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거천 단상(斷想)- (Ⅱ)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됐나? 팔거 내 옆으로 새로 나 있는 산책길을 걷다 육칠 십년대의 내(川)를 그려보며 상념에 젖곤 한다. 가끔 산책을 하거나 홈 플러스를 이용하게 되어 동천 교(橋)에서 거동 교 구간의 길을 오르내리곤 한다. 길은 자전거 길과 보도로 나뉘어져 있으며 포장이 잘 되어있다. 주간보다 야간으로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남녀 산보객을 비롯, 냄새를 맡으며 두리번거리는 애완용 개,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들 등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걷다가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도록 운동기구와 벤치가 놓여 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거품이 떠내려가는 냇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면 이 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닐까?
지금 내는 여러 곳의 하수구에서 흘러나는 생활하수(오수)로 오염되어 있다. 내 바닥에 박힌 크고 작은 바윗돌에는 검푸른 물때가 심하게 끼어 있으며 녹조가 돌을 에워싸고 있다. 자갈이나 모래가 드러난 곳에도 녹조덩어리로 뒤 엉켜 있다. 야간에 하천변을 따라 걷노라면 이따금 바람에 실려 오는 역겨운 물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한다.
냄새로 가장 불쾌감을 느끼는 곳은 거동 교에서 하천변을 따라 북으로 이백 미터 가량 떨어진 하수구(하수도) 부근이다. 그 곳을 조금 지나면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두어 달 전 쯤 어느 날 밤, 산책로를 따라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 이르렀을 때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수구에서 나는 냄새였다. 하수구와 맞닿은 동네는 읍내동으로 지어진지 오래된 E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홈 플러스에 볼일 차 그곳에 들렀는데 가뭄 때문인지, 오수가 흘러내리는 통로를 별도로 설치했는지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오염이 심한 내이지만 붕어와 피라미와 잉어가 살고 있다. 가끔 어린 피라미(치어) 떼가 물 흐름을 거슬러 헤엄쳐 오르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오염물질로 탁해진 물을 맛있게 들이 키니 정말 미련스런 놈들이다. 이곳 물고기들은 생활하수(오수)로 수질이 더러워진 환경에 잘 적응된 듯하다. 한때 오폐수로 오염된 낙동강에서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죽어 있는 물고기를 TV에서 시청 한 적이 있었다. 허지만 여태껏 팔거 내에서는 죽어 있는 고기를 보지 못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공장 폐수가 내로 흘러들지는 않는 것 같다.
며칠 전 오후 늦게 길을 거닐다 D교 부근, 물 흐름이 완만한 곳에서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는 오십대 가량의 장정 셋을 만났다. 낚시라면 구경거리가 될 것 같기에 다가가 보았다.
“고기가 좀 낚입니까”?
“예, 꽤나 낚았습니다.”
망태기를 들여다보니 손바닥 크기의 잉어와 붕어를 합해 여남은 마리는 족히 되었다.
“잡은 고기는 어쩝니까?”
“이 물에 도로 놔 줍니다.”
짐작대로 였다. 오염된 물에서 낚아 올린 고기를 감히 어느 누가 먹을 것인가. 이런 물에 사는 고기나마 낚아 올리면서 즐거움을 느끼려는 사람도 있으니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물속에 뛰어들어 피라미 떼 쫓거나 헤엄치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작금 경제적으로는 그 때에 비해 눈부신 성장을 이뤘으나 성장 이면의 그늘은 이렇듯 (하천에서도) 두껍게 드리워져있다.
팔거 내의 오염된 물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새들도 있다. 가끔 보이는 오리 가족과 왜가리와 비둘기 가족이다. 청둥오리들은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자맥질을 하며 물고기를 포획한다. 지금은 북으로 달아났는지 일반 오리들만 보인다. 왜가리는 물속에 서서 조용히 수면을 바라보다 붕어나 피라미 등을 잽싸게 낚아채곤 한다. 비둘기는 바닥이 드러난 곳에서 녹조덩어리를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다.
오수가 섞인 물을 마시는 고기 떼와 이를 잡아먹으려는 새들 위로 'Colorful Daegu'라고 쓰여 진 3호선 열차가 달린다. 정말 ‘아름다운 대구’라는 브랜드 슬로건에 걸 맞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 길을 걷다 내를 보노라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에 시민을 위한 위락시설이 여러 곳 설치되어 있는 신천(新川)은 어떠한가? 수달이 나타날 정도로 수질이 개선되었다. 강북 시민들은 언제까지 부연 거품이 떠다니는 내를 보며 그 공기를 호흡하며 살아야 할까?
당분간 물때와 녹조만이라도 좀 사라졌으면 한다. 홍수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삼 백 미리 가량의 비가 며칠에 걸쳐 내린다면 녹조와 물때는 웬만큼 휩쓸려 갈 것이다. 그러나 하수구 의 오수가 멈추지 않는다면 냇물은 또 더러워져 나쁜 냄새를 풍길 것이다. 악취를 제거하는 방법은 있으나 엄청난 비용이 들기에 관련 부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맑은 냇물에서 고기 떼 쫓다 물장구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2015. 7.
첫댓글 하루 속히 맑은 물이 될 날을 기대합니다.
오 폐수 처리 시설이 제구실을 다한다면 좀 덜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지나 다니며 대충 보기는 했지만 가까이 가서 직접 보지를 못했는데, 그런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군요. 이번 주에 비가 제법 온다니까 깨끗해 지는 팔거천을 기대 해 볼까요?
새로운 팔거천의 시대가 오리라 믿습니다.,