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 위해 33년 무료 치과 진료해준 '사랑의 벗'
33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주말이면 진료가방을 둘러메고 그는 전국 한센인 정착촌을 찾았다. 무료 진료봉사였다.
틀니가 필요한 이들을 만나면 본을 떠와 자신의 치과 한 귀퉁이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틀니를 제작했다.
치과기공사를 썼다면 힘이 덜 들었겠지만, 인건비가 아까워 자신이 직접 제작했다. 시내버스도 못 타고, 식당에서
밥도 못 먹고, 여관에도 들어가지 못해 묘지를 찾아 새우잠을 자야 했던 한센인들은 그의 봉사에 감격의 눈물
을 흘렸다.
전국 가톨릭한센인들의 모임인 가톨릭자조회(총재 엠마 프라이징거, 회장 박명서)도 그래서 그 긴 세월을 동반
했다. 지난해 9월 세월을 이기지 못해 봉사를 접어야 했지만 그는 이제 기도로 한센인들과 함께한다.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입구 '강대건 치과' 하면, 서울대교구 사제나 수도자, 신학생들은 1977년 이후 37년간 자신들
에게 무료 구강검사와 진료를 해준 의원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한센인들은 다르다. 강대건(라우렌시오, 81)원장
은 자신들에게 4000여 개의 틀니를 무료로 제작해주고 치과진료를 해준 한센인들의 벗으로 기억한다.
1970년대 후반 경기도 포천 한센환우정착촌에서 첫 무료진료를 한 후 한달에 한 번 쉬는 걸 제외하면 주말마다
의왕 성 라자로마을과 경북 칠곡 가톨릭피부과의원, 광주와 익산 등지 정착촌 공소로 옮겨가며 전국 9 곳 가톨릭
한센인정착촌과 병원에서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한센환우들을 돌봤다.
이에 6일 가톨릭자조회원들이 강대건 치과를 찾았다. 팔순을 넘긴 노구에도 여전히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강
원장에게 감사패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고령에다 난청으로 잘 듣지 못하지만 강 원장은 반듯한 모습으로
따뜻하게 한센인들과 자조회원들을 맞았다. 월세 40만원짜리 비좁은 건물에서였다. 자신과 가족, 병원을 위해
선 돈을 쓰지 않고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하느라 번듯한 병원 하나 마련하지 못한 그의 병원은 현대식 칙과하고
는 거리가 멀다. 환자대기실은 두세 평이 될까 말까 한 공간에 낡은 소파와 간이 의자 몇 개가 고작이다.
하지만 다들 그런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고 얘기꽃을 피운다.
50여 년간 한센인들의 대모로 산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엠마 프라이징거(81) 여사는 "30여 년 전이면 한센 환
우들의 치과 진료는 치료 해줄 의사가 없어 꿈도 꾸지 못했다" 며 "강 선생님의 치료는 한센인들의 치과 진료의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고 말했다. 그의 봉사에 늘 자문을 해준 김득권(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도 "강 선생
님은 늘 '선행과 봉사는 인간의 당연한 도리' 라며 자신의 봉사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으셨다" 면서 "때문에
많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고 인터뷰도 오늘이 처음이다" 고 전했다.
한센환우를 위한 봉사 후원회인 릴리회 고문을 맡고 있는 노정희(마리아, 79) 씨도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한센환우들과 함께한 강대건 원장님의 봉사는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 사랑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한센환우 봉사가 가능했던 건 묵묵히 나를 도와준 아내 (김순분 레지나, 73) 덕분이었다" 며 "30년 넘게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제가 오히려 일일이 찾아다니며 감사패를 드려야 할 텐데 제가 받아
송구스럽다"고 겸양의 인사를 전했다.
=== 평 화 신 문 2013. 5. 12 에서 모셔옴 ===
첫댓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를 보려고 하기보다...이렇게 눈에 보이는 천사를 본받는 것이 더 낫지 싶어요.
겸손과 사랑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신 강대건 선생님께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