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연 시인의 시집 『비를 안아주었다』
약력
곽호연
2017년 《시조시학》 시조 등단.
2021년 《좋은시조》 동시조 등단.
이동주 문학작품상, 무등시조 작품상 수상.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 율격(동인).
hoyen2015@gmail.com
시인의 말
좋은 시 한 편 마주하는 날
온종일 잔잔한 물결이다
나를 안아주는 그대라서
내 안은
자연과 그대가 기대
여전히 조율 중이다
2024년 가을, 두루뜰에서
곽호연
비를 안아주었다
적막한 빈집에는 빗소리도 쓸쓸하다
터벅터벅 갈증 난 단발머리 여학생
빗줄기 매달러 온다
잠 못 드는 밤이다
꼬깃한 재생 테잎 중얼중얼 돌리며
기뻐하는 순간을 화폭처럼 그려본다
상장을 받았나 보다
빗길에도 덩실덩실
흰 띠를 두른 이마와 침묵이 먼저 와
그 공기는 엄마의 미소를 짓밟았다
오늘은 칭찬을 몽땅 꺼내
비를 꼭 안아주었다
희망 주식회사
거제도 지도 펴고
붉은 펜의 이랑 사이
배롱나무 채송화
심을 자리 정한다
간절함
바퀴에 끼워
설계하다 지우다
다시 또 짓는 봄엔
웃음만 그려 넣어
찔레꽃이 만발한
하늘 아래 첫 집 같은
후반전
첫사랑 같은
콩 볶는 주식회사
카프카의 편지 2
하숙집 아줌마의 편지를 건네받고
겉봉을 응시하면 장마 같은 눈물 바람
야무진 셋째 딸에게 아버지가 모월 모일
우표 위 찍힌 직인은 눈물 버튼이다
바른 인성 됨됨이 신용 있는 뻔한 말에
수천 번 되읽고 또 읽다 외워버린 열세 자
그런 날 어깻죽지 용솟음쳐 날았다
쉰 중반에 구순의 아버지는 쉼터처럼
지금도 가슴 저리며 서로가 애달프다
구름은 프리랜서
무채색 이른 새벽 하나씩 꿈틀꿈틀
제각각의 색깔로 개성을 그리다가
서녘의 붉은 신호에 물감 뚜껑 닫는다
집시의 바이올린
가슴속 잔잔하게 흐르는 파도 소리
겨울비는 커피잔 언저리를 휘감고
창문의 수증기마저
두 별을 점령한다
바이올린 연주 소리 절정에 오를수록
십육 년의 겨울은 안단테로 흐르고
소금꽃 금수강산에
급물살 일어난다
가만히 볼륨을 줄이려다 마주한
수년 전 뤼순 감옥 독립투사 렝한 눈빛
뼈 시린 허깨비처럼
건반 위에 앉아 있다
해설
앞질러 있는 시 그리고 이야기된 시간
김남규 시인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자신의 삶을 사유한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부터 시작해,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끝없이' 우리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질문한다. 우리는 이 질문 속에서' 존재할 것이며 이 질문'이' 우리 인간을 끌고 갈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운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존재자이자 자신의 존재를 포착해야 하는 존재자다. "현존재는 그의 존재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문제가 되는 존재"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그 유명한 문장처럼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 아렌트는 세 가지 활동으로 인간 존재방식을 설명한다. 바로,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인데, 이 활동들의 전제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필멸자(子)라는 조건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의식하며 다른 존재자와 구별되는 자기 자신만의 시간-형식을 살아가야 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우리 생존에 필요한 생산을 하는 '노동', 인공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 언어(말)를 매개로 자유의 영역을 창조하는 '행위'가 인간의 세 가지 기본 활동이며, 이들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아렌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타자에게 전달하는 일인데, 이때 우리 인간은 말과 행위를 통해 타자와의 차이를 생성해 낸다. 그리고 그 차이들이 우리 세계를 이룬다. "말과 행위로써 우리는 인간 세계에 참여한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각자의 고유성'이라 할 수 있는 '말'이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시인의 '말' 혹은 시인의 시 쓰기 '행위' 역시 중요해진다. 인간사회의 다양한 관계와 입장 사이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로 보여주며 'ㅅ' 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직접적으로 노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곽호연 시인은 이번 첫 번째 시집에서 자신만의 시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을까. 이번 시집에서 곽호연 시인은 우리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라는 침묵의 목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바꿔놓고 있다. 그 방식으로 시인은 '세계내존재'인 우리 인간의 존재 문제를 '시간'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