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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가 아니던 '짜장면'은 나중에 그 사회성이 인정되어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고, '너무'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낼 때만 쓸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중엔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오타쿠'가 처음에는 '전문가'나 '마니아'와 같은 뜻이었어도 그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통용되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고, '인민'처럼 특정 집단이 썼다고 금지어로 찍히기도 한다.
이름과 실제가 다르게 통용되기도 한다.
어떤 말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이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옅어지면서 규칙대로이지만 불완전하게 활용되거나 어느 규칙에서 어긋나게 자주 쓰이게 되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더더욱 옅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불규칙 활용이 생기기도 하고, 차용어도 귀화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규칙 활용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면 그런 활용형에서 기본형이 거꾸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위와 반대로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인 '서울'이 현재는 고유명사인 '서울특별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외딸다'는 동사였으나 불완전하게 활용되면서(외딴) 품사 의식이 옅어졌기 때문인지 형용사로 바뀌었다.
동음이의어에 밀린 등으로 말미암아 '강낭콩'의 옛말인 '강남콩'처럼 비표준어가 되었거나 '구축(驅逐)'처럼 여전히 표준어이지만 그다지 쓰이지 않는 낱말도 있고, 비표준어가 되었어도 다시 표준어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옛말 또는 사어가 되었어도 다시 부활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낱말이 다른 언어에는 외래어로 남기도 하지만, 자국어에서는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언어유희도 새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언어의 변화에 따라 언중의 역사 의식 수준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것도 참고하면 좋다.
이것과 참조해도 되겠다("언어는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생멸(生滅)을 거듭한다. 이 같은 언어의 역사성으로 인해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벤야민은 ‘번역불가능성’보다는 ‘번역가능성’에 주목한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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