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문의 가을/靑石 전성훈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아침, 맑고 높은 가을 하늘에 반하여 북한산 대동문을 찾는다. 우이동 버스 정류장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아침 일찍부터 왜 그런지 사람들이 붐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까, 우이령 탐방 안내문이 보인다.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가을 우이령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중이다. 1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우이령을 개방했을 때 지인과 걸어간 이후에는 우이령을 찾은 적이 없다. 도선사로 올라가는 계곡에는 물이 제법 많아, 청둥오리 가족이 한가롭게 물장난을 치면서 아침 시간을 즐긴다. 도선사와 선운각으로 가는 갈림길은 조용하다. 한갓진 길을 나 홀로 걸어 선운각을 지나 선운교를 건너서 소귀천계곡으로 들어선다. 겉옷을 벗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본격적인 가을 산행길에 나선다. 2~3년 전 이맘때쯤 소귀천계곡을 올라가면서 다람쥐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계곡 입구에는 아직 단풍이 예쁘게 물들지 않았다. 숲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가을 숲속의 모습이 점차로 변한다. 나무 사이에 친 거미줄에 걸린 나뭇잎 하나가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까 신기하다. 숲에서 만나는 자연 현상 모두가 아름답게 보인다.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이 순간만큼은 욕망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인간 본연의 고운 심성에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햇살이 비치는 숲에는 아침의 따사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데, 그늘진 곳에는 간밤의 찬 이슬을 맞아 풀이 죽은 모습이다. 시간이 흘러 해가 중천에 솟아오르면 응달진 곳에도 하늘의 빛나는 기운이 넘쳐나겠지. 소귀천계곡에서 대동문으로 올라가는 깔딱고개 밑에서 배낭을 벗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쉰다.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주위로 돌려, 빨갛게 혹은 누런 잎으로 변해가는 북한산 계곡의 모습을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이상하리만치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에는 눈을 씻고 바라보아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구름조차도 끼어들기 미안하여 다른 곳으로 놀러 갔나 보다. 땀을 흘린 탓에 등허리가 차가운 느낌이 든다.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발걸음을 옮겨 대동문으로 향한다. 대동문에 도착해 보니, 가을 산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쉬고 있다. 일행과 함께 온 사람, 혼자 온 여성, 남녀 둘이서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는 모습도 보인다. 대동문 성곽 보수 공사도 끝났고, 폭우로 지반이 약해서 붕괴사고가 날 것 같은 곳에는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산행하면서 모처럼 보청기를 끼고 FM 방송을 들으니까 혼자서도 전혀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장기 이용 고객에게 무료로 한 달 동안 17기가 데이터를 보내준 통신사의 배려인지 혹은 얄팍한 상술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실컷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하산길은 평소 다니던 진달래 능선 대신에 수유분소 방향으로 잡는다. 이 코스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진달래 능선보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약하게 전해져서 크게 힘들거나 어려움이 없다. 수유분소로 거의 다 내려가니 정릉과 우이동 방향으로 가는 북한산 둘레길과 만난다. 이곳에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던 지도자들의 묘역이다. 해공 신익희, 가인 김병로 선생의 묘소 안내문이 보여, 가인 선생 묘소에서 잠시 묵념을 올린다. 무사히 하산하여 마을버스를 타고 수유전철역으로 간다. 전철을 타고 창동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신창동 시장을 찾아간다. 멸칫국물이 내 입에 딱 맞아서, 한 달, 내지 2개월에 한 번 홍두깨 칼국수 집을 찾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4천 원이었는데 지금은 7천5백 원이다. 점심 무렵이면 항상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산행을 마치고 먹는 칼국수는 정말 맛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집으로 돌아와 사우나에 가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수고하고 고생한 다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이렇게 마무리 지으며 나만의 작은 행복을 느낀다. 깊어가는 가을 길목에서 소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에 감사하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은 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의 공간이자 축제의 시간이다.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