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희기념관에 대한 대구 경북 윤리과 역사과 교사 100인선언
경북지역 윤리과 역사과 교사 100인 선언
-박 정희를 국가가 기념한다면, 우리는 윤리와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바른 윤리와 역사적 정의를 가르쳐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최근 박 정희 기념관을 설립하고 국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과연 우리는 역사와 윤리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바져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남긴 도덕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폐해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전반을 여전히 억누르고 있는 군사문화, 외형적, 성과주의,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반인권적 관행, 끊어지지 않는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아직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 승만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독재나 장기집권보다도 민족정기를 세우려 했던 반민특위를 해산한 일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역사를 왜곡했던 그 일로 인하여 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질곡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범죄를 다시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지난 50년 민주투쟁사의 정통성을 뒤엎고 제2의 박 정희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박 정희 기념관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박 정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기념하라고 할 것입니까? 우리 교사들은 박 정희 기념관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민족교육을 위해서 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투신하던 그 때, 박 정희교사는 출세를 위해 교단을 떠났습니다. 뜻있는 젊은이들이 일제의 앞잡이가 될 수 없다고 일제 학병에서 광복군으로 탈출하던 그 때,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제발로 만주 군관학교에 입교한 후 우등으로 졸업하여 만주국 황제 부의 부의로부터 금시계와 왜국 육사 진학의 특전을 받았습니다. 장 준하선생이 광복군에서 본토진입을 준비하던 그 때, 다카키 마사오는 왜국 육사를 마치고 항일운동의 중심지인 열하지방에 배속되어 항일투사 토벌에 앞장섰습니다. 그에게 민족의 민족의 광복은 출세에 대한 좌절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의 삶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합니까? 윤리와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 우리는 국가가 세운 그의 기념관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광복 후 남조선 노동당의 군사총책으로 군에 침투하였다가 여순사건 직후 검거되어 사형직전에, 자신의 동료를 밀고한 대가로 목숨을 건진 좌익군인 박 정희를 보면서 우리는 그의 어설픈 좌익사상을 본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동료를 밀고한 그의 카멜레온 같은 적응력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까?
우리는 준법정신을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총칼로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국가권력을 찬탈한 국가변란의 주범을 찬양하는 기념관을 국가가 세운다면 우리는 더 이상 민주주의에 대하여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국가의 권력은 국민이 아닌 총구에서 나온다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까?
박 정희는 구데타이후 중앙정보부라는 비밀경찰을 창설하고, 영장없이 체포 구금하는 것은 체포 구금하는 것은 물론 공공연히 고문을 자행하였으며, 재판은 비공개로 자행하였습니다. 그의 독재에 항거하는 사람중에는 갑자기 사라져 돌아오지 못한 사람과 끌려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양심적인 기자, 양심적인 판사, 양심적인 공무원은 모두 쫒겨났습니다. 계엄령과 위수령, 비상사태와 긴급조치로 이어졌던, 그가 통치한 시대는 나라가 바로 감옥이었습니다. 박 정희는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서 3선개헌과 유신구데타를 저질렀습니다. 유정회를 만들어 국회를 장악하고,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뽑았습니다. 그는 권좌를 놓지 않고 황제로 군림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박 정희에 대해서 국가가 기념관을 세운다면 그 동안 민주회복을 위해 목숨바쳐 싸웠던 시민과 학생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 우리는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가르쳐야 합니까? 우리는 ‘능율과 실질의 숭상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유보’될 수 있고,’인권은 억압할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청렴함과 결백함, 공정함과 평등함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박 정희시대는 부정과 부패의 시대였습니다. 정경유착이 뿌리를 박기 시작했고, 그와 결탁한 자들은 엄청난 특혜속에 재벌로 성장했습니다. 박 정희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과 부패의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찬양하는 기념관은 국가가 세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박 정희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적 신화는 외형적 성장 제일주의입니다. ‘하면된다’는 군대식 구호는 ‘해서는 안되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해도 안되는 일’은 ‘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야 했습니다. 그의 대표적 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경부고속도로는 세계적인 부실공사로 건설비의 몇 배나 되는 보수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빨리 빨리’는 와우 아파트에서 시작해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렸습니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해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전 태일열사는 ‘법을 지키라’고 분신을 했고, 인간적 대우를 요구했던 동일방직의 여공들에게는 분뇨가 퍼부어졌습니다. 이런 박 정희식 경제발전을 찬양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어떠해도 상관이 없다거나,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까?
박 정희가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면, 세계적인 독재자들도 측근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분’이었고, 가족들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덕목에 대해서 국가가 1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가면서 찬양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까?
만일 박 정희를 근대화의 주역이라고 하면서 그의 기념관을 짓는다면, 수많은 다리와 철도를 건설하고, 신작로’를 뚫었으며, 전봇대를 세웠던 왜정시대 총독들의 기념관도 함께 지어야 할 것입니다. 박 정희가 남긴 경제적 유산은 엄청난 외국 빚과 재벌에 의한 경제독점, 그리고 정경유착으로 인한 왜곡된 경제구조였습니다. 아우토반을 뚫고 군수산업을 발전시켰던 히틀러를 독일산업을 부흥자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박 정희를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특히, 박 정희는 교사와 교육을 능욕하였습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제일 먼저 교원노조를 탄압하였던 그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교사들을 동원하였습니다. ’10월유신은 김 유신과 같아서—‘라는 식의 노래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어론’을 복도에 액자로 게시하고, 대통령 각하 지시사항을 따로 모셔 놓아야 했습니다. 가장 치욕스런웠던 일은 교사들에게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유신헙법에 데해서 홍보하도록 하고, 경찰로 하여금 이를 감독하도록 했던 일입니다. 박 정희 군사독재와 관련된 교과서의 내용은 모두 왜곡되었습니다. 이처럼 교사를 정권의 나팔수로 내몰았던 박 정희를 찬양하는 기념관을 국가가 건립한다면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까?
박 정희는 기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잊지 말고 기억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박 정희 군사독재에 맞서서 싸웠던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투쟁입니다. 국가가 우선 세워야 하는 것은 민주화 기념관입니다. 국가가 우선 힘써야 하는 것은 박 정희 군사독재가 남긴 비민주적 관행과 군사문화적 폐해를 찾아내어 고치는 일입니다. 아울러 장 준하 선생의 의문사와 같은 군사독재시대에 저질러진 반인륜적 범죄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입니다.
역사를 되돌리려는 파시즘의 망령이 횡행하고 있음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추모하고 일본에서도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일제잔재와 군사독재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는 일제와 군사독재를 철저히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과거를 바로 잡지 못하면 바른 미래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박 정희 기념관의 건립을 결단코 반대합니다.
첫댓글 구구절절 맞는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