자리에 한 그루의 나무를 더 심으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수목원 설립자 고 민병갈 님을 생각한 분들이었지요. 바람을 뚫고 모인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사람들은 그가 좋아했던 목련 아래로 보내드리는 '수목장'을 치렀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건 십 년 전인 2003년 4월 8일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고인의 수양아들 되시는 분의 생각을 따라 작은 묘를 만들었습니다. 고인의 뜻과는 다른 결정이었지만, 그냥 보내드리기에는 서운한 마음 가눌 수 없다는 생각도 어쩔 수 없었지요.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어제 고인의 뜻대로 나무 곁으로 고이 모셨습니다. 큰연못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서 있는 미국산 목련 리틀젬은 그래서 이제부터 '민병갈의 나무'가 됐습니다. 리틀젬 목련은 제게도 매우 의미 있는 나무입니다. 기회 되는 대로 겨울에 꽃을 피우는 이 목련 이야기도 전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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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에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살아가는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사람과 똑같은 형식의 이름을 가진 건 물론이고, 그 이름을 당당히 호적에 올려 고유의 호적번호까지 가지고 있는 나무입니다. 게다가 자기 앞으로 등록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조금씩 늘어나는 재산을 꼼꼼하게 자기 명의의 예금 통장 안에 꼬박꼬박 갈무리하는 부자나무입니다.
잘 아시는 경북 예천 감천면 석송령이 그런 나무입니다. 워낙 잘 알려진 나무여서, 일일이 내력을 다 소개할 필요가 없을 듯도 합니다. 간추려 이야기하지요. 1928년 이 나무가 있는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재산을 나무에게 물려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겁니다. 노인은 나무를 호적에 올리고, 자신의 재산인 땅 2천 평을 물려주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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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이 마을에 처음 뿌리를 내린 건 6백 년 전 풍기 지역에 큰 홍수가 났을 때입니다. 개울을 따라 뿌리째 뽑혀 떠내려오던 한 그루의 소나무를 마침 지나던 나그네가 건져 내 심은 것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나그네의 눈에 떠내려가던 어린 나무가 무척 귀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죽을 뻔했던 생명을 사람에 의해 되찾게 된 나무는 사람의 마을 어귀에 서서 6백 년 동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목이 됐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살던 중 아들이 없던 이수목 노인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재산을 넘긴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석송령'입니다. 석씨 성을 붙인 건, 이 마을이 석평마을이기도 하고, 또 그가 어린 시절에 뿌리 뽑힌 채 떠내려가던 개울이 석관천이라는 데에서 따온 것이지요. 석관천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석씨 성을 가진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송령이라는 이름은 영혼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일테고요. 석송령은 그때부터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은 자격으로 살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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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지역의 대표적 명물이 된 석송령은 재산세를 꼬박꼬박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조금씩 불려온 재산으로는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까지 줍니다. 이른바 '석송령 장학금'입니다. 해마다 마을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을 정해 학교 등록금을 지원하는 장학금인데, 안타까운 것은 이제 마을에 장학금을 받을 아이들이 없다는 겁니다. 바로 올해는 그래서 장학금은 마련됐지만, 지급할 학생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게 이 마을 이장님의 말씀입니다.
석송령의 내력과 지금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히 들려준 천향리 이장님의 말씀을 적은 신문 칼럼을 아래에 링크하겠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71) - 예천 천향리 석송령] 신문 칼럼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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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의 씨앗을 받아 키운 석송령 2세. |
두 해 전, 예천군에서는 석송령을 기네스북에 등재한다고 법석이었습니다. 온갖 신문에서도 비교적 떠들썩하게 보도하기도 했던 일입니다. 여러 절차를 다 마쳤지만, 중간에 이 작업을 맡은 기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더 이상의 진전은 없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계 최초로 재산을 가진 나무라는 식으로 기네스북에 올려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에천군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삼으려 했던 예천군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굳이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아도, 심지어 '세계 최초'라는 공식 명분을 갖지 않는다 해도 6백 년 동안 우리네 삶을 지켜줬다는 것만으로도 석송령은 우리에게 무척 고맙고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굳이 세계적인 명성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기네스북에 올리느라 애썼던 관심과 사랑 만큼 평소에 이 나무를 더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요. 석송령 뿐이 아니라, 우리 곁의 모든 나무들이 저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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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아마도 바쁘게 지나가겠지요. 결과와 무관하게 남은 며칠 동안 그야말로 모두가 정정당당하게, 제발 되도 않는 말들 가지고 남을 헐뜯는 일 좀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틀 뒤인 11일 수요일은 쉬는 날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가 주인임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다시 또 나무 이야기 나눌 것을 약속드리며 여기서 줄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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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며칠전 신문에서 민병갈님의 수목장 뉴스를 봤습니다. 마음으로 깊히 감사드립니다.
요 근래 천리포수목원에 대한 책을 두 권 읽었어요. 참 고마운 외국인입니다. 총각으로 늙어 죽었다는데 재산을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더군요.
정말 대단하군요.
한번 가 보고싶어지네요....
석송령을 보시지 않았으면 반드시 한번 보셔야지요.
예천엔 석송령 말고 '황목근'이라고 하는 세금내는 나무가 한 그루 더 있습니다. 함께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