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포함한 넓은 마당이 있는 어떤 단독 주택에 두 형제가 살고 있다.
형은 여가 시간이면 꽃밭을 마주한 창문 안에 놓인 거실 탁자에서 창밖에 계절을 따라 피어나는
장미 수선화 분꽃 나팔꽃 봉숭아 국화 해바라기를 관찰하며,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율동을 바라보고,
벌 나비 등의 섬세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관찰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반면에 동생은 집안에 앉아서 컴퓨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공상에 젖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한 마디로 동생에게는 밖이라는 게 없다. 그에게 주택 벽은 외부 세계로 통하는 통로가 아니라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차단벽이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집 밖의 사람이나 사물에 무관심하다. 집안은 그의 몸이 움직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집안이 그의 유일무이한 우주요 집 밖의 세계란 그의 의식 속에 없다.
이 생활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그는 평생 집안에 갇혀서 자폐아로 살다가 죽어야 할 것이다.
이 동생의 상태가 대부분 일반인들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우주에 지배되지 않는 하나님이
그 마음과 의식에 없는 사람, 인간의 존재 의미가 물리적인 것 너머에 있는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따라서 인간의 세계관이 이 우주에 제한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도 없다. 부활도 없다. 영적 비전도 없다. 이 세계가 전부다.
칼 세이건은 평생 외계인에 관심을 가지고 외계인 찾기에 전력투구하다가 죽은 과학자다.
나는 그를 참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참된 과학자라고 말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주 너머의 세계를 믿지 않으며,
오히려 있지도 않는 외계인을 찾아 한 평생을 보내버린 그의 인생 행적이 내 눈에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마음 한 구석에는 "신발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빈민촌에서 유리 조각을 줍는 페스탈로찌의 행적이 더 인간적"이라는 소회와 함께.
어디 그뿐이겠는가. 창밖에 꽃밭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러나 이 지구가 타원형으로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요한네스 케플러는
1630년 11월 15일 59세의 나이로 임종하기 직전 구원의 소망을 어디에 두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직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둡니다. 그분 안에 모든 피난처와 위로와 복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세계 너머의 신념을 말한 것이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영적 세계관이 없는 것,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 하는 모든 심리는 영적인 자폐다.
누구도 그 사람에게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신앙이 아니라 과학이나 철학이라고 특정 신앙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런 신념은 반역적이고 고통스럽고 자기 파괴적인 어둠의 신앙인 것이다.
지금 이 세계를 절망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나 기아나 지진이나 전쟁이나 역병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문제의 본질이 외부로 나타난 외부 현상일 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집 주인이 있다고, 이 집 밖에 꽃밭의 세계가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면서
이 세계가 가해오는 긴장과 위해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소망의 꽃을 마음에 피우는 사람들이다.
2024. 1. 24
이 호 혁
첫댓글 그리스도안에서 소망의 꽃을 피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 동행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