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열매(9).절제(갈5:22-23,고전 9:24-27)
오늘 살펴볼 말씀은 성령의 아홉번째 열매인 절제입니다. 순서로는 마지막이지만 신앙생활 에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열매입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증거이고 나의 주인으로 모신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순하고 매우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열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다시말하면 이 아홉가지 열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속에서 나오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하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 없는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피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이 우리안에 부어져 있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 그 다음 그사랑의 결과로 나타난 희락,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화평합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넘어서 이웃과의 관계도 화평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관심과 이해와 존중하며 베풀고 용서합니다. 사랑의 속성이 나오니까 화평합니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제 오래 참고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순간순간의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소망이 분명하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어 사랑을 실천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웃을 향한 사랑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자비와 양선입니다. 이렇게 나만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이웃을 위해 자기를 내어놓고 자기를 희생합니다. 그런데도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에 대해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상을 결단코 잃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충성입니다. 변함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킵니다.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의 특징은 온유하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우면서 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옵니다. 말씀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온유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살펴볼 성령의 열매는 절제의 열매입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와 같은 열매입니다. 아무리 자동차가 잘 달려도 브레이크가 안되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열매는 천국백성의 성품입니다. 그래도 모든 열매에는 브레이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이 절제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일에 절제가 따릅니다. 절제라는 말을 우리 말 사전에 찾아보면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마디’절(節)자에 ‘절제할’ 제(制)입니다. ‘알맞게 조절함’입니다. 힘이 있다고 아무에게나 힘자랑하고, 돈 있다고 쓸데없는 일에 마구 돈을 쓰는 그런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절제는 “self-control”로 번역했습니다. 자기 통제력을 말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는 “엥크라테이아”입니다. 그 의미는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체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입니다. 도덕적 의미의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단순한 인격적 훈련을 통해 맺혀지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1. 우리가 무엇을 절제를 해야 합니까?
우리가 절제해야 할 부분은 세 가지입니다.
1)마음을 절제하여야 합니다.
사탄은 아담 때부터 끊임없이 “네 마음대로 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면 참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너다. 네 마음대로 하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인간 마음이 그렇게 선한 것이 아닙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이 고상한 것처럼 추겨 세우며 우리의 생각을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만이고 그것이 죄악의 뿌리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합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죄악의 찌꺼기를 자꾸 집어넣고 생각을 어둡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를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씀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담처럼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왜 성경은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렘 6:1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이만큼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2)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말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믿음이요 그 사람의 미래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차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습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대로 시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많이 쌓으면 거룩하고 복된 입술이 되어서 말로 인하여 그 사람이 축복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을 절제하고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언제나 말하기 전에 말의 결과를 점검해야 합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 죄를 범하는 말, 원망과 불평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을 말씀했습니다. 1)오직 덕을 세우는 말-상대방의 믿음을 세워주고 온전케하는 말을 하라는 말입니다.
2)선한 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3)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기쁨입니다.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을 잘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성도의 실제입니다. 그런데 그렇치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화나는 대로 말하면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 할지라도 브레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지나치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말이 절제되어야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말을 절제하십시다. 말을 통해 덕을 세우고 선한 말을 하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3)행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입고, 먹고, 마시고, 쓰고 하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담배가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고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그 담배가 자신의 생명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고 싶다고 절제하지 못하면 그 술이 그 인생을 삼켜 버립니다. 무엇이든지 절제하지 못하면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중독이 되어 버립니다. 오늘의 시대를 ‘3S’의 시대라고 합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광고에서는 “그냥하세요(just do it)”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생각하지 말고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뒤엎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속의 욕망입니다.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브레이크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생활도 절제해야 합니다. 잠도 절제해야 합니다. 본능에 충실하면 망합니다.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에서처럼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삼손처럼 사명을 잃고 멸망의 길을 걷고 맙니다.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모세처럼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힘을 절제하지 못하면 사울처럼 왕권을 빼앗기고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간이나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절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1)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이 비결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충만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한다 해도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충만해야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두 마음이 우리 안에서 갈등합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는 상태입니다. 결국 성령님의 통제를 온전히 받으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사울왕도 성령충만할 때는 예언도 하고 절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충만해지니까 악령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가 전부가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늦게 온다고 자기가 나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하나님이 기름부은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쫓아다닙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우리 마음도 그렇게 강팍하게 변해 버립니다.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는 천사처럼 보였는데 악령의 통제를 받으면 마귀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통제를 받으니까 얼마나 절제를 잘하였습니까? 그는 말합니다.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자신은 쇠하여서 사라지더라도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신발끈도 자신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울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자신의 자리와 자신의 사명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절제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윗도 성령충만할 때는 자기를 죽이려는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기 때문입니다.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 절제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배불러지고 왕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자 교만해졌습니다. 그 결과는 그가 전쟁 중에 낮잠을 자고 대낮에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 간음하고 그것을 덮기위해 자신의 신하까지 죽였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한 것입니다.
두 사람 다윗이 아닙니다. 한 사람 다윗이 성령충만할 때와 악령에 사로잡힐 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 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 나를 절제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충만해야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유혹을 이기고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2)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2-3절,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 때는 세상의 풍조에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습니다. 엡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러나 우리는 이제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절제의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사탄이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했습니다. 먼저 배고픈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은 육체의 욕망, 먹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여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따라 산다고 절제함으로 육신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
사탄은 또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그 때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하심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안목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
세 번째로 사탄은 마 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가장 커다란 시험이었습니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예수님은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생의 자랑도 이겼습니다. 사탄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자극하여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물리치고 절제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요 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예수안에 거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그 안에 거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절제의 열매는 맺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길은 바로 하나님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할 때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가 맺는 절제의 열매는 내가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절제란 내 힘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마음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이 내안에 중심이 되신 것입니다. 주재권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권이 바뀐 것입니다. 생각이나 감정, 행동의 주재권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느끼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주권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도 십자가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제는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고집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즉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절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면 거기에 풍성한 절제의 열매가 있음을 믿고 십자가를 통해 나를 날마다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목적의식을 가지고 훈련해야 합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운동선수들에게 가장 큰 목표는 상 받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1등상을 받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1등 상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것입니다.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1등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 긴 시간동안 열심히 훈련하고 오직 경기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다른 일에 절제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은 절제하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생활을 육상경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승점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모든 억메이기 쉬운 죄를 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주저앉거나 돌아서지 않고 앞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그래서 고전 9: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길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인생의 목적은 두 가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죽어가는 영혼, 병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 궁극적인 목적은 그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 두 가지 목적을 분명히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가 바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강조하는 열매는 절제의 열매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막연하게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절제해야 할 때에 절제하지 못하고, 매번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 했는데도 신앙의 진보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신앙생활의 목표가 확실할 때에 우리는 ‘절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숙한 성도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절제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모든 일에 절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절제하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선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아홉가지 열매는 우리 안에 모신 성령님의 성품입니다. 좀 더 실제적으로 말하면 천국백성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반드시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이 아홉가지 열매를 풍성히 맺어 여러분의 삶과 인격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