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서로의 속사정을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가끔 여행을 떠나는 세 쌍의 부부들이 있다. 그 중에 한 쌍이 얼마 전 세종 시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동네도 구경할 겸 갑사의 늦가을도 걸어볼 겸 두 쌍의 부부가 인천에서 출발했다. 운전대를 놓으니 할 수 있는 게 많다. 도로 사정을 신경 쓰지 않으니 우선 마음이 여유롭다. 스냅사진처럼 펼쳐지는 창밖의 새벽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앞자리에 앉은 부부가 맛을 보라면서 도톰한 봉지 하나를 건넨다.
방금 구운 듯 따끈한 토스트와 건강에 좋을 거 같은 홍삼 달인 물이다. 새벽 잠을 쪼개어 구운 고소한 향기와 따끈한 물의 온도를 느끼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건강을 위해 새로 시작한 운동에 대한 즐거움을 비롯하여 취준생을 벗어난 사회생활 초임인 아이들 이야기며, 옆에 앉은 남편의 험담도 버젓이 내놓는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남에도 남편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공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세 부부가 만났다. 두 살 나이가 많은 형과 몇 달 차이가 안 나는 두 아우와 세 명의 아내가 한 차에 탔다. 두 아우 중에 한 명이 세종 시로 이사를 했고, 또 한 명이 내 남편이다. 두 아우는 서열 정리가 안 되서 늘 자기가 형님이라고 우기더니, 요즘은 서로 아우라고 우긴다. 이젠 나이를 먹는 것이 싫어서인지, 나이를 먹어 철이 든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를 향한 마음의 간격이 사라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새로 이사 온 동네 자랑을 듣다보니 어느새 갑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자 공주에서 유명한 알밤을 구워 파는 할머니들이 호객을 한다. 마수걸이를 해 달라는 할머니들 앞으로 남편들이 불려간다. 한 봉지에 3천원인 밤을 두 남편이 사고, 내 남편은 은행을 한 봉지 산다. 달콤한 군밤이랑 고소한 은행 알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갑사로 가는 길,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봄에는 황매화 꽃으로 노랗게 물들었을 오리숲길, 여름에는 배롱나무 꽃으로 붉게 물들었을 대적전大寂殿,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붉은 단풍으로 뒤덮였을 삼성각三聖閣, 이제는 빈 몸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풍의 계절이 지났음에도 카메라를 든 사진작가들이 우리들 앞으로 몰려 간다. 우리 업계에서는 알아주던 내 카메라가 전문가들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혼자 생각한다. 나도 저런 대포렌즈 하나 달까? 멀리 있는 풍경을 눈앞으로 데려오고, 가까이 있는 꽃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는 망원렌즈의 마술을 부려보고 싶다.
카메라의 왜소한 몸을 쓰다듬으며, 겨울로 접어드는 갑사의 풍경을 담는다. 렌즈 안으로 들어 온 고목의 휑한 가슴에서 텅 빈 고요를 본다. 속이 다 드러나도록 비우고, 나뭇가지가 더 자라지 않도록 잘라낸 감나무들이 동그란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갑사의 사람들은 겨우내 새들의 식량으로 쓰이도록 감을 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비우고도 가득 차 있는 늦가을 갑사가 아름다운 까닭이다. 잠시나마 허튼 생각을 품은 마음이 맥쩍다.
대웅전을 나서는데 노송老松 두 그루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있다. 그런데 곧게 뻗은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길게 굽어서 자라고 있다. 두 그루의 노송은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나란히 뿌리를 내리면서 한쪽 방향으로 길게 뻗어가는 모습이 볼수록 신비스럽다. 갑사가 자리하고 있는 계룡산은 닭이 알을 품고 용이 승천하는 형세라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알려졌다. 계룡산의 형세와 두 노송의 모습이 닮았다.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니 용문폭龍門瀑에 다다른다. 옹기종기 이어진 계곡의 물줄기처럼 폭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이 폭포를 뛰어오르면 용이 되는 걸까. 우리는 용의 문을 오르지 않고 하산을 준비한다. 용문폭을 지나면 이어질 숲길과 계룡산 정상에 펼쳐질 아름다운 광경을 접어야 한다. 보고픈 것을 앞에 두고 떠나는 마음을 헤아리며, 허전한 뒷모습들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몇 년 전부터 아픈 내 무릎 때문에 우리의 산행은 여기서 멈춘다. 산을 좋아하는 일행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바라봐 주고, 자신이 하고픈 것을 멈추어 주는 그이들의 마음이 고맙다. 다음에는 계룡산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부지런히 걸음을 단련하리라.
굳이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느 늦가을, 갑사에 가볼 일이다. 만추의 갑사는 텅 비우고도 아름답다. 갑사를 화려하게 물들였던 단풍들마저 모두 떨어지고, 빈 가지들만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사는 더 아름답다.
천년 나무들이 가슴을 비우고,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기울어가는 모습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일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나무들의 묵언默言을 들으며 자신 안에 쌓인 군더더기를 털어내 볼 일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의 더께를 씻어내 볼 일이다.
바쁘게 사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할 때 불현듯 떠나보면 어떨까. 혼자가 외로우면 서로에게 눈길 한 번 보내지 못했던 남편의 손을 이끌고 떠나도 좋겠다. 아니면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에게 기별을 하여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도 좋겠다.
으뜸 중에 으뜸으로 여기는 갑甲이란 얼마나 당찬 아름다움인가. 갑사의 아름다움이 그렇다. 존재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절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그랬으면 좋겠다. 세속에서 자본가의 잣대로 놓여지는 '갑과 을' 의 위치가 아니라 자존감을 세우는 갑으로 살고 싶다. '사람답게, 시인답게, 아름답게' 살고 싶다. 더 많은 것을 갖으려고 누군가의 마지막 지닌 것 마저 취取하려는 모습은 얼마나 누추陋醜한가. 짐승들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잡지 않는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죽지 않을 수 없으며 생명의 끝은 죽음이다... (중략)... 살아 있는 자에게 착한 일은 후세의 기댈 곳'
내려오는 길에 대성암大聖庵이란 암자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부처님의 시다. 2500년 전 부처가 고대 인도의 프라세나지트 왕에게 전한 시라고 쓰여 있다. 프라세나지트 왕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부처가 왕에게 전한 메시지는 '온전히 착하게 살라'는 말일 것이다.
흔히 부처의 말씀은 윤회輪廻를 바탕으로 자비慈悲를 설파한다. 후세의 삶을 위해 현세를 착하게 살라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나는 윤회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윤회란 자신이 또 다른 목숨으로 환생하는 것에만 국한되는 걸까. 둥근 바퀴처럼 돌고 도는 세상, 다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윤회가 아닐까. 나의 삶 다음에 오는 삶을 위하여 내가 지닌 것을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사는 것도 윤회가 아닐까. 갑사의 늦가을이 따라나와 물음에 답을 보내는지 감나무 잎 하나가 발아래를 구른다.
첫댓글 윤슬의 수필이 아니었으면 '모든 것을 비우고도 가득 차 있는 늦가을 갑사가 아름다운 까닭'을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시 같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늦가을 갑사에 가시면 알게 됩니다ㅎ
갑사의 늦가을 정취가 지척인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빈 몸으로도 아름다운 갑사에 언제 한 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언제라도 좋지만 늦은 가을이 더 좋을 거 같네요^^
마음의 여유...
잃어버린 마음도 찾을 수 있을거여요ㅎ
어쩜 이렇게 맑은 시냇물에 떠가는 븕은 단풍처럼 이쁘게 글을 쓰시는지... 따뜻해집니다.
느낌대로 스며든대로 배어나오는 거겠죠 ㅎ
주신 말씀이 더 곱습니다 ^^
떠나고 싶어요^^어디로든지
인천으로 오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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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갑질은 아니죠 ㅎ
갑사를 걸어보고 싶군요~~
갑사의 봄도 좋을 거 같아요.. 황매화 피는 봄길이 아주 멋지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